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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1 / 이시영

- 백야

 

 

키가 훌러덩 크고 웃을 때면 양볼에 깊이 보조개가 패이는

작은집 형수가 나는 좋았다

시집온 지 며칠도 안 돼 웃냇가 밭에 나왔다가

하교길 수박서리하다 붙들린 우리 패거리 중에서 나를 찾아내

"데름, 그러믄 안 되는 것이라우" 할 때에도

수줍은 듯 불 밝힌 두 볼에 피어나던 보조개꽃 무늬

, 웃냇가 웃냇가

방아다리 지나 쑥대풀 우거지고 미루나무숲 바람에 춤추는 곳

사래 긴 밭에 수많은 형수들이 엎드려

하루종일 밭고랑 너머로 남쪽 나라 십자성 부르는 곳

저녁에 소몰이꾼 우리들이 멱감는 냇가로 호미 씻으러 내려와서는

"데름 너무 짚은 곳에는 들어가지 마씨요 이" 할 적에도

왈칵 풍기는 형수의 땀 냄새가 나는 좋았다

홀시아버지 밑 형제 많은 집으로 시집와 남정네마저 전쟁터에 보내놓고

새벽논에 물대기 식전밭에 고추따기 아침볕에 보리널기

쏘내기 밭에서 소고삐 몰아 쥐고 송아지 찾기로 여름 내내

등적삼에 벼이슬 걷힐 날 없으면서도

저녁이면 선선한 모깃불을 피워 놓고 콩국수 말아

와상 가득 흥겨운 집안 잔치를 벌일 줄도 알았던 형수,

모깃불 매캐하게 사위어가고 하나 둘 어린 형제들 잠들어갈

무렵이면

내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데름, 데름은 꼭 우리 집안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쓰우."

"훌륭한 사람이 워떤 사람인디라우?"

"장군 같은 것, 그 뭣이라더라 밥풀 여럿 단 쏘위 같은 것...."

그러면 마당 한구석에서 다가온 어둠이 빤한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이 쏟아질 것만 같은 내 눈에

갑자기 별빛 한 무더기가 쏟아져내렸다

환한 밤이었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nefing.com

 

 

기존 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8회 정지용문학상에 시인 이시영48씨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정지용문학상은 기존 문단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이는 문인에게 수여해오고 있는데 이시영 씨는 올해 2월 발표된 마음의 고향 6'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작인 마음의 고향 6'은 산업화의 후유증 때문에 잃어버린 고향을 다룬 작품으로 시적 형상성과 서정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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