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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감을 찾아서 / 안차애

 

 

1

배꼽에서 비스듬히 3cm 위쪽 지점을 깊이 맞뚫어

피어싱(piercing)*한다

생각보다 많은 출혈량은 있었지만

멧돼지 어금니 모양의 둥근 봉 두 개를 마주 꽂아

기쁨을 장식한다

바야흐로 성인식이다

 

어제는 들소 뿔 모양 장신구를

그제는 사슴의 목뼈 모양 링을

며칠 전엔 상아 모양 고깔을

미간에 귓바퀴에 귓불과 입술에 바짝 매달았다

비로소 야생 동물의 더운 피가 쿵쾅거리며 온몸을 뛰어다니고

 

2

사냥감이야 늘 지천이다

혼다 4기통 오토바이로 시속 100km 남짓 달리다 보면

알타미라 동굴 근처의 바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지중해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악을 쓰다 느닷없이

오츠크해산 고래 한 마리가 친구 입 속에서 튀어나오는 걸

깔깔대며 잡기도 한다

 

취향이야 늘 바뀌기도 하므로,

오늘밤엔 늙은 아버지의 가슴뼈 밑에 숨어 사는

느린 곰의 촌스러운 진지함을 새삼 사로잡아

혓바닥에 박고 싶다, 아주 기학적으로

 

* 눈 코 배 등 신체의 일부를 뚫어 멋을 내는 장식

 

 

 

 

 

2002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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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한숨·욕지기도 꽃들의 향연'

 

부산일보사의 당선 통보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빈 교실에 있었다. 하루 전날 방학을 했으므로 교실은 물론 학교 전체가 물속 처럼 조용했다.

 

빈 교실의 적막함과 호젓함이 하도 좋아 본의 아니게 제일 늦게 퇴근하는 선생님, 일요일이나 방학 때 살짝 교실로 스며들곤 하는 선생님이 되었다. 생업의 터전인 교실이 꿈꾸거나 넋 놓고 쉴 수 있는 나만의 별천지로 잠시잠시 변신해주는 그 힘으로 매일을 탈 없이 살아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른도 훌쩍 넘어 찾아 온 시에 대한 짝사랑도 마찬가지다. 엄마이거나 아내 혹은 선생님이거나 이웃집 아줌마인 빤하고 팍팍한 일상을 문득 반짝임으로 속삭임으로 눈맞춤으로 환하게 변신시켜 주는 묘사와 은유의 꽃밭.

 

그 속에서는 내가 매일 먹고사는 한숨도 욕지기도 시장바닥 같은 소란스러움도 더 이상 시끄러운 신파가 아니다. 제 빛 제 발돋움 갸륵한 꽃들의 향연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감사한 이들이 너무 많다.

 

시의 씨앗을 가슴에 심어준 부산의 선배님,시의 떡잎 내는 법과 꽃피우는 법을 '보리 문둥아' 애칭으로 부르시며 일러주신 문학아카데미의 박제천 선생님,더 넓고 풍요로운 시의 꽃밭으로 나가게 해주신 황동규 김창근 두 분 심사위원님과 부산일보사에도 다함 없는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4년 전쯤에 서울의 변방인으로 편입해 아직도 서럽고 안타까운 것이 많은 나에게 고향이 준 너무 큰 격려이다.

 

 

 

 

치명적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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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강렬한 파괴력과 참신한 감각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26편이었다.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인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그만큼 어슷비슷한 완성도에만 급급한 작품이 많아 미흡한 바도 적지 않았다.

 

기법은 초현실주의를 내세우려는 것 같은데 무의식을 통한 인간 해방의 세계관이 없는 것, 유독 산문시 형태의 시편들이 많은데도 리듬을 살리기 위한 고통의 흔적마저 없는 것 등이 두드러지게 거슬렸다.

 

비록 높은 수준이 아니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찾아 나서는 개성적 순례자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선자들의 공통적인 주문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복천동고분' '화석' '길 아래에 집이 있다' '사냥감을 찾아서' '방음벽' '등대이발관'의 여섯 편이었다. 용호상박으로 자웅을 겨룰 만하였으나, 다들 결승점에서 머뭇거렸다. 틀을 깨뜨리지 않고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없는 법, 마침내 여러 가지를 참작하여 안차애의 '사냥감을 찾아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했다.

