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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 이시영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일 오전 530,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강로 2가 재개발 지역의 철거 예정 5층 상가 건물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 등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중인 세입자 철거민 50여명도 경찰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최후의 자위책으로 화염병과 염산병 그리고 시너 60여통을 옥상에 확보했다. 65, 경찰이 건물 1층으로 진입을 시도하자 곧바로 화염병이 투척되었다. 610, 살수차가 건물 옥상을 향해 거센 물대포를 쏘았다. 경찰은 쥐처럼 물에 흠뻑 젖은 시민을 중요 범죄자나 테러범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645, 경찰특공대원 13명이 기중기로 끌어올려진 컨테이너를 타고 옥상에 투입되었다. 이때 컨테이너가 망루에 거세게 부딪쳤고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물대포를 갈랐다. 710, 망루에서 첫 화재가 발생했다. 720, 특공대원 10명이 추가로 옥상에 투입되었다. 726, 특공대원들이 망루 1단에 진입하자 농성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 격렬히 저항했고 이때 내부에서 벌건 불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으며 큰 폭발음과 함께 망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물대포로 인해 옥상 바닥엔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물이 흥건했고 그 위를 가벼운 시너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때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 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날의 투입 작전은 경찰 한명을 포함, 여섯 구의 숯처럼 까맣게 탄 시신을 망루 안에 남긴 채 끝났으나 애초에 경찰은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철거민 또한 그들을 전혀 자신의 경찰로 여기지 않았다.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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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문학상운영위원회는 11일 제1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자로 이시영(사진)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

 

심사위원회(위원장 신경림)"이시영 시의 비범성은 언어의 밀도가 여백에 의해 더욱 꽉 조여진 듯 느껴지는 데서 두드러진다"면서 "서정시가 갖는 본연의 정서와 미감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떠올려 우리 시대의 진실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점을 높이 샀다"고 평했다.

 

박재삼문학상과 함께 제정된 제1회 박재삼사천문학상 수상자로는 김륭 시인이 선정됐다.

 

이 상은 지난 한 해 동안 경남지역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등단 10년 미만 시인에게 주는 작품상이다.

 

박재삼문학상은 경남 사천 출신 시인 박재삼(1933~1997)의 문학정신을 기려 제정됐으며 상금 1천만 원과 상패를 시상한다. 박재삼사천문학상은 상금 500만 원과 상패를 준다.

 

시상식은 박재삼문학제 기간인 69일 경남 사천시 서금동 소재 노산공원 내 박재삼문학관에서 열린다.

 

 

 

 

박재삼 문학상 2012 제1회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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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사천시와 지역문인들이 중심이 돼 제정한 '1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작품들을 모았다. 영예의 수상자는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의 이시영 시인이 차지했으며, 강은교·이홍섭·조용미 시인 등이 우수 후보작에 이름을 올렸다. 함께 제정된 '박재삼사천문학상'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등을 펴낸 진주 출신의 김륭 시인이 수상했다.

 

사천에서 태어난 박재삼(1933~1997) 시인은 삶의 체험과 감정의 절제를 자연과 깊이 있는 교감을 통해 표현해 한국 문단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집에는 이시영 시인의 수상 시집 대표작 8편 등이 담겼다. 문학평론가 류신은 이시영 작품론을 통해 "그의 시세계는 여덟 모로 엷게 각이 지면서 맵시 있게 마무리된 북악산 팔각정의 단아한 지붕을 연상시킨다"며 위트, 인간미, 멜랑콜리 등을 그 여덟 개의 꼭짓점으로 들었다. 200, 실천문학,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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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호수 / 이시영

 

 

호수

 

갈매기들이 한강까지 날아와 쉰 적이 있다.

여기가 바다인 줄, 바다의 큰 호수인 줄 알고.

 

 

목련나무가 한겨울에 솜털 폭풍을 달았다

여차하면 하늘을 향해 발사하겠다는 듯이

 

8.15

 

기념식에서 돌아온 독립유공자 유족이 올해도 어김없이 비밀천막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조국의 하늘은 저리 푸르건만

 

아침

 

너는 왜 여기까지 날아와 새가 되었니?

동몽골 고원의 푸른 草地에 내려앉아 아침 부리를 닦고 있는 작은 참새여

 

경찰은 물러가라!

