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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 김승희

 

 

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 싶다

진실한 사람

내가 들킬 것만 같아

진실한 사람 앞에선 늘 불안하다

 

나는 친절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은 진실의 무게만큼 무겁다

변심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고 변심이 너무 없는 사람도

박제.... 아니다, 아니다, 다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나는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고 싶다

진심은 복잡하고 입체적인데

진심을 감당하기엔 내내 모가지가 꺾이는 아픔이 있다

내장과 자궁을 발라내고

단무지나 베이컨은 온몸이 조용한 진심이라고 한다면

진심은 한낱 고결한 사치다

말하자면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이다

 

프로이트의 박물관처럼 본심은 어둡고 원초적이고

진심 뒤에는 꼭 본심이 도사리고 있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본심이다

거기까지는 가보고 싶지도 않고 숨겨진 본심이 나는 무섭다

과녁에서 벗어난 마음들을 탁 꺾어버릴 때 나오는 진심,

허심이란다

적어도 단무지는 뼛속까지 노랗고 베이컨은 앞뒤로 하양 분홍 줄무늬다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 지 오래되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진심이 바래 섬망의 하얀 전류가 냉장고 속에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 이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더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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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올해 제21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현대시 부문에 김승희, 시조 부문에 김일연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각각의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창비)과 시조집 ‘깨끗한 절정’(서정시학)이다.

열린시학이 주관하는 고산문학대상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시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심사위원들은 김승희 시인의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 대해 “진리가 부재하고 진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에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면서도 다층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며 날렵하고 재기 넘치는 언어로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이번 시집은 ‘모더니스트’ 김승희를 ‘리얼리스트’로 불러도 손색없을 다채로운 시 세계를 품고 있다”고 평가했다.

‘깨끗한 절정’에 대해서는 “운율을 자유롭게 운용하며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해 극서정을 최고치로 끌어올린 점과 정형시의 기품에 자신만의 독특한 빛깔로 더욱 깊고 넓은 시 세계를 보였다”며 “짧은 시조에 화룡점정 자안(字眼)이 박혀있다”고 호평했다.

이밖에 신인상에는 현대시 부문에 김미향 시인, 시조 부문에 김재용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본상이 각 2000만원, 신인상은 각 3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5일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 있는 전남 해남군 고산유적지 땅끝순례문학관 문학의 집 ‘백련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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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 안도현

1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담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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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제8회 석정시문학상’ 수상자로 안도현(60) 시인이 선정됐다.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는 9일 “제8회 신석정문학상 수상자로 안도현 시인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며 “지난 2013년 절필 선언 후 8년 만에 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속의 시들이 보여주는 섬세한 관찰과 발견의 묘미, 절묘한 표현이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고 밝혔다.

 

신달자 심사위원장 등은 “해방 후 교원노조 활동을 하고 독재의 탄압에 고초를 겪은 신석정 시인의 이력과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과 정치적 신념으로 한동안 절필을 했던 안도현 시인의 이력이 어느 부분 겹친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그의 수상에 모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안도현 시인은 경북 예천 출생으로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북항’ 등의 시집을 냈고,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등의 동시집과 다수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 출간됐다.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받았다.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안도현 시인은 “스무 살 이후 40년 동안 전북에 살면서 신석정 시인을 흠모하며 따랐던 분들에게서 문학을 배웠다. 그 문학이 저의 뼈대를 만들어주었다”며 “신석정 시인의 이름으로 상을 주신다니 두 손으로 받겠다” 큰 시인이 앉아 계시던 언덕과 시인의 눈에 들어간 그 바다를 잊지 않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9월 25일 오후 3시 부안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더불어 석정문학제(9월 26일 전북보훈회관), 석정문학 세미나(10월 9일 석정문학관) 등도 이어진다.

석정시문학상은 근·현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신석정(1907∼1974) 시인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4년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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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치 / 고영민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졌다

얼음이 풀린다

나는 몸을 움츠리지 않고

떨지도 않고 걷는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지나가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

따뜻한 눈송이들

지난 겨울의 노인들은 살아남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단단히 감고 있던 꽃눈을

조금씩 떠보는 나무들의 눈시울

찬 시냇물에 거듭 입을 맞추는 고라니

나의 딸들은

새 학기를 맞았다

 

 

 

 

봄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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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사)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와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는 ‘제22회 천상병詩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인 고영민의 '봄의 정치'(창비2019)를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천상병예술제'는 우리시대 대표적 순수시인이자 문단의 마지막 기인(伎人)으로 불리는 천상병(1930~1993년) 시인을 기리는 경기북부 대표 문학제로 (재)의정부문화재단에서 매년 후원하고 있다.

