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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 이성부

 

 

가까이 갈수록 자꾸만 내빼는 산이어서

 

아예 서울 변두리 내 방과

 

내 마음속 깊은 고향에

 

지리산을 옮겨와 모셔놓았다

 

날마다 오르내리고 밤마다 취해서

 

꿈속에서도 눈구덩이에 묻혀 하우적거림이여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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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의 어렵고 고통받는 삶을 작품 속에서 여러 형태로 그려낸 시인으로, 개인의 행복이나 불행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 아래 소외된 존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민중시를 썼다. 1980년대 말 이후에는 산(山)과 산행(山行)을 소재로 한 시를 주로 쓰고 있다. 1960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9년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해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에서 홍보부, 생활부, 사회부, 문화부 부장 및 편집국 부국장을 지내고 1997년 사직했다.

 

1962년 〈현대문학〉에 〈열차〉 등으로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고,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되었다. 〈이성부 시집〉(1969), 〈우리들의 양식〉(1974), 〈백제행〉(1976), 〈전야〉(1981)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서민의 정한을 담아내는 사실주의 시로서, 민중적 차원의 보편성을 획득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산행에 나서, 사회구조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절망, 자기학대와 죄의식이 역사의 상처와 만나면서 어떻게 제자리를 찾는가를 성찰하였고, 이후 산에 얽힌 역사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살이를 온전히 담아내는 시를 쓰고 있다.

 

〈빈산 뒤에 두고〉(1989), 〈야간산행〉(1996), 〈지리산〉(2001),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 〈도둑산길〉(2010) 등은 그 결과물이다. 현재 그에게 있어서 '산'은 한국인의 삶과 역사, 문화의 중요한 무대이자 배경이며 삶의 터전이자 의식 형성의 원형적 상징이다. 시집 이외에 산문집 〈산길〉(2002)을 냈다.

 

현대문학상(1969), 한국문학작가상(1977), 대산문학상(2001), 편운문학상(2005), 가천환경문학상(2007) 등을 수상했다.

 

 

 

도둑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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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학상’ 수상한 이성부 전 일간스포츠 문화부장

 

“가까이 갈수록 자꾸 내빼버리는 산이어서
아예 서울 변두리 내 방과
내 마음속 깊은 고향에
지리산을 옮겨다 모셔놓았다
날마다 오르내리고 밤마다 취해서
꿈속에서도 눈구덩이에 묻혀 허위적거림이여”

지난달 31일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이성부 시인(사진)은 자신이 지리산에 대해 갖는 애틋한 사랑을 이렇게 읊었다. 97년 일간스포츠 부국장 겸 문화부장을 끝으로 언론계 생활을 마감하고 백두대간의 시적 형상화에 주목하고 있는 이씨는 “너무 기쁘다”는 말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대학 재학시절인 1962년 현대문학에 ‘열차’ 등의 시가 추천되어 등단한 이씨는 그 뒤 60∼70년대에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신문기자로서 80년 광주를 겪으며 그는 언어에 대한 절망,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노여움과 서러움 때문에 한동안 시의 세계를 떠나 있었다.

그는 “시와 언어와 문자를 경멸하는 시를 몇 편 썼으나 가슴만 더 답답해질 뿐이었다”면서 “그 때문에 아예 시쓰기를 단념하고 신문사의 기획물에만 매달려 숨어있는 예인이나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신문에 쓰는 것으로 견디기 어려운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런 그에게 다시 시를 쓰게 만들어준 것은 ‘산’이었다. “파충류와 같이 꿈틀거리기만 하던 내게 어느날 산이 왔다. 내가 산에 간 것이 아니라 산이 나에게 왔다.”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고 오르던 직장 산악회의 무덤덤한 산행을 1년쯤 한 뒤 그는 비로소 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책상머리에 앉아서도 산악지도만 들여다보면 가슴이 설레였고 지도와 나침반과 관련 책들을 매만지는 시간이 많아졌다”면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바라보이는 북한산의 보현봉이 나를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고 당시의 자신을 회상했다.

이렇게 ‘산’과 만나게 된 그는 이후 10여년간 산에만 매달려 지내다 90년을 전후해 산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와 에세이 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백두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을 올라 감동과 느낌을 시로 담아내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첫번째 결실이 이번에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시집 <지리산>인 셈.

