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詩가 내게로 왔다. 손 내밀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데, 한 뼘 모자라는 곳에 서서 더 이상 거리를 좁혀주지 않았다. 시인이고 싶었다. 잡히지 않는 갈망으로 신열을 앓았던 시간들. 이제껏 한 가지 일에 매여 이렇게 몸서리친 적이 있었던가.
가끔씩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문학소녀 시절, 행여 삼류소설이나 쓰고 있을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기 싫어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택했다. 그러나 유목민으로 낯선 곳을 떠돌던 한 때,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 화살처럼 쏟아져 내리는 햇살 때문에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지나온 곳마다 국적 잃은 향수병을 발자국으로 찍고 다녔다.
내게 시는 ‘기쁨 두 배, 고통 네 배’이다. 수염뿌리를 허공으로 내밀어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열대도시 가로수처럼 공기 속으로 생각의 뿌리를 내리고 연명하기엔 언제나 목이 말랐다. 다가가면 저 만치 달아나는 시를 잡기 위해 새 해가 되면서 두 권의 공책을 준비하였다. 우연이었을까. 한 권은 표제가 ‘詩作’ 이고, 다른 한권은 始作이란 뜻의 ‘카이스’ 라고 붙였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게 용기를 준 뚝방동지 정하린 오정순씨 정말 감사하고, 당선과 함께 친정을 만들어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