 

당선작 '사냥감을 찾아서'는 자칫 규격 일탈의 즐거움에만 그칠 위험이 없는 바는 아니나, 완성품 만들기의 안전 운행에 여념이 없는 대부분의 '괜찮은 작품'들에 역행하는 강렬한 파괴력과 참신한 감각을 높이 살 만했다. 앞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크게 떨쳐 일어나리라는 잠재력까지 감안하였음을 참작하여 좋은 작품 많이 써 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동규·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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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쌈 / 이채운

 

 

이글거리는 대낮의 갈증과 찌부덩한 기분
갖고 싶어 움키고 싶은 것들까지 척척 포개 얹어
온 세상 푸르른 마음의 살로 포옥 싸서
한입 그득한 달관의 맛을 만나고 싶다

 

짙은 향기가 시든 입술 열어주고
환한 목구멍으로 노래가 흘러 나오게 한다면
흙살 비집고 나온 눈과 귀,두런거리는 물소리와
공기의 춤이 어울린 정신의 꼭대기로 올라간다면

 

어린 시절 나는 짠 온갖 생활의 감각들
뒤섞여 독이 되는 찌꺼기조차 오래삭힌 된장처럼
부드럽고 상큼하게 千手大悲의 큰 손바닥 내밀 듯
크게 거두어 감싼다면,

얼마나 감칠 맛 나는 세상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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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새로운 천년의 열림을 앞두고 이를 젊은 감성들이 열어재치는 장쾌함을 기대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많은 시들이 새로움보다는 과거 우리가 만났을 법한 언어구사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삶에 대 한 인식이 치열하지 못하고 엷어서 그러할까. 그런 가운데 예심에서 올라 온 작품들은 한결같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다.


최종적으로 겨루었던 작품은 서문지의 '왕릉을 지나며'와 최경화의 '감 자 심는 날', 김미명의 '홍옥을 문지르고 있으면' 그리고 이채운의 '상추 쌈'이었다. '왕릉을 지나며'는 시상의 고른 전개가 무리가 없고, 죽음과 탄생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무덤을 통해 드러내면서, 이를 융합하고 떠올 리는 마음의 움직임이 미세한 곳까지 이르고 있다. 다만 부적절한 세부묘 사와 이를 얽어짜는 구조의 힘이 균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끝 까지 남았다.

 

'감자 심는 날'은 소박하지만, 그만큼 진솔한 말을뽑아내는 힘을 느끼 게 해준다. 생각의 폭을 좀 더 넓혔더라면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홍 옥을 문지르고 있으면'은 묘사와 의미전달이 정확한 것이 호감이 간다. 작 품으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을 만큼 잘 짜여져 있으나 소품에 머무른 게 아 쉬웠다. '상추쌈'은 대수롭지 않은 것을 말의 얽어짬을 통해 심각하게 변 환시키는 솜씨를 보여준다. 심사를 하면서 시의 일부분에 대해 첨삭을 했 다는 점을 밝힌다.

 

의미전달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마음'과 '정신'이라는 말이 생경해서 시의 이미지들을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서정과 감각의 구조에 대한 좀 더 예리한 시선이 따라준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 가운데 '상추쌈'을 당선작으로 뽑으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 까지 경쟁을 벌였던 작품들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제나름의 장점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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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호 소녀 / 우광훈

 

 

꿈꾸듯, 한 편의 오래된 우화(寓話)가 소녀의 동공 깊숙이 스며든다. 소녀는 과묵하고 비밀스런 눈빛으로 책장만을 넘겨댄다. 별이 뜨고, 소녀는 마을 어귀 파피루스 숲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이 있는, 때론 우아하고 권위적인 무덤이 있는 이곳 오시리스 동물원으로 흘러든다. 바다표범도, 펭귄도, 사막여우도, 치타도, 판다도 없는 이곳에는 햇볕에 잘 그을린 허허로운 얼굴에 키 큰 금발의 코끼리가 있다.

 

소녀는 향수어린 얼굴로 코끼리를 바라보다 석관 속에 놓인 접시저울을 조심스레 끄집어낸다. 타조깃털만큼이나 가벼운 그녀의 심장. 사육사의 경쾌한 신호음에 맞춰 코끼리가 저울 위로 올라선다. 똬리를 튼 비단뱀처럼 매끄럽게 내려앉는 그녀의 영혼. 순간 불꽃이 흩날리고, 파도가 울부짖고, 사자(死者)가 춤을 춘다. 기괴하고, 음울하며, 극도로 염세적인 그들만의 연극. 불멸을 향한 오래된 문명의 허망한 몸짓.

 

나일강에 물그림자 드리우고, 피안(彼岸)에 다다른 소녀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목욕을 한다. 늙은 고양이처럼, 별과 달이 질 때까지

 

그녀의 푸른 목덜미 아래로

 

모래 이빨 자국만이 선명하다.

