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제14회 천상병 시 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정한용(54)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유령들'(민음사)이다.
심사위원회는 "난징 대학살, 아우슈비츠, 이라크 전쟁, 5·18 광주, 9·11 테러, 아프간 전쟁, 아프리카 종족분쟁을 시의 언어로 표현한 정한용의 시는 희생자와 유령들의 존재를 강력히 환기시킨다"며 "고통과 분노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시적 사유의 최전선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제9회 천상병 예술제' 기간인 4월28일 오후 2시 의정부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택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7년부터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했다. 1964년 〈여상〉을 통해 시 〈환상의 밤〉으로 여류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뒤,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발〉, 〈처음 목소리〉가 추천되면서 재등단했다.
신달자의 시는 평이한 어법으로 일상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대상을 관찰하고 있지만, 결코 평이한 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순간적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봉헌문자〉·〈겨울축제〉·〈아가〉·〈황홀한 슬픔의 나라〉·〈백치슬픔〉·〈아버지의 빛〉·〈열애〉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백치애인〉·〈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와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이 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영랑시문학상, 2009년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 신달자(68)씨와 소설가 임철우(57)씨 등이 제19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1일 신 시인의 시집 '종이', 임 작가의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 최치언(41)씨의 희곡 '미친극', 염무웅(70)씨의 평론 '문학과 시대현실'을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번역 부문에서는 하이디 강(72)과 안소현(51)씨가 독일어로 공동 번역한 김훈 원작 '칼의 노래(Schwertgesang)'가 선정됐다.
수상작들은 "깊어지는 인식과 농밀해지는 감각, 진화의 에너지가 독자들을 무척 감동시켰다(종이)" "진정성과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특유의 서정적 서사성을 갖고 있다(이별하는 골짜기)" "연극의 유희성을 과시하는 극작술이 돋보이는 수작(미친극)" "문학이 당면한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포괄적으로 아우르고 있다(문학과 시대현실)"는 평가를 받았다.
종이를 주제로 한 76편의 시를 담은 신 시인은 "7~8년 전 종이가 사라진다는 작은 기사를 보고 손끝이 울려 종이에 대한 연작시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 작가는 "열심히 작품을 발표하지만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하기도 했지만 이 상을 받게 돼 격려가 된다"면서 "내 목소리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적은 수라도 있다면 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금은 소설 부문 5,000만원 시ㆍ희곡ㆍ평론ㆍ번역 각 3,000만원이다. 시ㆍ소설ㆍ희곡 부문 수상작은 번역 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출판된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6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사나운 빗줄기가 유리에 흘러내리고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일 때,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번개가 밤하늘을 찢어 놓을 때,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 놓고 나는 불현듯 그 기이한 문어를 떠올렸다. 발 하나를 떼어내듯 자신의 음경을 어둠 속으로 출발시키는 문어를.
달의 뒷면으로 하강하는 달착륙선처럼, 그것은 목표물을 향해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태고의 흑암이 깔려 있는 바다에서 그 괴상한 음경은 홀로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원하는 것을 찾았을까. 눈 먼 채 개흙에 우글거리는 먹장어들이나 입 큰 아귀, 왕코브라처럼 성질 사나운 곰치의 먹이가 되지 않았을까. 눈앞에 벼락불이 떨어지고 천둥이 치고 사방이 점점 더 캄캄해진다.
1922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니혼 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서 수학했다. 1945년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릴케의 영향을 받아 삶의 비극적 상황과 존재론적 고독을 탐구하였고, 이후 십여년의 암중모색을 거쳐 1960년대 말부터 '무의미시'를 주창, 자기만의 시세계를 구축했다.
82년 명예 문학박사(경북대) 학위를 받았다. 65년 경북대학교 문리대 교수, 78년 이후 영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81년 11대 국회의원(민정), 86년 방송심의위원장, 91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문학상 본상, 한국시인협회상, 자유아세아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등을 받았다.
첫 시집 <구름과 장미> 이후 <늪>, <기>, <연인>,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의자와 계단> 등의 시집과 <처용>, <처용이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등의 시선집, <의미와 무의미>, <시의 표정> 등의 시론집을 냈다.
