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섬이 보이는 방 / 나희덕
- 이중섭의 방에 와서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2008 제22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nefing.com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나희덕 시인이 문학사상사 주관 제22회 소월 시문학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5일 소월시문학상 심사위원회(김남조, 오세영, 송수권, 문정희, 권영민)에 따르면 나희덕 시인의 '섶섬이 보이는 방-이중섭의 방에 와서' 가 2008년도 제22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뽑혔다.
또 심사위는 박라연, 이승하, 이정록, 손택수, 송찬호, 정끝별 시인을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지난달 27일 권영민 문학사상 주간의 주재로 본심을 거친 심사위원회는 "나희덕 시인의 대상 수상작은 시인이 꿈꾸는 자연과 인간의 화해로운 세상에 대한 소묘적 묘사와 생태주의적 해석법이 돋보인 작품"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나 시인은 "슬픔을 줄곧 노래해 왔다는 점에서, 서정적 전통의 자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시적 사물보다는 자연을 통한 발견에 주로 의존해 왔다는 점에서, 저는 소월의 식솔 또는 후예인 듯 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나희덕 시인은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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