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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질의 사이학 / 고영

 

 

서울에서 방 한 칸의 위대함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월세 계약서를 앞에 놓고 주인은 거듭 다짐을 받는다

너무 시끄럽게 하면…… 딸꾹! 전기세는…… 딸꾹!

사나운 사냥개 어르고 달래듯

물 한 컵 단숨에 들이마시고 또 딸꾹!

숨을 한껏 빨아들인 주인의 입이 잠시 침묵하는 사이

불룩해진 아랫배가 딸꾹, 유세를 떤다

근엄한 입에서 딸꾹질이 한번 포효를 할 때마다

달동네 방 한 칸이 자꾸 산으로 올라간다

딸꾹질이 맹위를 떨칠수록 주인의 다짐도 조금씩 수위를 높여간다

서둘러 도장을 찍고 싶은 마음이

딸꾹질의 훈시에 맞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 쓰고 딸꾹! 서대문구 쓰고 딸꾹! 번지 쓰고 딸꾹!

사내가 주인인지 딸꾹질이 주인인지

계약서 한 장 작성하는 데 한 시간이 딸꾹,

여차하면 어렵게 찍은 도장마저 딸꾹질이 업어 갈 판인데 또 딸꾹,

딸꾹질의 폭력 앞에서 나만 점점 왜소해진다

아직 주지시키지 못한 다짐이라도 남아 있는 듯

딸꾹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인은 천천히 계약서를 훑어보고 있다

보증금을 건네는 손이 나도 모르게 딸꾹질을 한다

 

 

 

딸꾹질의 사이학

 

nefing.com

 

 

18회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자로 고영(50) 시인이 선정됐다.

 

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와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위원장 정호승)242016년 천상병시 문학상 18번째 수상자로 시인 고영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딸꾹질의 사이학'(실천문학사)이다.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는 "고영 시인은 시는 인생(人生)이다라는 명제에 부합하는 서정시 정신을 적절한 언어와 빼어난 은유적 사유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운영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2월중 1차 예심을 거쳐 10권의 후보작을 정했다. 고영 시인의 수상작을 비롯해 안주철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 10권의 후보작들이 선정됐다.

 

이번달에는 2차 심층 독회(讀會)를 열고 후보를 세 권 시집으로 압축했고 그 후 최종심에서 '딸꾹질의 사이학'을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고영 시인은 1966년 안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2003'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딸꾹질의 사이학'과 에세이집으로는 '분명 내 것이었으나 내 것이 아니었던' 등을 펴냈다. '질마재해오름문학상''고양행주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시인동네' 발행인을 맡고 있다.

 

18회 천상병시 문학상 시상식은 13회 천상병예술제기간인 다음달 23일 오후 3시 의정부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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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만세 / 박정대

 

 

희미하게 그대의 얼굴이 보일 정도면 된다

천창을 통해 별빛들이 쏟아지면 된다

선반에 쌓여 있는 약간의 먼지는

음악이라고 생각하자

술을 마시는 날들을 위해

뜨거운 국물을 끓여낼 수 있으면 된다

아무리 담배를 피워도 금방 공기가 맑아지는

히말라야 근처면 된다

다락방 위에는 청색 하늘

다락방 아래엔 끝없는 대지

다락방 곁으론 날마다

그대 맑은 숨결 같은 바람이 불면 된다.

사랑하는 그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면 된다

당나귀, 굳이 차마고도를 지나오지 않았더라도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당나귀에 실은 물품이 당도하면 된다

당나귀, 폭설에 길이 끊겨

설령 한 달을 오지 못한다 해도

삐걱거리는 계단이 있고

계단 위엔 다락방 카페가 있고

다락방 카페엔 의자와 탁자가 있으면 된다

한 달 내내 눈이 내려

세상의 길이란 길들 모조리 막힌다 해도

뭐든지 함께 하고 싶어지는 그대만 있으면 된다

약간의 식량과 술과 담배만 있으면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으면 된다

두툼한 스웨터만 입을 수 있으면 된다

조명은 희미해도 된다

별빛이 쏟아지면 된다

히말라야 근처면 된다

 

 

 

 

체 게바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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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하는 제22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체 게바라 만세'의 박정대 시인이, 소설 부문에 '아들의 아버지'의 소설가 김원일 씨가 각각 선정됐다.

