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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 / 이여명


고삐를 당겼다 팽팽하게 공중에 줄을 치며 외줄로 잡아당겼다 말뚝은 말뚝대로 소는 소대로 잡아당겼다 소가 한 번 잡아당기면 말뚝이 한 번 잡아당겼다 소 힘만큼 말뚝에게도 힘이 있었다 소가 바깥으로 끌어당기면 말뚝은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쪽에서 놓으면 저쪽에서도 놓았다 서로 모르게 끌어당길 수는 없었다

검게 박힌 말뚝으로부터 소는 달아날 수 없었다 말뚝도 한 발 움직일 수 없었다 서너 발 거리에서 말뚝은 소를 소는 말뚝을 바라보았다 말뚝이 없으면 소 없고 소 없으면 말뚝 없었다 이 말뚝에 소뿔때기를 오래 비빈 적 있었을 것이다 그때 말뚝도 제 뿔때기를 소뿔때기에 비벼대었을 것이다 소가 스스로 고삐를 맬 수 없듯 말뚝도 스스로 땅을 뚫지 못했다 말뚝이 땅에 박혀 있지 않으면 말뚝이 아니었다.

 

 

 

 

말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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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마음이 오히려 무덤덤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에게 목표지점의 설레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탓일까.


나는 내 글에 대하여 온전한 글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쓰다가 지우고 다 쓰고는 이게 무슨 글인가 하고 처음부터 다시 쓰곤 하였다.


내 딴에는 되었다 싶을 때도 자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 내 생각대로 쓰다가 너무 오버하는 것 등,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깊이를 내 안목으로 모르듯 시의 깊이를 어찌 알겠느냐고 자신을 질타하곤 했었다.


처음부터 시를 쓰겠다고 나서진 않았다. 20여년 공직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 사는 것과 지역의 풍물들을 느끼며 무언가 기록하여 퇴직할 때 한 권 책으로 만들고자 시작한 게 별나게 시로 태어날 줄이야.


나이가 들수록 시가 어렵다고들 하나 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쓰고자 한다. 이제 〈말뚝〉처럼 한 곳에 박혀 시의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스스로 시의 〈말뚝〉을 치고자 한다.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창과 지도교수 서지월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목마시’ 동인 여러분들이 늘 가까이에서 격려해주신 덕분이라 생각하며, 대구시인학교 회원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가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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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000편이 넘는 응모작중 〈즐거운 늪〉〈아카시아〉(정경희), 〈봄에 온 편지〉(우경화), 〈별 하나에 세상의 눈빛이 젖어 있다〉(이상윤), 〈추풍령 소망교회〉(하재청), 〈할머니의 부르튼 손〉(박정일), 〈복날〉〈개구리 소리〉(조훈성), 〈봄동〉(조영현), 〈말뚝〉(이여명) 이렇게 8명의 10편이 심사위원들의 논의 대상이 되었다. 낡은 시어가 거듭 들거나, 수사에 무리가 있거나, 소재나 주제가 평범하거나, 형식이 구태의연한 작품들은 걸러내기로 했다. 따라서 주제가 새롭고 시어 꾸림이나 형식이 기성 문인들과는 변별성이 있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세웠다.


탈락 작품이 하나하나 가려지고, 〈아카시아〉와 〈말뚝〉이 최종선에 올랐다. 〈아카시아〉가 토속적인 말로 깔끔하게 꾸린 대화법이 뛰어났으나 기교에 비해 주제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뚝〉이 남았다.


원래 제목은 〈빈 말뚝〉이나, 심사위원들은 〈말뚝〉이란 제목을 쓸 것을 조건으로 ‘당선’에 합의했다. 산문시로 비교적 개성이 뛰어나고, 너와 나(나+타자)의 존재성을 암유하는 기술이 감각적으로 돋보여서 뽑았다.