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회장 김혜숙)는 올해의 통영문학상 수상자로 김춘수 시문학상에 박판식 시인의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김상옥 시조문학상에 박옥위 시조시인의 '조각보 평전', 김용익 소설문학상에 조용호 작가의 '떠다니네'를 선정했다고 26일 공식 발표했다.
2014년 통영문학상 심사는 시 부문에 이기철, 장석주 교수, 시조부문은, 윤금초, 홍성란 시인이 소설 부문은 임철우 작가와 김원일 교수가 맡았다.
시 문학상 수상자 박판식 시인은 1973년 생으로 경남 함양에서 출생해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문학과 경계’ 편집위원과 ‘문학선’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와 광운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그는 2001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해 2003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와 2004년 시집 ‘밤의 피치카토’ 2013년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를 발간했다.
이기철, 장석주 심사위원은 “일곱 권 중에서 네 권을 최종후보로 검토했다. 문성해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 윤성택 시집 ‘감에 관한 사담들’ 이승희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등이다.
네 분 시인들은 각자의 개성을 활짝 꽃 피우고 있어서 누가 수상자가 되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심사자는 고심 끝에 독창성과 개성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 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를 2014년도 김춘수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택했다. 고 평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 당선자 박옥위 시인은 한국 시조문학계의 중견 시인이다. 그녀는 1941년생으로 1967년 무렵 울산문인협회 한국지부회원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현대시조와 ‘시조문학’에 동시(同時)천료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제14회 영랑 시문학상을 수상한 오세영 시인에 대한 시상식이 28일 오후 영랑생가에서 진행됐다. '시작' 대표 이재무 시인, 심사에 참가한 나태주 시인 등 여러 문인들이 축하를 위해 시상식장을 찾았다.
영랑 김윤식의 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2003년 처음 제정된 영랑 시 문학상은 지난해에 발간된 시집 중 등단 15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송수권, 고은, 신달자, 김지하, 장석주 시인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나태주 시인은 “오세영 시인은 순수서정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사회의 속악성과 물질문명의 허위성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 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시작품으로 형상화함으로 시적인 외연을 더욱 드넓게 확대 재생산해온 시인으로 평가되어 왔다.”며 수상 시집 ‘가을 빗소리’에서 시인은 노경에 이른 투명한 눈으로 사물과 인생과 세계를 조망하면서 더욱 넓고 깊은 사유의 시세계를 펼쳐 보이고 이다."고 평가했다.
오세영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자신의 마음과 육신의 고향은 유년 시절을 보낸 전남 장성과 사춘기를 보낸 전북 전주라고 밝히며, “50년 문학 생애를 거치며 많은 상들을 받았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만든 상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태어난 고향에서 주는 상이기도 하고, 고향에서 인정을 해주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자부심이 든다. 많은 상을 받았지만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영랑문학제는 시상식에 이어 전남도립공연단, 뮤지컬배우 김차경 시낭송, 섹소폰 유상호 공연 등 축하공연이 이어졌으며, 오후 7시 30분부터 시문학 축제의 밤이 진행됐다. 문학관장들의 애송시 낭독, 색소폰 공연, 군민 시 낭독 등으로 영랑생가의 밤이 시로 가득 찼다.
전남 강진군ㆍ영랑기념사업회와 계간 '시와시학'이 공동 주관하는 제6회 영랑시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신달자 시인이 우수상 수상자로 임동확 시인이 24일 선정됐다.
수상작 ‘열애’(민음사 펴냄)는 등단한 지 43년째에 신달자 시인이 세상에 내놓은 열한 번째 시집이다. '열애'라는 제목 아래 섬세한 그만의 감성이 잘 드러난 64편의 시를 담았다. 온몸으로 삶을 받아 내는 수행의 자세와 뼛속 상처까지 드러내는 솔직함으로 삶의 실존론적 고뇌를 말해 온 시인의 묵직하고도 뜨거운 고백이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
주최 측은 “열애는 사랑의 고통과 절망을 삶의 그것으로 확대 심화해감으로써 시 정신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임동확 시인이 시집 '매장시편'(민음사 펴냄)으로 우수상에 선정됐다. 이남호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지금까지 광주를 다룬 많은 시와 소설이 발표되었으나 그 대부분은 광주에 대한 부채 의식의 배설에 그치고 있다. 『매장시편』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광주의 정신적 흔적을 질서화하는 데 성공한다. 긴 호흡과 풍성한 비유로 충만한 언어가 광주의 숨결을 되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말했다.
