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 속에 숨어 있는데, 당신의 손목은 이제 컴퓨터 자판의 벌판 위로 기차를 띄우고 첫, 첫, 첫, 첫, 기차의 칸칸을 더듬는다. 당신의 첫.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옛날 당신 몸속으로 뿜어지던 엄마 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 몸이 되던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 속으로 기러기 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의 첫은 살며시 웃고 있을까? 사진속에서 더 열심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까? 엄마 뱃속에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가던 당신의 무서운 첫 고독이여. 그 고독을 나누어 먹던 첫사랑이여.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들어 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른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 개, 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
오늘 밤 처음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서
나는 첫을 잃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 손 잡고 뽀뽀라도?
그렇게 말할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의 첫은 끝, 꽃, 꺼억.
죽었다. 주 긋 다. 주깄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총 상금 1억4천만원 규모인 제16회 대산문학상의 주인공이 뽑혔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4일 김혜순(시집 <당신의 첫>), 구효서(소설 <나가사키 파파>), 정복근(희곡 <짐>), 김인환(평론집 <의미의 위기>)씨(왼쪽부터)를 올해 수상자로 발표했다. 스페인어권을 대상으로 한 번역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당신의 첫>은 “수일한 이미지들과 흉내낼 수 없는 참신한 비유들로 여러 사람을 충격하였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올해부터 장편으로 한정한 소설 부문 수상작 <나가사키 파파>는 “독특한 개성과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다국적 공동체가 어떻게 가족을 대신해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는가” 하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또 <의미의 위기>는 “인문학적 식견에 바탕한 섬세한 작품 읽기와 문학사에 대한 폭넓고 균형 있는 시각이 돋보였다”는 평을 들었으며, 해방 직후의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을 다룬 <짐>은 “어두운 과거사를 간결하게 녹여 그 답답한 미해결의 상태를 적절히 문제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상자들은 이날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감을 밝혔다. 상금은 소설이 5천만원이며, 나머지 부문은 3천만원씩이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내가 몸을 팔기로 한 것은 값비싼 모피를 휘두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외투를 어쩌면 이불이라도 덮어줄 따뜻한 손 때문에. 내가 몸을 팔기로 한 것은 섹스에 환장 들린 어린 것이 아니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거짓말하지 않는 입 때문에. 내가 몸을 팔기로 한 것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찾아와주는 사람들의 외로울 틈새 없는 이어달리기 발자국 때문에. 내가 몸을 팔기로 한 것은 차가운 다독거림의 동상 걸린 손과 마음을 담보로 혀 속에 계산기를 받아놓은 입에 진저리를 쳤지만, 동상 걸린 손과 거짓말하는 입을 다시 기다렸기 때문에. 아, 불쌍한 사랑 기계
진주시와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회장 박우담)는 시 ‘낙화’의 시인이자 지적 서정시의 대명사인 이형기 시인을 기리는 제9회 이형기문학제 수상자로 김혜순 시인이 선정됐다고 27일 밝혔다. 수상집은 ‘날개 환상통’이다.
김 시인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 ‘도솔가’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현재 서울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심사위원인 정과리 평론가는 “김혜순 시인은 한국여성시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은 존재이다. 최근 김혜순의 시는 더욱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학대받고 고통받는 여린 생명들의 삶의 형식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 그의‘삶의 형식’의 탐구는 앞으로도 씩씩할 것이며 그의 도전은 우주상의 모든 생명의 진정한 미래를 위한 하나의 밀알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한편 진주 출신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형기 선생(1933.1~2005.2)은 초기에는 삶과 인생을 긍정하고 자연섭리에 순응하는 서정시를 쓰고, 후기에는 허무에 기초한 관념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감각과 격정적 표현이 돋보이는 시를 발표했다. 20세기 후반 삶과 인간문제를 시로써 탐구한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다.