그는 북한의 산들을 꼭 가보고 싶지만 여러 가지 장애가 많아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는 “이제 60이 다 된 나이에 너무 큰 목표인 것 같기도 하지만 자유와 고독과 야성을 찾아가려는 이 행위야말로 나의 시가 가야 하는 길과 닮아 있는지 모른다”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는 “남쪽의 백두대간은 지금 80% 정도는 오른 것 같다”면서 “그 사이 작업이 신통치 못하고 성에 차지 않지만 ‘내가 걷는 백두대간’의 작업이 완성될 때까지 더 열심히 하고 부지런해져야겠다고 다짐한다”면서 감사의 소회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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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송경동

 

 

2014 1 2

캄보디아 프놈펜 남서쪽 카나디아 공단

한국계 기업 '약진통상' 정문 앞

봉제노동자 백여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127개 공장이 파업 중이었다

 

공단 내 다른 한국 기업인

'인터내셔널 패션로얄' 노동자 피룬도 춤을 추고 있었다

하루 평균 열시간 일하며

부자를 위해 비싼 옷을 만든다는 피룬의

월수입은 130달러, 한화로 14만원

한시간 잔업수당 50센트 의료수당 5달러

아침 7시 출근을 한번이라도 어기면 나오지 않는

보너스 5달러 교통비 5달러를 포함해서다

 

"나도 ''이란 것을 가져보고 싶다"

서른한살 여공 파비도

댄싱 파업에 참가한 까닭이었다

네댓 명이 함께 사는 쪽방 월세가 40달러

식비 60달러 십년을 일했지만 남은 건 200달러 빚뿐

그것도 육개월에서 일년 단위 비정규직

지난 이년 동안 카나디아 공단에서

영양실조로 작업 중 쓰러진 봉제노동자 4,000

 

춤추는 노동자를 향해

트럭 열대에 나눠 타고 온 헌병들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건 오후 3 30

약진통상 공장 부지를 나눠 쓰는 911 공수부대원들도

쪽문을 열고 나왔다 911부대 차프소포른 소장은

약진통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울부짖는 소리 끌려가는 소리가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분노한 카나디아 공단 노동자 만명이

오전부터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침 8

내무부를 향한 시위대가 이백 미터쯤 전진했을 때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죽고

삼십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룬의 오른쪽 다리에도

총알이 박혔다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의사는 없고 간호사들은 치료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시각, 시위와 관계없이 병원을 찾은 한 여성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여성은

되돌아가는 길에 숨졌다 단층집 옥상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폭은 왼쪽과 오른쪽 발목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오토바이택시 기사 세론은

손님을 기다리던 중에 총을 맞았다 생선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임산부도 총을 맞았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병원을 향해 돌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은

유혈 사태 전 '긴급' 서한을 통해

"정체불명 아웃사이더들의 불법 행동"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없을 시

"캄보디아 내 한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

캄보디아 정부와 정치권의 강력한 개입을 요청했다

캄보디아에서 2012년 기준 한국은 중국을 제치고

캄보디아 투자국 1위 한국 대사관이 1 6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치안안전정보' 안내문에 따르면

"현지 수경사령부와도 접촉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캄보디아 국가대테러위원장과 접촉하고 내무부·법무부·경찰청 등 정부 주요 기관에

우리 기업의 안전과 피해를 막아달라는 취지의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이렇게 캄보디아 정부를 재빨리 설득해

"금번 상황을 심각히 고려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자신들 공이라고 자평했다 캄보디아 군 병력이

특별 보호조치를 취한 공장 건물은

한국 공장이 유일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진압에 앞장선 훈센 총리의

'총리 경호부대' '70여단'의 공개적인 후원국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훈센 총리의

경제 자문위원이었다 2011년 총리 경호부대가

2,800만 달러의 기갑장비를 도입할 때도

한국 정부가 지원했다 60여개 업체가 모인 한국봉제협회는

사태 후 좀더 발빠르게 움직였다

캄보디아 의류생산자연합회를 움직여

통합야당 대표 삼랭시와 8개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갔다

 

비슷한 때인 2014 1 9

방글라데시 남부 치타공에 위치한 '영원무역' 해외공장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다른 수당들을 삭감해

도리어 전체 임금을 깎은 사측에 분노해

노동자들의 돌발 시위에 나섰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에 공장 열일곱개를 소유한 대기업