 

평론 부문에서는 '폐허에서 꿈꾸다'의 남진우 명지대 교수, 번역 부문에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불어로 번역한 엘렌 르브렝 씨가 각각 뽑혔다.

 

박정대(49) 시인은 4일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제목을 가진 시집에 누가 상을 줄까' 저 자신도 기대를 안 했다""지금도 전혀 실감이 안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시적 전언의 폭발력으로 최근 시단의 기계적이고 난해한 경향에 대한 의미 있는 반격"이라는 평을 받았다. 박 시인은 "시단의 시들이 옆 사람에게 속삭이듯 내면화되는 것에 대한 제 나름의 불만이라고 할까, 시집 제목만이라도 사회적인 발언을 해보자고 시집 제목을 '체 게바라 만세'로 했는데 막상 시집을 열면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을 이렇게 정하고 제 의도와 상관없이 말이 많을 것 같다는 예상을 했는데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읽히는 것 같았다"면서 "시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힘이 없는데 시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시로 표현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대산문학상 상금은 부문별 5천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6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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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開 / 김지하


부연이 알매 보고
어서 오십시오 하거라
천지가 건곤더러
너는 가라 말아라
아침에 해 돋고
저녁에 달 돋는다

내 몸 안에 캄캄한 허공
새파란 별 뜨듯
붉은 꽃봉오리 살풋 열리듯

아아
'花開!'

 

 

 

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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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권력에 맞서 자유의 증언을 계속해온 양심적인 행동인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다. 아호로 노겸, 노헌(勞軒), 우형(又形), 묘연(妙衍)이 있다. 필명 ‘지하(地下)’가 굳어져 이름처럼 사용되자 ‘지하(芝河)’라 하게 됐다. 1953년 산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중학교에 입학했으나,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사하면서 원주중학교에 편입했다. 1956년 원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중동고등학교를 나와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해 첫 옥고를 치른 이래 ‘오적 필화 사건’, ‘비어(蜚語) 필화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8년간의 투옥, 사형 구형 등의 고초를 겪었다. 1980년대에는 생명운동 환경운동을 펼쳐왔다. 199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이 잇따를 때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라는 제목의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지하는 생명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비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를 돕게 된 결과를 낳아 많은 이들의 비난과 원성을 샀다. 이 일을 계기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직과 회원자격 정지 결정을 당하기도 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 특별상’(1975)을, 국제시인회의로부터 ‘위대한 시인상’(1981)을 받았다. ‘크라이스키인권상’(1981), ‘이산문학상’(1993), ‘정지용문학상’(2002),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공초문학상’(2003), ‘영랑시문학상’(2010) 등을 수상했다.

 

 

 

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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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시상하는 제10회 대산문학상 시부문 수상작으로 김지하(61)씨의 ‘화개’(실천문학사刊)가 7일 선정됐다.

대산문학상은 부문별로 3천만원씩 모두 1억5천만원의 상금을 주는 국내 최대 종합문학상이다. 올해는 소설부문에 김원우(55)씨의 「객수산록」(문학동네刊), 희곡부문에 김명화(36)씨의 「돐날」, 평론부문에 김윤식(66)씨의 「우리 소설과의 대화」(문학동네刊), 번역부문에 이인화 원작소설 「영원한 제국」을 영역한 유영난(48)씨의 「Everlasting Empire」(미국 이스트브리지刊)가 각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는 "「화개」는 민주화운동 후유의 시대의 울적과 긍정을 직설적이고 열정적으로 그러나 단순화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표현해 시와 삶의 내력에 또 하나의 표적을 이뤘다"고 말했다.

「객수산록」은 "문학마저 한없이 가벼운 소비재로 인식되는 ‘문학의 위기’ 시대에 반속정신을 통해 본질의 회복을 지향하는 작가의 외롭고 지난한 투쟁은 우리 문학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고 평가됐다.