950년 ‘코스모스’, ‘강가에서’ 등이 추천돼 고교 때인 16세에 등단, 최연소 등단기록을 세웠으며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형기 문학제 시상식은 6월 22일 토요일 오후 4시 경남과기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날 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창작장려금 2,000만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진주시 관계자는 “지역사회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시민들의 문학정신을 키워내는 동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에게 이형기 선생에 대한 홍보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최종심에 오른 250여 편의 시 가운데서 오직 한 편을 뽑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라면 점과 취향에 따른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고, 그런 만큼 일렬로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250여 편의 시 속을 조심스레 헤집고 들어가 오랜 시간 의견을 조율하였다.
우선 전체적인 느낌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발표작품이 너무 많아서인지 몰라도 긴장이 풀어진 작품이 비교적 많았다는 점, 그리고 너무 사적인 세계에 빠져있는 경향이 지적되었다. 그래서 우선 시적 긴장과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좀더 신뢰감을 준 몇 분의 시인으로 좁혔고, 그들의 작품 가운데서 10여 편이 최종 후보작으로 선별되었다.
이후 논의는 작품의 어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시인의 전체적 성향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전개되었고, 한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지적과 그에 대한 동의가 있으면 해당 작품은 제외되었다. 가령 어떤 작품은 강력한 추천을 받았으나, 최근 우리 시단에 유행이 되고 있는 '선(禪)적인 모호성'이 지적되어 제외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김혜순의 '모래 여자'가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시력 20여 년의 김혜순은 우리 시단에서 가장 개성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개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그의 시에 대해 호감을 갖지 않은 이도 있지만, 그런 이들조차 김혜순의 시가 고수의 경지인 것은 인정하는 편이다.
'모래 여자'는 차분하게 정제된 언어를 보여주는 시다. 미라의 발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마치 미라의 발굴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모래 여자의 존재를 조금씩 펼쳐 보여준다. 독자들은 숨을 죽이고 모래 여자가 어떻게 존재했고 어떤 취급을 받았으며 이제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를 비밀의 베일을 펼치듯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 모든 모습이 드러났을 때, 독자들은 그 모래 여자가 결국은 갖은 소외와 수모의 삶을 조용히 견뎌온 한 여성의 삶의 환유임을 알게 된다.
'모래 여자'는 어떤 면에서는 김혜순적이고, 다른 면에서는 김혜순적이 아니다. 김혜순의 깊고 조용한 응시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고, 우리 시대 여성성의 한 기호가 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다채로움보다는 조용함이라는 생각에서 '모래 여자' 쪽을 조용히 선택했다.
심사위원 정현종. 김주연. 황현산. 최승호. 이남호
제 시가 너무 어렵다고요 ? "여자들은 함께 울고 웃어요"
바리데기 전설이란 게 있다. 버려진 한 여자아이가 남의 손에 자란 뒤 저승에서 약수를 구해와 죽은 아버지를 살려낸다는 얘기다. 효를 강조하는 빤한 옛날 얘기 중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여자아이는, 버려졌다 하여 바리데기라 불렸다. 원래는 이름도 없었던 것이다. 버려진 이유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는다. 잘못이라면 여자로 태어난 것뿐이다. 저승에서 약수를 구하는 과정도 의미심장하다. 그녀가 저승에서 밥 짓던 물이 훗날 약수로 밝혀진다. 바리데기는 그 물로 아비를 살린다.
모든 언어는 여성에 의해 재해석될 수 있다. 아니 여성에 의해 발설됐을 때 언어는 비로소 평등해진다. 올해 미당문학상 수상자 김혜순 시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바리데기 전설의 이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은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이 무속신화를 삼는다.
바리데기 전설은 여러모로 김혜순을 설명한다. 시인에겐 바리데기처럼 이름에 읽힌 사연이 있다. 1978년 그가 평론으로 등단하고서 얼마 안 됐을 때 한 남성평론가가 막말을 한다. "식모이름으로 어떻게 평론을 해먹어?" 지금도 종종 회자 되는 소위 '식모사건'이다. 어쨌든 시인은 이후로 비평을 삼갔다. 대신 식모 이름으로 식모의 시를 썼다.
