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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이대흠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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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과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1회 조태일문학상 시상식 및 2019 죽형 조태일 문학축전이 오는 7일 오후 3시 곡성레저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죽형 조태일 시인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선박>이 당선된 이래 서슬 퍼런 언어로 정치모순과 사회현실에 온몸으로 맞선 저항시인이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빼어난 서정시로 보여준 죽형(竹兄) 조태일 시인(1941~1999) 20주기를 맞아 시인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마련된다.

 

이번 행사는 조태일 시인 타계 20주기를 맞아 우리의 삶을, 우리의 숨결을을 주제로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먼저 시인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시 낭송이 이어질 예정이다. 조태일 시인이 발행하던 <시인>지로 등단한 권혁소 시인은 무뚝뚝한 사나이라는 시를 통해 불의에 맞섰던 조태일 시인을 추억한다. 강대선, 김숙희, 박관서, 석연경, 주명숙 시인도 시낭송을 통해 조태일 시인을 떠올린다. 또한 곡성의 어린이들도 조태일 시인의 시 <임진강가에서>를 낭송할 예정이다.

 

70년대부터 민중문학 진영을 이끌어온 염무웅 평론가는 독재 권력에 저항하면서도 개성적인 목소리가 확고한 시를 썼던 조태일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염 씨는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평론 부문 당선자로 조태일 시인과는 신춘문예 동기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공연도 마련된다. ‘씨쏘뮤지컬컴퍼니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월드뮤직그룹 루트머지는 전통음악 산조에 자유스러운 형식을 접목한 퓨전음악을 선보인다.

 

또한 행사장에서는 그리운 쪽으로 고개를이라는 이름으로 서양화가 한희원 씨의 시화전도 펼쳐진다. 조태일 시인의 대표시를 비롯해 박남준 시인 등 여러 시인들의 추모시들이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에 천년고찰 태안사 문학기행, 세미나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의 시문학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마련된다.

 

1회 조태일문학상 수상자로는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을 펴낸 이대흠 시인이 선정돼어 이 날 시상식을 진행한다. 심사위원들은(신경림 시인, 염무웅 평론가, 최두석 시인)남도의 지역말을 맛깔나게 쓰는 데 오랫동안 공들인 시인인데 이번 시집의 경우 그 방언의 구사가 더욱 활달하고도 적실하다. 한국시의 융융한 흐름을 염원하던 조태일 시인이 살아계셔서 이 시집을 읽더라도 반겼을 것 같다.”라며 심사평을 밝혔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2천만 원이 수여된다.

 

한편 문학축전에 앞서 이날 1시 곡성레저문화센터 대황홀에서 <분단 극복과 통일지향의 시문학>을 주제로통일을 준비하는 젊은작가 심포지엄이 열린다. 심포지엄에서는 분단 문제에 관심을 가진 조태일 시인의 시를 조명하고, 통일문학의 현주소를 진단할 예정이다. 동의대 하상일 교수가 분단극복과 통일지향의 재일조선인 시문학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조태일 시의 통일 담론적 고찰’(이동순 시인, 문학박사, 충남 아산), 조태일의 글쓰기와 통일적 상상력(정민구 전남대 BK연구교수),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白頭山의 창작토대’(김낙현 중앙대 교수)를 주제로 한 발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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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조태일문학상 / 손택수  (0) 20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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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 박라연

 

 

누군가의

따뜻함은 흘러가 꽃이 붉어지게 하고

상처는 흘러가 바다를 더 깊고 푸르게 할까

 

티끌,이라는 이름부터 피라미 여치 패랭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어디까지 나아갈까 태평양

 

혹은 장미라는 이름으로 계급으로

붐비고 여물어가지만

 

제 이름의 화력만큼 이글거리는

애간장들에게

 

가만히

저를 열어 뿌려주는 엔도르핀을 만날 때

어떻게 인사하면 좋을까

 

사방이

그저 붉게 두근거리며 울어버릴 때

 

헤어진 이름이

깊고 푸른 바다로 걸어 들어가버렸을까

 

내 떨림의 물결 한가운데서 붉은

해가 떠올랐다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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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과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제17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자로 박라연 시인이 선정됐다.

