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족(濯足)* / 황동규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 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 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시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 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 여름철에 계곡물이나 냇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일
[심사평] 연공·업적은 생각않고 오로지 작품만 고려
상을 명실상부한 작품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가 재삼 강조되었고 그런 맥락에서 연공이나 지금까지의 업적은 일단 모두 괄호에 집어넣고 보자는 점에서 우리는 생각을 같이했다. 그렇지만 하나의 작품이 필경은 시인의 작품세계의 한 징표요 징후일 수밖에 없는 이상 한 작품을 억지로 떼내어 고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도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투표로 세분의 시인을 추천해 그 중 다수표 획득 시인으로 논의 대상을 축소했다. 얼추 고른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이들 시인의 작품 중에서 괄목할 만큼 솟아있는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그런 가운데 다시 우리는 논의를 거듭한 후 투표를 통해 이의없이 통일된 의견으로 황동규씨의 '탁족'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일상에서 얼마쯤 떨어진 낱말을 표제로 한 이 작품은 나그네길에서의 휴식 한때를 다룬 이 시인 특유의 여행 시편이다. 작품은 세상과의 두절을 다루면서 문명개화된 우리의 일상이 우리를 얼마나 피곤하게 구속하고 있는가를 상기시켜 준다.
벽지에서 독한 모기에게 물린 자국을 얘기하는 끝자락에서 시인은 의외의 반전과 함께 생소한 경험을 보여준다. 사회적 소음에서 가장 먼 지점에서도 은은히 계속되는 세속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우리는 홀연 인간조건의 한 모서리에 온몸을 열게 된다.
시인의 연공이나 전력은 괄호 속에 집어넣고 골라보자는 당초의 의도에 충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연공이 현저한 시인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결정된 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솜씨의 지속적 연마를 필수로 하는 예술세계에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또 오랜 세원 한길에 정진했다는 것이 비행(非行)이 아닌 이상 경하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말해보는 한편으로 혹 본상이 연공 숭상의 작품상으로 비쳐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우(杞憂)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적공(積功)의 시인들이 두명이나 장외로 밀려가는 내년 제3회부터는 사정이 크게 달라지기를 기대하며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다작주의가 작금의 시단 풍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만 압축과 밀도가 요구되는 짤막한 서정시에서 견고성과 다작주의는 양립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젊은 시인들의 성찰과 분발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어령·유종호·정현종·홍기삼·김주연
[수상소감] "그 분 詩 접하고서 간절함 뜻 깨달아"
1980년대 초 2~3년을 빼고 수십 년 동안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세배를 다닌 분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게 되어 특히 기쁩니다. (높임말은 생략하겠습니다.) 그 분은 우리 시로 볼 때 가장 큰 광원(光源)이었고, 내 개인으로 볼 때는 가장 큰 영향을 준 시인이었습니다. 책이 귀한 때라 그랬겠지만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시인들은 그분이 편찬한 『작고 시인선』을 읽으며 시를 시작했고, 곧이어 그분의 시집들을 구해 읽으며 시의 맛을 익혔습니다. 50년 가까이 먼 옛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이룩한 것은 삶이 묻어 있는 토속어가 주로 관념어인 문화어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말살에 직면했던 민족어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데 기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의 문제입니다. 그분의 시를 읽으면 많은 작품에서 진정성의 체취인 간절함을 읽게 됩니다. 그동안 몇 번인가 나는 쓰고 있는 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험을 했고 그때마다 아, 내가 간절함을 잃고 있구나 하고 방향 조정을 하곤 했습니다.
컬러풀한 그 분은 이따금 자신을 '신선'이라고 불렀지만 시 작품에서 그런 적은 없습니다. 자신의 시 속의 그분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움과 인간다움에 감탄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즈음 이따금 만나게 되는 나르시시즘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초월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빛나는 '인간의 시인'으로 남게 된 이유이고, 그것은 다음 시인들에게 시의 본류가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토속어와 '신라 정신 탐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고대(古代)' 시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그분이 처음에 서구의 모더니즘에 침잠했다가 자신의 길을 개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궤적은 김수영·김춘수들이 걸은 길이기도 하고, 내가 걸은 길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궤적이 오늘날 우리 시가 자신만의 길을 걸으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근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이 할애하는 좁은 자리에 실어야 하기 때문에 수상작으로 뽑히지 못한 것 같으나 지난 일 년간에 쓴 긴 시들 '젊은 날의 결' '적막한 새소리'가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시입니다. '젊은 날의 결'에서는 현재의 시선과 과거의 시선이 자연스레 섞이게 하여 삶의 얼개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려 했고, '적막한 새소리'에서는 우리 삶의 성스러움의 원천이 되는 불타와 예수가 도그마가 없어진 시간 속에서 대화를 나누게 함으로써 지금 우리 삶에서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공간을 마련하려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함은 물론 새로운 시도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 소감 첫머리에서 나는 80년대 초 2~3년을 빼고 매년 세배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분이 당시 집정자를 찬양하고 그의 도움으로 문학잡지를 장만하던 때였습니다. 왜정 때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발언을 하고 덕을 보는 처신에 대해 당시 세배를 같이 다니던 비평가 한명과 함께 나는 세배를 안 가는 무언의 시위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배 안 가는 동안 나는 나를 감동시켜 시를 알게 한 그분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감동의 핵심이 과연 무엇인가를 헤아려보고, 다시 말해 그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시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서, 그분의 윤리가 토속적 윤리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분의 시가 간절하고 황홀하게 피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결국 그분의 몸은 순진한 토속 윤리와 성숙한 시의 황홀이 함께 파도에 시달린 약하고 '비극적인' 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나는 비판적인 자세를 잃지 않은 채 다시 세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삶이 문제가 있으므로 시가 모두 형편없다든가 시가 좋으니 다른 일은 없던 것으로 하자와 같은 이분법은 둘 다 너무 단순한 태도이고, 논의는 계속 평행선을 그을 것입니다.
