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꾹질의 사이학 / 고영
서울에서 방 한 칸의 위대함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월세 계약서를 앞에 놓고 주인은 거듭 다짐을 받는다
너무 시끄럽게 하면…… 딸꾹! 전기세는…… 딸꾹!
사나운 사냥개 어르고 달래듯
물 한 컵 단숨에 들이마시고 또 딸꾹!
숨을 한껏 빨아들인 주인의 입이 잠시 침묵하는 사이
불룩해진 아랫배가 딸꾹, 유세를 떤다
근엄한 입에서 딸꾹질이 한번 포효를 할 때마다
달동네 방 한 칸이 자꾸 산으로 올라간다
딸꾹질이 맹위를 떨칠수록 주인의 다짐도 조금씩 수위를 높여간다
서둘러 도장을 찍고 싶은 마음이
딸꾹질의 훈시에 맞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 쓰고 딸꾹! 서대문구 쓰고 딸꾹! 번지 쓰고 딸꾹!
사내가 주인인지 딸꾹질이 주인인지
계약서 한 장 작성하는 데 한 시간이 딸꾹,
여차하면 어렵게 찍은 도장마저 딸꾹질이 업어 갈 판인데 또 딸꾹,
딸꾹질의 폭력 앞에서 나만 점점 왜소해진다
아직 주지시키지 못한 다짐이라도 남아 있는 듯
딸꾹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인은 천천히 계약서를 훑어보고 있다
보증금을 건네는 손이 나도 모르게 딸꾹질을 한다
제18회 천상병시(詩)문학상 수상자로 고영(50) 시인이 선정됐다.
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와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위원장 정호승)는 24일 2016년 천상병시 문학상 18번째 수상자로 시인 고영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딸꾹질의 사이학'(실천문학사)이다.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는 "고영 시인은 ‘시는 인생(人生)이다’라는 명제에 부합하는 서정시 정신을 적절한 언어와 빼어난 은유적 사유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운영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2월중 1차 예심을 거쳐 10권의 후보작을 정했다. 고영 시인의 수상작을 비롯해 안주철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 등 10권의 후보작들이 선정됐다.
이번달에는 2차 심층 독회(讀會)를 열고 후보를 세 권 시집으로 압축했고 그 후 최종심에서 '딸꾹질의 사이학'을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고영 시인은 1966년 안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2003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딸꾹질의 사이학'과 에세이집으로는 '분명 내 것이었으나 내 것이 아니었던' 등을 펴냈다. '질마재해오름문학상''고양행주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시인동네' 발행인을 맡고 있다.
제18회 천상병시 문학상 시상식은 ‘제13회 천상병예술제’ 기간인 다음달 23일 오후 3시 의정부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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