월급날인 그날, 경찰 발포로

갓 스무살 여성 노동자 파르빈 악타르가 죽고

십수명이 다쳤다 작년 말에 올랐다는

최저임금은 5,300타카, 한화로 7만원

오르기 전엔 4만원이었다 영원무역에서는

2011 4월에도 경찰 발포로 세명이 죽고

250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방글라데시에선 2013 4

닭장 같은 한 봉제공장 건물이 붕괴해

노동자 1,235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파르빈 악타르가 죽은 날

새벽 6 50, 베트남 북부 타이응우옌성 옌빈

삼성전자공장 신축현장에선

작업시간에 늦어 출입구를 뛰어넘는 한 노동자를

삼성보안서비스 용역들이 구타하고 전자충격봉으로 기절시켜

베트남 건설노동자 4,000명이 '폭동'을 일으킨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베트남 노동자들

최저임금은 12만원이었다

 

약진통상은,

캄보디아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두었다

서울 송파구에 작은 본사를 두고

다국적 노동자 23,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바나나리퍼블릭, , 올드네이비 등

유명 브랜드 의류를 주문생산한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와 중국 베트남 엘살바도르에 공장을 두었다

본사 한국인 직원은 448명이고

현지고용인은 52,530명이다

노스페이스를 생산하고 나이키 등을 주문생산한다

 

삼성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해외공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

 

수술을 두번 남겨둔 피룬은

당분간 춤을 출 수도

미싱을 밟을 수도 없다

그날 이후 피룬의 병실을 방문한 한국인은

취재진 몇명 말고는 없었다

 

한국의 수출자유무역공단에서

이십여년 노동운동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사양산업이 도산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도산, 폐업, 해외 이전하는 봉제공장 전자공장 노동자들 곁에서

십수년 '빠이빠이' 눈물바람이나 하며 살아 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를

직접고용 정규직화하고 생산라인을 다시 돌리라고 싸워 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하며 위장폐업한

기타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복직을 요구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필리핀 수비크에 2조원을 들여 조선소를 세우고 비정규직 2만명을 고용한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게 맞서 싸우던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모든 게 경영상의 위기로 인한 정당한 정리해고이며 비정규직화라고

나아가 이젠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로도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고

오늘도 열심히 방망이를 두드리는 법 앞에서

속수무책 망연자실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정규직 자녀 우선채용에 합의하는

'대공장 민주노조'를 위해

비정규직 확산과 우선해고에 눈감는

'대공장 민주노조'를 위해

이젠 해외여행깨나 다니는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 고용안정을 위해

한국 사회 중산층의 다수를 이루는

'민주노총 정규직 조합원'들을 위해 힘써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5.18 광주 학살에 분개해 해마다 망월동을 찾는

해마다 전태일 열사 기일에 맞춰 전국노동자대회를 찾는

용산 철거민 학살을 오늘도 잊을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1985년 구로동맹파업 기념사업일을 맡아 하고

가끔 구로공단 산업화 관련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다시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이 된 이곳에서

싼 전세 탓에 오도 가도 못하고 사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전세계 부자 85명이

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이 지구별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다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 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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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열린시학》에서 주관하는 제16회 고산문학 대상 수상자에 시조부문에 이지엽 시인, 시부문에선 송경동 시인이 선정됐다.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이지엽 시인의「내가 사랑하는 여자」(책만드는집, 2016)이고, 시부문의 수상시집은 송경동 시인의「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 2016)이다.

 

이지엽 시인의 수상 시집「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단시조의 고차원적인 압축과 단아한 정형의 틀을 가장 정확하게 고수하면서 그 나름의 아름다운 서정까지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경동 시인의「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시집은 세월호 이후 구조화된 사회적 아픔을 구체적인 시의 질료로 삼아 국가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을 시로써 묻고 시로 완성하며 마침내 시의 지평을 담대하게 넓혀가고 있는 시집이라는 심사평을 받으며 선정됐다.

 

이번 심사 선고위원으로는 시조부문에 정용국 시인, 박명숙 시인이, 시부문에는 이정록 시인, 안상학 시인이 6월과 7월 두 달 동안 2015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출간된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박시교, 김제현, 강형철, 이하석 시인이 맡았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행사와 함께 오는 10월 8일 오후 3시 해남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각 1000만 원이다.