심사위원 신세훈, 최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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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 하병연


몸 낮추고 벼를 보아라
벼는 혼자 살려고 하지 않는다
스무사나흘 정도 살 맞대어 살다가
큰 논으로 분가하면
그때부터 다시 한달 보름 동안
자기 몸을 쪼개고 쪼개다 여름을 들인다
몸 낮추고 벼를 자세히 바라보면
이 여름 푸른 이유를 알 수 있다
눅눅한 장마철,
축축한 욕심 씻어낸 자리에
벼는 하늘과
시퍼런 사랑을 뜨겁게 해댄다
벼꽃이 피고 이삭이 영글고
몸 낮추고 벼를 보아라
벼 이삭이 혼자 익는 게 아니다
어미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
비우고 비워
탱탱한 사랑을 세상 밖으로 내놓는 가을
미련없이 털어버리는 벼는
또다시 제 몸 썩혀 반년의 생을 접는다



 

매화에서 매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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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젊은 부부가 거기에 있었다. 남자는 구레나룻이 있는 용모가 수려한 젊은 청년이었다. 여자는 양털을 깎는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가 양 한마리를 나에게 선물이라면서 주었다. 그리고는 조명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고기로 만든 음식으로 식사 대접을 받았다.


당선 소식이 들려왔다. 기자한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 막 시(詩)의 종자가 발아하여 언어와 서정의 질서가 조금씩 엮이는 중이어서 당선 소식은 나를 어리둥절케 했다. 이제는 모판에서 본 논으로 이앙하라 한다.


지금까지 뿌리내린 상토도 털어내고 넓은 땅으로 가서 자신만의 서정을 이삭으로 영글라 한다. 막막하다. 그렇지만 본 논에 이앙한 벼들도 분얼을 하여 여름쯤에는 논 고랑이 보이지 않듯이 가장 낮은 자세로 시의 힘을 조금씩 키워나가려 한다.


이번 꿈은 오백만 농민들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한다. 이 모든 영광을 호박 넝쿨이 무장무장 뻗어가는 이 땅과 벼에게 돌리고 싶다. 또한 시심을 이끌어주신 신병은 선생님을 비롯하여 갈무리 및 월요문학 회원들, 사랑하는 가족들, 특히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길 위의 핏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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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본선에서는 〈희생〉(하병연), 〈소〉(도석생), 〈물거울〉(권미자), 〈들녘〉(하미애), 〈시집가는 날〉(김경철), 〈옻나무숲으로 들어가는〉(이주렴), 〈시어머니가 물고 온 이야기 하나〉(이선임), 〈모과〉(고영서), 〈내닫힌 문〉(진정희), 〈겨울바람〉(조일규), 〈자전거의 꿈〉(장용숙), 〈일기〉(조온현), 〈진짜 새는〉(신기용), 〈농심〉(유혜진)이 논의되었다. 이들 중에는 다른 곳에도 같은 작품을 ‘2중 응모’한 것이 있어 제외시켰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평년작은 되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은 하병연의 〈희생〉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쉽게 합의했다. 그 다음 논의된 작품은 〈소〉〈물거울〉〈들녘〉〈시집가는 날〉이었으나 아깝게 탈락하고 말았다. 개성과 구성·언어·미학·심상의 집중에서 허점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당선작 〈희생〉은 사람(농부)이 자연과 농작물에 경외감을 가지게 하는 농사 교감의 시로, 화자의 농사에 대한 경건함과 ‘벼’의 모성적 신비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당선작 외의 다른 작품들의 수준은 비슷비슷해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뽑는 데 크게 주저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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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김충규


나무가 잎사귀를 일제히 틔우고 있다
감겨 있던 무수한 눈들이 눈을 뜨는 순간이다
나무 아래서 나는 나무를 읽는다
이 세상의 무수한 경전 중에서
잎사귀를 틔우는 순간의 나무는 가장 장엄하다
이 장엄한 경전을 다 읽어보는 것이 내 소원이지만
나는 안다 이 경전을 읽으려면
마음거울에 먼지 한 점 앉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 마음거울은 너무 얼룩이 져 있다는 것을
닦아내어도 자꾸 더럽혀진다는 것을

새들도 이 경전을 읽으려고
나무의 기슭을 찾는 것이다
새들을 끌어당기는 나무의 힘!
나는 그 힘을 동경한다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로 화살과 창을 만들어 썼던 시대,
그 시대까지가 평화의 시대였다
나무 화살과 창에 맞은 짐승들은
죽는 순간의 고통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나
금속 화살과 창이 나오고부터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제 나무가 경전인 줄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나무는 자신을 희생하여 온갖 경전을 기록해 주기도 하지만
나무라는 이름만으로도 장엄한 경전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계를 다 망치고 있는 것이다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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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지난 일년은 내게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약을 먹어도 그치지 않는 무서운 기침과 함께 객혈이 쏟아졌고, 마침내 폐결핵이란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스무알이 넘는 독한 약을 매일 먹어야 했고, 계속되는 현기증과 싸워야만 했다.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내를 돈벌이의 현장으로 내보내야 하는 현실이었다.