 

옛날 동숭동 서울 문리대 시절, 교련반대 시위로 교문을 사이에 두고 학생과 경찰이 지루하게 장기 대치중일 때였다.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학생 하나가 대열에서 뛰쳐나오더니 맨 앞의 핸드마이크를 빼앗아 쥐고 경찰을 향해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놀란 경찰이 후다닥 방패를 챙겨들고 일단 진격 자세를 취하자 핸드마이크가 다시 한 번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만약 안 물러가면, 만약 안 물러가면 안 물러가는 걸로 간주하겠다!” 그래서 경찰도 와르르 웃고 학생들도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었다는데 그 학생의 이름은 뒷날의 유명한 소리꾼인 임진택이었다.

 

즈가버지

 

전라도 여인들은 남편을 부를 때 꼭 즈가버지라고 했다. 즈그(that) 아버지라는, 자식을 매개로 한 일종의 간접호칭인 셈인데 수많은 즈가버지들은 또 즈거매들의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들어 회관 같은 데 한꾸네 모여 있다가도 즈가버지 여기 짬 보시오 이하면 왜 그려?” 하면서 그 중의 한 사내가 진짜 고개를 쏘옥 내밀고 나오는 것이었다.

 

취미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남산 중앙정보부, 그곳에 들어가 신원진술서 취미란에 식사라고 썼다가 치도곤을 당한 유쾌한 학생이 있었다. “뭐 이 새끼 취미가 식사라고? 이 새끼 이거 순 유물론자 아냐?” 그 일로 그는 조사도 받기 전에 밤새도록 수사관 두 명에게 돌아가며 맞았다는데, 가난이 원죄이던 시절 그는 런닝구 바람에 책을 끼고 신당동에서 동숭동까지 걸어 다닌 강골의 고학생이었다.

 

베스트셀러 시인들을 위하여

 

누구나 다 한때는 순결한 영혼들이었다. 독자들이 그 영혼에 입 맞추자 그들은 배부른 돼지들이 되어 부끄러움도 잊고 제 분홍 머리들을 서점의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채 호호 웃고 있으니 우리가 이제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바로 저 상업의 노예들인지도 모른다.

 

* ‘호호 웃는 돼지머리이미지는 이성복의 시집 , 입이 없는 것들139쪽에서 빌려왔다.

 

 

 

바다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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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제6회 백석문학상에 이시영 시인의 시집 <바다호수>(문학동네)가 선정되었다. 이 상은 창비사가 시인 백석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 주관하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수상작이 개인의 난숙한 체험이 폭발하듯 응집된 시집으로, 정밀한 관찰력에 온기어린 서정성이 결합하여 개인과 역사가 절묘하게 조우하는 장면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시의 본령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상금은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1124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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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1 / 이시영

- 백야

 

 

키가 훌러덩 크고 웃을 때면 양볼에 깊이 보조개가 패이는

작은집 형수가 나는 좋았다

시집온 지 며칠도 안 돼 웃냇가 밭에 나왔다가

하교길 수박서리하다 붙들린 우리 패거리 중에서 나를 찾아내

"데름, 그러믄 안 되는 것이라우" 할 때에도

수줍은 듯 불 밝힌 두 볼에 피어나던 보조개꽃 무늬

, 웃냇가 웃냇가

방아다리 지나 쑥대풀 우거지고 미루나무숲 바람에 춤추는 곳

사래 긴 밭에 수많은 형수들이 엎드려

하루종일 밭고랑 너머로 남쪽 나라 십자성 부르는 곳

저녁에 소몰이꾼 우리들이 멱감는 냇가로 호미 씻으러 내려와서는

"데름 너무 짚은 곳에는 들어가지 마씨요 이" 할 적에도

왈칵 풍기는 형수의 땀 냄새가 나는 좋았다

홀시아버지 밑 형제 많은 집으로 시집와 남정네마저 전쟁터에 보내놓고

새벽논에 물대기 식전밭에 고추따기 아침볕에 보리널기

쏘내기 밭에서 소고삐 몰아 쥐고 송아지 찾기로 여름 내내

등적삼에 벼이슬 걷힐 날 없으면서도

저녁이면 선선한 모깃불을 피워 놓고 콩국수 말아

와상 가득 흥겨운 집안 잔치를 벌일 줄도 알았던 형수,

모깃불 매캐하게 사위어가고 하나 둘 어린 형제들 잠들어갈

무렵이면

내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데름, 데름은 꼭 우리 집안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쓰우."

