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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신라문학대상 시부문 당선작] 박용우

 

움직이는 마애석불

 

 

경주 남산 마애석불은 바위에서 빠져나오는 중이고

빠져나온 절반의 몸은 바위 속에 덜미를 잡힌 뒷몸이 가려워

어떡하나 어떡하나 그만 앞면이 풍화를 앓고

툭 코가 부서져 내리기도 했다

 

마애석불은 참꽃이

해마다 같은 얼굴로 식은땀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오는 것이 애잔해

아무도 없는 달밤이면 스윽 바위에 달라붙은 손을 때려다 그만

바위째 몸이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경주박물관에 옮겨다 놓은 눈 하나 팔 하나

목 떨어진 마애석불과 함께

인부들이 채 찾지 못한, 떨어진 꽃잎 속에

그 아래 흙속에 묻혀있는 쪼가리 난 몸을 찾아 등성이까지 올라가면

오들오들 돋는 한기, 푸른 허공에 옷깃 단단히 채워주는 별들 유난히 반짝였다

 

저 아래 세상 뒤처져 올라오는 발자국소리 삐걱대고

건물 속에서 빠져나오는 찬란한 불빛들

생각해보면 아픔 없이 피는 불꽃은 없었다

우둘투둘한 산길의 밤을 꽃나무 뿌리로 걷느라

산중의 그림자는 하나같이

눈 하나 귀 하나 팔다리 하나씩 없는

귀먹고 눈먼 영락없는 불구였는데

달빛은 바위 속 푹 파인 눈자위에 괴여 자꾸 윤슬을 슬고

 

마애석불은 저 혼자 어두운 데서

저 아래 세상으로 굴러서라도 내려가려는지

마른 이끼 틈새기마다 돌가루가 자욱했다

 

 

 

 

 

 

 

 

 

당선소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길을 나섰다. 집들과 도로 위에 세워진 눈의 집이 발목을 붙잡았다. 아무것도 허물지 않고, 그 무엇도 다치지 않게 세워진 눈의 건축, 가장 낮은 자세로 품어야만 완성되는 집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세워져 있던 집과 도로와 나무들이 그 집의 숨은 기둥이 되어주고 있었다. 눈의 집은 한겨울을 날만큼 튼튼해 보였다.

 

시를 쓰는 동안 모든 것들을 무너뜨렸다 다시 세우기를 반복했다. 다시 세워진 시라는 집도 이틀이면 금가기 시작해 늘 재건축이 불가피했다. 그 집은 인공적인 자재로는 지을 수 없는 집이라는 것을 눈 속을 오래 걷고 난 후에야 깨닫는다. 늦은 후회가 뽀드득, 귀 기울여야만 들리는 소리로 부어오르는 발목을 다스리는 중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다행이다.

 

당선소식을 듣고 온몸에 통증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더 탄탄한 집을 지으라는 심사위원님들의 채찍이 몸속 깊이 지나갔으리라. 이 아픔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말로 감사를 대신 올린다. 26회라는 긴 세월을 이어오며 문청들에게 길을 터주는 노고를 아끼지 않은 신라문학대상 관계자 선생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힘든 일상 속에서도 묵묵히 내 시의 첫 독자이기를 자청하던 아내, 시 쓰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겨주시던 어머니, 오랫동안 나를 시의 길로 견인해준 시창 동인들에게 술 한 잔 드려야겠다.

 

프로필

1969년 경남 김해 출생 / 2회 김승옥문학상 신인 추천작가상 / 시창 동인

 

 

 

 

 

 

26회 신라문학대상 시부문 심사평 / 역사를 바라보는 예리한 눈과 치열한 시정신

 

전반적으로 투고된 작품들의 수준이 높은 편이다. 언어 운용이 매끄럽고, 삶에서 우러나는 주제의식이 견고하다. 또한 시적 대상을 새롭게 드러내 보여주려는 노력과 자신만의 경험이나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 상당수 있어 심사위원들의 토론도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낙엽이 가는 길은 잘 정돈된 조사법과 시적 비유가 우수하여 최종심에 올랐고, 특히 '신라문학대상'이라는 상 이름에 걸맞게 수막새」「경주의 봄」「움직이는 마애석불등은 신라시대의 설화와 전설, 유적을 제재로 하여 시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응축해서 보여주어 역시 최종심에 올랐다. 수막새는 신라의 모습을 현대에 와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경주의 봄은 오늘의 경주 속에서 살아가는 화자가 신라시대 수도였던 서라벌의 설화와 역사를 재현하며 쓴 서사시다. 화자의 생동감이 있는 섬세한 상상력은 시의 재미를 더한다. 다만 그 같은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몇몇 설화와 사실史實의 표피적인 상상력으로 '서라벌의 찬란한 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서사의 한계가 아쉬웠다.

움직이는 마애석불은 경주 남산에 있는 마애석불을 주제로 쓴 시다. 신라시대 때 남산 바위에 부조되어 천년 역사의 오랜 시공時空을 거치며 풍우에 마모되고 해체되어가는 마애석불의 애잔한 모습을 그렸다. 시인은 마애석불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마애석불은 바위에서 빠져나오는 중이고' '절반의 몸은 바위 속에서 덜미를 잡힌 뒷몸''경주 박물관에 옮겨다 놓은 눈 하나 팔 하나/ 목 떨어진 마애석불'은 저 혼자 어두운 데서 저 아래 세상(인간세상)으로 굴러서라도 내려가려는 치열함을 보여준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 또한 예리하다. 따라서 심사위원들은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당선자에게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쉽게도 최종심에서 탈락한 분들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김종해, 신규호, 허형만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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