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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 / 이여명


고삐를 당겼다 팽팽하게 공중에 줄을 치며 외줄로 잡아당겼다 말뚝은 말뚝대로 소는 소대로 잡아당겼다 소가 한 번 잡아당기면 말뚝이 한 번 잡아당겼다 소 힘만큼 말뚝에게도 힘이 있었다 소가 바깥으로 끌어당기면 말뚝은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쪽에서 놓으면 저쪽에서도 놓았다 서로 모르게 끌어당길 수는 없었다

검게 박힌 말뚝으로부터 소는 달아날 수 없었다 말뚝도 한 발 움직일 수 없었다 서너 발 거리에서 말뚝은 소를 소는 말뚝을 바라보았다 말뚝이 없으면 소 없고 소 없으면 말뚝 없었다 이 말뚝에 소뿔때기를 오래 비빈 적 있었을 것이다 그때 말뚝도 제 뿔때기를 소뿔때기에 비벼대었을 것이다 소가 스스로 고삐를 맬 수 없듯 말뚝도 스스로 땅을 뚫지 못했다 말뚝이 땅에 박혀 있지 않으면 말뚝이 아니었다.

 

 

 

 

말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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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마음이 오히려 무덤덤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에게 목표지점의 설레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탓일까.


나는 내 글에 대하여 온전한 글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쓰다가 지우고 다 쓰고는 이게 무슨 글인가 하고 처음부터 다시 쓰곤 하였다.


내 딴에는 되었다 싶을 때도 자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 내 생각대로 쓰다가 너무 오버하는 것 등,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깊이를 내 안목으로 모르듯 시의 깊이를 어찌 알겠느냐고 자신을 질타하곤 했었다.


처음부터 시를 쓰겠다고 나서진 않았다. 20여년 공직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 사는 것과 지역의 풍물들을 느끼며 무언가 기록하여 퇴직할 때 한 권 책으로 만들고자 시작한 게 별나게 시로 태어날 줄이야.


나이가 들수록 시가 어렵다고들 하나 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쓰고자 한다. 이제 〈말뚝〉처럼 한 곳에 박혀 시의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스스로 시의 〈말뚝〉을 치고자 한다.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창과 지도교수 서지월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목마시’ 동인 여러분들이 늘 가까이에서 격려해주신 덕분이라 생각하며, 대구시인학교 회원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가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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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000편이 넘는 응모작중 〈즐거운 늪〉〈아카시아〉(정경희), 〈봄에 온 편지〉(우경화), 〈별 하나에 세상의 눈빛이 젖어 있다〉(이상윤), 〈추풍령 소망교회〉(하재청), 〈할머니의 부르튼 손〉(박정일), 〈복날〉〈개구리 소리〉(조훈성), 〈봄동〉(조영현), 〈말뚝〉(이여명) 이렇게 8명의 10편이 심사위원들의 논의 대상이 되었다. 낡은 시어가 거듭 들거나, 수사에 무리가 있거나, 소재나 주제가 평범하거나, 형식이 구태의연한 작품들은 걸러내기로 했다. 따라서 주제가 새롭고 시어 꾸림이나 형식이 기성 문인들과는 변별성이 있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세웠다.


탈락 작품이 하나하나 가려지고, 〈아카시아〉와 〈말뚝〉이 최종선에 올랐다. 〈아카시아〉가 토속적인 말로 깔끔하게 꾸린 대화법이 뛰어났으나 기교에 비해 주제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뚝〉이 남았다.


원래 제목은 〈빈 말뚝〉이나, 심사위원들은 〈말뚝〉이란 제목을 쓸 것을 조건으로 ‘당선’에 합의했다. 산문시로 비교적 개성이 뛰어나고, 너와 나(나+타자)의 존재성을 암유하는 기술이 감각적으로 돋보여서 뽑았다.

심사위원 신세훈, 최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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