이어 「돐날」은 "드라이한 언어와 반어적 유머로 386세대의 도덕적 추락과 인간적 파괴를 적나라하게 도해했다"는 평을, 「우리 소설과의 대화」는 "우리 소설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종횡무진 점검하며 문학사적 맥락과 개인사적 문맥을 함께 열어보이는 대화의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을 각각 들었다.

심사위는 「Everlasting Empire」에 대해 "18세기 조선조의 직제와 문물 등을 뛰어난 영문으로 번역했다"며 후한 점수를 주었다.

시상식은 오는 29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대연회장에서 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겸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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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여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 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은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 때 그 곳에서 뿌리 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 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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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제15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시부문 안상학 시인, 시조부문 이승은 시인이 각각 선정됐다.

 

해남군(박철환 군수)이 주최하고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 열린시학에서 주관하는 고산문학대상은 국문학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문학정신을 잇기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시부문은 안상학 시인의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실천문학사, 2014), 시조부문은 이승은 시인의 <넬라 판타지아>(책만드는집, 2014)가 각각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안상학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애써 꾸민 흔적이 없어 무심히 적어간 산문과 같이 작위적인 교성이나 가성을 거의 쓰지 않지 않지만 무게와 깊은 울림이 예사롭지 않은 드문 시적 배포의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또한 이승은 시인은 일상적 체험을 시적 서정세계로 승화시킨 <넬리 판타지아>의 시편들이야 말로 시적 진정성과 감성이 자아올린 역작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수상자로 선정됐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시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김사인 시인(동덕여대 교수), 조오현(신흥사 회주), 김제현 시인(가람기념사업회 회장)이 참여했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 기간 중인 오는 1017일 오후 3시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며, 상금은 각 1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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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 강형철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老母

옛 기억이 되살아나시는지 밥 안치는 일을 자청하신다

손목 아래로 빚어지는 정겨운 리듬

썩썩 씨스럭, 써-억 써억 썩

바가지가 요란해진다

쏟아지는 수돗물이 시원타며 손등이 웃고

어둑한 집 안의 오후가 환해진다

 

어머니 일흔아홉이니

쌀 씻어 밥 안치는 일은 칠십 년은 됐으리라

짚풀은 부지깽이로 아궁이에 넣어 지피고

한참 후엔 전기밥통에 쌀 씻어 안쳤으리라

 

식구들의 사발에 깨끼밥도 푸고

때로 고봉밥 눌러 펐으리라

떨어지는 밥알은 손으로 주워드시면서

 

“엄니, 다시 시집가도 되겠네, 쌀 씻는 소리 들응게”

“야 좀 봐라, 못 혀는 소리가 없네, 떼-엑!”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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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시부문에 강형철 시인, 시조부문에 김영재 시인이 선정됐다.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는 2014년도 고산문학대상에 시부문 수상시집은 강형철 시인의 ‘환생’(실천문학사, 2013),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김영재 시인의 ‘화답’(책만드는집, 2014)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선고위원으로 시부문에는 정우영 시인, 이민호 시인, 시조부문에는 오종문 시인, 박명숙 시인이 6월과 7월 두 달 동안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출간된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시인, 김준태 시인, 민영 시인, 김제현 시인(가람기념사업회 회장), 박시교 시인이 수고했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행사와 함께 오는 10월 18일 오후 3시 해남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각 부문별 1000만 원이다. 고산문학대상은 지난 2001년에 제정해 8회까지는 학술과 시조 작품 1인에 대해 시상해왔으나 9회부터는 시와 시조 부문으로 확대했다. 또한 수상자는 계간 ≪열린시학≫에 특집으로 소개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상으로 그 위상을 격상시켰다.

계간 ≪열린시학≫ 2014년 가을호는 이들 시인들의 대표작과 연보, 시인론, 작품론 등을 특집으로 꾸며진다.