 

1770호 소녀= 1976년 맨체스터대에서 로잘리 데이비드 박사가 집도한 이집트 미라. 학자들은 방사능 분석을 통해 서기 105~405년 사이에 미라로 제작된 갈색 눈의 소녀로 추정하고 있다.

 

 

 

2011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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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저는 분명히 미쳤어요. 미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요. 앨리스는 왜 거울 속으로 들어갔던 것일까요? 사건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3년 전, 한 무명 소설가는 소설이란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쉽게 말해 코커스 경주에서 그 흔한 골무조차 받지 못했던 거죠. 이후, 그는 하루 종일 깜깜한 토끼굴 속을 헤매며 책만 읽었습니다. 재미있고 기이한 이야기만이 시간을 세워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가는 문득 시()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시가 나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오래된 동경과 해묵은 오해 때문이었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오로지 시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1월의 어느 날, 그는 아내의 조언과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곧장 하트여왕이 있는 성으로 3편의 원고를 보냈습니다. 이후, 그는 우체국에 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 시의 목을 베어라! 저 시의 목을 베어라!" 3주일 뒤, 멋진 제복을 차려입은 물고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거울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처구니없음에 한동안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 그날 밤, 그는 밀려드는 두려움에 좀처럼 잠들지 못했습니다. 툭 튀어나온 자신의 이가 한없이 부끄러웠으니까요. 존경하는 장토끼 형의 충고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 나는 드디어 파멸해버린 것일까요? 그렇게 뒤척이다, 스르르 잠들어버렸습니다. 입가엔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소설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다시 눈을 뜨면, 세상은 온통 지루한 일상과 무관심으로 바뀌어있으리라는 것을. 그런데, 험프티 덤프티를 만나려면 도대체 어느 길로 가야 하는 거죠? 시냇물인가요? 아니면 양의 가게인가요?

 

 

 

유쾌한 바나나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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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언어의 구체성과 상상력의 탁월함

 

마지막까지 남은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 3, 박윤근의 '말티즈와 아내' 2, 박승일의 '비 내리는 법' 2, 우광훈의 '1770호 소녀' 2편 등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었다. 네 사람 모두 언어의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만만치 않은 수준과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손상호의 '시미즈 터널'은 긴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동안 다양한 감각으로 그려낸 상상력이 돋보였다. 이 한 작품만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다른 작품이 너무 처져 있었다. 박윤근의 '말티즈와 아내'는 시를 형성할 줄 아는 능력과 선명한 환기력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구체성이 시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말티즈가 죽어도 그 딸랑거림을 그리워할 것이다."라든가, "아내는 土耳犬으로 남고 싶어 하는/저 바다 빛 그늘 진 눈동자를 보았을 것이다."와 같은 이미지들을 높게 보았다. '당선작'으로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역시 '2''말티즈'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다른 작품들의 경우 무리한 설정과 그에 따른 언어의 '과부하'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박승일의 '비 내리는 법'은 재기발랄한 말솜씨와 상상력, 거침없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억지가 없는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붕에 걸린 구름의 뼈를 다 발라"내고, "샛강의 입이 건너편 뚝방까지 죽 찢어져"가는 이 작품 또한 충분히 당선의 영예를 안겨줄 만 했으나, 어쩌랴, 이 응모자에게도 작품 간의 심한 편차가 걸림돌이 되었다. 작품 공모에 여러 편을 응모할 경우 그 수준이 고르지 못하면 뽑는 이에게 불안감을 주게 마련이다.

 

네 사람의 시 가운데, 우광훈의 '1770호 소녀'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함께 보내온 나머지 두 작품도 똑같이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선작에서 보듯이 이 작품은 스케일이 참 크다. 시인의 상상력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깊은 사유를 거느린 채, 그것도 아주 느리게, 우주와 역사, 문명세계를 거닐며 현실과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시인은 문장부호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닦아 쓰는 말의 절차탁마가 보였고, 행간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오랜 내공이 느껴졌다. 신뢰가 가는 시인이다. 묵묵히 '장인'의 길을 걷기 바란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도광의(시인문인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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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골반 / 석류화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나갔다 날개 끝에 고인 몇 점 물방울무늬, 방문 밖으로 날았다 돌담에 피는 씀바귀꽃 그늘을 옮겨다녔다 나비 날개엔 먼지가 끼지 않았다 한 꿈, 계단 입구에서 두 날개 맞접고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환한 꿈, 나는 오래전 그녀의 골반을 통과한 나비였다.

