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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나무들 / 정현종

 

 

세상의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지?

 

그걸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

허구한 날 봐도 나날이 좋아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그런 사람 땅에 뿌리 내려 마지않게 하고

몸에 온몸에 수액 오르게 하고

하늘로 높은 데로 오르게 하고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

 

하늘에도 땅에도 우리들 가슴에도

들리지 나무들아 날이면 날마다

첫사랑 두근두근 팽창하는 기운을!

 

 

 

세상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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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2월 17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으로 이사 가서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중 ·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과 음악, 발레, 철학 등에 심취했다.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으며,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84년 5월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았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과 8월에 각각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을 완료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1966년에는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했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5년에 정년 퇴임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오르고, 1972년 첫 시집 『사물의 꿈』을 출간한 이후 지금까지 쉼 없는 창작열과 언제나 자신의 시 세계를 갱신하는 열정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했다. 초기의 시는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 반면, 1980년대 이후로는 구체적인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했다. 2008년 내놓은 아홉 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 역시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들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를 갈망하게 된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사물의 있음 그 자체, 움직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적 화자의 자세에 저절로 주목하게 되는 작품집이다.

 

1990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외 6편의 시로 ‘제3회 연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 「한 꽃송이」로 ‘제4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 1995년 「내 어깨 위의 호랑이」로 ‘제40회 현대문학상’, 1996년 「세상의 나무들」로 ‘제4회 대산문학상’, 2001년 「견딜 수 없네」로 ‘제1회 미당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의 시선집을 상자했다. 또한 독특한 시론과 탁월한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을 펴냈으며, 시 번역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예이츠, 네루다, 로르카의 시선집을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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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 불타다 / 정현종

 

 

버스 타고 

근동 지방을 구불구불 가다가 

드넓은 밀밭을 검게 태운

구름 그림자를 보았다 

구름 그림자에 타서! 대지는 

여기저기 검게 그을려 있었다.

 

욕망 - 구름 그림자 

마음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에

일생은 그을려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에  

세계는 검게 그을려

 

그 모든 너울을 걷어낸 뒤의

구름 자체를 나는 좋아하고

그리고 

은유로서의 그림자에 불타는 바이오나

 

 

 

제2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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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77) 시인과 김재홍(69) 평론가가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문학과지성사)와 평론집 <생명, 사랑, 평등의 시학탐구>(서정시학)2015년 제2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에 각각 선정됐다.

 

김달진문학상은 진해 출신 김달진 시인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자 고인 1주기인 지난 1990년 제정됐다. ()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김달진문학관이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시와 평론 두 부문에서 문단 경력 10년 이상인 작가의 최근 1년간(전년도 4월부터 그해 3월까지) 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을 해왔다.

 

올해 수상자로 뽑힌 정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지난 1965<현대문학> 3월호에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해 1972년에 첫 시집 <사물의 꿈>을 비롯해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등의 시집을 냈다. 정 시인은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연세대 국문과 교수 등으로 일했다.

 

<그림자에 불타다>는 시의 정통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건청 시인은 "정현종의 짧은 시편은 선연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오랜 내공과 고투의 결과다. 정 시인은 유구한 시의 정통을 이어받아 궁벽한 고독 속으로 침잠해 시를 건져내오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수상 소감으로 글쓰기에 더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 일과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생각과 감정이 균형과 조화를 향해 움직이며 따라서 정신은 넓어지고 깊어진다""나는 꽤 오랫동안 시를 쓰고 산문도 썼는데, 그게 얼마나 공부가 됐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수상자로 선정된 김재홍 문학평론가는 충남 천안 출생으로 지난 1969년 문학평단에 등단했다. 경희대 국문학과 교수로 일했고, <한용운문학연구>, <시어사전> 등을 펴냈다. 현재는 계간지 <시와시학>의 창간인 겸 주간으로 경희대 명예교수 겸 백석대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평론집 <생명, 사랑, 평등의 시학탐구>는 한국 현대시를 매우 넓고 깊게 바라본 비평서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인 문홍술 평론가는 "이 비평서는 한국 현대시에 대한 문학 비평적 사유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약 50년간 현대시를 통해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탐색해온 비평가의 비평적 삶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주목된다"고 표현했다.

 

김 평론가는 "새삼 부족한 사람에게 신선한 수상소식으로 새로운 깨침과 활력을 줬다. 월하 선생의 명복을 빈다. 남은 날은 적겠지만 성심성의 맑고 곧은 마음으로 문학적 생애를 마무리해 갈 것으로 스스로 다짐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정 시인과 김 평론가는 각각 20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 시상식은 김달진 문학제 기간에 맞춰 95일 오후 5시 창원시 진해문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림자에 불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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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네 /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나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견딜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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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미당문학상은 시집 한 권 이상을 펴낸 시인이 지난 1년간 새로 발표한 시 중 최고의 시 한편에 주어진다.

