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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쉬
라린코나다, 바람의 분진같은 사내 몇몇이 |
바람에 실려
풍성한 바람들이 몇 갈래로 나뉘어지는 저녁 누런 모래 알갱이를 껴안고 웅크려있는 신밧드 신밧드 얼굴에 주름처럼 지도가 새겨진다 | ||
순간포착을 하는 순간 바람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 방망이를 원으로 돌리며 공에 붙기 위해 뼈마디를 퉁기며 달아난 화살하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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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그림을 보는 것처럼 세상엔 병실 안 병든 아침이 먼저 일어나 창문을 연다 | |
인쇄소는 귀가 밝다 귓바퀴 속으로 들어가는 돋보기를 쓴 채 구겨진 포장지처럼 잠들어 있는 주인 새벽부터 길목엔 막 찍어낸 신문지 냄새가 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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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동안 아이를 잃은 프리다 칼로처럼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두근대는 깊은 밤 폐광 속으로 들어가는 여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펜을 잡을 때마다 밤이 길을 이끌어오고, 바람은 집 앞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누군가 버린 것들, 혹은 잃어버린 것들을 짊어지고 늘 어디론가 숨어 들어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를 썼지만, 그것 역시 헛것일 때가 많았습니다. 항상 생각했습니다. “시는 언어의 스펙트럼에 나만의 색깔로 내뿜는 아름다운 운율의 생명체 이므로 때로는 진지함으로 때로는 발랄함으로 때로는 따스함으로 때로는 날카로움으로 시가 나를 선택하게 하자, 그리고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자” 라고 다짐했습니다. 가끔씩 제 몸이 깊은 터널처럼 느껴져 저는 밤이면 수없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온 몸 전체가 현악기의 몸통처럼 수없이 울릴 때가 있었습니다. 멀리서 터져오는 메아리, 메아리 같은 것들이 밤마다 저를 일으켜 세우고 또 펜을 잡게 했습니다. 시를 쓰지 않아도 늘 어두운 밤들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터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늦은 저녁 골목길에 낮게 깔린 안개처럼 저는 항상 밑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동안, 제가 의지해온 것은 터널에서 낯선 궤도를 따라 멈칫멈칫 하던 저를 붙잡아준 펜, 한 자루였습니다. 오늘 한통의 전화로 깊은 폐광 속으로 더욱 더 밀어 넣어 주신 심사위원 분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어두운 나머지 딸이 길을 잃을까 걱정하시는 부모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때로 길을 잃을 때마다 늘 제가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셨던 전상국 작가, 이윤학 시인, 시 선생님인 신동옥 시인, 윤한로 선생님, 모든 분들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언제였던가 감히 시는 허락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처받고 버려진 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 세상을 떠나는 것들을 잡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것이 시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펜을 잡으면 사람들의 슬픔이 떠오릅니다. 반짝하는 것은 모두 눈물이고, 먼 하늘에서 힘주고 있는 별들에 대해서 저는 오늘 밤에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담는 가슴이 되고 싶습니다. 몇 편의 시로 자욱한 그리움들을 몰아내기는 어렵겠지만 자만하지 않고 결코 쉬지 않겠습니다. 분발하기 위해 견고한 날개를 만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SDU 제4회 사이버문학상 가작 (0) | 2011.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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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당선작 - 성백선 ‘분합문’ 외 6편 (0) | 2011.02.20 |
[스크랩] 제1회 사이버문학상 당선작 (0) | 2011.02.19 |
제 2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당선작 - 성백선 ‘분합문’ 외 6편 /가작 - 유원희 ‘별을 파는 여자’ 외 4편
제 2 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이 막을 내렸다. 심사위원인 도종환 시인, 이재무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길상호 시인 등은 당선작으로 성백선의 ‘분합문’ 외 6편을, 가작으로 유원희의 ‘별을 파는 여자’ 외 4편을 선정했다. 2008년 제 2 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은 응모자가 674명, 응모작품은 4000여 편에 달했다. 이는 서울권 일간지 신문의 신춘문예를 상회한 수치이다. 뜨거운 관심에 감사드린다. 당선자들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아울러 계간 문예 ‘시작’에도 작품이 실리게 된다. 시상식은 2월 28일(목) 오후 5시 서울디지털대학교 2층 회의실에서 열린다.
당선작 - 성백선 ‘분합문’ 외 6편
가작 - 유원희 ‘별을 파는 여자’ 외 4편
심사위원장 - 도종환 시인(한국 작가회의 사무총장)
심사위원 - 이재무(시인),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길상호(시인)
* 당선작 - 성백선
분합문
보 기둥 위 쌓인 고요가
벽 치고 수장을 들인다
살대로 달빛무늬 낸 소목의 솜씨
칠흑에 갇혀가는 서까래 밑
둔탁한 배목이 서너 개 박히고 나면
수직을 가늠하는 다림추의 미동도 멈춰 선다
단절된 괴에 동그마니 남아
떨그럭떨그럭 파동을 견디던 등자쇠
건너편 지도리에게 여음을 흘려 보내지만
동선은 보이지 않고 온기는 멀다
속살 드러내어 내밀한 눈빛 당기던 탱탱한 거리엔
마주앉은 속내끼리 경계를 허무는 소리도
천장 긁어 샛길 내는 쥐들의 부산함도
벽채 타고 반경 좁히는 고양이 아기울음도 그쳤다
품고 놓아주기를 반복하는 간극은
언제나 짧은 망설임을 남겨
은은한 창 같은, 거칠은 벽 같은 발자욱이
상 머뭇거리는 문전
나누어졌다 싶으면 어느 결엔가 다시 합쳐져
누마루와 팔작지붕 사이 환했던 소통이
옹이 진 정적으로 무료할 즈음
설주를 에돌던 삭풍이라도 맞아들일 양
좁고 짧을지 모르는 생의 공간을
한 간 확장하듯
벽이었다가 문이기도 한 널
지금은 번쩍, 들어올려야 할 때
애어리염낭거미
누가 잎새 끝에
저토록 푸른 누각을 세웠을까
정교한 산실 들어선
우거진 수풀 한가운데
성자의 입김 가득할 것 같은 염낭엔
낙엽층을 배회하고 돌아온
성체가 몸 푸는지
부들 뿌리로부터 신음이 부화한다
산고를 둘러싼 우주의 소음들
한여름 어스름에 비껴가고
지금 막 알에서 깨어난 어린 것들은
세상으로의 탈피를 시도하느라
생별을 입에 물고 있다
뱃속 그득 비정의 즙 짜 넣으면서
아, 살아있는 것들의 살고자 함은
이토록 뼈를 깎는 일이던가
생존의 늪지대에서
천적으로 변태한 새끼들에게
제 살과 뼈 뜯어 먹히고
어미의 골육을 포식한
패륜의 바다 위
거미 피륙으로 짠 섬이 전설로 흐르다
소리 없이 가라앉는다
세상의 푸르게 눈물겨운 것
다 흘려주고
말없이 형체 없이
하늘 가신 내 어머니처럼
독살꽃
멀리 갯바위 사이로 한 사내가 보인다
나는 괭이갈매기 눈으로 그의 움직임을 앞지른다
꽃지에서 굴혈포까지
조난의 시간 밑으로 흘러든 항로가
흙모래를 털고
어깨에 찰박이는 뻘빛 그물이
촘촘한 하루치 숨을 토해내는
드문드문 난 들불의 흔적과 소나무 사이
간조를 기다리는
따개비 껍질 같은 오두막이 움푹하다
물때 맞춰 막아놓은 그의 생존이
수면을 차고 오르기를, 파닥이기를
간절하게 물은 빠져나갔건만
개펄 위 불쑥 솟은 뾰족한 독살
돌 꽃 돌꽃
'꽃만 나고 말았네유'
그의 비릿한 기다림에 나는 초저녁 붉새로 번졌다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던
선사 수렵시대 바닷바람이
방파제에 부딪혀 해무 속으로 사라진 뒤
삶의 편린들 짭조름히 잦아드는 포구에선
도회지 어부들이 뱃길을 닫고 있었다
근근한 그의 어족은 격랑에 휩쓸려
꾸르륵꾸르륵
해조음만 꽃 주위로 무성히 몰려다니고
나는 몸 구석구석 돋아난 돌꽃의 순을 따다가
그의 어장 가득한 물고기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침, 모네의 정원
그곳엔
빛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 부풀어오른 수련이
마알간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부신 눈으로 첫 빛을 밟는다
밤새 태양으로부터 달려 온
맨발의 하루가 뒤따르며
보폭을 키우는 사이
투명한 채색이 시작되고
흩뿌려진 햇발 위 조금씩
드러나는 색색의 일정들은
더 선연한 제 색을 찾아갈까
갓 깨어난 버드나무 아래
그림자 숨긴 여백이
새벽 내음을 코끝에 묻힌 채
풋 정오의 계단을 살핀다
햇살들의 빼곡한 일과가
어제에 이은 연작의 색감을
연못 위에 띄우는 찰나,
아직 이른 아침이다.