"훌륭한 사람이 워떤 사람인디라우?"

"장군 같은 것, 그 뭣이라더라 밥풀 여럿 단 쏘위 같은 것...."

그러면 마당 한구석에서 다가온 어둠이 빤한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이 쏟아질 것만 같은 내 눈에

갑자기 별빛 한 무더기가 쏟아져내렸다

환한 밤이었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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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8회 정지용문학상에 시인 이시영48씨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정지용문학상은 기존 문단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이는 문인에게 수여해오고 있는데 이시영 씨는 올해 2월 발표된 마음의 고향 6'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작인 마음의 고향 6'은 산업화의 후유증 때문에 잃어버린 고향을 다룬 작품으로 시적 형상성과 서정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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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시인의 시집 <은빛호각>을 읽으면서 내내 스미던 느낌은 바로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경험들을 한 편의 시로 그림처럼 펼쳐 보이는 시인의 솜씨가 유유하다. 시란 모름지기 이렇게 그림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흑백으로 펼쳐지는 이 그림들 속에는 참으로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시인의 묵은 기억들이 은빛호각소리처럼 길고도 선명하게 웃고 있다.

 

그의 시에는 사람을 향한 애정만큼의 꽃송이들이 봉긋봉긋 피어있다. 소설집 한권을 읽고 난 기분이 들만큼 수런수런, 수많은 얘깃거리가 강물처럼 흘러간다. 어쩌면 칼날 같았음 직한 일들도, 가슴이 에였음직한 일들도....... 그 힘겨웠을 기억들마저도 이렇게 따뜻하게 풀어내다니, 기억이 추억이 되면 이토록 따스해지는 것인가. 시인에게는 저세상마저도 편안하고 따스한 자연으로 보여 지는 가 보다.

 

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차부(車部)에서였다. 책상 위의 잉크병을 엎질러 머리를 짧게 올려친 젊은 매표원한테 거친 큰소리로 야단을 맞고 있었는데 누가 곰 같은 큰손으로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짚었다. 아버지였다. <차부에서> 전문

 

새벽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 추탕집 펄펄 끓는 가마 곁에서 플라스틱 수조 얕은 물을 튀기며 미꾸라지들이 아주 순하게 놀고 있다. <> 전문

 

내 영혼은 오늘도 꽁무니에 반딧불이를 켜고 시골집으로 갔다가 밤새워 맑은 이슬이 되어 토란잎 위를 구르다가 햇볕 쨍쨍한 날 깜장고무신을 타고 신나게 봇도랑을 따라 흐르다가 이제는 의젓한 중학생이 되어 기나긴 목화밭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출근했다가 아몬드에서 한잔하다가 밤늦은 시간 가로수 긴 그림자를 넘어 언덕길을 오르다가 다시 출근했다가 이번에는 본 적 없는 어느 광막한 호숫가에 이르러 반딧불이도 끄고 다소간의 눈물 흘리다. <잠들기 전에> 전문

 

삶이란 -새벽녘 추어탕집 펄펄 끓는 가마 곁에서도 물을 튀기며 순하게 놀고 있는 미꾸라지들처럼-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죽음과 삶,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그런 것들이 한 데 섞여 둥둥 떠다니는 가운데, 아무것도 미리 알지 못한 채, 그저 불어가고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길모퉁이에선가 그 떠다니는 것들과 하나씩 입 맞추며 가는 그런 것이 삶이리라. 깊고 추운 겨울날, 은빛호각 한 개 품에 앉고 뜨신 방에 엎드려 펼쳐 보기를 권한다.