한편 고산문학대상 수상자인 강형철 시인은 전북 군산 출생으로 1985년 ≪민중시≫ 2집에 「해망동 일기」외 5편의 시를 발표하고, 시집 ‘해망동 일기’(1989), 평론집 ‘시인의 길 사람의 길’(1993)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재 시인은 전남 승주 출신으로 197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도서출판<책만드는집에서 시집을 비롯해 여러 분야의 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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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내밀다 / 맹문재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 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3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사과를 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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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13회 고산문학축전에서 맹문재 시인이 시부문 고산문학대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번 수상시집은 ‘사과를 내밀다’이다.


고산문학대상은 국문학의 비조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잘 우려낸 고산시가의 문학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국내 문학상 가운데 상당한 권위와 명예를 지니고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마친 뒤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공고를 졸업한 맹 시인은 한 때 공장생활을 한 적이 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수상소감에서 맹문재 시인은 “고산문학대상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고산의 시들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오우가’를 비롯한 ‘산중신곡’, ‘어부사시사’를 읽고 이번에 발견한 점은 화자가 움직인다는 것 이었다”고 말했다.

고산은 부단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맹 시인은 “그 움직임이 이치를 벗어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치를 지향하는 바가 분명했지만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고 여유로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고산의 시에는 감정에 의지하지 않고 품위를 지니고, 담백한 시선이었지만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아 고산의 어조는 힘이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이어 맹 시인은 “저는 고산의 시에서 움직임을 배웁니다. 이치를 고민하는 움직임, 새로운 이치를 지향하는 움직임, 물러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움직임, 개인을 넘어서는 움직임, 시비를 가리는데 타협하지 않는 움직임, 이약하지만 큰 움직임...등”이라며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신경림 시인은 심사소감에서 "'사과를 내밀다'의 시들은 사회문제나 노동문제를 남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화 하면서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이 점을 상당부분 극복해 내고 있다"며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시, 말장난으로 시종하는 시가 문학성 혹은 전위성 이라는 미명아래 횡행하는 우리 시단에서 이와 같은 시집은 아주 소중할 수 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해남군이 이끌고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 ‘열린시학’이 함께 주관했으며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조오현 큰스님이 펴낸 ‘적멸을 위하여’가 수상했다. 심사위원은 본상 심사에 김재현(현대시조포럼 회장·박시교(추계예술대 문창과 교수)·신경림(시인)·정희성 시인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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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奇緣 / 이창수

 

 

눈 덮인 무덤에 손자국이 나 있다

지상에서 가장 아득한 높이에

자리 잡은 봉분 위

따뜻한 손가락이 녹고 있을 때

선연한 무엇이 이마에 와 닿는다

저기 무어라 할까

이울어진 목울음으로만 흐르는

애잔한 강바람 소리라고나 할까

산그늘 배웅해주는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라고나 할까

무덤 위의 두 손 맞잡아 들이는

이 마음을 무어라 부를까

 

 

 

 

귓속에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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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시인으로 살아온 지 10년 동안 두 권의 시집을 냈지만 시를 쓰면 쓸수록 시가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그동안 시의 길을 걷는 저에게 한눈팔지 말라는 격려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력과 명성을 가진 선배 시인들이 저에게 박수를 쳐주는 의미를 잊지 않겠습니다. 열심히 시를 쓰는 후배시인에게 따라주는 한 잔의 술을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인이 되고 싶었던 옛날로 돌아가 지금까지 달려온 것처럼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마음이 고달플 때마다 고향집 앞에 흐르는 강을 생각합니다. 불철주야 소리 없이 흐르는 그 강물처럼 천천히 오래도록 시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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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속에 눕히며 / 문동만

 

 

억울한 원혼은 소금 속에 묻는다 하였습니다

소금이 그들의 신이라 하였습니다

 

차가운 손들은 유능할 수 없었고

차가운 손들은 뜨거운 손들을 구할 수 없었고

아직도 물귀신처럼 배를 끌어내립니다

이윤이 신이 된 세상, 흑막은 겹겹입니다

차라리 기도를 버립니다

분노가 나의 신전입니다

침몰의 비명과 침묵이 나의 경전입니다

 