 

2

 

초음파상 골반뼈는 하얀 나비 같았죠 그녀의 골반뼈에 종양이 생겼을 때 보았던 그 나비, 그러니까 그녀의 꺼먼 엉덩이살 안에 나비 날개가 굳어 있었던 거죠 나는 잘 벌어지지 않는 날개 사이로 미끄러져 나왔던 거죠 나도 작은 나비모양 엉덩이를 달고 나왔던 거죠 그러니까 그녀가 힘겹게 좌판에 쪼그리고 있었을 때, 날품팔이, 품앗이 할 때 그녀 속의 나비가 조금씩 앓고 있었던 거죠 이 지상 마지막까지 날고 있을 나비, 그러니까 내 속을 빠져나간 어린 나비는 지금 내 앞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고 있는데요

 

 

 

201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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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늘 불안한 나를 지켜준 가족에 감사

 

때마침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었습니다. 거세게 끓기 시작하며 김을 내뿜는 저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떨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등점! 그렇습니다. 나에겐 이 비등점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늘 끓기 전에 멈춰버렸거나 식은 내 몸과 영혼을 달래며 다시 끓기 직전까지 올려놓는데도 오래 걸렸습니다. 돌아보면 반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움이 비등점에 이르면, 무언가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그곳을 바라보고만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곳을 향하여 늘 심지를 달궈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고 소외된 것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나를 보았습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얘기를 가장 필요없고 사소한 것에 걸어서 얘기하는 방법을 모색해보았습니다. 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불가능에 대해 무릎 꿇었습니다. 오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모든 게 시와 귀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시를 썼지만 아직도 쓰지 못한 한 줄을 위해서 앞으로 살아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짧을 수밖에 없는 시 속에서 그 한 줄을 위해 나를 바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고통과 아픔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감각은 무디기만 합니다. 앞으로 많이 달라지지 않을 듯한 자신을 그래도 또 닦달하고 몰아붙일 것입니다.

 

책상 머리맡에 붙어 나를 항상 바라보는 근취제신(近取諸身), 원취제물(遠取諸物), 이 말의 귀한 뜻을 깨우치게 해주신 계명대 문창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의 몸을 들여다보라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늘 불안한 나를 애정으로 바라봐준 가족들과 선후배님들께도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부끄러운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심사평] 정확한 언어로 시상 엮어 나가는 솜씨에 신뢰

 

예심을 거쳐 올라온 25명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갈래였다. 안정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익숙한 문법의 작품들과 언어의 긴장이 돋보이는 패기 넘치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안정적인 작품들은 패기가 부족하기 쉽고, 언어의 섬세함이 시선을 사로잡는 낯선 문법의 작품들은 공허한 말놀음의 혐의를 넘어서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두 사람이 각각 숙독하고 5편씩 고르니 겹친 한 작품을 포함해 9편의 작품이 다시 선별되었다. 논의 끝에 4편을 최종 후보로 골랐다. 권분자의 '여우비' · 성은주의 '검은 고양이 카바레의 검은 고양이 신사' · 김승훈의 '입술에 관한 새들의 보고서' · 석류화의 '그녀의 골반'이 그것이다.

 

권분자의 '여우비'는 삶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이 돋보였다. 언어 수련의 과정을 잘 거쳤음을 짐작게 하는 적절한 비유의 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산문적 발상이란 아쉬움을 남겼다. 성은주의 '검은 고양이 카바레의 검은 고양이 신사'는 시적 언어의 활달한 운용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의욕이 넘쳐 정작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이에 비해 김승훈의 '입술에 관한 새들의 보고서'는 언어 자체의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실험적 작품이었다. 상상력의 참신함과 더불어 구조적인 완결성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신춘문예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영탄의 언어는 시의 진정성과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흠결을 드러냈다. 반면 석류화의 '그녀의 골반'은 핍진한 삶의 굴곡을 고루 살피는 성숙한 시선이 깃들여 있었다. 정확하고 곡진한 언어로 시상을 잔잔하게 엮어나가는 솜씨가 신뢰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투고한 작품들 모두 완성도가 높고 수준이 골랐다. 반면 젊은 패기가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같이 남겼다. 심사위원들은 탄탄한 사유구조와 시적 완성도라는 관점에서 석류화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합당한 행운을 차지한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송재학(시인엄원태(시인·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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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 / 최정아

 

 

한 떼의 구름이 내게로 왔다. 한쪽 끝을 잡아당기자 수백 개의 모자들이 쏟아졌다. 백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의 모자도 나왔다. 그 속에서 꽹과리 소리와 피리 소리도 났다. 할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어깨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삼십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모자를 긴 손에 들고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자 속에서 망사 모자를 집어 들었다. 망사 모자를 쓰자 세상도 온통 모자로 가득했다. 빌딩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꽃들은 모자를 벗겨달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새떼들은 모자를 물고 날아갔다. 수세기에 걸쳐 죽은 친척들도 줄줄이 모자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할아버지는 꽹과리를 치고 새들은 노래를 부르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바다로 간다. 둥둥둥 북을 친다. 풍랑에 빠져죽은 영혼들이 줄지어 걸어 나온다. 파도에게 모자를 던져준다. 모자를 쓴 파도가 아버지처럼 걸어온다. 갈지자로 걸으며 손을 흔든다. 친척들은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춘다.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고 넘어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 아버지 모자를 다시 구름이 빼앗아간다.