 

 

 

 

은빛 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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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존경하는 김종길 선생은 최근 어느 잡지(시와정신2004년 봄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른바 시격(詩格)에 관한 격의 이론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시비평에 있어서보다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간혹 격의 높낮음을 이야기할 뿐이라며 옛날의 한시비평에서도 격의 고하, 즉 시적 가치의 위계는 있었다중국 역대의 격이론을 살펴보면 예쁘거나 기이하거나 강렬한 것보다도 유원(幽遠)하거나 고고(高古)하거나 담박(澹泊)한 것을 격이 높은 것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 조지훈 선생의 시야말로 바로 여기에 딱 들어맞는, 우리 근대시사에서는 몇 안 되는 특이한 전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훈 선생의 모든 시가 다 그렇다고 단언할 수 없겠습니다만, 우리 시 읽기에 눈 밝은 신경림, 정희성 시인이 공편한한국현대시선,Ⅱ》(창작과비평사, 1985)에 수록된 지훈 선생의승무(僧舞),고사 1(古寺),낙화(落花)는 김종길 선생이 말씀하시는바 시격의 위의(威儀)를 두루 갖춘 기품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적 정서 또한 유원하고 고고하며 담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자유시임에도 마치 고조(古調)의 정형을 연상하듯 2행씩 끊어 쳐서 웅혼하고 유장한 가락을 형성하고 있는 이 시를 청년 시절부터 수없이 반복해서 읽어왔지만 내면을 스치는 어떤 서늘한 기상과 호소하듯 절제된 애수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전혀 낡지 않은 채 제 가슴을 촉촉이 적셔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후배 시비평가는 저의 이런 느낌을 실상 모든 시는 그것이 작품이 되는 순간 이미 시계의 시간에서 탈출해” “과거로 밀려서 사라지지 않는영원의 시간을 산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훈 선생의 작품 중 이렇듯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또 하나의 예를 들라면 저는 선뜻고사 1을 들고 싶습니다.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西域) 만릿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40여 년 전에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제 마음은 제2연의 고오운에서 크게 한번 출렁거렸는데, 오늘 그 구절을 반복해 읽어도 제 내면의 리듬은 바로 여기에서 다시 한번 출렁! 합니다.

 

세상에는 상도 많고, 좀 외람되이 말씀드리자면 아예 없었으면 하는 상도 많지만 이렇듯 고매한 인품과 기풍이 서린 지훈상을 받는 제 마음 또한 조찰히기쁩니다. 65년 전인 1939년에 지훈 선생의 시를 세상에 처음 내보낸 지용 선생의 어느 시 구절을 빌려 표현하자면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를 한 느낌입니다. 그토록 두껍고 완고한 동토(凍土)에도 이제 막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여기 오신 모든 분들께도 새로운 기운이 가득 생동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상을 제정하고 운영하시느라 애쓰시는 분들, 심사하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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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조지훈 선생의 고결한 인품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지훈상의 심사에 임하면서 우리는 새삼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길지 않은 한평생을 살면서도조지훈 전집에서 볼 수 있듯이 청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예술적 성취와 호한한 학문적 탐구, 그리고 준열한 지사정신을 통해 이 땅 정신사와 예술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20034월부터 20043월까지 출간된 주요시집 100여 권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것은 다음 세 권이었다.

 

먼저 조창환의수도원 가는 길(문학과지성사)은 자연에 대한 그윽한 명상이 종교적 영성(靈性)을 느끼게 할만큼 맑고 깊은 것이어서 관심을 환기하였다. 그러나 지훈시에서 볼 수 있는 정신의 준열함이나 치열성이 다소 약한 것이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김영석의모든 돌은 한때 새였다(시와시학사)는 정련된 시어와 정신의 지향성이 매우 높은 성취를 보여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잘 씌어진 시들이 흔히 그렇듯이 굵고 깊은 울림을 던져주는 데는 다소 아쉬운 느낌을 준 것이 사실이다.

 

수상자로 선정된 이시영의은빛 호각(창비)은 시인 특유의 날카로운 사회의식과 섬세한 예술의식이 탄력있게 조화를 이룸으로써 아름다운 정신의 울림을 던져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도 이시영 시인이 등단 이래 견지해온 지사적 기품과 성정이 서정성의 내면을 관통하고 있어서 지훈정신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되었기에 심사위원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앞의 두 분도 지훈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과 업적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어차피 수상자는 한 사람이어야 하기에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유보되었다. 앞으로도 지훈상이 더 훌륭한 분들에게 주어져서 해가 갈수록 더욱 빛나는 큰 상으로 자리잡아가기를 희망한다.

 

심사위원 김재홍(경희대 국문과 교수)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홍기삼(동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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