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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행 / 오선주
경주에 오면 모든 것이 둥글어져라
토함산의 메아리처럼 둥글게 둥글게
떠오르는 태양을 안고
미소를 머금은 우리 님의 얼굴에도
연꽃송이 필락말락 떠오르는
고요한 아침이 묻혔어라
한 발 두 발 걸어와 한 몸뚱이로 둥글어져라
새싹 키우고 벌레 키우고
어머니가 된 고분처럼 둥글게 둥글게
굽은 능선 따라 모난 것도 둥글어져라
천 년 전 월지에 띄운 신라의 보름달도
경주에 오면
아라비아 호인(胡人)도 석굴암의 부처님도
굴렁쇠를 굴리던 아이처럼 아이가 되라
주령구를 돌리든 염주를 돌리든
쳇바퀴 도는 다람쥐의 삶,
회전문에 낀 옷자락도 닳고 닳아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둥글어져라
그믐에서 보름까지 한 천 년쯤 더
윤회하는 달이 되어 둥글게 둥글게
항아리처럼 푸짐하게 만다라 되어
경주에 오면 고운 말만 아는 혀처럼
에밀레 에밀레, 슬픈 소리 아니라
천지를 진동하는 꽃향기로 피어나
신라인의 노래를 둥글게 둥글게,
오랜만에 그대, 경주에 오면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도 하게
천 년 전 임인 양 조금은 서먹하게
웃는, 그저 웃는
이름 모를 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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