 

 

 

혼잣말 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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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먼저 저의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박재열, 안도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습니다. 이게 사실인가. 아닐 거라고 부인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이 더 나고 울음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얼굴을 드니 먼 행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앞이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선 또 뭔가 꿈틀거리는 것도 있었고요.

 

중학교 때 아버지를 한줌의 재로 바다에 뿌리면서 소녀시절부터 허무를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꿈을 자주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빛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상 속의 물고기 같았습니다. 나는 그 물고기를 잡으러 이 바다 저 바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물고기가 바로 내 안에 있었고 어두운 강을 거슬러 오르려고 그동안 몸부림치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물고기를 잡게 해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김영남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채찍이 이렇게 큰 영광으로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이제 그 물고기를 꺼내 넓은 바다로 보내야겠습니다. 이유 없이 투정부리면 묵묵히 받아준 남편, 함께 공부하며 큰 힘이 되어준 정동진 회원 여러분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께도 이 영광을 올립니다.

 

 

 

바람은 색깔을 운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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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친 21명의 작품을 읽으면서 대체적으로 신선한 감각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거개의 작품이 산문적인 발상이거나 묘사에 그쳐 있어서, 패기 있는 언어의 구조물이라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시가 삶이나 자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는 날카로운 인식과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런 뜻에서 최정아의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 이정희의 광흥창문 두드리는 것들, 류화의 그녀의 검은 봉지, 김승훈의 곤달걀의 비명, 김지훈의 바다 복사실, 이담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정학명의 구름정원의 기억등은 사물을 보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서 시의 기초가 튼튼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검은 봉지는 이야기체를 못 벗어나는 한계를 보였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가상의 공간을 제시하는 만큼 리얼리티가 부족한 것 같았고, 곤달걀의 비명은 곯아버린 병아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돋보였으나 강한 인상을 줄 만한 이미지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광흥창문 두드리는 것들은 베란다의 식물을 극화한 것은 신선했으나 역시 식물들의 구체화가 아쉬웠다. 바다 복사실, 구름정원의 기억,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는 현실과 상상, 외계와 내면을 무리 없이 넘나드는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바다 복사실은 재깍거리는 복사실의 이미지를 바다 이미지와 멋지게 오버래핑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효과를 내는 데는 미숙해 보였다. 구름정원의 기억은 터프한 호흡이 매력적이었지만, 사물을 형상화하는 능력에서는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만 못했다. 최정아의 이 작품은 활달한 상상력에서 터져 나오는 내면세계가 제의적(祭儀的)으로 살을 채워나가면서도 상당한 예술적인 즐거움과 깊이를 주어,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 없었다.

 

심사위원 박재열 경북대 교수,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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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 / 이장근

 

 

결혼을 코앞에 두고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은

여자를 결과로만 받아들였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고 닫히는 문

물은 떨어진 곳에 과녁을 만든다

어디에 떨어져도 적중이고 무엇이 떨어져도 적중이다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

물은 과녁을 만들어 적중을 알렸다

적중을 알리며 너는 왔다

온몸에 파문처럼 돋던 소름

빗나간 너의 말도 떨어지는 족족 적중했다

사랑처럼 민감한 것이 또 있으랴

이유 없이 떠나도 결과는 적중이었다

이유 없이 너는 가고

나는 안개 같은 거짓말로 너를

미워했다, 그리워했다, 지웠다, 썼다

사랑처럼 가벼운 것이 또 있으랴

구름이 되어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다

지치면 낱글자가 되어 떨어졌다

지금도 비가 온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밤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투신할 것인가, 투신하는 족족

파문을 일으키며 적중할 것인가

 

 

 

 

꿘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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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어쩔 수 없는 유혹

 

시가 떠오르면 어쩔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하루 종일 2%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시는 나를 2% 부족한 사람으로 살게 한다. 아니면 2% 부족한 나였기 때문에 시를 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니 완벽한 것은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2%의 여백, 살랑살랑 여운을 남기며 가는 꼬리를 따라다녔다. 하늘도 어둠의 2%를 열어놓기 위하여 별을 띄웠으리라.