물론 나의 선택을 양시양비론이라고 힐책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좋든 나쁘든 내가 실존적 고통 속에서 접근한 길입니다. 그분의 시에서 감동과 황홀을 일단 느껴본 사람은 이분법에 빠지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그 감동에 실존적인 접근을 해야 바람직할 것입니다. 고통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들이 모여 전보다 더 성숙되고 속이 깊은 민족과 문화를 만들 것입니다.
한편의 작품을 골라내는 일의 고충과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토론은 시작되었다. 시적 수월성에 대한 개념과 취향이 얼마쯤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 가운데서 한 편을 골라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온 삶과 우주가 감응하는 것이 詩"
"내가 늘 세배 다니던 분의 상을 받게돼 즐겁습니다. 미당처럼 우리 시를 민족 전체가 깊이 다가갈 수 있게 한 시인도 드뭅니다. 미당 시를 읽고 감동받은 사람들은 그 감동을 진솔하게, 실존적으로 전해야합니다. 물론 그의 친일·어용 시비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관악산 자락 서울대 교정에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시 '탁족(濯足)'으로 미당 문학상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정년을 1년도 채 안남긴 노교수 황동규(黃東奎·64)시인이 어린애처럼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1958년 미당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와 이제 그의 이름으로 제정된 최고 권위의 시문학상을 받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황씨는 세상만사에 언제나 온몸으로 감응할 준비가 돼 있고 그 감응이 정제된 것이 그의 시다.
"가을이 머릿속의 생각으로 부터옵니까, 피부의 감촉으로부터 옵니까? 어느 날 문득 서늘한 감촉으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온 삶과 우주 속의 가을과 감응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형상화해 너와 내가 즐겁게, 축축하게 소통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아니라 이렇게 온몸으로 쓰기에 시는 다른 어떤 학문이나 종교나 예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고 나아가 우위에 놓일 수 있다. 머리로 시를 쓴다면 어떻게 다른 학문에 시가 당해낼 수 있겠느냐고 황씨는 반문한다.
황씨의 이 말은 요즘 머리로만 시를 쓰는 시인들에 대한 경계로도 들린다. 또 시를 정의니 사회니 하며 무엇을 위한 도구로만 보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도 들린다.
황씨는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시를 쓰기 위해 항상 여행을 떠난다. '면벽(面壁)'하며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면산천(面山川)'하며 온몸으로 시를 얻기 위해 자연관찰 학습 떠나는 모범생 같이 여행을 한다. 황씨의 이런 '온몸으로 시 쓰기'는 그의 시를 항상 어디로 튈지 모르게, 살아 출렁이게 한다.
그래서 그의 시 진폭은 크고 생생하다. 수백만 명의 가슴을 첫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촉촉히 적신 '즐거운 편지'에서부터 십 수년간 죽음과 소멸까지도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사투한 '풍장'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아내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삶만큼 황씨의 시의 스펙트럼은 넓다.
"물론 시쓰기보다 여행이 좋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즐거운 사물들과 생각들을 형상화시킨 것이 제 시입니다. 같이 여행을 다니던 친구들이 저보다 더 빨리 늙었는지 떠나길 꺼려하니 저 또한 여행 횟수가 줄어 걱정입니다." 거의 매주 떠나던 여행의 횟수가 부쩍 줄어들어 걱정이라는 황씨의 시 중 여행지의 풍물을 읊은 여행시는 없다. 그에게 여행은 삶의 속내를 생생히 만나고 형상화하기 위한 시쓰기 그 자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인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아예 시를 접어버린 '폐업 시인'이 있는가 하면 시를 썼다 하면 그 시가 또 그 시인 '관성파 시인'들이 있다. 그 반대편에 새롭게, 다르게 시를 쓰며 한 궤적을 그려나가 일가를 이루고 있는 '큰시인'들이 있다. 그 큰 시인들의 시를 보면 매양 새로우면서도 앞서 쓴 시들의 깊이가 층층이 쌓인 '내공(內功)'이 그대로 느껴진다. 지금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일가를 이뤄가고 있는 큰시인 중 한 명이 황씨다.
"늦가을 저녁/산들이 긴 그림자를 거두어들일 때/검불 몇 날리는 바람 속에/목소리 막 지우기 시작하는/적막한 새소리.//불타가 말했다/'저 소리를 듣다보면/세상 온갖 풀과 인연이 마르고/다리 위를 건너기보다는/물 위를 건너고 싶어진다.'/원효가 물었다./'물이라도 건넌다면 그 또한 다리가 아니겠습니까?'/면벽과 면산천의 차이지.'"
82년부터 95년까지 연작시 '풍장'을 완성하고 나서 황씨는 요즘 위 시 '적막한 새소리'의 일부에서와 같은 전혀 새로운 시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예수·석가·원효·니체 등 옛 성인·현자를 내세워 인간성과 세계의 가장 깊숙한 본질을 파고들고 있다. 그런 황씨의 시에선 우주 시원(始源)의 서곡 같은 새소리가 낮게 들리고 존재의 그림자 같은 이미지가 드러난다.
불타와 예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의미도 종교적이 아니라 깨달은 자, 우주의 속내를 바라보는 견자(見者)의 말이고 황씨가 온몸으로 시 쓰며 살아낸 삶의 뜻이다. 종교를, 우주의 속내를 지극히 인간적으로,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한국시의 장엄한 서곡이 황씨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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