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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책을 읽다 / 이문정
- 계림(鷄林)에서
천년을 지나온 길은 이곳에서 처음 열렸으리
나무의 몸 빌려 빛을 세운 숲
한걸음 내 딛자 침묵하던 나무들이 책장을 넘긴다
빛은 나무와 호흡하며 숲을 지켜왔으리
나무들은 힘찬 맥박 뻗어 하늘로 넓혀갔고
뿌리는 몸 낮추어 사방으로 길을 만들어 갔으리
어둠 걷어내며 하늘 열리던 날
나무와 바람은 광명을 천지에 퍼다 날랐고
그리하여 새들 날아들고 노랫소리 끊이지 않는
숲은 날로 번성해 갔으리라
입술에 닿는 책의 숨결이 깊어진다
발이 움직일 때마다 천년도 더 된 노래들이 일어선다
빛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며 그 자리에 서 있는 숲
집중할수록 또렷해지는 페이지를 넘기면
까마득한 날과 소통되는 언어들의 포옹
계절을 잉태한 태실에서 날갯짓 하고 있다
숲을 읽으면 눈빛 스친 자리에서 날아오르는 문장들
오랜 시간 이름 없이 살아도
제 풍경 거두지 않고 푸른 잎으로 돋는다
지금 우리가 체류했던 시점도 숲의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리
숲의 중심에 빛이 내려앉는다
물푸레나무가 빛을 따라 뿌리를 하늘로 뻗는다
빛을 끌어당긴 숲이 일어서고
다시 천년을 향한 길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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