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에서 / 김미순
운무에 싸인 산이 병풍이다
산 그림자 속에 포옥 담긴 동서탑
침묵으로서
신라천년의 역사
아픈 몸으로 들어선다
오랜 세기동안 눈과 비에 익숙하고
금당의 돌계단 태극문
사각인 턱 넓은 마음보인 형상속에 빠져들고
벌어진 틈 사이로 머리 푼 검은 연기가 나온다
알지 못한 애잔함, 뭔가를 위해
차가운 기운은 염주 한 알의 가르침이다
검은 살갗은 거칠어져 있고
나는 몇 바퀴 생사윤회 걸머지고
목이 저려 통증을 느낀다
발밑이 한참 그 곳에 붙어 있다
은밀한 내간체는 설화가 되고
네모난 구리 속 양각한 둘레를 만져보며
잠깐 묵념에 도달한다
중심을 잡아주는 상륜부 중추
촛대를 간직한 채
해풍 지나간 전각 틀, 녹물이 흐른다
울음이 올라오는 이 땅 위에 서서
어려운 퍼즐을 맞추며
바람이 불었던 물결 앞에서
용이 지나다니던 수로를 빠져 나온다
[심사평] 전설속의 싸인 운무(雲霧)같은 시
심사위원 세 사람은 각각 주워진 작품을 읽고 2편씩을 뽑아 앞에 내놓았다. 최종선에 올라온 6편의 작품을 놓고 당선작을 골라내는데 우리는 고심을 했다. 여기에서 다시 압축하여 하나를 당선작으로 미는데 골몰하다가 결국 ‘감은사지에서’를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우선 시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시적인 뿌리를 역사적 사실에 두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를 풀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에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이 작품은 너무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이 시의 장점이다. 사람이나 시작품에 있어서 너무 완벽하면 그 이상의 발전이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신라문학대상은 신인을 등단시키는 관문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뒷맛이 개운치 않을지 모르나 앞으로의 시적 발전의 저의가 바닥에 깔려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을 선택한 것이다. ‘은밀한 내간체는 설화가 되고’에서 이 시인의 능력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우리 시문단의 거목이 되길 기원하며 우선 축하의 눈짓을 보낸다.
심사위원: 문효치, 강희근, 정민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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