 

심사대상으로 오른 시인 15백명의 시 6562편 중 중견 시인.문학평론가 50명의 추천, 5명의 예심, 5명의 본심 등 3심을 통해 수상작을 선정했다.

 

본심의 대상은 시인 열분의 작품이었으며, 이들 모두 한결같이 우리 시의 높은 열정과 언어조직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심사자들은 먼저 심사기준을 정하고 각자 의견을 나눈 다음 투표를 통해 각기 세분의 시인을 추천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다시 논의한 다음, 그들 중 가장 탁월한 작품을 골라 압축, 토론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정현종 시인의 '견딜 수 없네' 를 제1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심사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시의 멋과 맛, 명민한 감각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점인데, 이러한 기준은 시가 노래라는 사실에 대한 원초적 인식과 무관할 수 없었다.

 

굳이 미당의 시정신과 결부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타당성이 결여된 설명조.산문화 등은 바람직한 시의 미학일 수 없을 것이다. 답답한 작품들이 없지 않다는 불만도 이런 차원에서 제기되었다.

 

둘째, 시는 서사와 달리 메시지가 요구되지 않는 반면, 상상력과 이미지 사이의 역동적인 힘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분방하지만 그것을 조형한 이미지가 걸맞지 않는다든지, 이미지는 아름다우나 그 속의 상상력이 빈한하다면 시의 긴장도, 재미도, 창조적 즐거움도 기대하기 힘들다.

 

본심에 나온 열분의 작품은 모두 이런 관점에서 세심하게 읽혀졌고 검토됐다. 그 결과 수상작 이외의 작품에 대해서도 심사자들은 대체로 깊은 공감과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여기서 밝혀둘 일은, 황동규 시인의 경우 그의 부친되는 황순원 문학상이 미당문학상과 함께 시행되는 관계로 첫회에는 아예 본심 심사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합의 아래 시인의 작품들을 심사에서 제외하였다는 점이다. 황씨와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1회 미당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정현종 시인은 한국 시단의 수준을 세계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대표시인이다.

 

수상작으로 결정된 '견딜 수 없네' 의 탁월함은, 이 작품이 슬픔과 즐거움의 앰비밸런스(양가성) 를 융합시키면서 그것을 노래로 읊조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시는 노래를 상실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데, 감사하게도 정시인의 많은 시들은 메마르고 뻣뻣해진 채 감정.생각.이념을 그대로 토해놓는 많은 시들 속에서 유니크한 가락으로 슬픔마저 흥겹게 노래하는 시의 왕국을 건설해 왔다.

 

'견딜 수 없네' 가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은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이라는 소박한 것들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확실히 '모범적' 시인은 아니다. 그의 이같은 특성, 쉽게 흉내낼 수도, 흉내내서도 안될 성격에 관해서는, 그의 언어가 '솟아오르며 춤춘다' 거나, '시의 심장부로 직행하고 있다' 는 평가가 심사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대상과 표현 사이를 직접적으로 오고 가는 단순성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도저한 시의 주관성은 때로 뒤집기를 거듭하면서, 때로 그 스스로를 풀어버리면서 탄력적인 역동성을 얻어간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슬픔이 비관 대신 흥겨움으로 변하는 것은 시의 가장 바람직스러운 초월이다.

 

심사위원 이어령. 유종호. 홍기삼. 김주연. 김화영

 

 

 

 

견딜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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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인의 세계

 

"내 최근의 시가 칭찬받은 것이니 좋고, 시 한편의 값을 이만큼 높인 것도 유쾌한 일입니다. 다만 소설과 차별한 것은 잘못된 것 같고, 다른 시인들에게 미안합니다. 우리 현대시에서 미당의 시는 유례없을 정도로 뛰어나고, 뮤즈가 있다면 바로 미당 아니겠습니까. 정치적 실수에 대해서는 참 어처구니없고, 비판받을 만하지만 그렇다고 미당의 시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요새 죽이는 말들이 넘치는데 창조와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부정과 함께 긍정적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

 

시 한편의 값으로는 한국, 아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이번 수상작 '견딜 수 없네' 를 읽고 독자들도 단박 알아차릴 수 있듯 정현종 시인의 시는 곧바로 노래가 될 수 있다. 시 자체도 리드미컬하지만 가곡이나 대중가요로 불려도 아주 좋을 것이다. 정씨의 시는 그만큼 품격과 함께 대중적 울림도 지니고 있다.