고산문학대상은 계간《열린시학》에 특집으로 소개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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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 / 이산하

 

 

광주 수산시장의 대어들

육질이 빨간 게 확실하네요

거즈 덮어 놓았습니다

에미야, 홍어 좀 밖에 널어라

 

1980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여러 시신들 사진과 함께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이다

 

우리 세월호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 게 아니라

진도 명물 꽃게밥이 되어 꽃게가 아주 탱글탱글

알도 곽 차 있답니다~”

 

요리 전의 통통한 꽃게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글이다

이 포스팅에 좋아요 500여 개이고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댓글은 무려 1500개가 넘었다

좋아요보다 댓글이 더 많은 경우는 흔치 않다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환호한 사람들은

모두 한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이다

문득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범인을 찾은 듯 관객들을 꿰뚫어 보는

송강호의 날카로운 눈빛이 떠오른다

범인은 객석에도 숨어 있고 우리집에도 숨어 있지만

가장 보이지 않는 범인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이다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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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시인과 이은봉 문학평론가가 제32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시사랑문화인협의회가 31일 발표했다.

 

이산하는 시 부문에서 시집 악의 평범성으로, 이은봉은 평론 부문에서 평론집 시의 깊이, 정신의 깊이로 각각 수상했다. 상금은 시 부문 2000만 원, 평론 1000만 원이다.

 

이산하는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그는 반정부 활동으로 수배 중이던 1987년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미국을 비난한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대표 시집으로는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등이 있다.

 

이은봉은 195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숭전대 국문과를 나왔다. 1983 삶의 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1984 창작과 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산하와 마찬가지로 지하 신문 등을 발행하며 반정부 운동을 벌였다. 해직 교사 출신으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구성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국립한국문학관 비상임이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한편 김달진문학상은 시인이자 한학자인 월하 김달진(1907~1989)을 기리고자 1990년 제정됐다.

 

올해 시상식은 오는 10월 2일 경남 창원시 김달진 문학관 생가마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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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에 삽을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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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와 시학이 주관하는 제2회 영랑시문학상에 고 김남주(1946-1994)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평론가 염무웅이 올해 엮어 펴낸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이다.

 

고 김남주 시인은 혁명가라는 이름 못지않게 1970~1980년대를 풍미한 민중 계열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시는 민중운동의 뿌리였고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시 세계를 일목할 수 있는 시전집이 없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났어도 말이다. 물론 그는 생전에 여러 권의 시집과 선집-전집을 출간했다. 한 권의 유고 시집도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옥중에서 밀반출된 시편들이고 그의 초기 시에서부터 죽을 때까지를 아우르는 전집은 아니었다. 유고 시집도 초기작 몇 편을 기존 시집에 가미했을 뿐 그의 문학을 파악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꽃 속에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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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교수(영남대 독문과)가 김남주 시전집 "꽃속에 피가 흐른다"를 펴냈다. 염무웅 교수는 김남주가 등단할 당시 [창작과비평사] 편집자였다. 등단 무렵 김남주의 문학적 속내를 들여다보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김남주 문학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다. 초기시의 소박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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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목록


저수지에 개 하나 놓여 있다

트루먼이 연기하는 것이다


어두운 관객석 사람들 웅성거린다 너는 지루한 득 턱을 괸다 우리는 지정석에 앉았고 우리를 기다리는 개가 있고 이 모든 건 가까스로 완벽하


흰 가루가 된 외할머니를 가로수 아래 묻었지 사대강 사업으로 거대하게 꾸면진 영산강 공원에서 공원인데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딱히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요

외삼촌이 맞담배를 피우자 했지 아직 미성년자인데 자꾸만 괜찮다고 다 그런 거라고 다 그런 게 뭘까 외삼촌의 불을 받으며 생각했다

가로수는 더 크게 자라겠지 한겨울의 바람이 불고 사라진 잎사귀 대신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외할머니가 죽을 힘을 다해 우리를 비웃는 거야, 형이 말하고

돌아가는 장례 버스에서 외가 사람들은 잠깐 슬퍼해줬다 돈을 세던 손가락으로 얼굴을 긁는다 왜 슬픈 얼굴들은 다 배가 고파 보이는 걸까

자꾸 침이 고여 괜히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내일 부턴 학교에 가야 하는데 형은 다시 군대에 가야 하고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할까 벌써 기대가 됐다