천상병시상심사위원회는 2019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출간된 시집 가운데 데뷔 10년 이상 된 시인을 대상으로 역대 수상자를 비롯해 추천위원들로부터 20여 권의 시집을 추천받아 이 가운데 1차 예심을 통해 6권의 시집으로 압축했다.

이어 이달 초 본상 심사위원회를 열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 끝에 고영민 시인의 '봄의 정치'를 최종 선정했다.

시집은 ‘죽음’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다룬다. 특히 어머니(아버지)의 부재(不在)를 다루는 시의 행간에는 그리움의 정동과 더불어 자기 앞의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사유의 힘이 느껴진다. 시의 언어가 절제되어 있고, 시행 또한 간소하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고영민 시인은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2002년 '문학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구구' 등이 있다.

이와함께, ‘제2회 천상병동심문학상’으로는 이정석 시인의 동시집 '촛불이 파도를 타면(아동문학평론2019)'이 선정됐다.

‘천상병동심문학상‘은 '천상병예술제'의 외연을 확대하고 아이처럼 순수하고 천진했던 천상병 시인을 기리며 동시인들에게 창작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지난해 신설된 상이다.

자세한 사항은 의정부문화재단 홈페이지(www.uac.or.kr)를 참고하거나, (사)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02-972-2824)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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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목록 / 김희업

 

 

손바닥에 닿으면 부러지는 연약한 비

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노점을 지웠다 오늘은

가난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산을 펴자 비가 우산 위로 사납게 달려들었다

우산은 우산 크기만큼만 비를 가려주었다

온다는 소리 없이 집집마다 비가 다녀갔다

섭섭하지만 비를 뒤쫓아갈 필요가 없었다

훗날을 기약하며 보내주기로 했다

비를 모금함 속에 모아두는 엉뚱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재주를 가진 노점이 사라진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에 스며들었는지

한산한 거리가 비로 시끌벅적했다

비에 쫓겨난 봄꽃은 어디서 보상받을는지

생계가 막막해진 봄꽃이

뿔뿔이 자취를 감추었다

손바닥에 닿으면 부러지는 연약한 비에도

바퀴의 노동은 멈추지 않고, 내일도 모르고 앞만 향해 자꾸

달려간다 이런 날, 바퀴도 없이 미끄러지는 사람이 꼭 있더라

저만치 자신을 내팽개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이제 웃음조차 지우려 한다

오늘은 비의 목록에 따뜻한 위로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비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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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와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위원장 정호승)에서 선정하는 2015년 <천상병詩賞> 올해17번째 수상자로 시인 김희업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비의 목록’(창비 2014)이다.


천상병시상 심사위원회는 5명의 심사위원들이 등단 10년 이상의 시인 가운데 2014년 1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1차 심의와 본심을 거쳐 선정된 시집 4권 중에서 천상병시상에 가장 부합되는 시적 성취를 낸 작품과 꾸준한 시적 활약이 기대되는 시인으로 김희업 시인의 ‘비의 목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고독과 상처의 일상 너머를 예리하게 투시하며 새로운 ‘시적 희망’을 불어넣으려는 리얼리스트적 상상력이 뛰어난 시집”이라고 평하며 “최근 시단의 시적 경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일상을 냉정히 응시함으로써 추구하는 시적 희망이 천상병 시인이 추구한 바 있는 비타협의 시정신과 닿아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희업 시인은 첫 시집 ‘칼 회고전’에서 상처로 얼룩진 고독한 몸의 세계와 존재에 깃든 고통과 억압의 역사를 탐색했다면, 두 번째 시집 『비의 목록』에서는 삶의 이면을 내밀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리얼리스트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언어적 기지를 살려 사물과 삶의 중핵을 파고드는 관조와 성찰의 시편을 선보이고 있다.

천상병시상 시상식은 <제12회 천상병예술제> 기간인 4월 25일(토) 오후 4시 의정부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김희업(金熙業) 시인▷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칼 회고전』과 『비의 목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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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가는 노래 / 진은영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훔쳐가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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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천상병 시인의 추모 20주기를 맞아 제15회 천상병 시 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훔쳐가는 노래’의 저자 진은영(사진) 시인이 19일 선정됐다.