아이 둘은 서로에게 매듭이 되어 승천했습니다

정부가 삭은 새끼줄이나 꼬고 있을 때

새끼줄 업자들에게 목숨을 청부하고 있을 때

죽음은 숫자가 되어 증식했습니다

그대들은 눈물의 시조가 되었고

우리는 눈물의 자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곱 살 오빠가 여섯 살 누이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줄 때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먼저 보내고

아가미도 없이 숨을 마칠 때

아이들보다 겨우 여덟 살 많은 선생님이

물속 교실에 남아 마지막 출석부를 부를 때

죽어서야 부부가 된 애인들은 입맞춤도 없이

 

, 차라리 우리가 물고기였더라면

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고 살아있는 당신들만 뱉어내는

거대한 물고기였더라면

 

침몰입니까? 아니 습격입니다 습격입니다!

우리들의 고요를, 생의 마지막까지 번지던 천진한 웃음을 이윤의 주구들이

분별심 없는 관료들과 전문성 없는 전문가들이

구조할 수 없는 구조대가

선장과 선원과 또 천상에 사는 어떤 선장과

선원들로부터의……습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3층 칸과 4층 칸에

쓰린 바닷물이 살갗을 베는

지옥과 연옥 사이에 갇혀버렸습니다

우리도 갇혀 구조되지 않겠습니다

그대들 가신 곳 천국이 아니라면

우리도 고통의 궁극을 더 살다 가겠습니다

 

누구도 깨주지 않던 유리창 위에 씁니다

아수라의 객실 바닥에 쓰고 씁니다

골절된 손가락으로 짓이겨진 손톱으로

아가미 없는 목구멍으로

오늘의 분통과 심장의 폭동을

죽여서 죽었다고 씁니다

그대들 당도하지 못한 사월의 귀착지

거긴 꽃과 나비가 있는 곳

심해보다 짠 인간과 인간의 눈물이 없는 곳

거악의 썩은 그물들이 걸리지 않는 곳

말갛게 씻은 네 얼굴과 네 얼굴과

엄마아 아빠아 누나아 동생아 선생니임 부르면

부르면 다 있는 곳

 

소금 속에 눕히며

눕혀도 눕혀도 일어나는 그대들

내 새끼 아닌 내 새끼들

피눈물로 만든 내 새끼들

눕히며 품으며 입 맞추며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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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 추천위원들의 추천을 거쳐 심사위원들에게 전달된 작품들의 면면은 충분히 상징적이다. 박영근 시인이 세상과 불화하면서 보여준 시편들의 자리를 그 작품들은 탄탄하게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뚜렷한 경향성이 박영근작품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라고 심사위원들은 동의하였다. 최근의 여러 문학상들이 그 상에 내걸린 이름의 문학적 상징과 무관한 나눠주기식 수여라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은 더 소중하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이미 다른 문학상을 수상한 경우는 제외하기로 하였다. 중복 수상을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심사기준은 박영근이 추구한 시적 완성도이다. 박영근의 그 까다로운 심미안은 이미 작품의 내용-형식 차원을 넘어서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넘어서는 것이지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시의 완성도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집요하고 깊게 추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의 고통을 상식적으로 다루거나 참신한 언어만을 공교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모두 박영근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심사위원들은 생각하였다.

 