갈릴레이 망원경
이미 일순간의 착시가 사라진 지 오래였어요
투명한 유리 곱게 갈아 오목한 얼굴에 썼어요
겹겹이 둘러진 포물선 띠가 벗겨져 나갔어요
알몸으로 원점에 서 있는 그대 우뚝하였어요
태양의 흑점을 찾듯 그대 심장을 더듬었어요
천체를 떠다닌 빛과 박동 소리가 몰려왔어요
가까이 반사된 자리에 홍염이 이글거렸어요
산란을 마친 낮이 밤의 깊이로 빠져들었어요
차갑고 무표정한 거리가 환히 웃고 있었어요
쌍안에서 굴절하던 그대도 고색창연하였어요
시야를 가렸던 처음 내 눈은 선입견이었어요
흐린 초점 다시 맞춰 선명한 심상 포착했어요
그대 뒤돌아서면 반대편에 거울을 세워뒀어요
때론 도구도 정직하고 부드러운 눈길이었어요
관측을 마친 나는 목성의 가니메데가 되었어요
기꺼이 그대 곁을 돌고 도는 위성으로 살았어요
바퀴
길모퉁이 담벼락에
곯아떨어진 질주가 푸석하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루하루의 간격을 조율해 주던 삶의 속도들
어느 막다른 길목에 멈춰 선 것일까
울퉁불퉁한 일상 날렵히 나르던 회전은
비포장의 순간들을 갓길에 부려놓고
생애 어디 구간쯤 정체돼 있는지
온종일 시간 헛도는 소리만 헐렁하네
언제고 든든한 바람 넣은 탄력 위
휘파람 싣고 페달 밟으면
혼미한 내일의 여정에라도
동그라미 그려가며 오를 수 있을 텐데
역주행하다가, 전력투구하다가 가뿐 숨
평평히 고르고 윤활유 주입하면서
모난 길 훌쩍 건너뛸 수도 있을 텐데
환상 속에서는 늘 가파른 언덕 다다른
바퀴가 신들린 발처럼 날아다니고
내 어제의 지체된 두 바퀴도
주어진 거리만큼은 완주하려는지
지금 막 막힌 길목을 우회하고 있네
뚜껑
오피스텔에서 내려다 본 운니동 기와집들
검은 뚜껑들이 다닥다닥 세월을 덮고 있다
뚜껑을 열면
그늘 쓰고 문명을 피해 들어앉았던
개화 덜 된 세간살이가 비춰지면서
속속들이 차있는 나직한 군상들의 내부가
햇빛에 파르라니 눈 흘길 것 같다
뚜껑 속에 잠겨 있는
벽에 걸린 아이 낙서의 표정
마당 가운데 흐르는 수도의 사계절
개집 옆 작은 화분들의 자투리 여유
담장에 널린 이불의 낮과 밤
대문에 세워둔 자전거에 감긴 거리
한 사람당 할당된 시간과 공간이 똘똘 뭉쳐져
제자리에서 굴러가고는
세월의 뭉치마다
속도 다른 흔적들이
지워질랑 말랑한 뚜껑엔 다시
리모델링된 비밀번호가 채워지고
내 뚜껑은 24시간 개방돼 있어도
모호한 채 무늬만 내고 있는데
어느 날 열린 지붕 아래
테라스가 된 발 밑에서
내 뚜껑 속을 올려다보고 손짓하는
40년 전 상고머리 계집아이가 생경한 건
낮은 곳 앞서 흐른 삶의 기복들도
덮개 안에서는 그만치
출렁거리다 넘치고 싶었나보다
* 심사평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와 계간 『시작』이 주관하는 제2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심사는, 674명이 응모한 가운데 풍성하게 치러졌다. 무엇보다도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고, 오래 연마된 시의 행을 따라가는 일은 실로 즐거웠다. 특히 캐나다, 일본 등 국외에 거주하는 응모자들을 대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이 다국적인 문화를 수용하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공감했다. 또한 시편들의 내용과 형태는 다양한 연령과 삶의 모습을 추측케 했는데, 이를 통해 아직도 문학이 사회 전반에 녹아 있다는 희망도 얻게 되었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응모작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김강식, 김수정, 김지영, 성백선, 송하얀, 유원희, 이종숙, 현혜숙 씨(가나다 순) 등 여덟 분의 작품에 주목하였다. 완성도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는 느껴졌지만, 이들의 시편들에는 모두 시적 안정과 변화를 주도해가는 힘이 내장되어 있었다. 그것은 결코 단기간의 습작으로 얻을 수 없는 힘이어서, 독자의 내면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심사위원들은 시의 완성도, 언어구사 능력, 구성력 등 다각적인 차원의 논의를 거친 끝에 세 명의 후보를 다시 선정하였다.