꼬박 일년 동안 아내는 가장의 역할을 했고, 집안에 틀어박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학이고 뭐고 내게는 다 사치 같았다.

무능력한 가장, 병치레나 하는 가장, 나는 절망 속으로 매일 침몰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한번도 나를 구박하지 않고 햇살처럼 환하게 웃어준 아내에게 가장 먼저 감사함을 느꼈다.

이제 폐결핵도 완치했고 이렇게 좋은 일도 생겼으니 다시금 가장으로서의 책무와 창작에 전념하고 싶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두분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따뜻하게 맞이해준 농민신문사에도 감사를 드린다.

고향이 수몰되기 전 농부셨던 부모님, 그리고 나를 옆에서 지켜봐준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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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경희의 <우체국 가는 길>,오부제의 <추억은 적막의 숲에서 서식한다>,류지송의 <지노귀굿>,김충규의 <나무> 등 네 작품이 최종까지 남았다.

네 작품 모두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시를 빚는 능력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신인의 경우 이런 능력도 능력이지만 이런 능력을 토대로 이 시대 현실이나 자연을 보는 이른바 신인다운 시각이 더욱 요구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신경희의 시는 이 시대 우리 농촌, 혹은 변두리 마을 풍경을 우체국 가는 길을 통해 차분히 노래하지만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오부제의 시는 멋과 흥이 있지만 이런 것들이 다소 상투적이고 자칫하면 감상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고, 류지송의 시는 우리의 고유한 삶의 풍속을 노래한 점이 돋보이지만 이런 풍속이 이 시대 우리 삶에 대한 알레고리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런 점에서 김충규의 시는 나무를 노래하되, 이제까지 우리가 읽어온 그런 나무가 아니라는 것, 이 나무를 통해 산업사회적 가치를 승화시키려는 노력, 말하자면 이 시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자세가 분명하고, 시를 빚는 능력 역시 단단하다는 점을 높이 산다.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

심사위원 홍기삼 문학평론가, 이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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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 / 강은진

 

 

문득, 썩지 않는 것이 있다

74세 이만호 할머니의 짓무른 등이

늦여름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중에도

푸르스름한 눈썹은 가지런히 웃는다

그녀가 맹렬했을 때 유행했던 딥블루씨 컬러

변색 없이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견고하다

 

스스로 돌아눕지 못하는 날

더 모호해질 내 눈썹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까

목에 박힌 관으로 바람의 리듬을 연습할까

아니면 당장 도마뱀 꼬리같은 문신을 새길까

 

누구에게나 꽃의 시절은 오고, 왔다가 가고

저렇게 맨얼굴로 누워 눈만 움직이는 동안

내 등은 무화과 속처럼 익어가겠지만

그때도 살짝 웃는 눈썹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검어질수록 더 발랄해지는 눈썹이었으면 좋겠다

 

나 지금 당신의 바다에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의 눈썹을 가져야 하리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에 상큼하게 물들어야 하리

 

 

 

 

2011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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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포장하지 않고 사람 마음 움직이는 쓰고싶어

 

잠깐 입원했을 때였습니다. 연명치료를 받던 생면부지의 노파가 갑자기 사력을 다해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백년의 말들이 출렁였고 미인(美人)의 청춘이 푸르스름한 눈썹에 가지런히 염되어 있었습니다. 편한 호흡으로 써내려갔던 시인데 뜻밖에 당선의 영예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분이 어디선가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다 내려 놓으려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깊은 고통의 밤 가운데 짧은 꿈을 꾸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늘 네 작품이 최고라고 격려해 주셨고, 환한 웃음으로 수상 소식을 알려주시곤 했던 첫 국어선생님. 그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다시 시를 붙잡도록 만들었습니다. () 최학규 선생님께 너무 늦은 감사를 바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멋진 시가 탐나서 화려한 수사로 공허함을 포장하고 라캉이나 로트만 같은 이름을 기웃거리기도 했었지만, 결국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은 시의 진심임을 깨달아 가는 중입니다. 부족함 속 진심의 힘을 믿어주신 황동규, 정호승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증명되지 않은 저에게 시의 길을 열어주신 최동호 선생님. 빚진 마음, 배신하지 않는 시를 쓰는 것으로 조금씩 갚아가겠습니다. 따뜻했거나 혹은 혹독했던 학형들 모두 고맙습니다. 저에게는 영원히 시인이신 아버지, 우리 엄마, 사랑합니다. 호연·대연, 긍정의 힘을 믿길. 나의 모든 것인 채원에게 남길 것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호일, 최후의 독자일 당신께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심사평] 삶의 건강한 구체 다뤄한국 시단 큰 재목되길

 

예년에 비해 투고된 작품량은 늘었으나 수준은 비슷했다.