이런 기준 아래 박영근작품상으로 결정된 것은 문동만의 소금 속에 눕히며이다. 지난 1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는 세월호의 처참한 비극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문동만의 이 시는 그 비극이 발생하고 모두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을 때 어렵게 써진 작품이다. 경악의 감정 때문에 대상에 대한 미적 거리가 허용되지 않던 시기에 소금 속에 눕히며는 힘겹게 어떤 성취를 보여준다. 세월호는 단순한 침몰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이 저 압도적인 권력으로부터 습격을 당하고 있는 사건이라는 인식을 튼튼히 보여주는 성취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비극에 대해 분노하고 슬픔을 공유하려는 큰 공력이 들어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난경 속에서 이 작품이 도달하고 있는 모든 마음과 정신의 언어를 존중하여 1회 박영근작품상수상작을 결정하였다. 한 가지 밝혀둘 사실은 지금 세월호와 관련한 어떤 행위에 상을 수여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점에 대해 심사위원들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논의가 오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 소금 속에 눕히며는 세월호를 추념하는 시인들의 작품집에 수록된 것이다. 고민을 했고 그러나 결정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결국 함께 작업한 모든 시인들에 대한 평가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함께 작업한 모든 시인들의 힘으로 이 처참한 세월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월 속에서 박영근작품상이 환한 웃음으로 축하될 수 있는 날이 그리하여 언젠가 올 것이다.

 

- 심사위원 나종영, 도종환, 박수연, 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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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비물 / 유종인

 

 

박수소리를 듣는다 그 수도가 박힌 마당은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물의 박수를 쳐준다

꾸지람을 듣고 온 날에도 그늘이 없는 박수소리에

손을 담그고 저녁별을 바라는 일은 늡늡했다

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면

살비듬이 뜬 그 물에 할머니가 발을 닦으셨다

발등의 저승꽃에도 물을 줘야지

그런 발 닦은 물조차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한 번 박수를 부은 물의 기운을

채송화 봉선화 사루비아 눈치 보는 바랭이풀 잡초까지 물너울을 씌워주고도

박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쯤을 남긴

세숫대야 물을 내게 들려 손님을 맞듯 대문을 여신다

뿌리거라, 길이 팍팍해서야 되겠냐

흙꽃*에게도 물을 줘야지

최대한 물의 보자기를 펼치듯 헹가래를 치는 물

마지막 박수는 이렇게 들뜬 흙먼지를 넓게 가라앉히는 일,

수도꼭지가 박수쳐서 보낸 물의 여행은

아직도 할머니 발등을 적시고 유전(流轉)하는 박수소리로

길을 떠나 사루비아 달콤한 핏빛에도 스며뒀으니

실수하고도 박수를 받으면

언젠가 갸륵한 일들로 재장구쳐오는 날도 있으리라

끝없이 마음의 꿀을 물어오는 저 물의 호접(蝴蝶)

어느 근심의 그늘 밑에 두어도 내내 환하다

 

* 흙꽃: 흙먼지의 방언

 

 

 

 

얼굴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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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말의 몸짓과 삶의 율동으로서의 시

 

2018년 제9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2천 편 가까이 모여진 작품 중에서 대상 한 편, 우수상 한 편을 고르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주최하는 쪽에서 그나마 예심과 본심을 구분해 일감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심사하는 일을 그런대로 수월하게 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대상 수상작을 나비물로 선정했다. 선정하는 과정에서, 예상한 것에 비해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작품을 선정하면서, 나는 시()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의 틀을 세워볼 기회를 가졌다. 내가 늘 시니 소설이니 비평이니 하는 생각 속에서 오래 동안 살아 왔어도 오랜 문학적인 체험에 의한 원론을 체계화시켜본 일은 없어서였다.

 

우선 시는 말로 이루어진 것이다. 세상에는 말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 중에서도 수많은 언어 행위의 한 가지가 바로 시인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말이 되지 않는 말이 있다면, 그게 시다.

 

언어학자 촘스키는 언젠가 짧은 예문을 만들어 보았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의 한 예문을 삼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를 통해 만들어본 의미론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본 예문은

 

“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

 

였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색깔 없는 푸른 생각들이 깊이 잠자고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번역 문장을, 무색투명에 가까운 녹색 관념이 극단적으로 잠자코 있다, 라고 수정한다고 해도 의미론적으로 완결되지 않는 듯싶다. 이와 같이, 말이 되지 않는 말이 바로 시의 (혹은, 시적) 언어인 것이다. 촘스키는 말이 되지 않는 말의 예문을 만들다가, 우연히 (혹은, 우연찮게) 한 문장으로 된 시를 창조한 것이다.