 

별이 빛나는 한, 지상에는 2%의 갈증을 느끼는 시인들이 노래를 부르리라. 부족하지만 나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당선통보를 받았다. 전화기를 들고 허둥지둥하는 나를 보고 있는 아내의 눈빛도 요란하게 떨렸다. 한나절이 지났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아들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시의 스승인 아모르파티님들과 어젯밤에 쓴 시를 오늘 아침에 들어주었던 제자들을 위해 붉은 마음을 펴서 장미꽃 한 송이를 접는 중이다.

 

 

 

당신은 마술을 보여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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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서른 분의 작품을 다시 검토해 본 결과 남은 작품은 '황소'(서은교), '아가리 마을'(이규), '가야동 계곡'(김순자), '아스팔트 킨트'(김우연), '입이 없는 비평'(최문희), '나무별똥'(문성록), '불안의 거처'(김지고), '일획'(정수원), '마네킹'(박정수), '소금밭의 기억'(김중곤), '바늘'(김명희), '파문'(이장근), '토마토'(하숙욱), '등피를 닦으며'(박선영) 등이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신춘문예의 특성상 새로운 것에 천착한 나머지 일부러 문장을 비틀고 기발한 착상에 몰두해 난삽한 기교의 과잉에 의한 억지가 많았다.

 

비튼 문장이나 발상이 독특한 감각으로 살아나 신선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새로운 감수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하기까지의 데생의 기초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시단의 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난해한 아류의 것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새로움도 있고 표현의 신선함을 주는 작품으로 '일획' '마네팅' '소금밭의 기억' '바늘' '파문' '등피를 닦으며' 등을 들 수 있었다. 작품 하나 하나 놓고 볼 때 모두 독특한 포즈을 지니고 있어 오래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이 모두 고르다는 점에서 이장근의 '파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파문'은 자칫 통속적으로 떨어질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한 시적 비전에 의해 삶의 진지성과 감동을 주는 데 효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 깊은 비전에 천착해 좋은 작품을 생산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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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랜딩 증후군 / 김초영

 

 

파일럿 고래들이

피아노의 검은 건반처럼 일렬로 누워 있다.

그들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다.

 

중앙병원 307호실,

누워있는 엄마의 팔뚝에 옅은 햇빛이 스며든다.

오늘도 멍이 하나 더 늘었다.

의사는 건조한 표정으로 엄마의 굳어가는

관절들을 만져보곤 했다.

스스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 겁니다.

일종의 무의식 상태의 자살이죠.

의사는 녹음테이프를 재생하듯 또박또박 말한다.

녹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산소통이

조용한 병실의 오후를 조금씩 갉아 먹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고래떼는 죽고 말았다, 고 보도 되었다.

중장비를 동원해 바다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감행했지만 전부 살려 내지는 못했단다.

파일럿 고래들은 하늘로 날려던 것이었을까.

자살하기 위해 육지까지 올라온 고래들처럼

엄마가 가는 물줄기를 내뿜는다.

밀린 병원비가 불어나듯

투명한 오줌비닐이 노랗게 부풀어 올랐다.

 

신문에 죽어있는 고래들의 사진이 실렸다.

죽은 고래들의 미약한 주파수가 좁은

병실 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엄마도 저 주파수를 쫓아 육지로 가고 있을지 몰라.

흑백의 고래 사진을 오려 엄마의 머리맡에 붙여두었다.

고래의 순한 눈이 감기고 있다.

눈알이 오랫동안 따끔거렸다.

 

 

 

 

2007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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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언제 툭 하고 끊어질지 모르는 다리를 건너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리는 늘 위태롭게 흔들리고 갈수록 낡아가고 있었습니다. 한 발짝 내밀고 숨을 몰아쉬고, 또 한 발짝 내밀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날들. 영화관의 관객처럼 오늘은 제 모습을 지켜보며 석양을 맞이하겠습니다.

 

시를 쓰며 사는 것이 어쩌면 집착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힘들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시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닌 가만히 시를 보듬을 수 있도록, 온전히 삶의 진솔한 무게를 시 속에 실어줄 수 있도록, 부족한 제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꼭 약속드립니다.