우선 김지영 씨의 작품 중에는 「모란꽃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선암사 원통전의 모란꽃살문을 통해 설화 속 시간을 바라보는 눈길이 섬세하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작품들의 편차가 심해 아깝게도 최종 논의에서는 제외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마지막으로 논의된 후보는 성백선, 유원희 씨였다. 이 중 유원희 씨의 작품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시로 감싸 안는 진정성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언어 반복, 시적 반전의 미약함 등이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성백선 씨의 작품은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깊이가 남달랐고, 내용과 형태의 완결성에도 무리가 없었다. 특히 「애어리염낭거미」는 거미의 생태를 어머니의 삶으로 반전시키는 시적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심사위원들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유원희 씨의 작품을 가작으로, 성백선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당선되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번 응모가 더욱 정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라고, 당선자에게는 거듭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번째 당선자를 낸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큰 시인의 산실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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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4층 금강극장에 한 마녀가 살았다 그녀의 이름은 순자 마법에 빠진 동네 총각들은 TV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극장에서 봤다 사내들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받쳤던 순정 한 방울, 주머니 속 먼지 두 스푼에 속눈썹 말아 올라간 그녀는 빗자루를 타고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사내들의 마음을 쓸어 담았다 마녀가 황금 빗자루를 쫓아 스크린 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자 탈색된 머리카락을 엮던 영식이 형은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털을 부여잡고 울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꼬여버린 빗질 따라 마녀사냥꾼들이 동네로 들어왔다 붉은 부적딱지에 집이 불타오르자 마녀의 어머니는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썼지만 도착한 것은 구급차였다 이듬 해 병실에 마귀할멈이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면제 4알, 한숨 세 스푼이 만들어낸 층층 계단이 놓여 있었다 금강극장 계단보다 높았다 그녀의 손에는 회한(悔恨)에 젖은 대걸레가 쥐여져 있었다 스크린의 턱을 넘다가 남자 발에 걸려 빗자루는 걸레가 되었다고 했다 부적 딱지를 많이 삼켜 굽어진 그림자 얼룩으로 가득 찬 병실. 그녀는 오늘도 잘 닦기지 않는 얼룩을 어루만지고 있다 젖은 걸레가 마르는 날, 나는 순자에게 소박한 빗자루를 선물하고 싶다 단단한 붕어빵 좁아터진 붕어빵틀 속에 밀가루 반죽처럼 길게 늘인 콧물 단 꼬마 하나 이리저리 뛰어 다녔죠 코가 막혀 숨을 몰아쉬니 한숨쉬면 복달아난다는 말에 꼬마는 숨을 참으며 살았죠 넘실거리는 소주에 그날 번 일당 띄우고 큰소리로 항해하신 아빠 이름은 마도로스 김 밤마다 암고양이 울음소리가 꼬마 귓등을 간지럼 태우면 어김없이 다음날에는 얼어버린 붕어빵 몇 개 놓였지요 아가미까지 말라버린 붕어빵을 꼬마는 먹지 않았어요 킁킁거리는 소리에 소주 뚜껑으로 꼬마 주머니는 아빠 술배처럼 불룩해졌죠 꼬마는 붉은 해가 뜨는 밤보다 잠들 무렵에 암고양이 울음소리가 안 들릴까 걱정했죠 울음소리 들리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았을라나, 더 이상 탈 배가 없어 대낮부터 들어온 아빠가 엄마 가슴에 술 붓자, 푸른곰팡이 찍히는 소리 들리네요 꼬마는 답답해 아궁이 뒤에서 몰래 한숨을 내쉬자 푸른곰팡이 집 전체에 퍼져, 꼬마 몸까지 피워 오르네요 꼬마는 101마리 달마시안 그린다고 수많은 푸른 점에 개 그림 그리는데 한마리가 부족하네요 집나간 개새끼, ‘멍멍’ 동네방네 짖어대는 소리가 정겹네요 그 날 밤 암고양이 울음소리 사라져 꼬마는 무서웠어요 한숨 소리에 암고양이 제 새끼 놔두고 달아난 줄 안 꼬마는 한숨을 감추기 위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마을 어귀에서 담배를 피우며 꼬마는 붕어빵을 굽네요 암고양이가 먹어본 건 단단한 붕어빵이라 후후 불어가면서요 최후의 만찬 맨주먹으로 세상을 주무르겠다고 하던 시절 공장 앞 부동산 화투판에서 공갈빵을 맛 본 아버지는 도너츠 구멍으로 보이는 세상이 작아보였다 도너츠에 이스트를 넣으신 아버지 부풀다 부풀다 터져버린 그 날, 도너츠는 설탕 옷 대신 붉은 차압딱지로 포장되어 나왔다 그 해 공장은 붉은 시럽에 빠져 익사했다 아버지는 직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기 위해 도너츠 구멍처럼 작아져 버린 방에 직원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둥글게 앉았다 반죽은 여자가슴 주무르듯 해야 한다는 김씨 아저씨 세상 모든 것은 구멍 없이는 살수 없다고 소리치던 최씨 아저씨 모두들 채울 수 없는 목구멍에 술잔을 부었다 술에 불어버린 방에서는 한숨만이 여기저기서 피어올랐다 아버지는 도너츠가 불던 휘파람소리가 듣고 싶어 했지만 더 이상 만들 손이 없어 입으로 도너츠를 만들었다 집안 가득 흰 도너츠는 우주선처럼 날아오르며 매캐한 설탕 가루를 집안 가득 뿌렸다 긴 한숨을 타고 우주선이 내 머리 위로 착륙하려 하자, 아버지는 우주선을 향해 재떨이를 날리셨다 휭 휭 날아오르다 내 이마밖에 닿지 못한 무능함에 더욱 커진 우주선이 시럽처럼 붉어져가는 방을 졸라매자, 사람들은 울음 섞인 휘파람을 내쉬었다 면도 무딘 주름살 꺼내놓은 채 이젠 날도 서지 않은 면도기로 사내는 면도를 해본다 칼날 사이에 켜켜이 쌓인 사내의 모진 인생을 면도기는 안고 살았다 탁탁 털어내지만, 사내의 매끄러운 인생에 잘려나간 아버지의 두개의 손가락만이 세면대 위에 떨어진다 턱 주위에 거품을 바르자, 거울에 아버지 얼굴 보인다 제 숨 다 쉰 거품들 ‘지 애비 닮아가네’ 소리에 사라지고 욕실에 던져진 구멍 난 양말에서 아버지 배꼼 얼굴을 내민다 무딘 면도날에 베인 상처 틈으로 흐르는 시간은 뚝 뚝 끊어진다 상처를 막자, 사내의 그림자에서 걸어 나오는 아버지 무딘 칼날로 그림자를 깎으려는 사내는 깎기지 않자 면도기를 버린다 혼자 면도를 할 수 있는 사내에게 아버지는 일회용이었다 팽팽한 면도기로 난도질을 해봐도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 불을 끄자 사내가 없고 아버지도 없다 섞이지 못한 채 고여 있는 침묵뿐. 