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가까운 삶 / 이장욱
영원을 떠나보내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목적지가 없는 기차를 영원은 타고 갔다.
영원에게는 언제나 먼 곳이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이 영원에게 이미 지나온 곳 같았다.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열심히 잠을 자는 것은 나
영원이 아니라 나
영원은 여기저기에서 나를 잊었다.
마치 나를 다 살아낸 듯이
내가 출근을 하고 우체국에도 가고 관공서에도 가는 것을 알면서 영원은
매일 공무원 같았다. 문서의 한 칸을 메우기 위해 먼 산을 바라보는
비처럼
영원은 내렸다.
그것이 그의 업무.
나는 새 옷을 사고 새 안경을 샀다.
그것이 나의 업무.
오늘도 세수를 하고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매만지는 것으로
나는 세상의 모든 기차역에 혼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도 그제도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나는 처음 거기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고개를 들면 텅 빈 구름에게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하나
둘
나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오늘은 영원으로부터 조금 더
먼 곳으로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4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이장욱 시인의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 소설 부문에 김이정 소설가의 ‘유령의 시간’이 선정됐다.
평론 부문에는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쓴 정홍수 평론가가, 번역 부문에는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스페인어로 옮긴 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와 정민정 번역가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 선정사유로 시 부문의 경우 내밀한 아이러니와 중성적인 시쓰기의 비결정적인 지대가 시의 의미를 독자에게 돌려주면서 한국시를 미지의 영역으로 확대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소설 부문은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을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점이 선정사유로 작용됐다.
평론부문은 구체적인 삶의 지문을 과하지 않은 미문에 담아냄으로써 그 자체로 문학의 지혜를 체험하게 하는 점을 들었다. 최근 4년여간 발표된 스페인어 번역물을 대상으로 한 번역부문 수상작은 원작이 갖추고 있는 보편성과 함께 표현하기 어려운 함축적인 문장들이나 구어체적 표현들을 스페인어로 잘 소화해 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상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1960년대생 문인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미래파 이전에 아주 내밀한 방식으로 한국 시의 언어적 확장과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상상력에 기여해 온 이장욱 시인,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자서전을 자신이 완성할 것만 같다는 에감을 40여년이 지나 소설로 실현한 김이정 소설가.
또 위태롭게 흔들리는 ‘문학’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찾아내는 애정과 감식안으로 정점에 달한 평론의 진경을 보여준 정홍수 평론가는 지난 한 해 일어난 한국문학계의 악재와 호재 속에서도 위축되거나 들뜨지 않고 자신 만의 문학세계를 묵묵히 펼치며 한국문학의 중추 역할을 해낸 믿음직스러운 중진 문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젊은 번역가 정민정·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의 번역 부문 수상은 한국문학의 번역에 대한 기대를 더욱 고무시킨다. 한국과 멕시코의 젊은 번역가가 4년여라는 긴 시간동안 의기 투합해 번역에 매진한 결과물인 ‘위저드 베이커리’는 멕시코에서도 청소년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판 1만부를 인쇄하며 한국문학 번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심사단 관계자는 “시 부문은 기존의 서정시의 기율과 문법에 깊이와 밀도를 부여한 작업도 중요하지만 한국시의 미학적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며 “소설 부문도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이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상찬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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