 

지금 떠오르는 사람도 많고 감사드려야할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글로써 아파하고, 눈물짓는 나의 글동무 해경·주희·영미·나진. 글을 쓰는 한 영원한 나의 동반자인 선미와 오랜 우정의 결과인 재근·창민·학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또 학교 다니는 동안 글이 무엇인지, 글을 쓰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새겨주신 곽재구·안광·김길수·박청호 교수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예상치 못한 당선소식에 아무 말 없이 눈물만 쏟으시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하나뿐인 동생에게도 감사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를 눈물로 낳으시고, 눈물로 키우신 어머니! 이제야 당신에게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자식을 키우듯 내게 시를 길러주신 나의 영원한 스승,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 쪽이 저릿하게 울렁이는 나의 영원한 스승이신 송수권 선생님께 오체투지 마음으로 깊이 머리 숙여 절합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40여편의 작품을 검토한 결과 '스트랜딩 증후군' '에어워시' '비온 뒤' '타워버그' '' '오래된 가족' '2007 , 누드찍는 남자' '셋방' '젤리 시계를 차고 있는 소설가 P!' '장독대를 생각하며' '우물이 땀을 흘리네' '원진다방' '겨울 나방들의 초상'이 남았다.

 

여기서 최후까지 남은 작품은 김초영의 '스트랜딩 증후군'과 한의준의 '에어워시', 구민숙의 '비온 뒤', 김미숙의 '타워버그'였다. 신춘문예의 특성상 참신성에 몰두한 나머지 제목부터 특이한 것을 들고 나온 것들이 많았는데 그 대부분 시의 구조와 겉도는 것들이어서 아쉬웠다. 아니면 현대적 의미의 묘사적 능력은 돋보였으나 깊은 시적 비전을 동반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김미숙의 '타워버그'가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사물을 그려내는 입심이 남다른데가 있었으나 묘사 그것에 그쳐 시적 무게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흠이었다. 구미숙의 '비온 뒤'는 차분하게 처리하는 서정적 진행이 위트와 더불어 어떤 울림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참신성이 다른 작품에 비해 덜하다는 점에서 제외시켰다.

 

김초영의 '스트랜딩 증후군'과 한의준의 '에어워시'는 둘다 당선권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한의준의 또 다른 작품 '보일듯이 보일듯이''에어워시'와 더불어 충분히 매력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고래와 어머니의 이미지를 무리없이 연결시켜 나가는 '스트랜딩 증후군'이 상상력의 폭이 크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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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물고기 / 강경보

- 미래과학그림에서 -

 

 

미래의 어느 때에는

우리 살아갈 집이 달 옆에 있을 것이다

먼 지구의 일터로부터 귀가하는 일이

오늘 출퇴근하는 일 만큼이나 고되고 느린 것이 아니라

그냥 눈 한 번 쓱 감았다 뜨면

어느 사이 나는 우주정원의 앞마당에서 깨금발을 딛고

고층 빌딩 높이의 테라스를 지나 침실로 들어갈 것이다

은하수가 냇물처럼 반짝이며 별 사이를 흐르고

어린 시절 앞강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기억으로

가끔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고도 싶을 것이다 누군가

명왕성 뒤에 숨어서 우주적 망원렌즈로

얼음처럼 투명한 내 몸을 투사하기도 할 것이다

내 꿈은 비록 지금보다 육분지 오의 무게를 덜어낸

달에서 노니는 것이지만 그것은 촘촘하게 엮인

지구의 기억을 한 편 매달고 사는 일이 될 것이다

별과 별 사이에 빛의 길이 나고

택시는 허공을 날며 손님들을 태우고

어느 영화에서였지, 흰 천 조각으로 여인의 가슴과 음모를

붕대처럼 감으면 그대로 일상의 옷이 되는

그때는 사랑의 말도 한 번의 눈빛이면 되고

이별도 백만 광년 먼 별장에서 보내는

순간의 텔레파시면 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남아,

내 어항 속의 금붕어 한 마리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 저 얼음별로 헤엄쳐 가는지

어느 날인가는 앞강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앉아

오래 당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또 어떻게

저 별의 시간을 건너가게 되는지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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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검둥오리사촌이라는 바닷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참으로 별난 이름을 다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별난 이름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이름을 모처럼 갖고 있는 동물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오랫동안 시를 습작하면서 깊은 좌절을 겪었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어찌 어찌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붙들고 안 놔주는 집착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자학할 때도 있었다.

 

검둥오리도 아니고, 검둥오리가 아닌 것도 아닌 불편한 이름 하나 알처럼 품고서 수년간의 습관적 투고 여정을 거쳐왔다. 어느 중견 시인이 문예지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몇 년간의 신춘문예 투고에서 한 번도 최종심에 올라가 본 일이 없어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덜컥 당선이라는 통지를 받았다는.