 

윤지문의 새와 흙’, 강은진의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 석상준의 뚜껑’, 김후인의 결치(缺齒)’ 등 네 편의 작품이 최종심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 뚜껑그냥 썩게 놔두는 것보단 나중에 상하더라도 누군가 퍼먹을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게 인생이란 걸 알기 때문에에서 알 수 있듯이 산문성이 지나치다는 점 때문에 제외되었다.

 

결치(缺齒)’ 또한 빈 집이 늘어나는 시골 풍경을 결치의 이미지와 결부시킨 점은 높이 살 만 하지만 조금 낡은 감이 있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나머지 남은 두 편 중에서 새와 흙은 기성시인의 시를 인용한 점이(인용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신인으로서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과, 또 다른 투고작 새와 구름에서 구체성이 부족하고 한껏 멋을 부린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당선작은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으로 결정되었다. 이 시는 눈썹 문신을 하는 우리 삶의 독특한 한 현상을 발견한 시적 눈의 신선함에 일단 호감이 갔다.

 

특히 눈썹 문신을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에 빗된 점이 해학적이고 애절하다.

 

그러나 이 시에 존재하고 있는 이만호 할머니가 시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음으로써 대표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이만호 할머니가 누구인지 암시가 있었으면 오히려 더 감동적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자폐적 상상력이 판치는 한국시단에서 삶의 건강한 구체에서 꽃핀 이만한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이 시를 당선작으로 밀 수 있는 이유였다.

 

당선자가 앞으로 한국시단의 큰 재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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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각질 / 강윤미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등성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했다 속옷을 훔쳐가거나

창문을 엿보는 눈빛 덕분에

골목은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취업을 걱정하거나

청춘보다 비싼 방값에 대해 이야기했다

닭다리를 뜯으며 값싼 연애를 혐오했다

청춘이 재산이라고 말하는 주인집 아주머니 말씀

알아들었지만 모르고 싶었다

우리가 나눈 말들은 어디로 가 쌓이는지

궁금해지는 겨울 초입

문을 닫으면 고요보다 더 고요해지는 골목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인기척에 세를 내주다가

얼굴 없는 가족이 되기도 했다

전봇대, 우편함, 방문, 화장실까지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

자리에 붙어있다 어쩌면

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

 

 

 

 

201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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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존재의 한순간을 잊지 못하게 하는 시 쓰고파

 

마을에는 구멍가게만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기로 작정했다. 언젠가 엄마와 시내에 나갔을 때 미리 점찍어둔 곳이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 나는 몇 번째 정류장에서 벨을 눌러야 할지 기억을 더듬었다. 몇 달치의 용돈을 주머니에 품고 마을을 벗어나는 일.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문방구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바비인형의 옷들을 만지작거렸다. 여행의 목적은 가장 예쁜 인형옷을 사는 것이었기에 대충 고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행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듯 그렇게 한참을 궁리했다는 이유로, 나는 나만 모르는 도둑이 되어 있었다. 오래 들여다본다는 게 도둑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훔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무엇을 훔친 줄도 모른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들을 골라 내 수첩 속으로 옮겨왔던 것 같다.

 

나에게 시를 쓰는 일은 그랬다. 문방구 주인아저씨 같은 시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천성의 덜미는 늘 시에 붙들렸다.

 

이제부터 나의 시들은 누구 말대로 놀라운 관념의 현혹이 아닌 존재의 한순간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원광대 문창과 교수님들, 박성우 선생님과 전동진 선생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강연호 교수님,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머님, 건강하세요. 동생 윤정아 수복아, 고마워. 내 시의 첫 번째 독자인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나의 다른 이름인 정배씨 그리고 다솜, 물푸레나무 그늘 아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계절이 따뜻해져 옵니다.

