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出池 / 김준
연못은 거울이다.
두 눈과 두 귀 다 환한 거울이다.
이 세상에 가장 먼저 비가 온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서출지에
쿡쿡 손가락으로 눌러 쓴 ‘三國遺事’
날으는 새가 읽고 가서
쥐구멍에서 볕들길 기다리는
쥐에게 알린 말 못할 사연.
물고기들 흐린 눈알을 닦고닦아
經을 읽는 일연 선사의 기가 막힌 설화를 들어보라.
사람이 사람을 어렵게 만들 말은
물고기의 아가미를 통해서 내뱉는다.
이 세상에 진흙탕물은 더러운 이야기들이
일연 선사 쓰다가 구겨 던진
‘삼국유사’, 거문고갑[琴匣]*에서
奏樂供養처럼 아름답게 피어난다.
세상의 어떤 연못 속에서 저렇게
쥐들이 외치는 억울한 말이
보글보글 물방울로 연꽃처럼 피겠는가.
세상의 성한 두 눈과 열린 귀가 닫혔다고
아프게 죽비를 내리치는
연못에 내리는 빗소리는
쥐죽은 고요한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귓불이 도톰한 연잎이 먼저 듣는다.
* 紀異扁 제1사금갑조에 나온다.
[당선소감] 신라, 내 미혹의 출발점
기쁘다. 이 기쁨의 始原은, 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 만난 석굴암의 석가모니를 처음 만났을 때의 희열로 치환해도 될 것이다. 석굴암의 석가모니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지었다고, 그때 나는 듣게 되었다. 그 어릴 적 주어 듣 은 말은 줄곧 살아오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승의 부모님도 아닌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혼신의 열정의 다해 불후의 작품(?)을 남긴, 김대성의 생각은 나에게 하나의 의문이기도 했다. 어쩜 그 일은 현세의 부모님에게 불효를 하면서 지었을 김대성의 그 현존을 뛰어 넘은 생각, 그것을 깨닫는데 어쩜 20년이란 세월이 걸렸는지 모른다. 아니 아직도 나에게는 여전히 미혹이다.
신라는 나에게 그런 미혹의 출발점이고 늘 그런 도정에서 신라를 찾곤 하였다. 그때마다 수학여행이라든지 답사기행이란 타이틀이 붙어있었지만, 나는 늘 혼자였다. 따라서 나의 문학이라고 말하면 약간 건방질까 싶지만 혼자와의 세계 와의 교신이었다. 이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란 것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것 같으나, 이 세계 속의 신라의 거대한 선조들의 유산처럼 늘 이승과 현존이 함께 공존한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윤회의 사상, 불교문화와 무관한 신라의 유적들은 흐르는 시간과 공간의 영원불멸한 재귀사상으로 귀결되는 코드라고 말하고 싶다. 사족이지만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하면서 방황할 때, 그때마다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하고 때론 보이지 않는 안개 같았다. 그런 나날 속에 머리에 떠나지 않았던 김대성 이란 인물은 나에게 큰 정신의 힘이었다. 나는 믿는다. 물질만능의 세계에서 결코 굴하지 않는 자신감의 出處는 석굴암에서 처음 본 동해의 해, 그리고 석가모니 이마에 박힌 해였다. 시작은 출발이다. 나는 이 기회로 새로운 출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심사위원 선생님과 나의 전생의 부모님과 현생의 부모님 께 감사한다. 어쩜 나는 전생의 기억으로 이글을 쓰는 지도 모른다. 신라문학 대상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열심히 삶을 시처럼 살겠다.
[심사평] 본선 후보 20여 명은 등단 수준 - 당선시 '서출지'는 역사 소재 소화 능력 뛰어나
해마다 심사 위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응모자가 누구일까이다. 모두들 수준 높은 시를 응모했다. 그러나 응모 원고에는 이름, 주소가 없다. 한편 심사를 하면서도 떳떳함을 느껴서 좋다.
신라문학대상 수준이 높다는 것은 이미 우리 문단도 다 안다. 이 상 출신들이 문단에 등단해서 계속 수준 높은 수준의 작품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못지않게 경주시나 주최 측도 재정, 행정적 뒷받침을 잘 해주고 있어 이 상 제도가 흔들리지 않고 잘 운영되고 있어 다행이다.
올해 응모시 7백여 편에서 20여 편을 골랐다. 본선에 오른 작품은 시 ‘신라의 달밤’ ‘설총의 편지 1,2,3’ ‘어머니의 우물’ ‘미완의 사랑’ ‘벚꽃길’ ‘수막새라는 말’ ‘손안의 천수답’ ‘경주남산 1’ ‘잃어버린 채널’ ‘명파리 감나무’ (이상 허영자) ‘경주, 왕릉들의 밤마실’ ‘나비의 꿈’ ‘ 낭산에 들다’ ‘권태’ (이상 신세훈) 들. 여기서 최종 3편을 골랐다. 시 ‘신라의 달밤’ ‘설총의 편지 1,2,3’ ‘서출지’였다. 어느 작품을 골라도 ‘당선’의 실력에는 손색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한 편을 뽑아야 하므로,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기에 열중했다. 먼저 ‘신라의 달밤’은 제목에 걸려들었고, 형식이 원래 산문 구조 바탕이나 행처리로 운문처럼 꾸몄다는게 큰흠이었다. 만약 ‘당선 합의’에 이르렀다면 시제목을 ‘신라의 달빛’으로 고칠 것을 조건으로 했을 것이다. '설총의 편지'는 연작의 느슨한 허점을 보였다. 그 중 ‘3’이 시로서는 안정돼 있다. 해서 남은 시 ‘서출지’를 당선으로 올리는 데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는 ‘3국 유사’에 나오는 역사 소재를 잘 소화해 낸 시미학이 돋보인다. 그러나 보편화되지 않은 소재에 한자 시어 남용이 좀 어색하고, ‘쥐’라는 시어가 여러 번 등장해 심사 위원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가장 탄탄하게 잘 짜여져 있어 밀기로 했다.
‘……들어보라.’ 같은 어미수사법도 조심할 일이고, 기성 시인들의 ‘닮은꼴 시법’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야겠다. 사실 본선 후보 20여 명은 모두 등단 수준급이었음을 밝혀둔다.
심사위원:허영자, 신세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