숨바꼭질 달빛 속으로 적막마저 숨은 밤 달동네에서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도둑고양이가 품고 있던 바람은 술래의 주먹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술래는 무너진 담벼락 따라 숨은 사람을 찾아 나선다 처음으로 잡혀 나온 사람은 ‘늘봄상회’할아버지 달동네에 뿌리내린 수염을 술래는 송두리째 뽑아간다 폐지를 덮고 자던 박스아줌마는 식어버린 아궁이에 숨어있다, 연탄집게에 엉켜 나온다 일찌감치 몇 푼의 보상금을 받고 숨바꼭질을 끝내는 사람들이 더러 나타난다 달빛 파편이 시퍼렇게 빛난 집에는 아버지가 버리고 간 소주병에 갇힌 채 숨어있는 남매 하나 깨져 나온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수묵화를 그렸던 집에 아무개 할아버지가 주검이 된 채 실려 나온다 모두 발견됐지만 끝끝내 한 소녀가 발견되지 않았다 숨바꼭질의 주도권은 술래에게 있으리라. 술래는 단단한 이빨을 드러내며 한 입 한 입 달을 집어 삼킨다 게걸스럽게 씹어대던 빛나는 잇몸에 흘러내린 핏줄기는 도둑고양이일까 이빨 틈에서 떨어져나간 이름표가 신문 하단 미아 찾기에 얼굴 없이 내려앉는다 달빛 찢어 마디마디에 붙인 대숲에서는 못 찾겠다, 꾀꼬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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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U 제4회 사이버문학상 가작 (0) | 2011.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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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U 제4회 사이버문학상 당선작 (0) | 2011.02.23 |
SDU 제3회 사이버문학상 가작 (0) | 2011.02.23 |
SDU 제3회 사이버문학상 수상작 / 한지이 (0) | 2011.02.23 |
[스크랩] 제2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당선작 - 성백선 ‘분합문’ 외 6편 (0) | 2011.02.20 |
1960년 경북 경주
제 5회 동서커피문학상 시 부문 금상 수상
제 22회 근로자예술제 문학부문 대상 수상
200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방송대 문학상 시 당선
2004년 계간지<시작> 신인상
부산대학교 사회교육원 소설창작과 수료
한국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사라진 입들>2007 천년의시작
관계
이가 꽉 물린 식용유 병 하나가 있다 치자
뚜껑과 몸체는 온 힘을 다해
내용물을 보호했고
병 속의 어린것들은 행복했다
시간은 모든 물질에 틈을 벌린다
시간의 집요함이란
빛나는 다이어몬드에도 흠집을 내지 않던가
몸체와 뚜껑의 사이가 점점 벌어지자
서로의 합의하에
귀찮아진 내용물을 쏟아냈다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나온 것들은
운 좋게 다른 병으로 옮겨지기도 했지만
프라이팬에서 뜨거운 세상을 맛본다
홀가분해 진 뚜껑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굴러서라도 떠나는 게 뚜껑의 근성이다
무엇을 채워도 든든해지지 않는 빈 통은
집안이 떠나가도록 점점 시끄러워졌다
다음 정류장은 주식회사 기린
작업복을 입은 사내들이 식은 식빵처럼 웅크리고 앉은
그 정류장 뒤쪽 배경은 늘 맛이 바뀌지 않는 단팥빵 같았네
낮게 엎드린 지붕 위로 따뜻한 연기가 몽글몽글
뜯어먹기 좋도록 몸을 부풀리고 붉은 굴뚝들은 하나같이 작달막했네
공장 담벼락 밑으로 숨죽여 지나가던 늙은 완행열차가
황급히 기적을 올리며 달아나던
적색 식용색소가 첨가된 석양이 가끔 묽어져 있던 곳
잔업시간이 길어졌거나 퇴근 버스를 놓친 사내들이
군데군데 곰팡이 핀 얼굴을 가슴에 묻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눅눅한 시간
산다는 게 갓 구워낸 비스킷처럼 바삭거리지는 않았네
구수한 바게트를 대형오븐에 수천 번을 구워냈을 숙련공도
제 생의 온도조절에 실패해 속을 까맣게 태우던
그때를 떠올리며 빈 빵 봉지처럼 웃고 있었네
옛날의 그 맛이 아닌 건빵처럼 쓸쓸한 저녁이
어김없이 정차했다가 출발하는 다음 정류장은 주식회사 기린이었네
삼나무 떼
한때 모든 길들은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삼나무 떼들이 떠나려는 길의 양켠을 붙들고 있었다
뜬금없이 머리채 잡힌 삼나무 사이로
바람의 일행들이 절뚝거리며 지나갔다
술 취한 아버지가 삼나무 옆구리에 자전거를 박았다
큰언니가 가방을 꾸려 객지로 떠나던 날
내 안에서 우는 마른 바람소리를 들었다
흔들고 있던 손바닥이 삼나무 잎처럼 버석거렸다
떼를 지어 막아도 잡을 수 없는 게 있었다
그것은 모두 한때라고
나는 우두커니 서서 흘러가는 것들을 지켜보았다
삼나무들은 그림자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키를 줄였다 늘이면서 제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소식 없던 작은언니 꿈을 꾸었다
삼나무는 밤새 한 뼘이나 키를 더 키웠다
세상의 바람이 다 불어간 다음에는
곤두세우고 있던 검은 머리채를
삼나무는 어디로 둘 건지 궁금했다
하루에 두 번 완행버스가 지나가면
변함없이 온몸을 일으켜 달려가는 것은 흙먼지뿐이었다
흘러간 것들은 망가져 돌아오거나 아예 오지 않았다
늘 떠나기만 하던 길들도 가끔 다리쉼을 했다
그때마다 삼나무 떼들은
평생을 키워온 짙은 그늘을 말없이 내려주었다
산낙지
온몸이 동강난 낙지 한마리
횟집 접시 위에서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꿈틀거린다
몇몇 토막난 육체들은
뻘 속으로 몸을 숨기던 버릇이 남아
잠시 밑으로 기어들어 보지만
토막난 기억들은 수습되지 않고
잘려진 순간들이 서로를 밀어낸다
제각기 다른 부위로 투쟁하며
다시 한몸으로 살아보자던 절박한 약속
끊임없이 미끌거리며 젓가락을 빠져나온다
악착같이 입천장에 들러붙어
버팅기는 생의 집요함
이젠 아무것도 빨아들일 수 없는
흡반이 슬픔으로 벌름댄다
접시 위에서 외롭게 저항 할
낙지의 정신을 아는
갯벌 위의 수많은 구멍들은
애써 눈물을 참는 듯
따가운 눈까풀을 실룩거린다
연막에 홀리다
유혹은 늘 그랬다
섬광처럼, 벼락처럼,
동네를 뒤흔드는 천둥을 몰고
뿌연 안개를 방사했다
놓칠세라
짝짝이 신발을 꿰신고 허둥지둥
따라 붙인 소독차는
이유를 묻지 않고
하얀 자루 하나씩을 펑펑 던져주었다
터지기 직전까지 부푼
희망을 담기위해
나는 주둥이가 넓고 가벼운 자루가 필요했지
난생 처음 큰길을 건너왔고
오리무중의 사거리를 지나면서
아버지의 껌벅이던 순한 눈을 잊었다
들이마신 연기로 헐떡헐떡 울음을 만들었다
너에게 이르는 길은 멀었고
獨走는 외로웠다
보이지 않는 것을 애써 보려고
나는 서둘러 연막 속에 숨었나
발바닥이 굳은살로 딱딱해질 때까지
아무도 없는 선명한 이곳에 닿기까지
내가 한 일은
고작 빈 자루 몇 개 턴 일밖에 없으니
2006 현대시학 2월호
겨울 과메기
바람을 무던히도 되받아치며
너는 그렇게 견디고 있었다.