제39회 김수영 문학상에 이기리(26) 작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등단하지 않은 신인 작가가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음사는 16일 "올해에는 191만명이 약 1만편의 시를 응모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여섯 작품 중 내밀한 경험에서 출발한 시편들이 인상적이었던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외 55편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이기리 시인 작품에 대해 "과거의 상처를 망설임 없이 드러내고 마주하는 용기가 돋보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내공과 고유한 정서적 결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줬다" 등의 평을 받았다.
수상자 이기리 작가는 "나의 세계가 언어로서 이 세계를 조금이나마 넓힌 기분이다"라며 "언어가 가진 불온한 속성을 나는 꽤 오래 사랑해야만 할 것 같다. 믿음의 외연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서 대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다. 추상적인 실체를 상상하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참 못나기만 했고 창가의 오후에 기대 쓴 시들엔 나약하고 초조한 화자들이 줄곧 등장했다. 일기장은 나를 미워하기 가장 좋은 공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가 소록소록 내리던 어느 여름밤, 라디오를 들으며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을 입이 닳도록 발음했던 날을 기억한다. 시는 내 삶에 물방울들이 천천히 창 아래로 모이듯 다가왔다. 이후 모든 형태의 글쓰기가 내 속의 아픔들을 조금씩 소분하고 있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기를, 또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여정이 길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이기리 작가는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수상자에는 상금 1000만원이 수여된다. 또 연내 수상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김수영문학상은 1960년대 자유와 저항정신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김수영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후진 양성을 위해 1981년 제정된 시문학상이다.
민음사는 김수영문학상 주관사로, 매년 한 명의 시인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등단하지 않은 예비 시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언하겠습니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말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대화를 거절한다면, 편견의 노예에게, 편견은 편견이 없다는 편견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삿대질하라고!
"나에 대해 묻는 나는 왜 괴물입니까?"
그러니까, 왜, 나는 없는 이름입니까?
나는 낮 없는 밤입니다. 밤을 찢으면 낮입니까?
밤입니까? 뺨입니다.
뺨! 한 뼘 한 뼘, 짜깁기한, 후려치면, 팽그르르, 동서남북 마구마구 도는 나침반 같은, 뺨, 순간, 튀어나온, 핏줄과 핏줄로 뜬, 혓바닥들, 눈동자들,
선을 긋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혓바닥들, 눈동자들, 한뼘한뼘,
믹서기에 넣고 돌리겠습니다.15)
내가 만든
벼락소리
들으며 돌리며
나는 마구마구 피뢰침입니다. 완벽하게 뒤틀린 얼굴입니다.
일부러 부러뜨린 갈비뼈인 나는 빨강을 6이라고 6을 무덤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순진한 척해야 하는 건 질렸다."고. "불순한 척해야 하는 건 질렸다."고.
무덤의 식물성으로 무덤의 독백으로 무덤의 침착함으로 악착같이
"경멸하겠다."고 말하겠습니다. 경멸은 냉혹해서 낭만적이므로
낭만적으로 흉측함으로
관통하고 싶습니다. 피를 뿌리겠습니다!
피의 책
그리하여 벼락에 맞고 맞아 수많은 못이 박혀 있는 200개의 심장이 짜깁기될 수 있었습니다.16) 살아남은 나의 뇌를 피뢰침 삼아, 다시 벼락을 덧대겠습니다.
