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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나비 / 장진명
가상의 공간에서 막 걸어나온 듯
휘장같은 원피스를 걷어들고
검고 가련한 허벅지를 온 통 드러낸
몽골의 붉은 나비
그녀는 캥거루처럼 구부정하게 인사를 했다.
쫄아드는 키만큼씩 자꾸만 높아지는
끝이 뾰족한 하이힐에서
우두둑 잔뼈들이 틀어지고 있었다.
채찍을 든 일본 원숭이를 피해
공중제비를 넘는 그녀가 곧 울 것 같아서
자정의 술꾼들은 잔을 부딪치며 소리를 질렀다.
징기스칸 만세!
새벽을 걸어가는 그녀를 본 적이 있다.
주점 어스름등이 꺼지면 피가 스민 하이힐을 손에 든 채
맨발로 호르르 날아가는 붉은 나비
가무레한 뒤꿈치가 옴씬옴씬 품어내는
몽골의 향취가 수액으로 점점이 얼룩지는 그녀를
나는 매일 주점으로 간다
반쯤은 웃고 반쯤은 우는 새벽 지하철
부스스한 내 얼굴이 그녀 같아서
채찍을 든 원숭이의 부라리는 눈알이 그녀를 관통하고 나를 관통하는
극적인 마조히즘을 위해서
경극배우의 짙은 분장으로 숨긴 그녀의 살기가
패왕별희처럼 시퍼런 장도를 휘두를 것 같은 두려움에 떨면서
어머니가 낭떠러지는 위험하다고 했다.
눈이 오고 별은 눈 속에 갇혔다.
나는 세상 끝이 보고 싶어서 인파가 붐비는 동성로를 지나
주점 낭떠러지 문을 민다.
발이 허공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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