단련된 맷집으로도 견딜 수 없는 것은
추억이 사라지는 일,
마른 아가미 속에 감추어둔 언약
바람 속에 뱉어내고
내장까지 훑어낸 뱃가죽에
행여 한 점 애간장이 묻어있다 해도
이젠 덮어두자
온 몸에 하얗게 소금 꽃 핀다
붙잡아 갈 걸 뻔히 알면서도
하얀 손가락 흘리던 파도
아픈 듯 뒤돌아보며
가늘게 떨며 따라오던 구룡포 눈썹 달
줄에 묶인 과메기처럼 매운 바람을 헤엄쳐
스스로 깊은 맛을 품을 때까지
혹한의 중심부로 나를 밀어넣어야 했던 그해 겨울
진눈깨비 뿌려대는 국도를 따라오며
나는 뜻하지 않게 너와의 약속을 깨던 적이 있었다
새벽 강구항
강구항에는 그날 따라 해가 뜨지 않았다
골목 안에 숨어 있던 겨울 바람만이
받침 떨어진 여인숙 간판을 할퀴며 지나갔고
그때마다 낡은 간판 불은 정신을 놓아버렸다
강구항의 불빛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그것은 내가 먼 곳에서만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항구에는
장기 숙박하고 있는 눅눅한 바람만이
여인숙 창문을 들락거렸고
털실 뭉치같은 안개에서도 비린내가 났다
커다란 전구를 매단 통발선 한 척이
색색의 깃발을 꽂고 항구로 들어왔다
잠을 못 잔 선주의 눈알만 붉어져 있었고
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내 삶을 건져보기 위해
먼 바다에 나가 통발 한번 힘껏 던져두지 못했다
이곳에 와서도, 강해지거나 무디어지지 않고
몸을 녹이려고 낯선 방에 들어섰다
형광등 불빛이 빤히 내 감정을 들여다본다
접혀 있던 군용 담요를 펼치자
젊음을 탕진해버린 노름꾼 같은 야윈 화투짝들이
아직 냉기 돌고 있는 내 삶의 웃목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밖으로 나가자 어둠이 물러선 자리에 늙은 선주가 서있고
주름이 깊게 패인 그가 빈배로 돌아왔다며
묻지도 않은 말에 스스로 대답했다
나는 침묵에 길들여진 넙치처럼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멀찌감치 쭈그리고 앉아 아침해를 기다렸다
마지막 봄날에 대한 변명
낯익은 집들이 서 있던 자리에
새로운 길이 뚫리고, 누군가 가꾸어 둔
열무밭의 어린 풋것들만
까치발을 들고 봄볕을 쬐고 있다
지붕은 두터운 먼지를 눌러 쓰고
지붕아래 사는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떠난 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고있는
오래된 우물만 스스로 제 수위를 줄여 나갔다
붉은 페인트로 철거 날짜가 적힌
금간 담벼락으로 메마른 슬픔이 타고 오르면
기억의 일부가 빠져 나가버린 이 골목에는
먼지 앉은 저녁 햇살이 낮게 지나간다
넓혀진 길의 폭만큼
삶의 자리를 양보해 주었지만
포크레인은 무르익기 시작한 봄을
몇 시간만에 잘게 부수어 버렸다
지붕 위에 혼자 남아있던 검은 얼굴의 폐타이어가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을 공연히 헛 돌리고
타워 크레인에 걸려있던 햇살이
누구의 집이었던
쓸쓸한 마당 한 귀퉁이에 툭 떨어지면
윗채가 뜯긴 자리에
무성한 푸성귀처럼 어둠이 자라나고
등뒤에서는 해가 지는지
신도시에 서있는
건물 유리창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2002 경남일도 신춘문예 당선작
밥상 위의 명태 한 마리
그는 침침한 백열등 밑에서 저녁을 먹는다
굳어버린 혓바닥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밥상이 곤두박질 칠 때 마다
늙은 아내는 깨진 것들을 천천히 쓸어 모았다
그를 지탱하던 의식들은
이빨 나간 그릇처럼 쓰레기 통에 처박히고
치욕은 아내의 손톱 밑에 파고 든 양념찌꺼기 같았다
한바탕 울분 뒤에
몰아쳐 오는 적요는 언제나 쓸쓸하다
그는 잘 씹히지 않는 명태를 우물거리며
바다 속의 깊은 적막을 우려낸다
하루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명태 한 마리의 온전한 고독이 필요할테지
관자놀이의 힘줄이 불끈 일어선다
내 영혼은 얼마나 더 능멸당해야 잠들 수 있나
꿈에서 조차 그는 말을 더듬는다
그는 마른 명태처럼 딱딱해진 생각들
탕탕 두둘겨
북북 찢어 놓고 싶었다
환멸에서 생비린내가 났다
백양나무가 바람든 뼈를 끌고 방안으로 들어 왔다
누런 이파리들의 밭은 기침에서 튀어나오는
죽음의 파편들
그는 온몸에 어둠을 퍼담고 고즈넉하게 저물어 간다
처마 밑의 마른 명태는
먼지를 한겹 두른 후 하루 더 희망을 품기로 했다
2004 제3회 계간 <시작> 신인상 당선작
단단한 뼈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를 알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2005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민박집에 세워진 과녁
눈 그친 민박집으로
하얀 입김을 불며
파도와 갈매기가 맨 처음 찾아왔다
그 집의 담벼락은 파도가 칠 때마다
오래된 틀니처럼 흔들거렸다
화장실로 가는 좁다란 통로에는
널반지로 만든 과녁이 세워져 있고
칠이 벗겨진 숫자들은 원판안에 멈춰 있었다
여름 한철 동안 피서객들이
인형이나 담배에 배팅하며 활을 당겼을
화살과 활이 떠난 과녁은
바람이 들락거리는 구멍들을 안고 혼자 서 있다
미닫이 사이로 파도의 시린 발목이 보인다
비닐장판 위에 지져진 담배자국은
검은 몽돌처럼 침묵했고
그쳤던 눈발이 다시 사나워졌다
나는 내 안에 조준된 화살을 힘껏 쏘았다
결과는 경계의 안이거나 바깥일 것이다
과녁에 뚫린 수많은 구멍들도
알고보면
한때 온몸의 정신을 집중하여
생을 관통하려 했던 흔적임을 알겠다
2005년 신춘문예 당선시집
앵무새의 저녁식사
하늘은 심각했고 정오가 되자 잔뜩 화난 포도 씨 같은 햇살이 틱틱 거리며 흩어졌다 외출에서 돌아온 남자는 앵무새의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남자는 새장을 등지고 검고 싱싱한 야채를 썰었다 냄비 속에 들어간 거짓말들은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침묵하고 있던 뚜껑이 들썩 거린다 흐물흐물해진 본성들이 아우성쳤다 견디다 못한 몇 개의 혓바닥이 부글부글 기어 나왔다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서로의 의심도 빈 접시처럼 하얗게 바닥을 보였다 앵무새는 남자의 입술을 열고 부드러운 혓바닥을 삼켰다 식탁위에는 다 비운 슬픔이 포개져 있고 그들의 저녁식사는 조용하게 끝이 났다
그 후, 앵무새의 코는 조금 더 길어졌고 증오는 벌레도 먹지 않고 잘 자랐다 횃대에는 부러진 달의 긴 발톱이 상처처럼 박혀있었다
2005년 신춘문예 당선시집
돛배 제작소
그의 좁고 어두운 창고는
바다를 낀 비탈길에 매달려 있다
작업대 위에는 선풍기 한 대가
성능 떨어진 스크류처럼 꺽꺽 거리고
가끔 죽은 생선을 입에 문 갈매기들이 힐끔거렸다
저녁이면 그는 절벅거리는 석양에 전신을 담그고
초판 인쇄본인 낡은 해부학 책을 탐독한다
그가 읽은 해부학 책의 대부분은
휘어진 척추와 절망에 눌린 늑골을
잘라내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었다
노련한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던 그는
통나무를 파낼 때마다 깊어지는 허공을 밟고 내려갔다
설계도면에는 오래된 고뇌까지 꼼꼼히 그려져 있었고
돛배가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그의 환멸은 정교해져 갔다
번번히 출항이 연기되었던 이유는
자로 잴 수 없었던 용기의 오차 때문이었고
환기통을 찾지못한 공기들은 녹슨 바람 소리를 냈다
그는 드라이버로 세상의 귀퉁이에
임시로 꽂혀있던 자신을 풀어낸다
완전한 조립은 언제나 해체를 의미하는 걸까
톱밥같은 날들을 훌훌 날려보내고