김혜순의 시 세계도 바리데기 전설을 닮았다. 남성이 찾아내지 못하는 속뜻을 여성 독자는 용케 읽어낸다. 시인은 서른 해 가까이 한국의 여성시를 대표했다. "김혜순 시인에게 와서 우리 시의 여성성은 비로소 착근을 한 느낌이다"(안도현)라는 찬사가 있었을 정도다. 반면에 '문제의식은 첨예하지만 너무 난해하다'란 지적도 있었다. 시인의 생각은 물론 달랐다.
"내 시가 어렵다는 건 남자들 얘기예요. 문학을 몰라도 여자라면 제 시를 느껴요. 함께 웃고, 함께 울어요. 문단에서 난해하다고 부른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최근 시 시계의 변모가 읽힌다는 시각에도 시인은 동의하지 않았다. 어미의 품처럼 넉넉해졌다는 해석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이제야 내 언어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시인은 자신했다. 미당문학상 수상작 '모래 여자'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에서 "갖은 소외와 수모의 삶을 조용히 견뎌온 한 여성의 삶을 알게 된다"고 평가했지만, 정작 시인은 "여행시"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여름 고비사막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거기서 옛 공주의 미라를 목격했단다. 그래서 감상을 적었을 뿐이란다.
중앙일보 66년 지면에서 당시 울진국민학교 6학년 4반 김혜순 양의 동시 한 편을 찾아냈다. 폐병을 앓던, 그래서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홀로 문학을 꿈꾸던 소녀는 '부채는 강바람 싣고 왔을거야'라고 노래했다. 시인에게 40년 전 일을 물었다. "세상에, 그게 아직도 있어요?" 그러고선 한참을 웃었다. 그 웃음은 여성전사의 날 선 냉소도, 어미의 푸근한 미소도 아니었다. 시인은 40년 전 소녀처럼 깔깔대고 웃었다.
미당. 황순원문학상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상이다. 미당문학상 상금은 3000만원, 황순원문학상은 5000만원으로 각 부문 국내 최고 액수다. 24명의 심사위원이 8개월 동안 문예지 78종을 검토했다. 두 문학상은 한국문학의 내일을 읽은 풍향계 역할도 담당한다. 김혜순.구효서씨의 수상 의의와 특징을 짚었다.
두 수상자는 거의 해마다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가 막판에 고배를 마셨다. 김혜순씨는 지난해만 빼고 매번 최종심에 올랐고, 구효서씨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최종심 후보였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문단에서 작품성에 비해 상복 없는 작가로 통한다.
두 사람의 수상은 문단의 세대교체 흐름에 일정 정도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문예지는 현재 30대 작가가 대부분 장악한 상태다. 침체한 한국문학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문예지들이 신인 발굴과 육성에 힘쓴 결과다. 그러나 김혜순씨는 시력(詩歷) 28년의 중진 시인이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그로부터 시를 배운 제자도 문단에 수십 명이다. 1987년 등단한 구효서씨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는 올 황순원문학상 최종심 후보 열 명 가운데 최연장자였다.
김혜순씨는 한국의 여성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시의 교과서와도 같았다. 수상작 '모래 여자'도 한 여자의 미라를 통해 여성의 삶을 되짚은 작품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미당문학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됐다.
미당.황순원문학상과 중앙 신인문학상 시상식은 10월 27일 오후 5시 중앙일보사에서 열린다. 중앙 신인문학상의 상금은 소설 1000만원, 시.평론 각 500만원이다. LG 그룹과 중앙m&b가 후원한다.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 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사람의 마음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을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 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 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김혜순의 시는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 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 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 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환상통』,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나)』, 『여성, 시하다』, 『여자짐승아시아 하기』, 시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출간했으며,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문학상, 올해의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형기문학상,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