 

 

 

 

자장면 먹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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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불안한 청춘의 고통과 고뇌 긍정적으로 승화

 

700여명의 투고자 중 최종심까지 올라온 투고자는 모두 11. 이 중에서 강윤미, 이명우, 장예은, 최영숙, 정한희 등 5명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논의한 결과, 강윤미의 골목의 각질과 이명우의 붉은 도로가 남게 되었다. 이명우의 경우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뛰어나나 내용이 결핍돼 있다는 점, 삶의 체험을 시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부족하고 설명적인 데다 과장이 심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시는 아이디어로 쓰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쓰는 것이라는 점, 아이디어에 의존하면 실패할 확률은 적지만 그런 시인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 이명우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되었다.

 

반면 당선작으로 결정된 강윤미의 골목의 각질은 삶에서 우러나온 시가 진정 좋은 시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 시는 불안한 청춘에 대한 고통과 고뇌를 골목이라는 구체적 삶의 공간을 통해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특히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자리에 붙어 있다 어쩌면/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라는 부분은 호소력이 뛰어나다.

 

시는 상식적인 데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삶의 체험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 강윤미의 앞날에 신뢰가 갔다. 다만 투고된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했는데 시에 사족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더러 있어 아쉬웠다. 시에 사족이 있으면 완결미가 떨어진다. 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는 게 아니라는 점, 침묵의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 한국시단의 샛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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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장례식 / 강지희

 

 

생전에 준비해둔 묫자리 속으로

편안히 눕는 작은 아버지

길게 사각으로 파 놓은 땅이

관의 네모서리를 앉혀줄 때

긴 잠이 잠시 덜컹거린다

관을 들어 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

새벽이슬이 말갛게 씻어 놓은 흙들

그 사이로 들어가고 壽衣 위에

한 겹 더 나무그늘 옷을 걸치고

그 위에 햇살이불 끌어당겨 눕는 당신

이제 막 새 세상의 유쾌한 명찰을 달고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린다

향 같은 생전이 다시 주검을 덮을 때

조카들의 두런대는 추억 사이로

국화꽃 향기 환하게 건너온다

 

 

 

 

2009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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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당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막막하다

 

기찻길 옆 우리 집은 탱자나무가 담장이었다. 손에 상처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울타리가 낳은 노란 전구알 같은 탱자에 경부선 기차 소리를 받아 적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자주 내가 쓰는 언어로 세계의 결을 환하게 열고 싶었지만 제 몸을 가시로 감싼 탱자나무처럼 가시 속에 숨은 시의 언어들은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잡았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빠져 달아나는 언어의 꼬리, 그 미끄러짐들. 그때마다 나는 네모난 종이로 학을 접었다. 일곱 번 몸을 접고 마지막 날개를 펴주어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 내 언어를 들고 푸른 신호등을 따라 삼각지 로터리를 도는데 어떤 목소리가 내 옷깃을 파고 들었다. 갑자기 마른 몸을 털며 종이학이 날아오르고, 갖가지 색깔로 접었던 물고기들이 별로 살아나 파닥이기 시작했다.

 

당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두렵고 막막했지만 가시가 심장을 찔러대도 모든 아픈 몸들을 보듬으며 나아갈 것이다. 칠년 만에 보내준 화해의 품 안엔 가시가 있을 테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믿듯 나의 시를 믿기로 한다.

 

부족한 제 시에 손을 들어주신 황동규, 정호승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언어를 빛나게 갈고닦아 시에 부려 놓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이기철 교수님, 시어가 대상과 나를 만나 어떻게 새로운 몸과 현실을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신 손진은 교수님 두 분께 두고두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도 모자라는 느낌이다.

 

늘 바쁘게 쫓기는 시간들을 불평 없이 뒷바라지해준 남편, 수능으로 고생하는 딸 지수가 고맙고 당선 소식에 가장 기뻐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함께 보듬고 격려해준 영남대와 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문우들이 떠오른다. 지면을 빌려 따뜻했던 마음들에 손을 내민다. 저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파랑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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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죽음에 대한 생각 뒤집는 역설의 묘미 탁월

 

최종심까지 올라온 8명의 작품 중에서 마지막 남은 작품은 이강해씨의 집들이’, 강지희씨의 즐거운 장례식’ 2편이었다.

 

집들이는 탄탄한 내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이 먼저 단점으로 지적됐다. ‘사랑은 시작하기도 전에 슬프고/ 살아보기 전에 무덤이다등의 표현 또한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멋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져 자연히 즐거운 장례식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됐다.

 

즐거운 장례식또한 단순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으나 그러한 단점보다는 죽음을 보는 눈이 새롭다는 장점을 더 높이 샀다.

