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충북 옥천군에 따르면 이 지역 출신인 정지용 시인(鄭芝溶·1902~1950년)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정지용문학상’의 제31회 수상자로 문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저녁이 올 때’이다.
심사는 신달자·김광규 시인, 이남호·홍용희 문학평론가, 유자효 지용회장 등 5명이 했다.
김 시인은 수상작에 관해 “1930년 정지용 시인은 ‘불 피어오르는 듯 하는 술/한숨에 키어도 아아 배고파라’ 고 ‘저녁 햇살’을 노래한 바 있다”며 “그로부터 90여년 후에 문 시인이 ‘마지막 햇살이 사라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시에 담아 지평을 넓혔다”라고 평했다.
문 시인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서 처서(處暑)등 10편이 당선해 등단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시상은 ‘제32회 지용제’ 기간(5월 9~12일)인 다음 달 11일 오후 4시 옥천읍 상계공원 특설무대에서 한다. 시상금은 2000만원이다.
해마다 늦가을이면 나에게는 택배가 배달되어온다.택배 상자에는 여러 곡물이 들어있다.볶은 깨와 빻은 고춧가루,까만 콩 등속이다.육중한 택배를 들어 올릴 때 나는 하나의 들판을 들어 올리는 느낌을 받는다.그리고 나는 그 들판에서 일어났을,힘겨웠을 노동의 하루하루들에 대해 잘 안다.논과 밭,그리고 둑에서 싹 트고 자라 오르고 열매 맺은 작물들의 일이며,그 작물들을 아침저녁으로 보호하고 돌보았을 농부의 지극한 마음에 대해 잘 안다.그래서 택배가 배달되어오는 날에 내 심경은 만산중(萬山中)에 있는 것만 같다.
택배가 배달되어올 때 나는 나의 주소지를 적은 필체를 들여다본다.볼펜으로 꾹 눌러쓴 내 어머니의 필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여간 야무진 필체가 아니다.어머니는“부재시 관리실에 배달 부탁합니다.”라고도 써놓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필체가 호미를 빼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특히‘ㅐ’, ‘ㅏ’, ‘ㅣ’와 같은 모음을 쓰실 때 어머니는 빨랫줄을 받치기 위해 바지랑대를 높이 들 때처럼 위로 치켜들어 쓰신다.나는 이 필체가 어머니의 성품과 어머니의 신념과 어머니의 노동의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어머니는 무슨 일이든 허술하게 하시는 게 없었다.깨를 털 때에도,바느질을 할 때에도,밥 짓고 설거지를 할 때에도,기도를 할 때에도.특히 끝맺음의 경우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어머니의 필체 생각이 났다.동시에 나에게 배달되어오는 가을 들판 생각이 났다.그러면서 한 편의 시도 하나의 필체이며,하나의 들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나의 시가 고유하고 특별한 필체를 갖고 있는지 또 나의 시가 하나의 들판처럼 고된 노동으로 이뤄진 것인지도 함께 자문해보았다.
미흡한 것을 잘 채우고 가다듬어가라고 이 상을 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격려인 동시에 반조(反照)를 당부하는 뜻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상을 받으니 어머니께서 아주 좋아하시겠다.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그리고 함께 사는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상은 목표나 수단이 아니라 단지 결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상 수상을 목표로 시작을 하거나 문학상을 수단으로 상업성과 유명세를 얻으려는 풍조가 지금 우리 문학계에 만연하고 있다. 우리 문학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어준 작가나 시인에게 문학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당위는 사라지고 끼리끼리 상을 나눠 가지고 명망성에 기대 문학상의 위상을 높이려는 반칙들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애지문학상의 의의는 이러한 풍조에 대한 비판이고 거부라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번 애지문학상 심사는 바로 이러한 우리 문단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작업이었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은 평가의 중요 기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한 시인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인간과 세상을 보고 또 얼마나 치열한 언어로 그것을 표현했는지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먼저 10편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김혜순의 「떨어진 별처럼」, 문태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고영민 「붉은 입술」, 문정희 「거위」, 유종인 「방석집」, 박이화 「한바탕 당신」, 정해영 「종이학」, 박형준 「불광천」, 엄재국 「호모 dew」, 김병호 「일요일」이 후보작이었다. 모두 훌륭한 작품이어서 쉽게 선정할 수 없었다. 많은 논의 끝에 가장 애지의 문학 정신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문태준 시인의 작품을 선정했다.
문태준 시인의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은 아주 새로운 주제나 표현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문명비판이라는 다소 식상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진정성 있는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삶의 인식에 가닿고 있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비루한 삶속에서 우리 자신을 낭비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가두고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새로운 꿈으로 새 삶을 준비할 수 있음을 스스로 믿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를 읽으면 슬프다. 그 슬픔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비극적 현실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시인은 이 슬픔을 통해서 단순한 문명비판을 넘어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문태준 시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쉬운 언어, 공감의 표현, 소통의 화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투와 단순함을 넘어서는 사유의 깊이 그것이 바로 문태준표 문학이다.
문태준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영광이었으면 한다.