 

영랑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신달자)는 강진군청 회의실에서 가진 제3차 회의에서 예·본심을 거쳐 최종 수상 후보에 오른 박라연 시인의 시집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를 제17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작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는 괴로움이나 슬픔이 개인 차원을 넘어 만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랑시문학상 본심 심사위원에는 운영위원단의 추천에 의해 오탁번·김기택 시인과 문학평론가 김주연씨가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박라연의 시는 자아에 갇히지 않고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면서“‘오만 가지 밥 생각오만 가지 꽃으로피어나황하 코스모스 천지와 호랑나비 천지의 아름다운 농사가 되는 상상력은 일상의 걱정거리나 괴로움이 사물로 변화하며 자연적·우주적 에너지를 품어 아름다워지는 과정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보성에서 태어난 박 시인은 원광대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중진이다.

2008년 윤동주 문학상과 2010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박두진 문학상 등을 수상한 그는 시집으로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너에게 세 들어 사는 동안’,‘생밤 까주는 사람’,‘공중 속의 내 정원’,‘우주 돌아가셨다등이 있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우리 군과 동아일보가 올 봄 업무교류 협약식을 갖고 영랑시문상을 함께 운영키로 했는데, 첫 결실을 맺게 돼 기쁘다면서 "특히 영랑 시인의 시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평을 받은 박라연 시인의 수상은 인문도시 강진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상식은 다음 달 16일 오후 2시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 상패와 상금 3000만원이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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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박소란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돌진하였네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는 조용히 나동그라지고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비질을 하였네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았네

그러나 어디로도 나는 가지 못했네

 

골목에는 금세 굳고 짙은 어스름이 내려앉아

리코더를 부는 한 사람이 있었네

가파른 계단에 앉아 그 소리를 오래 들었네

뜻 없는 선율이 푸수수 귓가에 공연한 파문을 일으킬 때

 

슬픔이 왔네

실수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곁을 파고들었네 새하얀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잠시 울기도 하였네

 

슬픔은 되돌아가지 않았네

얼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는, 그 시무룩한 얼굴을 데리고서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쾅쾅 두드렸네

 

 

 

한 사람의 닫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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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박소란(39) 시인이 선정됐다.

 

노작홍사용문학관은 수상작에 박 시인의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창비)이 선정됐다고 4일 발표했다. 심사는 문정희·안도현 시인, 박수연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안 시인은 선정작에 대해 사소한 일상을 긴장의 눈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긍정적이고, 소통의 공간으로 시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평했다.

 

노작문학상은 일제강점기에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며 낭만주의 시운동을 주도했던 홍사용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자 지난 2001년 제정됐다. 상금은 30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926일 경기 화성시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열린다.

 

박 시인은 동국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09문학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2015)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내일의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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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 나희덕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볼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파일에는 가령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 줌

손톱 몇 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체크무늬 재킷 한 벌

낡은 가죽 가방과 몇 권의 책

스푼과 포크

고치다 만 원고 뭉치

은테 안경과 초록색 안경집

침묵 한 병

숲에서 주워온 나뭇잎 몇 개

 

붕대에 남은 체취는 유리병에 밀봉되고

그를 이루던 모든 것이 <서정시>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그들은 이런 것조차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알뿌리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편지가 몇 통인지

숲에서 지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옷자락에 잠든 나방 한 마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하루에 물을 몇 통이나 길었는지

재스민차를 누구와 마셨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대출받았는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저물 무렵 오솔길을 걷다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국경을 넘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이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 Deckname<Lyrik>.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쩨에 대해 수집한 자료집.

 

 

 

파일명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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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53) 시인이 올해 제21회 백석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출판사 창비는 6"나희덕 시인의 시집 '파일명 서정시'(창비)가 올해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수상작에 대해 "시인의 주변을 포함해 세월호로부터 아우슈비츠, 아프리카 초원의 누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에 편재한 죽음의 증후들 속에서 비극적 인식의 언어를 거침없이 토로했다""이제까지는 없었던 전혀 다른 시세계를 보여줬다. 이 시집이 리얼리즘 시의 예리한 갱신을 이뤘다고 평가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감시와 착취, 죽음과 절망이 도처에 존재하는 시대현실과 정면으로 맞서는 시집"이라고 평했다.

 

올해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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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 박성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

 

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

 

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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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박성우 시집 웃는 연습이 선정됐다.

 

박 시인의 웃는 연습(창비. 2017)은 농촌 공동체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로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과 갖가지 사연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포착한 통찰을 들려준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도시적 생활 감각과 속도를 존재의 한 부면에 상처처럼 새기기도 한다.