 

대상 수상작인 나비물'마당은 박수를 쳐주고, 나는 박수 소리를 듣는다.'라는 말이 되지 아니한 말의 상황에서 시상이 비롯되고 있는 시다. 나는 애최 이 도발적인 언술 상항을 주목했다. 시의 소재가 되고 제목으로 활용된 '나비물'이라는 말도 재미가 있었다. 나비물의 사전적인 의미로는 '옆으로 쫙 퍼지게 끼얹는 물'을 가리킨다. 마치 나비가 날개를 펴는 것처럼 시각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말이다. 말들이 쌓여 있는 창고 속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말도 이제 주인을 만난 셈이다.

 

시인은 자기 나라의 말을 사랑하는 임무를 지닌 사람이다. 우리나라 시인이라면 응당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의 끝을 좇아야 한다. 대상 수상자 나비물에서 너울처럼 큰 물결로 펼치는 과장적인 표현의 '물너울'과 흙먼지의 방언이라고 알려진 '흙꽃'의 대조는 삶의 율동처럼 느껴진다.

 

다시, 시란 무엇인가?

 

시는 말씀 '()' 변의 의미부와 절 '()'의 음성부로 이루어진 자형과 자원을 가진 말이다. 말로 된 것이 시다. ()는 시()로도 읽힌다. 이 말은 다시 두 겹의 뜻으로 쪼개어지기도 하는데, 터전()과 마디()가 바로 그것이다. 마디는 규칙이나 법칙을 말한다. 시는 말로 된 규칙적인 터전(형식)을 지녔다. 청각적인 율동의 반복 재생이 시의 형식이다. (운문)에는 줄글(산문)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구성진 말의 물결 같은 흐름이 있다. 그래서 말의 몸짓이 뚜렷한 시일수록, 언어의 육체성을 부여하는 말짓의 현저한 소산으로 한결 남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수상작인 나비물은 말의 내면적인 몸짓을 가졌고, 또 이것은 삶의 율동이라는 내용을 추스르고 있다. 마당에 물을 뿌리는 일도 비범한 것으로 승화시킨다. 7080과 같은 지나쳐온 삶의 내력이 후락한 풍경화처럼 그려져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무수한 기억들, 숱한 사연들이 소환되고 있거니와, 이 가운데서도 마당에 나비물을 끼얹거나 한 바가지나 한 대야의 물도 유전하거나 한다는 생각에는 우리에게 무언가 '재장구쳐오는'울림과 감동 같은 게 있다.

 

수상자 유종서 씨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올해 한글날을 며칠 앞둔 시상식 날에 면전에서 축하라도 해야 하는데 예정된 한글날 행사 때문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 우수상을 받은 최류빈 씨에게도 앞으로 창작의 건투를 빈다. 이서와 구애영라는 이름으로 된 두 분의 후보자들에게도 아쉬움의 말을 전한다.

 

- 심사위원 송희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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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 이재무

 

 

어항 속 물을

물로 씻어내듯이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지혜를 경청한다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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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시장 오시덕)가 지원하고 풀꽃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이준관)가 주관하는 제2회 풀꽃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됐다.

 

8일 풀꽃문학상운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일 공주문화원에서 이건청(한양대 명예교수), 이숭원(서울여대 교수), 윤효(시인) 3명의 심사위원이 심사한 결과, 본상 부문에는 이재무 시인의 시집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실천문학사), 젊은시인상 부문에는 안현심 시인의 연꽃 무덤(서정시학)이 결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두 수상자를 결정함에 있어 인생과 자연에 대한 아름다우면서도 진정성 있는 시심에 만장일치로 찬사와 지원을 보냈다. 시상식은 오는 16일 오후 2시 공주풀꽃문학관 개관기념식 행사장에서 더불어 열릴 예정이다.

 

한편 이번 풀꽃문학상을 위해 지난달 말까지 공주문화원에 자천타천으로 2014년과 2015년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접수된 시집은 총 66권이었다. 그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려진 시집은 본상 부문 젊은시인상 부문 각각 6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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