버스의 창문에 나란히 강이 비친다 저건 강이 아니라 저수지다, 아버지가 말하자 외가 사람들이 화를 내며 반박하고


긴터널을 지나왔다


일년에 한번

극장에 갔었지

먼 친척의 부고가

해마다 한번은

들려오던 것처럼

정한 적 없는 약속


누군가의 생일이었고

형과 내 이름을 자주

헷갈려 하던 사람과 함께

연극이 끝나면 극장을 나와

옆에 있는 호수를 보며 걸었지


형은 강이라 했고

나는 호수라 했는데

둘 다 아니었지

깊고 어두웠지

지금 당신이 밟고 

서 있는 그것처럼


그런다고 누가 알아 줄 것 같아요?

죽어봤자 다 까먹는다고요


트루먼이 연기를 하다 말고 우리를 본다

연기가 아니라 분명 우리를 보고 있다


사람들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저수지를 바라보는 연기라고

너는 생각할 수 있겠지만


관객석의 어둠은 지나치게 깊다

이것을 저수지라 말하기에는


개는 개를 무서워하지 않지만 나는 가끔 네가 무서워, 집에 돌아와 네가 아무말 없이 방문을 닫는 일을 나는 자주 앓는다


저 트루먼이라는 사람

어딘가에 익숙하다,

너는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빛이 눈을 껌벅인다

무서운 빛이다


트루먼은 알고 있겠지

트루먼만이 우리를 볼 수 있으니까

저수지를 바라보는 트루먼이

점차 우리를 바라보게 될 때


암전

총소리

개의 신음


무대 위에 트루먼

트루먼을 관통한 트루먼

사라진 어둠을 끌어안은 채

쓰러지는 것


아직 박수가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등 뒤에 구겨둔 외투를 꺼내 입는다


너를 이곳에 데려오고 싶었는데 너는 알았다고 다음엔 더 좋은 곳을 가지고 말한다


극장을 빠져나와 우린

밝은 무대 위를 걷는다









수프와 숲


베란다에서 거실로 화분을 옮기던 여자를 나는 여름의 숲에서 잃어버렸다


남겨진 식탁 위에 매일 숲이 자랐다 머리맡에 나무를 옮겨 심는 꿈을 궜다 숲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쫓다 잠에서 깨면 늘 혼자였다


몰래 훔쳐본 여자의 성격 속 메모를 떠올리면

두려움이 무성해지는 여름


"어떤 믿음은 너무나 울창해서 나를 찾을 수 없다"


죽은 나무들로 지어진 성당에 다녔지 도기를 움켜쥐듯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배웠어 어린 내가 고목을 찍어내릴 상상을 할 때마다 여자는 수프를 끓였다


오래도록 휘저으며 바라본다

팔팔 끓는 수프 위를 떠다니는 표정과

말없이 그 표정을 흔드는 하얀 손


나는 매일 일기장을 찢었다


식탁 위에서 식어가는 수프 겁이 번진 얼굴을 지워주던 하얀 손에 박힌 못들의 세례명은 손잡이였지 깊숙이 흐르는 마음을 움켜쥔 채 매달리는 것들


굳게 잠긴 울창함 속에서 구멍을 세는 아이

아이의 낡은 벽지 같은 등을 본다

이곳은 분명 숲이다 숲은 멀어지니까

맨발을 가졌으니까


멀어지던 아이가 구멍 속에 발을 담근 채 둥글게 몸을 말 때면 궁금해진다 방 안 가득 무너지는 것은 왜 혼자가 아닐까


숲에서 홀로 수프를 긇이다가

곰팡이처럼 떠다니는 표정들을 뒤섞는다


몸 안에 고인 빛을 쏟아내는 전등 아래

그림자와 그늘을 구별할 수 없어질 때까지 그것들이 뒤섞여 흉측하게 뭉쳐질 때까지 어디선가 종은 울리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숲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못


하굣길에는 갈대밭에 들러 혼자 울었지 아이들은 끈질기게 따라와 시체장사하는 애비자식이라고 놀렸다 나도 한명 쯤은 자신이 있어서

주머니 속 대못을 움켜쥐었지 교복바지 속에서 그것은 점차 커지는 것 같았다

그해 여름은 홍수가 잦아서 매일 밤 아이 하나 정도는 쉽게 떠내려갔다 급히 거리를 떠도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이 꿈틀거렸고