 

본심에는 고형렬(시인), 천양희(시인), 한기욱(문학평론가), 예심에는 안미옥(시인), 황규관(시인)씨가 심사를 맡았다.

 

심사위원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람살이 본연의 리듬을 창출해내고 이제는 희귀해져버린 토박이의 삶과 언어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한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박성우(47. 시인)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신동엽문학상과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등이 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10월에 제정됐다. 창비가 주관해오고 있으며, 최근 2년 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주어지는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원이 주어지며,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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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묵

 

 

검은 사내가 내 목을 잘라 보자기에 담아 간다 낡은 보자기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나는 구멍으로 먼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날 연인들이 마을에 떨어진 보자기를 주워 구멍으로 검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꼭 한발씩 내 머리를 나눠 딛고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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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백석문학상에 신용목(43) 시인의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가 선정됐다고 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창비가 10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시대현실을 관통하는 가운데 타자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자유로운 언어적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세월호 이후의 시'가 다다른 일단의 성취를 보여줬다. 시인의 시력에 있어서도 한 절정을 이룬다고 평가돼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경남 거창 출신의 신 시인은 2000'작가세계'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작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노작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작은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에 이은 네 번째 시집이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1912~1996)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子夜)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제정됐다.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을 심사해 수상작을 선정한다.

 

시상식은 이달 29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수상 시인에게는 상금 2000만원이 수여되며 수상소감과 심사평 전문은 계간 '창작과비평' 2017년 겨울호(178)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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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 김성규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올라가고

굴뚝 위에서는 모든 것이 훤히 보이지요

굴뚝 위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당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 흩어져 울었을 거예요

파업을 지지하러 몰려온 사람들도

이제 지쳤어 , 안 되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자기만의 굴뚝에서 연기를 피우는 사람도

굴뚝 속이라도 들어가 손바닥을 쬐고 싶은 사람도

내려오면 안 돼요 끝까지 버텨 보세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는 사람도

내려오라 목이 쉬어 소리 지르는 가족들도

굴뚝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보이지요

하얀 구름을 찍어내는 굴뚝도 이젠 좀 쉬어야지

모두가 굴뚝 주변에서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울 때

이야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구름이 될 때

지나가던 구름이 굴뚝 위에서 쉬다

근심 많은 사람들 이마 위로 쏟아질 때

드디어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고 공장도 지쳐 쓰러졌어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자야지

언제 우리가 굴뚝 위로 올라왔지

굴뚝 위의 사람들은 언제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고

내려가야 할 사다리마저 치워지면

굴뚝 위의 사람이 종일 뱉어내는 한숨으로 안개가 끼고

지상의 인간들은 가끔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 눈이 멀어버렸나봐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먼 곳을 보며 노래하네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 올라가고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듣고 무언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받아도 되는 상인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박영근 선생님을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이십 대의 어느 날 우연히 뵌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너무 가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랐고 시를 썼고 도시로 와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바뀐 세상에 떠내려가는 모습이 앞으로 저의 운명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삼십 대의 어느 날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후 시비가 건립되었고 혼자 시비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소주 한 병을 사서 시비에 술을 따르고 저도 한잔 마셨습니다. 공원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쓸쓸한 날이었습니다.

 

민중, 어머니, 혁명, 가난이라는 말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간절함은 사라지고 웃고 적당히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가려 합니다. 상처받고 미워하지 않으려 교양인이 되어 거리를 두고 살아가려 합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시간이 흘러 누가 이 시인을 기억해 줄까요. 기억이 점점 부서져 가고 있는데 누가 그 시절의 상처와 미움과 설움을 기억해 줄까요.

 

역설적으로 풍요가 우리를 더 가난하고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이 가난함과 추위 속에서 누군가 다시 시를 찾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세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며칠간 혼자 박영근 문학상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많이 부족한 저에게 상을 주시는 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그 의미와 가까운 곳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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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기 언어와 타자의 언어가 섞이는 접촉의 그물망

 

박영근 시인은 긴박한 현실과 삶의 에너지가 바로 시를 낳게 한다고 했다. 그 긴장 속에서 시는 대체할 수 없는 언어적 싱싱함을 얻는다. 삶의 언어가 시적 성취를 획득하는 그 자리는, 바로 팽팽한 긴장의 순간이다. 시는 순간의 서정이며, 삶을 품은 언어다. 박영근의 시 세계와 연결되는 작품을 선정할 때, 언어적 싱싱함과 더불어 삶의 언어로서의 현장감도 중요하게 고려하게 된다. 7회 박영근 작품상을 선정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시적 성취와 더불어 언어적 현장감도 깊이 고민했다.