그의 돛배는 오늘밤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다
통나무에서 밀려나온 나무껍질은
시멘트 바닥에서 알몸을 검게 말았다
2005년 겨울 계간 시작
빈집
바람벽의 광대뼈가 불거져 있는 빈농가
감나무 야윈 품안에 시린 낮달이 얼굴을 묻는다
허리를 비틀던 흙 담은 기어이 주저앉아 버렸다
간신히 서있는 세탁기속으로
후줄근한 바람이 몸을 구겨 넣자
겨울해의 마지막 동력이 녹슨 플러그에 접속된다
일시정지 된 동작들이 기억을 짜 맞추고
숫자가 희미해진 타이머는 오래된 예약시간을 깨닫는다
이삿짐에도 따라가지 못한
한쪽 다리가 부러진 빨래 집개가
눅눅한 어스름을 물고 늘어진다
이불호청 같은 저녁이 까슬까슬 말라간다
탈수가 끝난 세탁기가 빗물을 찔끔 내보낸다
탈탈 털어낸 달빛이 삶은 기저귀같이 새하얗다
달려온 바람의 눈동자가 창호지가 뚫자
놀란 문풍지들이 소스라치게 울어댄다
이빨나간 독안에 채워진 달빛이 넘친다
적막한 마음들이 흘러내린다
빈집은 조용 조용 젖어 가는데
방문은 늘 해오던 일이라는 듯이
고단한 뼈들을 가지런히 윗목에 뉜다
시인시각 2006 여름호
생일전야
남자는 달려오는 빛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급한 순간에는 어떤 기억도 저
항하지 못한다 남자의 몸이 파닥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남자의 주변으
로 살비듬같은 햇살이 잠시 푸석그렸다 호주머니 속에서 끌려나온 유서는
창백했다 세상의 고통들은 왜 똑같은 모서리를 가질까 남자의 절망은 여러
번 접혀진 채 천천히 닳아왔을 것이다 휘갈겨 쓴 모음과 자음들이 더듬거리
며 남자를 변명했다 생일전날 날짜가 맞아 떨어진 것은 순전히 남자의 수학
적 강박 때문이었다 TV를 켜자 아홉시 뉴스앵커가 알맞게 경직된 하루를
부검하고 있다 어두운 터널은 놀란 동공처럼 아득히 뚫려 있고 남자의 반
지하 단칸방에는 미역이 양푼을 검게 부풀리고 있었다
사라진 입들
잠실 방문을 열면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어두컴컴한 방안을 마구 두드리던 비,
눈뜨지 못한 애벌레들은 언니가 썰어주는 뽕잎을 타고 너울너울 잠들었다가
세찬 빗소리를 몰고 일어났다
내 마음은 누가 갉아먹었는지 바람이 숭숭 들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를 동안
언니는 생의 급물살을 타고 허우적거렸고
혼자 잠실 방을 나오면 눈을 찌를 듯한 환한 세상이 캄캄하게 나를 막아섰다
저녁이면 하루살이들이 봉창 거미줄에 목을 메러 왔다
섶 위의 누에처럼 얕은 잠에 빠진 언니의 숨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명주실 같았다
허락된 잠을 모두 잔 늙은 누에들은 입에서 실을 뽑아 제가 누울 관을 짰지만
고치를 팔아 등록금으로 쓴 나는 눈부신 비단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언니가 누에의 캄캄한 뱃속을 들여다보며 풀어낸 희망과
그 작고 많은 입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른 고치를 흔들어 귀에 대면
누군가 가만가만 흐느끼고 있다
생계의 등고선을 와삭거리며
종종걸음 치던
그 아득한 적막에 기대
검은 뿔도장
닳아버린 지문 같은 오래된 검은 뿔도장
이마에 하얀 점 하나를 찍고 상한 마음을 꼭 끼우고 있다
장롱 서랍 속에 함몰된 시간을 품고 누워 있다
아버지는 30년 공무원 퇴직금을 빚보증으로 날리고 부터
막도장, 막노동, 막말, 막배,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말들이 물집처럼 부풀어올랐다
막 굴러다녀도 이제 그만인
누구하나 눈 여겨 보지 않는 도장
입김을 호호 불어 힘껏 누르면
아버지의 발자국이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목련
뼈만 남은 손가락이 가지를 움켜잡고 있었다
다정했던 목련, 지는 모습이 이랬다
볼이 움푹 팬 병색 짙은 몰골로
자신의 전부를 갉아먹고 있었다
활짝 핀 함박눈처럼
세상을 끌고 올라가던 목련은
순백의 기억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동백처럼 삶이 가장 요염할 때
선혈이 낭자하게 자신을 뚝뚝 던져 버리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보여주며
추억을 되돌려가는 미련한 꽃
제가 얼마나 아늑하고 환한 시간을 밝혔는지 모르고
꽃 진 가지에 가장 누추한 기억 한 줄 걸어 두었다
애기 소*
지금 막 떨어지는 줄기찬 침묵과
오랫동안 고여 있던 침묵이 만나
서로를 강렬하게 흡입하는 애기 소
내부는 들끓고 있었지만
푸른 눈은 아주 침착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벌거숭이 아이가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무서운 침묵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냉정을 찾아간다
잠자리 한 마리가 제 모습을 비추며
고요히 비행을 마쳤을 뿐
아가, 잔잔해 보인다고 속까지 잔잔한 것은 아니란다
정적이 백기를 들고 말 걸어 올 때
먹 개구리도 겁을 먹고 울음주머니를 부풀린단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허기는 무엇으로 채울 수 없단다
한 생이 다른 한 생과 뒤섞이고 싶어
절대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저 깊고 푸른 눈,
아가, 격렬한 외로움은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단다
*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배경인 애기소 , 형상강 상류에 있으며 경주지역의 발음 특성상 <애기소>라 부른다. 다른 두 물줄기가 합류하면서 소용돌이가 생겨 땅이 파져 깊은 소가 생겨났다. 한 해에 한 명씩 아이들이 빠져 죽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민달팽이의 길
김장배추를 다듬다 만난 놈
신문활자 위에서 벌거벗은 자신의 상황에 놀란 듯
더듬이를 마구 휘두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운명 앞에 당황한 것 같았다
희멀건 배추 속살에 붙어
느릿느릿 낮잠이나 즐기며 살아온 놈이
백주 대낮에 불려나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나는 맨몸으로 맞닥뜨릴 곤란을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미끈거리는 몸을 신문지로 감싸 베란다 화분 속에 넣어 주었다
배 밑에 느껴지는 이끼의 감촉에 몸을 잔뜩 웅크린다
未知의 세상으로 몸 들여놓을 생각을 않는다
한번은 부딪쳐야 할 문제 앞에 망연자실한다
나는 저놈에게 어떤 결의가 생겨나
깨지든 이겨내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길 바랬다
며칠 뒤 베란다 청소 중에
한 뭉치의 철사를 풀어놓은 것 같은 은빛 선들
놈이 사투를 벌인 얼룩이었다
어디에도 민달팽이는 보이지 않고
살아남은 그 자리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동지 무렵의 검거나 새하얗던
어머니가 부뚜막에 앉아 팥죽 솥을 젓고 있다
밤눈은 벌써 솥 안에서 휘몰아쳤고
빨랫줄에 걸린 연기가 서걱서걱 얼어갔다
잡았던 손을 놓친 문고리가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아버지는 아랫목에 술 단지처럼 묻혀 부글부글 익어가고
어머니의 가슴에 빠진 수많은 달들은
무쇠솥 위로 떠올랐다
날개를 접은 검은 하늘이 뒤란으로 내려 와 웅크렸다
할머니가 뿜어대는 독한 담배연기에
