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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기행--최재영

 

 

거대한 입속으로 몸을 들이밀자
차고 음습한 퇴적층마다
세월의 지문이 선명하다
목구멍 깊숙이
짐승의 뼈 조각 신음소리 가시처럼 걸려있어
동굴은 늘 바람소리로 웅얼거린다
순식간에 굳어버린 놀람이나 슬픔이
동굴의 입구를 열어 놓았으리라
목울대 당당하게 버티고 선 석주는
어느 선사의 흔적일까
수만 년을 늙어오면서 동굴은
침전물을 뱉어내는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고생대와 중생대 사이
이미 허기를 걷어낸 침샘에는
가라앉은 부토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들이 공생하고
깊이 들어갈수록 어둠은 격렬하게 끓어올라
지층이 맞물린 흔적 심하게 헐어있다
발자국 소리 텅텅 울리는 꼬리뼈를 돌아나오는 길
어느 짐승의 발자국인지
움푹 패인 웅덩이 짙푸른 공복이
아득한 등허리의 고요를 흔들고
입구 저 켠에서 진화된 원시인들이 밀려 들어온다.

출처 : 은혜로 꽃피는 축복의 나무
글쓴이 : 바람그리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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