 

예심위원들이 추천한 총 14편은 모두 박영근의 시세계가 가지고 있는 미적 성취와 현실의 숨소리를 환기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그 중 안주철· 조말선· 김사이· 신철규· 김성규의 시를 놓고 숙고와 토론을 거듭했다.

 

안주철의 천변산책분노가 되기 전에 / 안타까움이 되기 전에” “남은 힘을 낭비하려고 천변을 걷는 모습을 그려 냄으로써 노동자의 모습을 해학적이고 반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수작이다. 조말선의 심야는 야간노동을 검정색이미지로 잘 형상화했으며, 작은 사물들을 내밀한 미의식으로 연결하는 시적 성취를 이뤄냈다. 김사이의 견고한 지붕 아래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체제의 억압을 단단해진 절망을 잘근잘근 씹는 분노와 함께 표현해냈다. 신철규의 인간의 조건은 우주적 상상력으로 코로나 19’의 위기에 처한 인간의 형상을 객관화하는 시대성을 획득한 작품이었다. 이들 작품은 2020년 한국 시문학의 한 성취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박영근의 시세계와 보다 더 긴밀하게 이어지는 작품으로 김성규의 굴뚝을 선정했다. 이 작품은 한국 노동계의 아픈 풍경인 굴뚝 고공농성을 시적 언어로 포착해냈다. 2014년부터 2015년에는 구미 스타케미컬 노동자들이 408일간이나 공장 굴뚝에서 농성을 벌였고, 2018년부터 2019년에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이텍지회 노동자들이 서울 목동 열병합 발전소 굴뚝에서 장장 426일간이나 농성을 벌였다. 파업 농성 노동자들의 절박함은 75미터의 굴뚝만큼 높고도 위태롭다. 김성규 시인은 굴뚝에 올라가내려오는 극단의 긴장 속에서 위의 세계와 아래의 세계를 대비시켜 그려냈다. 굴뚝 위 세상은 하얀 구름을 찍어내면서 먼 곳을 향하는 희망의 세계이고, 아래의 세계는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워내며 근심많은 사람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긴장하는 곳이다. ‘굴뚝 고공 농성을 둘러싼 긴장은 브레히트의 시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상과 현실이 팽팽하게 맞서는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적 형상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로 표현된 아픈 감각이 돋보인다. 유례가 없는 장기 농성 투쟁 과정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고단함을 시적으로 포착해낸 것도 소중한 성취다. 시인의 언어와 타자들의 언어가 섞이는 다중의 발성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성규 시인은 힘없는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시편들을 쓰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피력했던 적이 있다. 7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이 그 귀한 마음에 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성규 시인에게 깊은 존중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김해자(시인), 박수연(문학평론가), 오창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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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 이근화

 

 

오늘밤 한 권의 책이 나를 낳았다

피부와 머리카락이 없고

입술과 성기가 없는 어여쁜 사람

오늘밤 내가 태어나고 나는

한 권의 책을 네 옆구리에서 다시 찾아냈다

여러 개의 서랍 속에서

모두들 태어나고 싶은데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라니

안아줄 팔도 없이

달려갈 발도 없이

네가 나를 부른다

아무 냄새가 없는 꿈속에서

나는 괴로워한다

나의 탄생을

한권의 책을

 

그건 내가 너를 만나는 동안 만들어낸

길쭉한 귀 동그란 코 벌어진 입술

애써 얼굴을 지우며

한권의 책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게 너일까

한권의 책 속에서

정말 그렇게 살려고 내가 태어났다

 

네가 영원히 죽는다 해도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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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문화원과 솔출판사가 주관하는 11회 오장환문학상수상자와 7회 오장환 신인문학상당선자가 발표됐다.

 

솔출판사는 11회 오장환문학상수상자로 이근화(43) 시인을 선정했고 수상 시집은 지난 2016년 창비사에서 발간된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이다.

 

7회 오장환신인문학상당선작으로 '파이프'를 쓴 신성률(49) 씨를 선정했다.