시상식은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올해로 제10회째를 맞이하는 천상병 예술제 기간(4월19~28일) 중인 27일 토요일 오후 2시에 함께 진행된다.

이번 시 문학상의 심사위원은 신경림 시인, 박수연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로 구성 되었다. 등단 10년 이상의 경력과 최근 1년새 시집을 발간한 시인을 대상으로 1차 15명의 후보작품을 심사하여 두 작품으로 압축하고, 2차 심의에서 최종적으로 진은영 시인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를 선정했다.

심사위원장 신경림 시인은 “올해로 20주기를 맞는 천상병 시상의 당사자로 진은영 시인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진은영 시인의 시가 현실을 낯설게 만들고 그 낯섬 속에서 현실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천상병 시인의 초기의 현실성과 후기의 천진난만함에 대한 현재적 변형일 수 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천상병 시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는 1회 이상만ㆍ2회 한정옥ㆍ3회 박주관ㆍ4회 최정자ㆍ5회 이길원ㆍ6회 이수영ㆍ7회 김신용ㆍ8회 김유선ㆍ9회 김선우ㆍ10회 길상호ㆍ11회 박 철ㆍ12회 송경동ㆍ13회 박남준ㆍ14회 정한용 시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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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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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이사장 목순옥)는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자로 송경동(43) 시인을 6일 선정했다. 수상작은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다.

 

심사위원회는 “송씨는 1970~80년대의 노동시나 현실비판시에 맥을 이어 김남주와 박노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며 “그의 시는 시를 위한 시, 말장난의 시가 아닌 엄혹하고도 치열한 삶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돼 나오는 절규가 잘 드러나 있다”고 평했다.

 

송씨는 “이 세상은 미워할 일보다 사랑할 일이, 절망할 일보다 꿈꿀 일이, 다툴 일보다 새롭게 느낄 일이 훨씬 많은 곳”이라며 “아마도 그런 마음 더 소중하게, 잘 간직하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큰 상을 주시나 보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송씨는 구로노동자문학회와 전국노동자문학연합회 등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상금은 500만원이다. 시상식은 천상병예술제 기간(23~30일)인 23일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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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가는 노래 / 진은영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훔쳐가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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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하는 제21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진은영(43) 시인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 소설 부문에 김숨(39) 씨의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이 선정됐다.

 

희곡 부문은 '칼집 속에 아버지'를 쓴 고연옥(42) 작가, 번역 부문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영어로 번역한 최양희(81) 씨가 수상자로 뽑혔다.

 

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진은영 시인은 "이번 수상은 문학적 행운이다. 언제 또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궁핍한 순간에 찾아온 이 행운을 벗 삼아 좋은 시인이 되겠다." 소감을 내놨다.

 

진 시인은 "제 시는 누군가의 전범이 되는 종류의 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범이 되지 않는 문학의 소중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범이 될 수는 없으나 존재해야 하는 특별한 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저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진씨는 시집 '훔쳐가는 노래'로 한국시의 미학적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문별로 상금이 3천만5천만 원이었던 대산문학상은 올해부터 전 부문 5천만 원으로 조정됐다.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 심사로 바뀌어 내년엔 평론 부문을 시상한다.

 

올해 시상식은 다음달 3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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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가장자리를 / 백무산

 

 

우리 사는 곳에 태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뒤집고

불덩이 화산이 솟고 사막과 빙하가 있어 나는 고맙다

나는 종종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끔찍할까

지구는 얼마나 형편없는 별일까 생각한다네

 

내가 사는 곳이 별이란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게

지구의 가장자리가 얼어붙고 들끓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네

도심에 광야를 펼쳐놓은 비바람 쳔둥에도 두근거리네

 

그래도 인간들 곁에서 무엇보다 그리운 건 인간이지

한두세기 만에 허접한 재료로 발명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온 모든 길을 다 걸어온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계통발생의 길을 다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그 오랜 인간의 몸에 내장된 디스크 메모리를

법륜처럼 굴려보았으면 싶은 건데

 

그래서 나는 버릇처럼 먼 외곽으로 자꾸만 발길이 간다네

아직 별똥별이 떨어지고 아무 것도 길들어지지 않은 땅에

먼 길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이 더러 살고 있을 그런 곳에

 

잠에서 깨어나 창을 열면 이곳이 별이라는 생각

벌거벗은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을 뜨기를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인간의 가장자리 사회의 가장자리

