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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해설가 / 권지현

 

 

휘돌던 매 부리내린 능선에
나무구름 풀구름 흐르고
바위틈 얼비치는 물빛 건너온
숲 해설가 어깨에
날아와 앉는,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산초나무 나란히 사람들 멈추어선다

 

저기 양 팔을 층층이 펼친 건 층층나무구요,
이건 누리장나무, 뒷간에 심어 냄새를 중화했지요
잎을 뜯어 냄새 맡아보세요

 

산뽕나무 가지에서 머리 들고 돌아보는
구름표범나비 애벌레, 눈 사이 일렁인다
잎새 건네받은 얼굴에 푸른 수액이 돌아
촉지도 읽듯 나뭇결 더듬대며 쓸어보는 사람들,
양평 봉미산이 들어올린 잣나무 사이로
다래덩굴 타고 내린다
은빛 가지 틈틈 부신 해, 머리 위에서 화선지를 펼치고
바람에 결 다듬은 잎새를 뒤집는 숲으로
호랑지빠귀 푸르르르 날아올라
촘촘히 타래 풀리는 빛,
나무뿌리 밑으로 플러그를 꽂는다
산 아래 굽어보던 자작나무가
비탈 얽어내린 뿌리를 땅껍질 위로 차고 오른다

 

 

 

 

작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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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세상과 이어진 길들을 걸어들어가는 데 저는 늘 늦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총명했더라면 조금만 더 사리분별에 지혜로웠더라면… 그 길들이 쉽게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우수수 흰 눈발에 묻혀 떨어져 내리는 오후에 저는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사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창작 속으로 몰입하는 순간으로의 잠행을 지상 최고의 자양분이라 생각하며 퍼즐 같은 언어의 사원에 발디딤을 이제 막 즐기게 된 참이었습니다. 탁 트인 세상과 정신으로 올곧게 나아가 사물과 사람들 틈으로 내려서겠습니다. 그리하여 풍경과 사물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묘사와 이미지가 되고 서사 구조가 되고 의미 있는 반향이 되는, 생기 도는 시를 빚겠습니다.

아픈 저를 다독여 사람답게 빚어주신 존경하는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정현언니, 숙현이, 성현이, 수민이, 성순이, 은정이, 국민대 학우들과도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부족함 많은 저를 선해주신 신세훈·이근배·손해일 세 분 심사위원님, 모교의 큰 스승이신 신대철 선생님, 주종연 선생님, 황동규 선생님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돌올한 언어와 정신으로 문학의 새 장을 펼쳐 보답하는 길을 가겠습니다.

 

 

 

 

[심사평] “57편 본심 … 깊이있는 성찰 높이사”

많은 응모작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것이 57편이었다. 이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숲 해설가〉 〈신명〉 〈귀농일기:방아꽃 밭에서〉 〈착각 혹은 능청〉 〈무청다듬기〉 〈벌초〉 등 6편이었다. 각기 신춘문예투의 시류를 벗어난 참신성과 뚜렷한 개성으로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지만,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고민 속에 〈숲해설가〉 〈신명〉 〈귀농일기〉 3편으로 압축했다.

다시 최종 논의와 숙고 끝에 권지현의 〈숲 해설가〉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대화체를 깔끔하게 안배한 표현의 묘와 감칠맛 나는 언어 조탁 능력을 높이 샀다. 당선자의 다른 응모작 4편도 고르게 수준이 높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조훈성의 〈신명〉은 탈춤과 마당놀이의 신명을 사설조의 질퍽한 언어로 잘 형상화했으나 언어의 과잉과 간추림 부족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박형권의 〈귀농일기〉 역시 농촌 현장을 실감나게 포착한 구수한 입담과 해학적인 문체가 돋보였으나 너무 현란한 사설이 언어 절제 면에서 흠이 됐다. 아쉬움 속에 응모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신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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