 

이번 오장환 문학상의 심사는 최정례 시인, 박수연 문학평론가, 유성호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수상 시집인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오장환의 시 정신을 환기하면서 탁월한 시적 성취를 이룬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수상자인 이근화 시인은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시선과 목소리로 삶의 낱낱 장면들, 시간들, 관계들, 풍경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나직하게 표현한다""잔잔한 일상 속에 잠긴 개별 존재자로서의 갈등과 사랑을 촘촘한 언어로 담아간다. 새로운 일상시의 개화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오장환 신인문학상의 심사는 오봉옥·하재일·함순례 시인이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파이프'등의 시편들은 구체적인 현실이 상상력과 만나 독특한 시적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생에 대한 관조의 경지까지 화자가 도달했으며, 그만큼 이 시가 환기할 수 있는 세계는 매우 암시적이며 이미지의 변주 또한 중층적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인 이근화 시인은 1976년 서울 출생으로 2004'현대문학'으로 등단, 단국대 국문과와 고려대 대학원 졸업했다.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2006), '우리들의 진화'(2009), '차가운 잠'(2012),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2016)가 있고 동시집으로 '안녕, 외계인'(2008), '콧속의 작은 동물원(2018)을 발표했다.

 

산문집으로는'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2015) 등이 있습니다.

 

이 시인은 윤동주상 젊은작가상(2009), 김준성문학상(2010), 시와세계 작품상(2011), 현대문학상(2013)을 수상한 바 있다.

 

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신성률 시인은 1970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창작기금 1000만 원,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자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함며 시상식은 오장환문학제가 열리는 오는 19일 보은문화예술회관 앞 뱃들공원에서 열린다.

 

오장환 문학상은 보은군 회인면에서 출생해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오장환(19181951)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제정돼 최금진(1백무산(2최두석(3김수열(4최종천(5윤재철(6장이지(7최정례(8이덕규(9박형권(10)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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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 전동균

 

 

매지리 산밭에

살얼음이 와 반짝입니다

 

첫눈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고욤나무의 고욤들은 떨어지고

살아있는 것들은 더 깊어진 침묵 속으로 걸어갑니다

 

일을 끝낸 뒤

저마다의 겨울을 품고

흩어졌다 모였다 다시 흩어지는 연기들

 

자꾸만 모습이 달라지는

사람의 집들

 

빈손이어서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왔으니

 

이렇게 마른 입술로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당신을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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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총장 공순진) 한국어문학과 전동균 교수가 제19회 노작(露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창비, 2019).

 

노작문학상은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쓴 시인으로 일제강점기를 치열하게 건너며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는 등 낭만주의 시를 주도했고, 극단 '토월회'를 이끌며 신극운동에 참여했던 예술인 노작 홍사용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자 지난 2001년 제정되었다. 화성시와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주최하며,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주관한다. 상금은 2,0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1026,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노작문학제와 함께 진행된다.

 

정희성 시인(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최두석 시인(한신대 교수), 안도현 시인(단국대 교수)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시집의 표제처럼 시인이 부재 속의 존재, 보이지 않는 것 속의 보이는 것, 그리고 소란 속의 침묵이라는 명제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탐색하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하면서, "전동균은 이번 시집에서 너무나 쉽게 읽히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에 작정하고 균열을 내려든다. 대지의 숨결과 삶의 구체성으로부터 이탈하는 시들이 늘어나는 때이기에 전동균의 서정은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시집의 어디를 넘겨도 미숙하거나 결기가 느슨한 시가 없다"라고 호평했다.

 

전동균 교수는 1962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지난 20083월부터 동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으로 '오래 비어 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 등이 있다. 백석문학상, 윤동주서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전 교수는 "처음 시를 만났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보다 깊고 넓은 시의 세계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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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운운 / 박철

 

 

어김없이

해가 뜨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생명을 위해서?

그러기엔 너무 뜨겁지 않은가

타면서 멀리

밀려온 우리

그러나

이제 수평선을 넘어가는 사연을 좀 알겠네

영속이란 없다는 것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다는 것

그러니

나는 오늘도

사랑 운운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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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박철(58) 시인이 선정됐다. 5일 상을 주관하는 노작홍사용문학관에 따르면 수상작으로 그의 시집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가 뽑혔다. 

 

심사위원단은 "언어에 대한 깊은 자의식과 함께, 의식과 언어가 가볍게 상승하고 번져가면서 날아가는 상상적 맥락들을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견지하고 있다"고 평했다. 

 

노작문학상은 홍사용(1900~1947)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그는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 극단 '토월회'를 이끌었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2000만원이며 시상식은 다음 달 20일 경기 화성시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노작문학제와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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