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이불 / 신달자
신열이 아직은 산 증거라는 듯
시멘트 바닥이 그를 떠받쳐든 채
오한에 떨고 있는 풍경 본다
사실은 끙끙 앓는 바닥을 덮어 주고 있는
누더기 육신
겨울 지하통로에 누워
종이 한 장으로 세상의 바람을 가리고 있는
종이 한 장으로 지나온 세월을 덮고 있는
관심사에 멀어진 의문의 흐릿한 기호 하나
오래전에 난청이 되어버렸지만, 그러나
지하의 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독한 바람과는 통하는지
그 소통 안에는 언 귀를 잡아당기며 쩔쩔 흔드는 손이 있는지
종이 한 장의 보온 기억을 되살리느라 발끝을 오므리지만
끌어안기도 전 적막은 압사처럼 그를 누른다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영혼이 가는 곳으로 느리게 머리를 돌리고 있는 저 사람
버리지 않았는데도 지나가버리는 순간의 온기를 찾아
영혼은 푸른 숲의 고즈넉한 길을 헤매는 것인지
안갯속 낯익은 집 둘레에서 인기척에 갑자기
몸을 웅크리며 먼먼 온기를 목안으로 끌어 오고 있는지
누군가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인지
죽은 듯 죽지 않은 입을 열었다 오므리고 있다
종이 한 장으로 깊고 깊은 겨울의 중심을 건너는 저 사람.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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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택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7년부터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했다. 1964년 〈여상〉을 통해 시 〈환상의 밤〉으로 여류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뒤,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발〉, 〈처음 목소리〉가 추천되면서 재등단했다.
신달자의 시는 평이한 어법으로 일상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대상을 관찰하고 있지만, 결코 평이한 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순간적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봉헌문자〉·〈겨울축제〉·〈아가〉·〈황홀한 슬픔의 나라〉·〈백치슬픔〉·〈아버지의 빛〉·〈열애〉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백치애인〉·〈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와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이 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영랑시문학상, 2009년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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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달자(68)씨와 소설가 임철우(57)씨 등이 제19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1일 신 시인의 시집 '종이', 임 작가의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 최치언(41)씨의 희곡 '미친극', 염무웅(70)씨의 평론 '문학과 시대현실'을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번역 부문에서는 하이디 강(72)과 안소현(51)씨가 독일어로 공동 번역한 김훈 원작 '칼의 노래(Schwertgesang)'가 선정됐다.
수상작들은 "깊어지는 인식과 농밀해지는 감각, 진화의 에너지가 독자들을 무척 감동시켰다(종이)" "진정성과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특유의 서정적 서사성을 갖고 있다(이별하는 골짜기)" "연극의 유희성을 과시하는 극작술이 돋보이는 수작(미친극)" "문학이 당면한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포괄적으로 아우르고 있다(문학과 시대현실)"는 평가를 받았다.
종이를 주제로 한 76편의 시를 담은 신 시인은 "7~8년 전 종이가 사라진다는 작은 기사를 보고 손끝이 울려 종이에 대한 연작시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 작가는 "열심히 작품을 발표하지만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하기도 했지만 이 상을 받게 돼 격려가 된다"면서 "내 목소리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적은 수라도 있다면 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금은 소설 부문 5,000만원 시ㆍ희곡ㆍ평론ㆍ번역 각 3,000만원이다. 시ㆍ소설ㆍ희곡 부문 수상작은 번역 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출판된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6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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