 

누구의 죽음이든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기존의 생각을 즐겁게 뒤집는 역설적 묘미가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나름대로 높은 시적 성취도를 이루고 있다.

 

관을 들어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작은아버지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긍정성과 순응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자 기쁨의 축제다.

 

작은아버지는 암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릴정도로 오히려 남은 가족들을 위로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이 반어적 발상을 통한 시적 구현은 이 시인의 앞날에 대한 신뢰의 깊이를 더해준다. 앞으로 한국시단을 빛내는 시인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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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부는 오빠 / 문정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 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발목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주었지요, 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 캄퐁참, 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나는 지명에 대해,

오빠의 등에 삐뚤빼뚤 눈초리와 입술들을

붙여놓은 담장 안쪽 사람들은 모르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처럼

나를 훅 뚫고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죠

검은 줄무늬 교복치마가 펄렁, 하고 젖혀지는 것도

영원히 나 혼자만 알죠

하모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이

밤이면 우리 집 평상 위에 뜨죠

오빠가 공장에서 철야작업 하는 동안

별들도 나처럼 자지 않고 그냥 철야를 하죠

 

 

 

 

2008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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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몇 년 동안 안고 산 의 그늘 걷혀

 

짙은 안개 속으로 출근을 합니다. 햇살은 아직 산속에서 종종거리고 있습니다. 안개에 어둠이 잔뜩 물려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 갑갑하기도 무섭기도 합니다. 나는 앞차의 엉덩이에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안개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갑니다. 안개가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습니다.

 

3교시 수업 끝내고 쉬는 시간 불현듯 전화를 받습니다. 사방의 안개가 걷힙니다 몇 년 동안 꼭 안고 살아온 시의 그늘도 걷힙니다. 나는 벌판에 전신주처럼 서 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열심히 당선소식을 퍼 나릅니다. 흥성거리는 햇살이 벌판에 가득 차올라 있습니다.

 

금방 사연이 바짝 말라버립니다. 나는 홀로 두리번두리번, 꼼짝없이 벌판에 붙박여 있습니다. 알알이 드러난 내 몸뚱이를 내려다봅니다. 부끄럽습니다. 다시 어딘가로 숨고 싶습니다. 내일이면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 내 몸뚱이 가려줄 어둠 한 폭 정도는 여유가 있겠지요.

 

먼저 부족한 시를 선뜻 뽑아, 시의 꽁무니에 불을 붙여주신 오세영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고맙습니다.

 

허락도 없이 시의 소재로 차용한 이 땅의 그늘 깊은 사람들께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땅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시를 채찍질해주던 여러 스승들과 친구들에게도, 고집불통 글쟁이 남편 때문에 내내 마음에 바람만 안고 살아가는 아내에게도, 올망졸망 예쁘고 순결한 내 어린 눈망울들에게도, 고마움 한 구절 이렇게 뽑아 올립니다.

 

 

 

 

[심사평] 고통을 긍정으로 극복하는 힘 돋보여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강산의 천렵’, 김연아의 밤의 지평선 아래’, 김중곤의 불알을 끼우며’, 문정의 하모니카 부는 오빠4편이었다.

 

이 중 천렵은 천렵의 의미가 은유화되지 못하고 지극히 식상하다는 점에서, ‘밤의 지평선 아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에서, ‘불알을 갈아 끼우며는 해학적이라는 장점은 있으나 산문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각각 제외되어 자연히 하모니카 부는 오빠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는 현실적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고도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에 큰 장점이 있는 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아픔으로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힘 같은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미덕이 있는 시다.

 

그래서 이 시는 전반적으로 화사하다. 그렇지만 그 화사함이 추하거나 가볍지 않고 따뜻하고 정답다. 진솔하고 꾸밈 또한 없다.

 

마치 한 소녀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꿈과 희망의 속삭임을 듣는 것 같다. 현실 인식의 시들이 대체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데 반해 이 시는 긍정적이고 밝다.

 

캄보디아에서 온 한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삶 속에 있는 킬링필드의 고통조차도 모성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앞으로 큰 시인으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해본다.

 

심사위원 오세영,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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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 김륭

 

 

1.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할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들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 내키는 데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2007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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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는 지독한 슬픔의 일종,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해

 

당신, 이젠 절망할 일만 남았군.”

