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사단법인 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와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는 제 20회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자로 서효인(37)시인을 선정했다고 12일 발표했다. 수상작은 지난해 출간한 시집 ‘여수’다.
심사위원단은 “시집 ‘여수’를 펼쳐들고 읽노라면 이미 가본 곳은 물론 전혀 경험하지 못한 공간에 대한 이미지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어떤 공간에 대한 기존의 경험을 해체하고 그곳을 전혀 다른 세계로 감각하도록 만드는 언어의 힘, 이것이야 말로 아무나 지닐 수 없는 능력”이라고 평했다.
서 시인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주어지며, 시상식은 4월 28일 의정부 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198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서효인 시인은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와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을 냈다. 2011년 제 30회 김수영문학상, 2017년 제 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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