이번에는 택배사무소입니다. 아직도 남자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여자들을 위해,17) 명명할 수 없는 것을 이름 짓는 이 이름 없는 방식으로18) 짜깁기된 201개의 심장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짜깁기된 피의 책을,19)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방식으로 짜깁기된 피의 책을,20)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벼락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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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은 딸을 출산하다 죽은 아내를 기리는 마음으로 아내의 이름으로 딸의 이름을 지었다. 그런 연유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셸리(Mary Wollstonecraft Godwin Shelley)는 어머니의 이름이면서 딸의 이름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편의상 어머니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로 딸을 메리 셸리(Mary Shelley)로 부른다. 나는 블루스타킹 서클(Bluestocking Circle)의 지원을 받아 쓴 「마구마구 피뢰침」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셸리(들)에게 헌정하고자 한다. 2) 이름 없는 여자들이 있었다. 17세기, 여자에게 교육 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여자의 사회 참여를 장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지만 그것은 엄연히 교양 형성의 문제였다. 여자는 전문 지식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남자의 영역으로 간주했는데, 특히,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은 펜(pen)을 남자의 무기인 페니스(penis)에 비유할 정도로 남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에서 여성 시인 최초로 시집을 출간한 앤 핀치 윈칠시 백작부인(Anne Finch, Countess of Winchilsea)은 여자들이 "바보로 태어났다기보다는 바보로 교육"되었다고 분개하며, "글을 쓰고자 하는 여자는" 남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어떤 미덕으로도 회복될 수 없"으며 "소용없는 어리석음", "주제넘은 잘못"으로 여겨져 "주제넘은 피조물로 간주"당한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1701년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시집 『Spleen』을 출간했으며, 1713년 여자라고 밝힌 후에야 이름을 밝힐 수 있었다. 당시 여자들은 글 쓰는 것을 조심스러워했고, 글을 쓰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익명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남자 이름으로 글을 발표했다. 일레인 쇼왈터(Elaine Showalter)는 당시 여성 작가들이 이중적인 문학 기준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남자 이름을 썼다고 보았다. 독일의 최초 여성 소설가인 조피 폰 라 로슈(Sophie von La Roche)는 1771년 『슈테른하임 아씨 이야기(Geschichte des Fräuleins von Sternheim)』를 출간할 때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문학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 책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빌란트(Wieland)에게 서문을 부탁했다. 빌란트는 서문에 "나의 친구인 그녀는 세상을 위해 글을 쓰거나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생각은 결코 하고 있지 않다."라고, 썼다. 그녀는 『슈테른하임 아씨 이야기』 출간 후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책을 쓰는 것을 이성에 어긋난 죄를 짓는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돌려서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소설가가 되는 것은 너무 따분해서라고. 내가 바르트하우젠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또 딸들을 연달아 수녀원으로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속상해서라고." 시인인 카롤리네 폰 귄더로데(Karoline von Günderode)는 1804년 『Gedichte und Phantasien』을 출간할 때 티안(Tian)이라는 남자 이름을 썼다. 그녀는 일기에 "나는 왜 남자가 되지 못하나!"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이고 살아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크리스타 볼프(Christa Wolf)는 귄더로데의 서간집을 읽고 "저항의 작업"으로 그에 대한 소설을 쓴다.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어디에도 설 땅은 없다(Kein Ort. Nirgends)』에서 귄더로데는 "여자 귄더로데(Die Frau, Günderode)"로 표현되어 있고 남자인 클라이스트는 "한 인간 클라이스트(Einer, Kleist)"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귄더로데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여자 귄더로데"는 남자 이름으로 시를 발표한다. "한 인간 클라이스트"는 "여자 귄더로데"가 시를 쓰는 것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를 쓴다는 이유로 "여자 귄더로데"는 여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 에밀리 브론테(Emily Jane Brontë), 앤 브론테(Anne Brontë) 자매는 각자 커러 벨(Currer Bell), 엘리스 벨(Ellis Bell), 액턴 벨(Acton Bell)이라는 남자 이름으로 1846년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을 출간한다. 1847년 샬럿 브론테는 커러 벨이라는 가명을 유지한 채 『제인 에어(Jane Eyre: An Autobiography)』를 출간했고, 1849년 에밀리 브론테도 엘리스 벨이라는 가명을 유지한 채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출간했다. 