 

"우리네 삶은 늘 무겁고 고통스럽습니다. 살아가면서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시가, 예술이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삶을 견디게 하는 힘 아니겠습니까. 시인, 시 자체가 무거워가지고는 삶의 무거움을 견딜 수도, 풀어줄 수도 없습니다. 시인은 무거운 것을 가볍게 실을 수 있는 부하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에서 나는 늘 가벼움을 이야기해왔습니다. "

 

무거운 삶을 가볍고 환하게 들어올리는 시, 그래서 고통까지도 환하게 투사해 축제가 되게 하는 시와 언어를 정씨 자신은 '-언어' '-언어' 라 부른다.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억압은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상적 삶의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우리는 바란다. 지칭하는 대상에 그대로 꽉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언어도 시에 들어오면 자유를 꿈꾼다.

 

억압과 대상을 떠나 환하게 날아오르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언어, 그래 삶에 활력과 자재로움을 주는 깃털과 빛의 언어가 정씨의 시다.

 

65'현대문학' 을 통해 문단에 나온 정씨는 시에서 변함없이 '언어의 탄력' 에 관심을 기울여오고 있다.

 

초기 시집 고통의 축제의 제목처럼 '고통' '축제' 라는 이율배반을 동시에 아우르는 시적 탄력성, 마침내 고통을 축제로 뒤바꿀 수 있는 시를 통해 인간의 삶도 그렇게 환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내 젊은 시절의 시들은 애를 많이 써서 쓰여졌으며 다듬으려 고심한 흔적도 여러 군데 있어 지금 보면 면구스러운 면도 없지 않습니다. 뒤로 오면서는 시가 우러나온다고나 할까, 그렇게 쓰여집니다. 좋은 시를 가리는 기준은 많겠지만 술처럼 잘 익어 저절로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번의 수상작도 저절로 나와 거의 고친 데가 없는 작품입니다. "

 

그러나 어찌 좋은 시가 저절로 나올 수 있겠는가. '부하능력' 이 충전된 상태에서 정신과 감각을 민감하게, 한껏 열어놓아 그 에너지가 정점에 이른 순간 세계가 익어터지듯 시가 터져나오게 해야 읽는 사람도 신명나지 않겠느냐고 정씨는 말한다.

 

수상작 전편에 '견딜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듯 정씨는 요즘 시에는 시간이 많이 나온다.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시간은 역사가 발가벗은 모습이다" 고 했다.

 

정씨는 "시의 언어는 역사에 뿌리를 박되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고 한다.

 

역사는 정치적.경제적 측면 등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일이다. 그러나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그런 일들만 벌이는가. 시간 속으로는 역사를 포함해 모든 인간적.우주적인 일들이 흘러간다. 때문에 삶과 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피는 것이 시간에 대한 관심이라 정씨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시를 쓰려 하는가" 라는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을 올해 최고의 시인에게 던졌다.

 

"한 편의 시를 쓸 때도 그 시가 어떤 모습을 띨지 모르는데 앞으로의 시 계획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 '자유의 현상' 그 자체인 시, 그 시를 일상의 계획을 짜뜻, 아니면 역사나 과학 등 시 아닌 것들에 붙들어매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도 있기에 던져본 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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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 정현종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고통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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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거울 속의 꽃을 꺾는 詩境

 

사람에게는 사물의 이치를 새겨들을 수 있는 나이가 있다고 한다.그렇다면 시의 나이는 얼마나 오래 살아야 귀가 트이는 것일까? 12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을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결정하면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정현종 시인은 60년대 들머리에 시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후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을 서정성으로 용해시킨 첫 시집 사물의 꿈으로 이미 시단에서 자기 좌표를 설정해놓은 시인이다.그리고 시대적 현상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사람과 자연,사람과 시간 등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화두를 불지펴 놓았다.

 

시선집 고통의 축제와 시집 사랑할 시간은 많지 않다로 한꺼풀씩 말의 껍질을 벗겨오면서 오늘의 수상작 경청을 담고 있는 시집 견딜 수 없네에 이르러 그의 시 세계는 한층 자유로워지고 사물과의 내통에 있어서도 평화로워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경청은 이 시대의 갖가지 소음을 진공흡입기로 빨아들이는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다.통신수단이 첨단화되고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있음에 비해 사람들의 귀는 점점 절벽이 되고 눈도 어두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불행의 대부분은/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의 말문부터가 매우 직설적이면서 심상치 않은 경구를 담고 있다.

 

대통령이든 신이든/어른이든 애이든/아저씨든 아줌마든/무슨 소리이든 간에/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은 아주 귀에 익은 듯하면서도 새삼 아프게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특히 내 안팎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밖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은 더욱 어렵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경청의 세계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현종만이 뽑아낼 수 있는 수월경화(水月鏡花)가 숨어있다.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한 고요 속에/세계는 행여나/한 송이 꽃 필 듯에 부딪치면 아하 저 공초선생의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시법을 얻었구나 하는 울림을 받는다.공초문학상의 빛을 더해준 정현종 시인께 경의를 보낸다.

 

- 심사위원 이근배·김종해·임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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