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 남진우
지금
목마른 사자 한 마리 내 방 문 앞에 와 있다
어둠에 잠긴 사방
시계 똑딱거리는 소리
잠자리에 누운 내 심장에 와 부딪치고
참 가득히 밀려온 밤하늘엔 별 하나 없다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 문 앞까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처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서
짧은 잠에서 깨어나 문득 눈을 뜬 깊은 방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의 텅 빈 방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사자의 갈기가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타오르는 사자의 커다란 눈이 내 눈에 가득 차고
사나운 사자의 앞발이 내 목줄기를 짓누를 때
천둥처럼 전신에 와 부딪치는
시계 똑딱거리는 소리
문을 열고 나가보면 어두운 복도 저 편
막 사라지는 사자의 꼬리가 보인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 주관 제15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김훈(59), 시인 남진우(47)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장편 ‘남한산성’,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다. 소설 심사위원단(김인환·박완서·임철우·최윤·황광수)은 “문자화된 역사를 살아있는 생생한 살과 피의 형상으로 복원해 내는 능력과 단순 명쾌한 문체가 돋보였다”는 점에서, 시 심사위원단(김우창·김종해·정과리·천양희·황지우)은 “신비에 대한 탐구가 경험적 진실 속에 뿌리내렸고, 시적 전통의 혁신이 탁월하다”는 면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희곡 부문은 ‘열하일기 만보’의 배삼식, 평론은 ‘비평극장의 유령들’의 김영찬, 번역 부분은 황석영의 ‘한씨연대기’를 독일어로 번역한 강승희·오동식·토르스텐 차이악에게 돌아갔다.
상금은 소설 5000만원, 시·희곡·평론·번역 각 3000만원이며 시상식은 29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최근 제15회 대산문학상 시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남진우(47)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그동안 시인보다는 문학평론가로 더욱 널리 알려져 왔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한 그는 1990년 첫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로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한 이래 동서문학상(1995), 현대문학상(2000), 팔봉비평문학상(2002) 등 다수의 평론상을 수상했다.
반면 지금까지 모두 4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 받은 시문학상은 '김달진문학상' 정도가 유일하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남씨의 문학적 연원은 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평론가로 등단하기에 앞서 그는 1981년 동아일보 신문춘예를 통해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또 첫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도 첫 평론집과 비슷한 시기에 펴냈다.
아마도 그의 시집이 평론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그다지 쉽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번 대산문학상 수상시집인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의 경우도 쉽게 다가오는 시는 아니다. 시인은 특유의 상상력으로 시들고 메마르고 어두운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시, 세속적 삶을 표현하거나 폐허가 된 장소에서 사유한 듯한 시들을 수록했다.
심사위원단은 그러나 "그의 낯선 환상세계는 이미 우리 생활문화의 심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존적 체험의 세계인데도 낡은 고정관념이 그걸 못 보게 할 뿐"이라며 "신비에 대한 오랜 탐구를 통한 시적 전통의 혁신이 돋보였다"며 시인의 '고집'을 높이 샀다.
시인은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학동네' 계간지 편집에 오랫동안 관여하다 보니 시를 쓰는 사람보다는 평론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 같다"면서 "(평론가로서의 활발한 활동이) 시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깎아먹은 셈"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나의 시는 특별히 실험적인 시는 아니지만 내가 지향하는 세계에 극단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편안하게 읽히고 소비되는 언어가 아니어서 다소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평론을 쓰면서도 시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시인은 "시란 억지로 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작가가 수상소감문에서 밝힌 "그가 시에게 가기 전에 시가 그를 향해 오는 것"이라는 말과 맞닿아있다.
"어느 순간 어떤 부름이 그를 찾아와 그에게 입을 벌리라고, 속삭이고 외치고 노래 부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시인의 감수성이란 외부의 소음을 뚫고 우주 저편에서 전해지는 한 소식을 알아듣고 옮겨 적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수감소감문' 중)
시인은 이른바 '미래파' 등 극히 실험적인 작품들을 쓰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옥석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어떻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좋은 시를 쓰는 시인들과 단지 그런 분위기에 편승한 시인들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작 '미래파'로 불리는 시인들 중에는 진정한 '미래파'라고 보기 힘든 시인들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옥석이 가려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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