샬럿 브론테가 1849년 출간한 『셜리(Shirley:A Tale)』는 기존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름에 대한 인식을 깬 것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인기로 인해 그동안 남자 이름으로 쓰여 왔던 셜리라는 이름이 여자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주다! 지주 셜리 키일다가 나의 스타일이고 나의 직함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나에게 남자의 이름을 주었다. 나는 남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남자다움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본명은 메리 앤 에반스(Mary Anne Evans)이다.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활동 초반 사람들은 그녀를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데이비드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의 『예수의 생애(The Life of Jesus)』를 번역할 당시 폴리안(Polian)이라는 이름을 썼다.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에서는 채프먼을 편집장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그녀는 부편집장으로 있었다. 1860년 출간한 『플로스강의 물방앗간(The Mill on the Floss)』은 그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여자들은 무엇이나 조금씩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적당한 역할이 무엇일까? 의문을 던지는 매기는 라틴 문구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이다."에 관심을 가진다. 여자가 남자와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는 때는 죽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 이름이 없어서 존재를 부정당한 여자들이 있었다. 메리 셸리는 1818년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을 처음 출간했을 때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시인이자 그녀의 남편인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가 서문을 썼는데, 그는 서문에서 소설을 쓴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두 명의 다른 친구들과 나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토대로 각자 이야기를 써보기로 동의했다." 소설을 쓴 메리 셸리와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클레이몽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는 것은 2판에서 메리 셸리가 서문을 쓰면서 밝혀진다. 그녀는 소설을 쓴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 각자가 유령 이야기를 쓰기로 하지.' 바이런 경이 제안했다. 우리 모두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 자리에 네 사람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처럼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였다. 여자는 남자처럼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인간으로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였다. 여성 작가는 괴물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어떤 연구에서는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죽은 인간들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이름 없이 존재하는 괴물이 메리 셸리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인간들의 살과 뼈를 모아 괴물을 만들었듯, 메리 셸리가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받아 『프랑켄슈타인』을 썼다고 보는 것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작가이자 여성운동가인 점이 그런 해석에 밑바탕이 되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자는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하며, 여자의 교육은 독자적으로 기획될 수 없고 남자와의 관계에서 기획되어야 하며,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루소와 계몽주의자들의 의견에 반박해 1792년 ?여성의 권리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출간했는데, 첫 출간 때는 이름을 밝히지 못했고, 2판에서 이름을 밝힐 수 있었다. 4) 메리 셸리가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에 등장하는 인간을 빌려 『프랑켄슈타인』을 썼으나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괴물을 탄생시켰듯 나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을 빌려 「마구마구 피뢰침」을 썼으나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괴물을 때때로 악마라고 부르는 것 역시 그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러나 일부분 그 괴물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5) 나는 혼자서 벼락을 맞으러 다닌다.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이 모여서 벼락을 맞으러 다니는 모임이 있는데 그중 가장 알려진 모임은 《아다드》이다. 《아다드》에서는 벼락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을 "공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고 표현한다. (김영하, 「피뢰침」,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지성사, 1998.) 6) 연금술 실험실은 두 권 책으로 비유되어 왔다. 연금술을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옹호한 사람들로부터 신의 말씀이 담긴 경전(the Bible)이라고 비유되었다. 인간의 기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은 물론 자연을 완벽하게 하고 자연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헤르메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신의 뜻이 담긴 피조물로서의 자연(the Book of Nature)으로 비유되었다. 