마을의 하나뿐인 뒷산 위 골동품처럼 쌓여 있는 무덤들 사이 아버지는 매일 대못을 박는다고 했다

교회도 없는데 마을에는 한동안 종소리가 났지

아버진 내게 보여준 적 있다 미리 파놓은 누군가의 묫자리, 비가 고여 큰 못이 된 그것이 찰랑거리던 모습

장의사는 마을에 하나면 족하다고 그 일을 너도 맡게 될 거라고 언젠가 벽에 걸린 작업복을 보는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나는 하루 종일 손가락이 아팠지

빈손을 자꾸만 쥐어서

밤마다 몰래 아버지의 삽을 들고 집을 뛰쳐나갔어 그날도 마찬가지였지 뒷산에 올라가 땅을 팠지 주변에는 내가 매일 파놓은 구멍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지

무딘 칼질 같은 장대비 소리

온 마을을 뒤흔들 것처럼 컸다


구멍들마다 물이 차올랐다 못처럼 박힌 구멍들이 징그러워졌지 온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삽을 버리고 도망칠수록 더 길을 잃게 되는 산속에서

더는 그곳과 멀어질 수 없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 뛰었다 숨이 찰수록 자꾸 무언가를 움켜쥐게 되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다시 갈대밭이었다


젖은 주머니 속 무언가

서서히 나를 찌르고 있었다









친구는 수련회에 다녀온 후로 말수가 줄었다 뾰족한 것이 무서워졌다고 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튀어나온 게


운동장에 야구부 아이들이 줄줄이 엎드려 있다

뭉쳐진 그림자 위로 고이 튀어오르다

빈 유리병 같은 가을 속으로 가라앉고


빛이 보서지는 소리가 운동장을 메운다 더 잘하겠습니다, 기도문을 외우듯 아이들은 간절해진다 땅을 짚은 팔목들이 나란히 휘청거리는 저녁


창문 속 어둠을 가로지는 불빛들 사이로

불에 타고 있는 집을 꿈꾸곤 했다


지난여름 우리의 캠프파이어


사각의 거대한 불 위로 튀어오른 불씨들 공중에서 흩날린다 흰 종이에 무엇을 적어서 냈냐고, 물어도 친구는 아무 말이 없고


불을 둘러싼 채 우리는 거대한 원을 그리며 춤을 췄다 밤하늘에 녹아내리는 불씨 같은 춤을, 한 방향으로 돌기 시작하며


거대한 불 속으로

서서히 멀어져가는 집

누군가의 이름이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음에 있는 말을 그대로 저지르는 사람은 없지, 그것은 모두가 아는 마음 때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귀를 잠갔다 우리는 경쟁하듯 더 빠르게 원을 돌고


이 노래가 끝나고 난 후

벌어질 일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실은 

모두 같은 홈을 향하고 있는 걸

그라운드 위의 아이들처럼

우리에겐 집이란 건 멀리 있으니깐


캠프파이어의 불이 꺼지고

우리는 재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반 안에 누워 있고 나는 작은 창문으로


베이스를 잃어버린 아이가

홀로 서 있는 것을 보곤 했다

꺼져가는 전광판의 불빛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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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랑말 속달 우편


매일 죽음도 불사하는 숙련된 기수여야 함

고아 환영*


달리던 기수의 뺨에 벌레가 앉았다 그것을 만지자 힘없이 부서졌다 바람에 죽기도 하는구나 야생 선인장이 많은 고장을 지나고 있었다 식물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도 알지 못했다 매일 잠들기 전 기수는 그날 만난 바람을 필사했다 그것은 잘 썼다고도 못 썼다고도 말할 수 없는 일기였다 달리는 기수와 조랑말의 모양만큼 매일 바람은 일그러졌다 사무소를 출발한 기수는 열흘 이내에 동부의 모든 마을에 나타났다 기수는 작고 왜소해서 말에서 내리면 가장 먼 곳으로 심부름을 떠나온 아이 같았다 기수는 가끔 다른 지역의 기수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다 쓴 편지를 자신의 가방에 넣고 스스로 배달하기도 했다 기수는 늘 휴대용 성경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였다 한 사람이 태어난 이야기였다 기수는 매일 잠들기 전 누워 사무소에서 배운 대로 성호를 그었다 가슴 위로 그의 작은 손짓이 만든 바람이 잠깐 불다 사라졌다