어머니의 강건했던 주기도문이 쿨럭 쿨럭 기침을 했고
방안은 가마솥 안의 물집처럼 북적북적 끓어올랐다
박쥐가 가슴을 펴고 나는 것은
제 캄캄한 외로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그렇지만 어머니
모두를 보여준다고 외로움이 없어지진 않아요
그건 살아있는 한 식량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에요
어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두꺼운 성경책의 이빨을 앙 물리고 예배당으로 갔다
펑펑 내리는 흰 눈 뒤로
검은 밤이 가죽 표지처럼 둘러섰다
할머니가 팥죽 양푼을 화롯불에 올리자
할 말을 참고 있던 흰 눈깔들이 희번덕거렸다
우리는 시끄러운 눈깔들을 맛있게 파먹었다
다 먹은 빈 양푼이 팥죽 같은 땀을 흘렸다
무엇이든 푹푹 지워버린 세상이 깨끗한 척했다
솜버선을 두툼하게 신은 집이 바람에 떠밀릴 것 같았다
이팝나무 고봉밥
육중한 그 집 대문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어
누가 사는지 본 사람이 없었다
겨울바람이 가랑이를 늘이며 높은 담을 올라갔다
술 취한 사내가 담벼락에 욕설을 퍼부어도
그 집은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옷깃을 한 번씩 더 여미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보안등은 수상한 눈빛을 흘려보냈다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그 집의 산수유나무가
물집이 툭툭 불거진 가려운 팔뚝을 긁적였다
개나리는 조롱조롱 노란 궁금증을 매달았다
그 집의 대문이 열린 것은 혼자 살던 노인의
부음이 꽃씨처럼 떨어진 날이었다
외국에 사는 아들내외는 너무도 담담하더란다
석 달이나 지나 발견된 해골의 구멍 안에는
캄캄한 외로음이 그렁거렸다고 한다
목련나무가 꽃등을 내리고 조문을 끝내자
대신 이팝나무가 하얀 고봉밥을 가득 담아
담 위로 고개를 쭈욱 내밀고 있더란다
잘 먹어야 그리움도 훤히 켤 수 있다는 듯이
낮달이 꺼내는 새떼
-흰 접시꽃
접시꽃이 엎지른 그림자에 금이 가는 구 월
낮달은 가슴을 열고 까만 새떼를 자꾸 꺼낸다
그리움을 보태거나 덜어내며
위태롭게 균형을 잡아오던 접시들은
꽃이 일생동안 하나씩 공들여 빚어 온 것,
찬바람이 허공에서 하얀 접시 여러 개를 깨트렸다
새떼가 사분거리는 휜 빛을 물고 사라져도
꽃은 이듬해 새 접시를 들여 똑같은 상처를 담아 둘 것이다
꽃 지고 꽃대만 남았다는 것
허술히 담겨 있던 그리움을 슬쩍 쏟아낸 것과 같다
내 슬픔을 떠받쳐준 것을 슬쩍 쏟아낸 것과 같다
빈 꽃이 무게를 기억하는 것도
꽃대가 접시돌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저들이 잘 낫지 않는 환상통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새떼가 석양을 꾹 찍고 빠른 등기우편으로 날아갔다
말갛게 씻긴 허공 아래 헛헛하게 서 있는 꽃대들
가진 접시가 없어 아무것도 담아 둘 수가 없다
나는 꽃 필 때부터 깨질 것을 염려했어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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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입들> 천년의시작 2007 11 20
그리운 노래, 시로 태어나다
2004년 『시작』,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영옥 시인, 그녀의 시는 남다른 감수성과 치밀한 구성 등에서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검증을 거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시집을 기다리는 독자들도 그만큼 많았을 것이다. 이제 『사라진 입들』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들고 나와 그녀는 조용하게, 그러나 가슴 저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번 시집은 그리운 기억들을 불러들이는 주술적인 힘이 느껴진다. 그녀는 먼저 어린 시절의 아버지, 어머니, 언니 등 가족을 불러들여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가족과 관계된 이미지들은 검은 색체를 띠면서 버거운 무게감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억들을 떠올리는 시인의 가슴에는 숭숭 구멍이 난다.
그녀를 아프게 하는 것은 가족만이 아니다. 온갖 사람들과 꽃들과 벌레들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슬픈 운명을 그녀는 감지한다. 시집의 곳곳에 등장하는 죽음은 모든 생명들이 벗어날 수 없는 아픔의 하나이다. 끝내 허물어져버릴 생명의 순간성을 깨닫고 있는 시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속에 그들을 불러들여 어루만지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현재의 자신이 만들어졌으며, 또 그것이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이 더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하듯이 시인의 아픈 기억들은 시집 사이사이 여러 가지 색깔의 고운 시로 활짝 피어 있다. 눈이 밝은 독자라면 꽃의 아름다운 모습에만 이끌리는 게 아니라 꽃의 무늬에 담겨 있는 사연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연들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추천글]
이영옥이 삶을 보는 시선은 외향적이되 섬세하고, 표현은 전통적이되 신선하다.
무작위적으로 뽑은 다음 두어 구절을 살펴보자.
‘내 마음은 누가 갉아 먹었는지 바람이 숭숭 들고 있었다’ ‘접시꽃이 엎지른 그림자에 금이 가는 구월/그리움을 보태거나 덜어내며/위태롭게 균형을 잡아오던 접시들.’ 앞의 것은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것을 보며 산 추억에서 나온 것이고 뒤의 것은 꽃이 담고 있는 추억의 복합체이다.
이런 시들을 읽다보면 독자의 추억도 환해진다.
그 환함 속에 가족과 주변의 삶들이 모질만큼 감성적으로 새겨진다.
늦게 만나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시인이다.
─ 황동규(시인)
이영옥의 시들은 상처를 거름[모티브] 삼아 핀다. 시가 상처요, 상처는 꽃이다. 꽃들은 온통 제 살빛 아래에 숨긴 “피빛 상처들”(「능소화 붉은 입술로」)이다. 꽃 속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언니들과 동생들이 오글오글 숨어 있다. 상처는 이미 과거다. 상처 주변으로 세월의 두께가 내려앉는다.
“극한의 경계”(「집을 끌고나온 개 한 마리」)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꽃이 터진다. 저를 묶은 줄을 풀지 못한 “개”는 집을 끌고 집 밖으로 나와 “갈 수 없었던 건너편”을 향해 컹컹 짖는다. 힘센 욕망으로도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에 꽃 밖의 꽃, “풍경 밖의 풍경”이 있다. “개”가 멈춘 자리가 극한의 경계요, 거기가 통점(痛點)이다. “개”는 무의식에서 짖는 시인의 페르소나이다.
시인은 “화무십일홍에 울지 마라, 꽃아”(「화무십일홍에 울지 마라, 꽃아」)라고 노래한다. 울지 마라, 꽃아! 꽃 진 자리라야 열매가 맺히느니!