나는 연금술 실험실에서 파생된 기상관측소를 신의 의도를 기록한 책으로 비유하고자 한다. 7) 나는, 벼락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사람에게 피뢰침을 일 년에 한 번씩 구입한다. (허먼 멜빌, 「피뢰침 판매인」, 『세계문학단편선17』, 김훈 옮김, 현대문학, 2015.) 8) 세 개의 심장을 토대로 백구십칠 개의 심장을 짜깁기했다. 첫 번째 심장은 갈바니(Luigi Aloisio Galvani)의 것이다. 벼락을 동반한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갈바니의 부인이 개구리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갈바니는 벼락이 칠 때마다 도마 위에 잘려 있던 개구리 다리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 발견에서 착안해 죽은 개구리 다리에 전기를 모으는 장치나 해부용 나이프 같은 금속을 닿게 했는데, 그때마다 스파크가 생기면서 개구리 다리 근육이 수축하는 것을 보고 전기는 동물의 뇌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1791년 발표한 「근육운동에 대한 전기의 효과에 대한 주석서(De Viribus Electricitatis in Motu Musculari Commentarius)」를 참고할 만하다. 갈바니는 이를 동물전기라고 불렀고, 후에 볼타(Alessandro Volta)는 갈바니즘이라고 불렀다. 두 번째 심장은 알디니(Giovanni Aldini)의 것이다. 알디니는 삼촌의 연구인 동물전기 이른바 갈바니즘에 몰두했다. 그는 1803년 1월 17일 런던의 뉴게이트에서 사형된 조지 포스터(George Forster)의 시체를 실험했다. 《The Times》에서 이 실험에 대해 보도했는데 다음은 참관한 관중의 인터뷰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마치 남자가 부활하고 있는 것 같았다." 18세기 말에 런던에서 발간된 범죄사례 편찬서인 『Newgate Calendar』에서도 이 실험에 대해 언급했는데 다음은 그중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사망한 사형수의 턱이 떨리면서 얼굴 근육 전체가 끔찍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한쪽 눈꺼풀이 열렸다. 실험이 계속 진행되자 오른손이 올라갔고 다리와 허벅지가 움직였다." 세 번째 심장은 유어(Andrew Ure)의 것이다. 그는 횡격막을 자극하면 질식, 익사, 교수형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1818년 글래스고 대학의 해부학 강당에서 사형된 매튜 클라이즈데일(Matthew Clydesdale)의 시체를 실험했다. 다음은 그가 쓴 실험 기록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전류를 가하자 사형수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분노, 공포, 절망, 괴로움, 소름끼치는 미소가 차례로 떠올랐다. 그 끔찍한 움직임에 참관했던 남자 한 명이 기절했고, 구경꾼 몇몇은 이곳을 떠나 이사를 가야 했다." 그는 교수형에 처해질 때 목뼈가 부러지지만 않았다면 죽은 시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9) 나의腦를避雷針삼아 (이상, 「烏瞰圖 詩第七號」, 『이상문학전집 1』, 문학사상사, 1989.) 10) 코벤트리 페트모어(Coventry Patmore)는 1854년 시집 『집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를 출간했다. 아내 에밀리(Emily)에게 바치는 시집으로, 집안의 자애로운 어머니와 순종적인 아내의 모습에 대해 썼다. "집안의 천사"라는 말은 이후 빅토리아 시대에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사용되었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19세기의 이러한 순결의식이 여성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여성 작가들이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숨기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여성 작가들이 이름을 숨기고 정체를 감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집안의 천사"가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작가로 자리 잡고자 하였다.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자들은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며, 여자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립할 수 있는 여건, 가령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직업을 얻을 수도 없으며 재산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집안의 천사"밖에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들이 "집안의 천사"를 거부함으로써,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물질인 것과 정신인 것 모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듯, 여성인 것과 남성인 것을 나누지 않고 화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은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자매 그리고 당시 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을 쓰기 위한 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우리들의 꿈은 계속 이어졌지만 현실 앞에서 한쪽으로 밀렸다. 먹고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동생들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두 가지뿐이었다. 교사가 되든지 가정교사로 돌아가든지. 그러나 두 직업은 내가 혐오하는 '얽매인 노역'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여자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직업은 열악한 근로 조건의 직공을 제외하고 교사와 가정교사 같은 것으로 제한적이었다. 샬럿 브론테가 교사와 가정교사를 '얽매인 노역'이라면서 혐오했던 이유는 가정교사라는 직업은 안정성과 임금도 문제 되었지만 노동계급이면서 중산계급의 이상적인 여성성을 흉내 내어야만 하는 직업이기에 사회적 지위가 낮을 뿐만 아니라 멸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샬럿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통해, 앤 브론테는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를 통해 실제 경험을 투영해 가정교사 문제를 담아냈다. 