* 조랑말 속달 우편(1860~61) 기수 모집 공고






그것의 단위


길 위에 버려진 신발들은 언제나 한 쌍은 아니였다 무수한 바람이 그곳에 발을 집어 넣어ㅆ지만 신발은 자기보다 빠른 것은 한번도 태워본 적 없었다 신발은 사실 혼자 있으면 한 발자국도 걷지 않았다 신발 한짝이 저곳에 놓일 수 있는 경우들을 상상하고 그중 가장 슬프지 않은 것을 믿기로 한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무심하구나 그러나 상상과 믿음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느니깐 나는 누구도 의심하지 말아야지


할머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몹시 취해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신발은 맨발이었겠지 이 고장에는 장례식장이 너무 많아 나는 가야할 곳을 찾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곳을 들러 명복을 빌었다 육개장은 짰다 그곳은 많은 신발들이 놓여 있었다 어지러워지는 대역을 수시로 정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신발은 가지런히 놓일 때 더욱 죽은 사람의 것 같이 보인다 영혼을 세는 단위를 켤레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하나의 영혼을 위해 신발을 벗고 잠시 영혼이 되어 준다 그곳에서 아무도 나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았다 잠시 사람이 아니었던 동안







미래의 자리


너는 매년 가족들과 몇 기의 무덤을 돌보러 그 산에 갔는데 너는 그것들이 누구의 무덤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의 모든 비석에 너의 이름이 있어서 너의 무덤도 그곳에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너는 그곳에 가면 오래 풀을 뽑았다 왔는데 잔디와 잡초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몰라서 의심이 가는 풀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느라 네가 만진 ㅍ 풀은 모두 중간에서 잘려 있었다 수풀 속에서 다양한 소리를 내는 벌레들이 그곳에 많았는데 한 번도 벌레를 본 적은 없어서 그것은 너의 가족들이 속으로 하는 말 같다고도 너는 말했다 우리는 함께 그 산에 올라 네가 누울 곳을 미리 바라보기도 하였다 한 명의 자리에 같이 누워보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숨소리도 메아리가 되었다







수경


어제처럼만 하면 돼 분홍색 한복을 입은 수경이 말했ㄷ 너의 왼쪽과 오른쪽 얼굴을 반복해서 바라보며 하나의 얼굴을 완성하는 춤을 추었다 그래도 겁이 나면 한 명의 엄마를 같이 바라보자


너의 어깨를 짚는 나의 자세를 너는 돌아보지 않고 손질해준다 너의 몸이 커질수록 매일 조금씩 이동하는 너의 지점


하나의 책상을 나눠 가지는 사람들이 커서 하나의 아이를 나눠 가지는 사이가 되는 것으로 알았고


우리는 책상에서 매일 새로운 무늬를 발견했다 나뭇결은 나무가 한때 격렬하게 춤추었던 흔적 새로운 무늬를 발견하지 못한 날에는 무늬를 새겨주었다    


너는 모든 것을 리본으로 접을 줄 알았다, 수명이 다한 것들만을 접었다 공중에서 잠자리의 날개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잘린  날개가 잠자리보다 오래 날았다 너는 그것을 주워 접다가 더 잘게 찢어버렸


우리의 몸이 더 이상 자라지 않을 때 춤은 완성된다 우리의 몸이 다시 작아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새로운 춤을 출 수 있다


잠자리를 묻고 내려가는 숲길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오래 헤맸고 만약 더 어두웠다면 숲속에서 빛을 내는 것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눈을 감자 우리 모두 밤을 만들 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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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시편 11 / 고은

 

 

오늘 오만불손의 묵언이던 내가 모처럼 입을 연다

 

나의 고독은

태양의 고독을 안다

그 불타는 고독 이외에는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는 고독을 안다

 

나의 고독은

명왕성의 고독을 안다

그 만겁 빙벽의 고독을 안다

그 혹한의 침묵 이외에는

어떤 것도 필요 없는 고독을 안다

 

오늘밤은 상심의 내가 우주의 눈물을 흘리는 밤이다

 

나의 고독은

토성 및 토성 고리의 고독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도 토성도 허망이다

 

 

 

무제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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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온 세상 진동시키는 모국어의 숨결

 