─ 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
목차
I 사라진 입들
철길
사라진 입들
브라스밴드가 지나간 뒤
형상강
나를 찢고 달아나는 붉은 달
우물 속의 잠자리
돼지
검은 뿔도장
목련
밥상 위의 명태 한 마리
이팝나무 고봉밥
언니라는 선인장
애기 소
연밥
달밤
삼나무떼
II 바람 아래 붉은 강
바람 아래 붉은 강
목련꽃 입덫
소쩍새 울음
낮달을 꺼내는 새떼
돛배 제작소
그날은 민물새우가 아팠다
노포동 터미널
만리장성 동백꽃
강대나무
질긴 내장으로 만든 집
주먹만한 구멍 한 개
복어국
동지 무렵의 검거나 새하얗던
질긴 막
얼음 강을 건너다
어디쯤 왔을까
III 화무십일홍에 울지 마라, 꽃아
접시 거미줄
내 애인은 장수풍뎅이
맨드라미
화무십일홍에 울지 마라, 꽃아
소금쟁이
행방
달맞이꽃
그늘교회
집을 끌고 나온 개 한 마리
민달팽이의 길
원앙금침
빨간 장화에 대한 오해
왕버들 상회
묵호항 사발낙지
부산여인숙 3호방
IV 굿바이, 역도산 찐빵집
능소화 붉은 입술로
굿바이, 역도산 찐빵집
어떤 비교우위론
아양교 다리 아래에서
공이 온다
이러한 열반
마늘 한 접
달의 자서전
겨울 과메기
콩대를 태우며
늦은 눈
입맞춤
영도다리
늙은 개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예의
회전문
우렁이 집
밤 기차
■ 해 설
비장미를 엿보이는 생명의식 | 남송우(부경대 교수)
2008년 방송대문학상 수상작 (0) | 2011.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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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방송대 문학상 (0) | 2011.07.23 |
[스크랩] 유금숙님 - 여름 동강 (0) | 2011.02.07 |
제29회 방송대 문학상 가작 수상작 (0) | 2011.02.07 |
제30회 방송대문학상 수상작 (0) | 2011.02.07 |
여름 동강
유금숙
강변을 따라 걸으면 물 갈피마다
유년의 기억들 깔깔대며 물수제비 뜨는 저녁
물안개 속에서
어린 비오리 갸웃 고개를 내밀다
소리에 놀라 소스라친다
수풀사이 돌밭 틈새로 계절 없이
샘물 뿜어 올리는 황새여울 지나는데
길 끝나는 곳 산비탈에
코란도 한 대 서 있다
문희마을 몽룡씨는 오늘도
고무신 같은 나룻배를 신고
홀로 강을 건너간 모양이다
노를 잡고
물길을 따라가던 산 그림자
길게 하품하며 뱃전에 누워 잠에 들면
외딴집 텃밭엔 오늘밤
은하수 푸르게 쏟아지고
별빛에 옥수수 익는 소리 가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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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국문과 졸업
2004 방송대문학상 당선
2006 <심상> 신인상
강원문협, 강릉문협, 한울림문학 회원
시집 <꿈, 그 간이역에서>
2004년 방송대 문학상 (0) | 2011.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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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영옥 시모음 (0) | 2011.02.07 |
제29회 방송대 문학상 가작 수상작 (0) | 2011.02.07 |
제30회 방송대문학상 수상작 (0) | 2011.02.07 |
[스크랩] 동굴기행--최재영 (0) | 2011.02.07 |
꽃지게
우 경 화
성냥갑만 한 슬레이트 지붕
다닥다닥 붙어 정겹고도 쓸쓸한 달동네
희망같은 연탄 가득 실은 손수레 끌며
검둥이 한 마리 앞세우고
가파른 비탈길 휘청휘청 올라가는 할아버지
허리띠같이 좁은 골목 입구에 멈춰 서서
지게에 연탄 착실히 옮겨 짊어지고
성지 순례하듯 발걸음 느릿느릿 떼놓는
등 굽은 뒷모습
하필이면 어깨에 박인 굳은 살같은 지게
평생 내려놓지 못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았을까
몹쓸 병으로 쿨럭거리는 둘째 딸
엉덩이에 주사바늘 찌르는 솜씨도 날마다 늘어
스스로 돌팔이의사 다 되었다며
짐짓 쓴웃음 지으시던 아버지
장마 때면 시름인 양 쌓인 빈 스트렙토마이신병들
비료 푸대에 말없이 주워 담아 지게에 얹고
남몰래 마을 앞 냇가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 옮기셨던가
봄날이면 큼직한 나뭇단 눌러 쟁인 지게 위에
참꽃 한 아름 자랑스레 꽂고 저녁놀 등에 지고 걸어오시던
고향 뒷산 붉은 참꽃 맛이 문득 그립다
독거 노인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달동네
내 아버지 모습같은 할아버지
겨울 되면 집집마다 효도하듯 한층 빨갛게 타오를
연탄꽃, 그 환한 꽃지게 지고 계단을 오르신다
.
<해설>
- 아버지와 자신의 투병과 달동네 할아버지를 잘 대비시키고 있다. 뛰어난 묘사가 사실적 풍경을 더하고 있어 뭉클하게 다가온다. 도시 변두리의 달동네 할아버지의 삶과 우리네 농촌 지난한 아버지의 삶이 클로즈 업 되어 그 효과가 더욱 생동감을 주고 있다. 상징적의미로 쓰인 `꽃지게’ 역시 심도를 더하고 있음이 확인 되는데,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며 밝은 쪽로 시선을 두고 있는 시인의 자세가 더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스크랩] 이영옥 시모음 (0) | 2011.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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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금숙님 - 여름 동강 (0) | 2011.02.07 |
제30회 방송대문학상 수상작 (0) | 2011.02.07 |
[스크랩] 동굴기행--최재영 (0) | 2011.02.07 |
제32회 방송대문학상 수상작 (0) | 2011.02.07 |
붉은 나비 / 장진명
가상의 공간에서 막 걸어나온 듯
휘장같은 원피스를 걷어들고
검고 가련한 허벅지를 온 통 드러낸
몽골의 붉은 나비
그녀는 캥거루처럼 구부정하게 인사를 했다.
쫄아드는 키만큼씩 자꾸만 높아지는
끝이 뾰족한 하이힐에서
우두둑 잔뼈들이 틀어지고 있었다.
채찍을 든 일본 원숭이를 피해
공중제비를 넘는 그녀가 곧 울 것 같아서
자정의 술꾼들은 잔을 부딪치며 소리를 질렀다.
징기스칸 만세!
새벽을 걸어가는 그녀를 본 적이 있다.
주점 어스름등이 꺼지면 피가 스민 하이힐을 손에 든 채
맨발로 호르르 날아가는 붉은 나비
가무레한 뒤꿈치가 옴씬옴씬 품어내는
몽골의 향취가 수액으로 점점이 얼룩지는 그녀를
나는 매일 주점으로 간다
반쯤은 웃고 반쯤은 우는 새벽 지하철
부스스한 내 얼굴이 그녀 같아서
채찍을 든 원숭이의 부라리는 눈알이 그녀를 관통하고 나를 관통하는
극적인 마조히즘을 위해서
경극배우의 짙은 분장으로 숨긴 그녀의 살기가
패왕별희처럼 시퍼런 장도를 휘두를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면서
어머니가 낭떠러지는 위험하다고 했다.
눈이 오고 별은 눈 속에 갇혔다.
나는 세상 끝이 보고 싶어서 인파가 붐비는 동성로를 지나
주점 낭떠러지 문을 민다.
발이 허공을 짚는다.
[스크랩] 유금숙님 - 여름 동강 (0) | 2011.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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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방송대 문학상 가작 수상작 (0) | 2011.02.07 |
[스크랩] 동굴기행--최재영 (0) | 2011.02.07 |
제32회 방송대문학상 수상작 (0) | 2011.02.07 |
제33회 방송대문학상 수상작 (0) | 2011.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