샬럿 브론테는 더 나아가 여자들이 남성 중심의 지배 구조에 투쟁하며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셜리』를 썼다. 11)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죽은 인간들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이름 없이 존재하는 괴물은, 흉측한 모습으로 자신을 만든 사람에게서도 버려지게 된다. 버려진 채 집 안에 혼자 있던 괴물은 집 밖으로 뛰쳐나와 인간과 어울리고자 하지만 오히려 악마 취급을 받고 공격 받는다. 12)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8년 올해의 단어로 'toxic(유해한 또는 유독성의)'을 선정했다. 옥스퍼드딕셔너리 닷컴에서 'toxic' 검색이 작년 대비 45% 증가했는데, 문자 그대로 쓰이기도 했고, 은유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맥락('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 '유해한 레토릭(toxic rhetoric)', '유해 공기(toxic air)'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 'toxic'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chemical'(화학물질)'이고, 그다음은 'masculinity(남성성)'이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 같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13) 나는 촛불로 밥을 짓는 어머니와 이름이 없는 자식에 대한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식에게 이름이 없는 이유는 죽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몸이 피뢰침에 걸려 있는 데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상태이며 손톱이 빠지고 성기가 잘리고 목에 꽂힌 칼은 빠지지 않은 채 심장까지 도려내어진 상태로 죽어가는 자식을 보고도 어머니는 계속 촛불로 밥을 짓고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자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노래를 복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맥박이 미친 듯이 뛰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그 칼이 내장을 드러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전문,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민음사, 2003.) 14) "새로운 흉측함"이 탄생하기까지 세 개의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에 대해 많은 여자들이 분노를 표출했고 조직적인 대응으로 커졌고 이에 맞선 여성혐오자들의 역공격으로 젠더 사이의 격렬한 갈등이 촉발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2016년 9월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문단_내_성폭력)를 달고 몇몇 문인들을 고발한 것에서 문단 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2017년 1월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결방안에 대한 국회토론회 에 한국작가회의, 출판계의 성폭력 심각성을 인지한 작가들이 모인 페미라이터 등이 참여해 대화를 나누는 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세 번째 사건은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성추문을 폭로하고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Me Too)를 다는 것에서 미투 운동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 특집은 이러한 시류를 반영해 '젠더 전쟁'으로 잡았는데, 이때 시인 최영미의 시「괴물」이 게재되었다. 이후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재점화 되었다. 15) 연금술 실험실은 부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6)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자 영화감독인 하이파 알만수르(هيفاء المنصور, Haifaa al-Mansour) 는 2017년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Mary Shelley)』을 연출했다. 그녀는 연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메리 셸리는 완벽한 인물이 아니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는 선택도 하고 때론 실수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상실로 인한 괴로움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가지고 있던 고통의 짐을 심오한 예술작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언제라도 포기하거나 뛰어난 부모 혹은 남편을 따르는 게 쉬울 수도 있었을 텐데도 메리 셸리는 결국 자기만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는다. 나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메리 셸리처럼 모든 사회적 편견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상실과 괴로움을 딛고 내면의 목소리를 찾았던 메리 셸리처럼 강한 여성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17) 혼자 사는 여자를 위한 안전 팁 중 하나는 택배 수신인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대신 사용하는 것이다. 2018년 개봉된 공효진 주연의 『도어락(Door Lock)』에서는 혼자 사는 주인공이 현관에 남자 구두를 놓아둔다든가 창문이 보이는 베란다에 남자 속옷을 걸어 두는데, 이 역시 혼자 사는 여자를 위한 안전 팁에 속한다. 18)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출간되자마자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판권을 계약한 출판사가 소유권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가 피조물을 만들었다는 원본 텍스트의 중심 에피소드만 유지한 채 무대 각색본이 계속 변형되고 패러디의 패러디가 거듭되어 나왔다. 