오랜 어둠을 깨치고 20세기의 새벽에 우주적 광망(光芒)을 밝힌 공초의 시맥을 한 세기 가깝게도 따르는 이 없더니 공초 탄신 120주년을 맞아 시인 고은이 신작시 607수를 한 묶음으로 사화집 무제 시편’(창비)을 헌정하였다. 강점기, 분단, 전쟁의 질곡과 역경 속에서 고독한 자유인으로 무위이화(無爲而化)의 경지에 이른 선각이요 구도자인 공초의 저 불기(不羈)의 여정 말엽에 동식서숙(東食西宿)을 동행했던 고은의 시의 오름이 오늘에 이르러 어찌 그에 상응하는 것인지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다. 본심에 올라온 지난 한 해의 특출한 시집들 속에서 무제 시편은 그 방대함 위에 내뿜은 시정신의 절정에 압도되었다. 한 시인이 생애를 바쳐 써낼 만한 숫자의 한 편 한 편의 시가 모두 측량하기 어렵지마는 굳이 수상작을 뽑아 달라는 요청에 무제 시편 11’을 가려보았다.

 

오늘밤은 상심의 내가 우주의 눈물을 흘리는 밤이다” “나의 고독은/ 토성 및 토성 고리의 고독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도 토성도 허망이다에 이르러 공초가 일찍이 갈파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이나 허무혼의 선언의 대구(對句)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 고은의 종횡무진, 호호탕탕, 자유분방은 어디가 끝일 것인가. 이 땅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사해(四海)에 우리 모국어의 사자후를 진동시키는 그의 거친 숨결이 공초 제단에서 다시 한번 향불로 피어오르리라. “때려죽여도 때려죽여도 시의 땅인이 땅에 태어난 고은의 축복이 여기 있다.

 

- 심사위원 임헌영, 유안진,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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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언저리 / 김지하

 

 

,

그 언저리 무언가

내 삶이

있다

 

쓸쓸한 익살

달마(達摩) 안에

 

한매(寒梅)의 외로운 예언 앞에

 

바람의 항구

서너 촉 풍란(風蘭) 곁에도

 

있다

 

맨 끝엔 반드시

세 거룩한 빛과 일곱별

 

풍류가 살풋

숨어 있다

 

깊숙이

빛 우러러 절하며.

 

 

 

절, 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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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황톳길’(1969)로 등단한 이후 김지하의 시력(詩歷) 34년은 그 어느 영혼의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고 사상사의 나침반에 시혼을 내맡긴 채 표류하는 미학적 항해사였다.

 

출항 때의 저 뜨거운 열정과 불굴의 투지로 다져진 저항시들이 받았던 지지와 갈채와 성원은 세계문학사상 희귀한 혁명시의 성공사례였다. 그는 언어의 마술사로 군부독재에 단독자로 맞서, 민주주의를 타는 목마름으로 견인해냈다. 유신통치가 끝나는 지점에서 김지하 시인은 저항시인에서 사상시인으로의 변신을 시도했으며, 이후 오늘까지도 그의 지적 편력의 허기증은 지속되고 있다. 그는 변혁의 사상사적 원동력을 토착적인 민중신앙에서 탐구하면서 밥, 생명사상, 율려(律呂)사상 등등을 창출, 전개해 왔다.

 

그는 저항시를 뒤로 자리바꿈시키고도 끊임없이 변혁(개벽)에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세계사와 민족사를 응시하면서 간헐적인 발언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유도해 냈다. 그의 행동과 작품은 당대의 민중이 원하든 않든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파장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설사 반역사적인 발언일지라도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야기되어 역사적인 진보에 도움을 주는 역기능까지 가진 이 미묘한 시인의 역할은 다른 누구로도 대신할 수 없는 바로 김지하 시인의 몫이다.

 

,그 언저리는 시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슬픔의 정치학화개에 이은 새로운 문화 정치학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인 방향 전환의 시도이다. 절에 가서도 절의 모습을 못 찾는 이 시인의 처절한 궁극적인 시대정신의 갈구 자세가 바로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어쩌면 김지하의 긴 항해 앞에 곧 새 미학적 항구가 보일 듯한 예감이 든다. 아마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시경(詩經)’의 세계로의 귀환일지 모른다.

 

- 심사위원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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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무덤 / 엄원태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이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둥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 내며

부서져 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이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물방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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