젊은 시인 문태준의 출현은, 시가 시인에 의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는 말의 향연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어 즐거웠다. 그러나 심사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수상작은 결국 일종의 상대평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독자적인 절대의 세계로 자신의 개성을 확고하게 구축해온 적잖은 시인들이 양보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진급의 최하림.김명인 그리고 중견급의 문인수.김신용 등의 작품도 결코 만만찮은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모든 욕심을 비워 이윽고 그 몸 자체가 가볍게 자연과 하나의 지경을 이룬 듯한 최하림의 시는 인생의 서늘한 시간들을 조용히 보여 준다. 그러나 풍경으로서의 자연을 뛰어넘지 않음으로써, 혹은 그 속으로 깊이 침잠하지 않음으로써 시인만의 시적 자아에 비교적 무심한, 표표한 시편들은 어딘가 달관의 수상(隨想)을 즐기는 듯 한 인상이다. 시인에대한 기대가 큰 탓일까, 아쉬움이 남았다.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시 세계를 경구적 통찰을 통해 꾸준히 선보인 김명인에 대한 안타까움도 절실하였다. 시적 대상들과 시의 정신사이에 통일감이 더 분명하였으면 이해의 감동이 높았을 것이다.
문인수의 시도 갈수록 진경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특히 사물 하나하나에 쏟는 애정과 그 묘사의 깊이는 탁월하다. 한편 노동자 시인 김신용의 등장은 작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충격일 수 있는 것은 한때 지게를 졌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그의 현실에 있지 않다. 놀라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상당한 상상력과 상징의 교환을 자유롭게 행하고 있는 우수한 시인이라는 사실의 재발견이다. 좀 더 집중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시는 그로 말미암아 매우 넓은 진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수상시인 문태준에 대해서는 오직 상찬과 격려만이 필요한 단계이다. 이 젊은 시인의 앞날이 어떤 변모를 보일런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누가 울고 간다''가재미' 연작 등이 보여주고 있는 말의 탱탱한, 유장한, 서늘한,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한 행진은, 그 맞은 편에 놓여 있는 답답한 일상에 홀연히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특히 동사를 크게 활용하는, 흐르는 상상력이 자기갱신의 힘을 발휘한다. 문태준이라는 서정 시인의 탄생은 우리 시를 위무의 성소(聖所)로 이끄는 언어의 축복이다.
문학사상사 주관 소월시문학상심사위원회는 제21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문태준(37․불교방송 PD) 시인의 <그맘때에는> 외 15편을 선정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또 송찬호 <만년필> 외 2편, 김완하 <그늘 속의 그늘> 외 7편, 김신용 <도장골 시편- 부빈다는 것>외 7편, 나희덕 <와온(臥溫)에서> 외 7편, 이정록 <갈대> 외 7편(등단연도 순) 등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우수상 수상 시인으로 결정됐다.
심사위원으로는 오세영 서울대 국문과 교수, 김명인 고려대 문창과 교수,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 권영민 서울대 국문과 교수, 문정희 시인 등 5명이 참여했다.
제21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문태준 시인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맨발》이 있다. '시힘' 동인이며, 동서문학상․노작문학상․유심작품상․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방송 포교제작팀 PD로 재직 중이다.
오세영 교수는 "문태준 시의 본질은 사물을 통해 삶의 본원적인 문제들을 성찰하는 것에 있다"며 "생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미학적 형상성과 잘 결합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그의 탁월한 시적 재능"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오 교수는 또 "수상작 <그맘때에는>에는 유년의 어느 초가을에 잠자리를 잡았다 놓친 손의 허전함을 문득 추억하면서 생의 덧없음과 적멸의 의미를 깨우치는 불교적 세계관이 잔잔히 반영돼 있다"며 "그 깨달음은 단순히 관념적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저리(imagery)로 형상화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명인 교수는 "문태준의 시는 아름답다. 수상작으로 선고된 <그맘때에는>에서는 하늘에서 놀던 잠자리 떼가 사라졌다는 지극히 범상한 관찰로,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찾아들 이 지상에서의 공허를 예사롭지 않게 유추해낸다"며 "앞으로 더욱 성숙한 문학적 깊이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권영민 교수는 "문태준의 시는 사물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함께 깊은 통찰을 동시에 보여준다"며 "시적 상상력의 폭과 깊이를 함께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 미학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수상작 <그맘때에는>에 대해 "수상작에서 볼 수 있는 관조의 미학은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그 시적 긴장을 더하고 있다"고 평했다.
또 문정희 시인은 "결코 가볍지 않는 존재에 대한 비의(悲意)를 진솔한 언어로 포착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고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최동호 교수도 "서정시의 정도를 보여 주는 문태준의 시편들은, 새로운 시대의 서정시의 한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와서 문에 문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오래여서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
어두워지는 것은 그래서 까무룩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한 것,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어두워지려는 때에는 개도 있고, 멧새도 있고, 아카시아 흰 꽃도 있고, 호미도 있고, 마당에 서 있는 나도 있고……. 그 모든 게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늑대처럼 오래 울고, 멧새는 여울처럼 울고, 아카시아 흰 꽃은 쌀밥 덩어리처럼 매달려 있고, 호미는 밭에서 돌아와 감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마당에 선 나는 죽은 갈치처럼 어디에라도 영원히 눕고 싶고……. 그 모든 게 달려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다른 개의 배에서 머무르다 태어나서 성장하다 지금은 새끼를 밴 개이고, 멧새는 좁쌀처럼 울다가 조약돌처럼 울다가 지금은 여울처럼 우는 멧새이고, 아카시아 흰 꽃은 여러 날 찬밥을 푹 쪄서 흰 천에 쏟아놓은 아카시아 흰 꽃이고……. 그 모든 게 이력이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베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이상하지, 오늘은 어머니가 이것들을 다 버무려서
서당골에서 내려오면서 개도 멧새도 아카시아 흰 꽃도 호미도 마당에 선 나도 한 사발에 넣고 다 버무려서, 그 모든 시간들도 한꺼번에 다 버무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