또한, 연극으로 만든 초기에는 괴물 역할을 했던 배우의 이름 옆에 빈 선을 그어 놓은 것이 관례였다고 하는데, 그러한 관례를 알게 되었을 때 메리 셸리는 명명할 수 없는 것을 이름 짓는 이 이름 없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19) 앤 핀치, 윈칠시 백작부인은 남자들이 "글을 쓰고자 하는 여자"들은 "성과 도리를 잘못 알고 있다고" 비난하며, "예의범절, 유행, 춤, 옷치장, 유희" 같은 것들이 여자들이 "갈구해야 하는 소양"이며, "쓰고, 읽고,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흐리게 하고 시간을 고갈시키"는 것이라고 충고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20) 헬렌 디윗(Helen DeWitt)은 1990년대 후반에 『피뢰침(Lightning Rods)』을 썼지만 독특한 방식의 소설이라는 이유로 여러 출판사에 거절당하다 2011년에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피뢰침』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일렉트로룩스 청소기 판매에 실패한 세일즈맨 조 슈모가 피뢰침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 자기계발서나 CEO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들게 쓴 풍자 소설이다. 조 슈모는 직장 내 성 문제로 가해자에게 가해지는 처벌이 가혹하다고 생각하며, "한 남자가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못 배우고 자랐고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닌데, 그 약점 때문에 그의 커리어 전체가 위험에 빠져도 되는가?" 안타까워한다.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탓에 "개자식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닌 남자들을 옹호하며, "가뜩이나 불리한 위치에서 하버드나 예일 출신의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여직원들과 가까이 있을 때마다 커리어가 위태로워지는 불이익까지 짊어져야" 하는 남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피뢰침 사업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현대 업무 환경에서 젠더 간 및 젠더 내 상호 교류는 지뢰밭으로 통하는데" "피뢰침"은 "성적 금기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피력한다. "비난을 도맡아 주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천 명 중 한 명"의 여직원을 피뢰침으로 고용해 혜택을 주는 것을 조건으로, 장애인 전용 화장실 벽에 구멍을 뚫고 직원들의 성행위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남자들 입장에서는 매춘부를 만나지 않아도 성욕을 배출할 수 있어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아도 되는 한편 여자들 입장에서는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하지 않아도 되기에 합리적이면서 익명에 기반 하여 안전한 피뢰침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조 슈모는 자신이 평등한 기회를 주는 고용주라고 자부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뢰침으로 고용된 여직원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몇몇 피뢰침들이 피뢰침을 한 이후 성공하긴 하지만 "성공한 피뢰침은 모두 특출난 사람들이었"고, 성공의 문제를 떠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지만 그는 사업가일 뿐이기에 그런 식의 "도덕적 판단"은 그의 몫이 아니다. (헬렌 디윗, 『피뢰침』, 김지현 옮김, 열린책들, 2019.) 21) 1991년 『백래시(backlash)』를 출간한 수전 팔루디(Susan Faludi)는 2018년 10월 이데일리 W페스타에서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 폭발' 현상이 흥미롭다."고 했다. "미투 운동이 봇물 터진 지금이 한국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라고 보이는데, "성 평등을 향한 여성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그에 따른 반격 역시 거듭"되는 역사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에서 기록적인 수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행진하고 페미니즘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지만, 동시에 우파 정권과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남성 리더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전 팔루디는 "남녀 간 상호이해만이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민음사는 "투고된 170편의 원고 중 예심을 거쳐 올라온 9편 중 권박 시인의 '마구마구 피뢰침' 외 67편을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상금은 1000만원, 시상식은 연말에 예정돼있다.
심사위원단인 김행숙 시인은 수상작에 대해 "그의 시들을 나는 어디에서도 읽은 적이 없었다.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모종의 기시감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며 "페미니즘과 초현실주의가 만나 폭죽을 터뜨리고, 정치적인 것과 시적인 것이 새로운 포옹법을 실험한다"고 평했다.
권 시인은 직접적인 수상 소감 대신 자신의 이름 '권박'이 탄생한 배경을 전했다.
권 시인이 작가로 활동하면서 사용한 기본 약력은 '1983년생 권민자(珉子)'였다고 한다. "아들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며 "여자라는 이유로 태어나면서부터 실망스러운 사람, 막막한 사람이 돼야 했다"고 설명했다.
권 시인은 그러면서 "여자아이에게 자(子), 남(男)을 써서 이름을 짓는 일은 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일어나는 일"이라며 "여성을 넘어 작가로서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숙고해야겠다고,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므로 이름을 없애고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같이 쓰자고 결정했다. 이름 없는 이름, '권박'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부연했다.
권 박은 1983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한편 김수영문학상은 1960년대 자유와 저항정신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김수영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후진 양성을 위해 1981년 제정된 시문학상이다.
민음사는 김수영문학상 주관사로, 매년 한 명의 시인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등단하지 않은 예비 시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