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nefing.com
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이사장 목순옥)는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자로 송경동(43) 시인을 6일 선정했다. 수상작은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다.
심사위원회는 “송씨는 1970~80년대의 노동시나 현실비판시에 맥을 이어 김남주와 박노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며 “그의 시는 시를 위한 시, 말장난의 시가 아닌 엄혹하고도 치열한 삶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돼 나오는 절규가 잘 드러나 있다”고 평했다.
송씨는 “이 세상은 미워할 일보다 사랑할 일이, 절망할 일보다 꿈꿀 일이, 다툴 일보다 새롭게 느낄 일이 훨씬 많은 곳”이라며 “아마도 그런 마음 더 소중하게, 잘 간직하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큰 상을 주시나 보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송씨는 구로노동자문학회와 전국노동자문학연합회 등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상금은 500만원이다. 시상식은 천상병예술제 기간(23~30일)인 23일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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