그 모든 가장자리를 그리원한다네

한 십만년을 소급해서 살고 싶다네

 

 

 

 

그 모든 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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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백무산(57)씨와 소설가 정영문(47)씨, 문학평론가 황현산(67)씨가 선정됐다. 번역 부문 수상자는 단국대 스페인어과 고혜선(62) 교수이고, 희곡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30일 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백씨는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가 높은 평판을 받아 수상자로 뽑혔다. 심사위원회는 “노동자 문학으로부터 삶에 대한 근원적 의문으로 시 세계의 폭이 더욱 확장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최근 동인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겹경사’를 맞았다. 수상작은 동인문학상과 동일한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다. 심사위원회는 “기존의 작품세계를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독자들을 품는 품이 한결 넓어지고 편안해졌다”고 평가했다.

황씨는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고 교수는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 교수는 남편인 번역가 프란시스코 카란사(페루)와 공동으로 수상하는 것이다.

상금은 시와 소설 부문은 각 5000만원, 평론·번역 부문은 각 3000만원이다. 시·소설 부문 수상작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외국어로 번역·출간된다. 시상식은 11월29일 오후 6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과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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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서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이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덕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낮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가만히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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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면 노인회장인 김영근(회남 거교)씨의 아들인 김사인 시인이 24일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이창재)에서 시상하는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으로 수상한 김사인(50,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상은 제게 주는 상이 아니라, 보잘 것은 없지만 제 시에 주는 상이며 저는 소심하고 무능한 법정후견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랜만에 시집이랍시고 묶어 냈고 언제 또 책을 낼 기약도 없으니 상이라도 줘서 보내자는 뜻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씨의 시집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슬픔의 힘으로 빚어진 여유롭고 친밀한 시선은 사람의 속마음과 사물의 이면을 자상하고 곡진하게 성찰한다”고 평했다.

서울대 국문학과와 고려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김 교수는 1982년 동인지‘시와 경제’의 창간동인으로 참여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이 있다.

제6회 신동엽창작기금(1987)과 제50회 현대문학상(2005)을 받은 바있으며, 제14회 대산문학상(2006년) 수상하였으며,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현재 문화일보 매주 월요일 [AM7] 마음이 따뜻해지는 날 코너에서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일상 속의 사람들, 사물들 그리고 사연들을 연재하고 있다.

한편 대산문학상은 최근 2년내에 발표한 작품 가운데 관계기관, 단체 및 문인등의 추천을 받거나 자체조사한 작품을 대상으로 가장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장르별로 선정, 시상하는데 장르별로 문학적 성과가 가장 뛰어난 작품을 발굴하여 시상하는 국내 최대 최고의 종합 문학상이다.

시상부문은 시(시조), 소설, 희곡, 평론, 번역이고 상금은 각 부문 3000만원씩 총 1억 5000만원이며 수상작은 번역하여 해당 언어권의 유수한 출판사를 통해 출판, 보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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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할머니와 실루엣 / 신경림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 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 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겠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 곳 저 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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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936년 충청북도 중원에서 태어나 1960년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한직의 추천을 받아 1955~56년 〈문학예술〉에 시 〈낮달〉·〈갈대〉·〈석상〉 등이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러나 곧 건강이 나빠져 고향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다시 서울로 올라와 현대문학사·휘문출판사·동화출판사 등에서 편집일을 했다.

 

한때 절필하기도 했으나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여 〈원격지〉(동국시집, 1970. 1)·〈산읍기행〉(월간다리, 1972. 8)·〈시제(詩祭)〉(월간중앙, 1972. 12) 등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초기시에서 보여준 관념적인 세계를 벗어나 막연하고 정체된 농촌이 아니라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1973년에 펴낸 첫 시집 〈농무(農舞)〉의 발문에서 백낙청은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 마땅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의의가 있다고 했다. 이후 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농촌 현실을 기초로 하여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시집으로 〈새재〉(1979)·〈달넘세〉(1985)·〈남한강〉(1987)·〈우리들의 북〉(1988) 등을 펴냈고, 그밖에 평론으로 〈농촌현실과 농민문학〉(창작과 비평, 1972. 6)·〈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마당, 1982. 6)·〈역사와 현실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시〉(오늘의 책, 1984. 3) 등을 발표했다.

 

1973년 만해문학상,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다. 1992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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