 

마산 우무석 시인이 내게 한 첫마디다. 도대체 이건 또 뭔가? 역시 나보다 수가 높군. 빙그레 웃는 데는 몇 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당선소식을 푸드덕, 한 마리 새처럼 날려보냈더니 번쩍, 한 마리 물고기로 토막쳐 되돌려주는 솜씨란. 좀더 깊고 아프게 울어야겠다는 내 가슴을 뒤집어 절망이란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만들어주는 시인이 곁에 있다는 건 행복인가, 불행인가?

 

그러니까 최근 내가 알게 된 몇 가지를 말하자면 이렇다. 구름이 택시보다 빠르다는 것, 허공도 축구공 같은 공이어서 요리조리 잘 몰고 다녀야 한다는 것, 가끔씩은 발을 헛디뎌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나를 좀더 두들겨 패고 비워낼 수 있다는 것이다.

 

느낌이 왔다. 얼마나 편한 일인가. 좀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죽음이 삶을 살살 달래가며 데리고 산다는 느낌이 당선 통보와 함께 뒤통수를 쳤다. 고백건대 나는 아직도 시()를 잘 모른다. 다만 삶도 죽음도 간섭할 수 없는 아주 지독한 슬픔의 일종이어서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한참을 울었다. 외롭다는 말이 뿔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웃었다. 겨울 하늘보다 꽁꽁 얼어붙은 가슴으로 웃는 일이란,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온몸에 돋아난 뿔부터 삭여야 했다.

 

감히 부를 수 없는 이름들이 너무 많아 가뜩이나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복잡하다.

 

동국대 김선학 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마산대 이성모 교수님, 시사랑경남지회 회원들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족한 내게 지리산의 힘을 안겨주신 지리산 시인들의 큰형님인 선덕형과 병우형께, 나의 보물 권갑점, 정경화 시인을 비롯한 함양문협 회원들과 지리산문학회 회원들께 이 영광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단미, 문화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큰절 올리며 평생 그 은혜 잊지 않고 살 것을 약속드린다.

 

 

 

원숭이의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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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적 발상·상상력 뛰어나현실 고통을 경쾌하게 노래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최찬상의 폐가 앞에서’, 이용헌의 게발’, 김륭의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3편이었다. ‘폐가 앞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난하고 안정돼 있다는 점에서, ‘게발은 시적 형성력이 뛰어나고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으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점이 다소 진부하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어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는 시적 발상과 그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현실의 크고 작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될 정도로 마취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에서 오는 이 위안의 마취력은 실은 현실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화자의 능청스러운 독백이 시종일관 시 전체를 끌고 가는데, 그 화자는 실은 대응력이 결핍된 실직자다. 실직당한 이의 고통스러운 현실적 상상력이 이러한 역설적 상상력의 시를 낳은 것이다.

 

선자들은 그의 상상력의 뿌리가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스러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크게 신뢰가 갔다. 엄숙함과 진지함에서 벗어나 이토록 경쾌하게 고통을 노래함으로써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도 드물다.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천양희·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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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 최명란

 

 

늦은 밤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가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꼭 솟대에 앉은 새 같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대다가 휴대폰이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솟대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의 날개는 많이 꺾여 있다

솟대의 긴 장대를 꽉 움켜쥐고 있던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3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영동대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도 있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마치 자기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이 드러난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밤고양이 같았다고

남의 운전대를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같았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아니야, 넌 우리 마을에 있던 솟대의 새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솟대 끝에 앉은 우리 마을의 나무새는 언제나 노을이 지면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장대 끝에 앉아 물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친구여, 이제는 한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물오리의 길을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함께 가자

깊은 밤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급하게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사라지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오늘밤에도 서울의 솟대 끝에 앉아 붉은 달을 바라본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빛은 반짝인다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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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솟대 끝 나무새처럼 날고 싶다

 

내가 새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었고, 내가 안다고 믿고 있는 것들도 정녕 모르고 있는 것이었으며, 아래로 흐르고 있다는 것 역시 위로 흐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소통되지 않음에 절망하고, 절망으로 넘어질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서야 했다.

 

그런 내게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이는 솟대 끝에 앉은 나무새였다.

 

함께 날고 싶었다. 날고 싶은데 날개가 없었다. 그 막막한 상황을 뒤집는 박수소리는 바로 당선 소식이었다.

 

이제 단단한 등에 날개를 달았다. 내 딸 진이가 가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묻고 까르르 웃는다. 나도 함께 웃는다. 웃음이 이내 눈물로 바뀐다. 이래서 우리 삶은 때때로 감동적인 것을! , 우리에게 이야기가 아닌 것이 어디 있으며 노래가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솟대 끝에 앉은 나무새 한 마리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다.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나도 함께 가야지. 베란다 화분의 풍로초도 그 사이 또 한 송이 꽃을 피웠다.

 

 

 

 

이별의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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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적 형상화 탁월상상력 빼어나

 

당선작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외 네 편을 응모한 최명란씨의 작품들은 그 어느 시를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좋을 만큼 빼어난 것들이다. 탁월한 시적 형상화 능력과 적확한 언어 구사, 기발하면서도 활달한 상상력, 절제된 담백한 어조는 이 신인의 만만치 않은 문학적 내공을 짐작케 한다. 작품들은 주로 고된 삶을 다루고 있다. 노숙자, 보도블록 까는 청년, 꼬막 캐는 여자, 야간 대리운전사 같은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명란씨의 시들은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면서 어떤 안쓰러운 사실들의 풍경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대상과의 거리를 요구하는 그 풍경은 소외된 인생들의 어두운 풍경이기도 하지만, 심미적 안목과 감수성으로 걸러진 언어들에 의해 언어예술로 승화된 풍경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승규씨의 대추나무 이력서2편도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규씨의 시들은 맛깔스러운 언어들로 빚어낸 정감있는 이미지, 연기론적인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시적 긴장을 늦추는 산문적인 요소들이 흠이었다.

 

고원효씨의 작품 중에서는 미더덕의 맛코가 만들어지기까지두 편이 관심을 끌었다. 말의 우연성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시적 전개 방식은 재미있고 독특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적 울림을 이끌어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응모자 모두에게 정진과 향상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심사위원 황동규·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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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제사 / 박지웅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2005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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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의 길목숨걸고 달릴 것

 

페르시아왕자라는 게임이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도저히 건너뛸 수 없는 벼랑이 나타난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그 벼랑을 건너는 길은 어이없게도 그냥 달리는 것이었다. 달리면 그 허방에 길이 생기는 것이었다. 목숨을 걸 때 비로소 길은 몸을 내어주는, 시 앞에는 이런 투명한 길이 있고 그 의심을 견디게 해준 것은 시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믿음이 월등히 강한 것만은 아니어서 나는 자주 추락하였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키고 부축해준 것은 노부모의 지성과 병고와 땅에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나를 일으킨 것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사람들, 나는 병들고 지친 것을 먹고 일어났으니 우선 그들에게 백배사죄하고 그 발에 입맞추어야 한다.

 

아무리 나누어도 줄지 않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광주리를 받은 듯 든든한 한나절을 보내며 감사드려야할 선생님을 떠올리니 한두 분이 아니고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사방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다만, 마음 둘 곳 없던 내게 서슴없이 책상자리를 내주었던 은영, 재훈, 추계문우, 내게 언제나 기쁨인 황금펜시문학회원들은 따로 적는다. 끝으로, 자발적 수난자를 응원해주신 문화일보와 난사뿐인 내 시의 가능성에 이름을 걸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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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감칠맛 나는 문장 묘한 울림

 

예심을 통과한 열다섯 명의 작품이 심사의 대상이 되었다.

 

예년과 비교해 볼 때 응모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내용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삶의 궁핍과 고단함의 구체적 경험을 다룬 시가 의외로 많았다. 형식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경향보다는 무난한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신인다운 패기와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 작품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것은 박지웅과 노양식씨의 작품이었다. 노양식씨의 푸른, 복어의 집2편은 시적 형상화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는 주목을 받았으나 의미의 귀결이 단조로운 것이 흠이었다. 한 편의 시에 담겨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결론이 아니라 음미할 만한 어떤 것이다. 이미지와 리듬, 사유 혹은 심리의 전개 과정, 그리고 말을 넘어서는 침묵과 여백까지, 그 모든 것이 언어예술로서의 시에서는 음미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박지웅씨의 즐거운 제사 6편은 섬세하면서도 격조있는 언어감각으로 눈길을 끌었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삼색나물처럼 붙어다니는 아이들’ (즐거운 제사)에서 보듯 감칠맛이 나는 문장, 마음이 스며 있는 언어, 한 편의 묘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솜씨는 보기 드문 것이다.

 

다른 시 대관령옛길도 언어에 대한 빼어난 감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 짝 앞에 찰랑거리는 곤줄박이의 저 맑은, 흥분//명자나무의 몹시 아름다운 한때’. 이견 없이 박지웅씨의 즐거운 제사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황동규 최승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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