 

그런 일도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지금 당해보니 막막함을 넘어선 먹먹함이 엄습해 온다. , 지금까지는 이랬는데, 앞으로는 과연 얼마나 더 해야 이 큰 상의 이름값을 하는 걸까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먹먹함을 오랜 세월동안 막막하게 견뎌온 힘으로 헤쳐 나가려 한다.

 

부족한 저를 꼭 마지막 날에 구원하듯 손 내밀어 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가르침을 주신 이승훈,이화은 선생님 고맙습니다. 시로 인하여 고민할 때마다 늘 옆에 있어 주신 이대의,차주일,문정영 시인님들 또한 고맙습니다.

 

시에 대한 갈급과 애증(愛憎)이 생길 때마다 기꺼이 제게 시간을 할애해 주던 시맥,풀밭,아도 그리고 시산맥 님들 또한 제 시의 밑천임을 감히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어머니,아내 숙,규민·태인과 친지들에게 오래 묵혔던 말을 꺼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우주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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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년보다 우수한 작품이 많아 반가웠다. 예심을 거쳐 넘어온 44명의 작품 중 검토해서 남은 작품이 강은새의 우주물고기’, 장진명의 흑두루미 주점’, 조혜정의 말을 굽다’, 장인자의 ’, 박태순의 쓸쓸한 퇴화’, 석지명의 일인용 매트리스’, 이순화의 풀꾹새’, 박소원의 흰 종소리가 울린다’, 류진아의 사내의 나라, 유토피아’, 임재정의 기차는 미루나무 이파리를 자나네’, 백상웅의 무림 책방’, 박지성의 실연의 꽃이 피었습니다’, 김영숙의 비평가 식당’, 황인숙의 호랑나비 겨울’, 정미경의 개를 위한 랩소디’, 강은미의 아름다운 추락’, 이근창의 구덩이’, 안정혜의 외줄에 묶인 사나이’, 박혜점의 선창포구’, 전향국의 대설주의보등이었다.

 

여기서 다시 논의해서 남은 작품이 우주물고기’, ‘흑두루미 주점’, ‘말을 굽다’, ‘일인용 매트리스’, ‘’, ‘호랑나비 겨울이었다. ‘은 짜임새도 있고 무게가 있는 작품이었으나 같이 투고한 작품 엇각이 작년 수준에서 별로 진전이 없어 보여 제외시켰고 호랑나비 겨울도 같이 투고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뒷받침되지 못해 제외시켰다.

말을 굽다는 능란한 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나 로 비롯되는 이미지 전개가 화덕으로 집약되는 상징성이 약해 보여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고, ‘일인용 매트리스는 현실성 있는 진한 이미지가 시선을 끌었으나 좀더 폭 넓은 상상력으로 구체화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우주물고기흑두루미 주점은 어느쪽 모두 버릴수 없는 작품이었다. 특히 장진명씨가 함께 투고한 작품 육교흑두루미 주점과 함께 수준을 이룬 작품이었으나 나머지 작품들이 고르지 못해 어쩔수 없이 투고한 다섯편의 작품이 모두 수준급인 우주물고기를 당선작으로 했다

 

우주물고기는 우주적 소재를 시적 환타지로 이끌어가는 수사법이 새로운 맛을 준다는 의미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 작품 자체만으로는 밀도가 여린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의 우포늪 통신이나 너도밤나무, 그대같은 탄탄한 작품이 뒷받침 해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하는데 이견이 없었다.

 

심사위원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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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가 된 신밧드 / 서영식

 

 

대리석 바닥 틈으로 발을 밀어 넣은 이끼

널브러진 빵조각을 뜯어먹는 푸른 곰팡이

빌붙어 사는 것들도 푸르를 수 있는 그 곳

서울역 지하도 바닥에 사내가 잠들어 있다

종일토록 모래를 이고 날랐을 머리칼 사이

탈출한 사막의 알갱이들도 빌붙어 잠잔다

맹독의 백사처럼 또아리 틀고 치켜든 고개

수건 하나만 사내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신밧드처럼 사내는 저 수건을 머리에 감고

대낮 온통 사막을 짊어 날랐을 것이다

 

신밧드를 태우고 날던 양탄자 끝이 풀려있다

드문드문 찢어진 흔적, 상처들이 선명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어둠에 길을 잃은 양탄자

캄캄한 비행, 도시 어느 빌딩 숲을 헤치다

빌딩을 박고 도시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다

사고는 어린 신밧드의 꿈들을 바스러뜨리고

양탄자의 나는 기능을 상실케 했던 것이

영혼은 밤이면 막차를 타고 어디로 떠나는가

멀리 해가 뜨는 사막을 비행하는 꿈으로

양탄자를 돌돌 말고 잠든 신밧드

 

그가 따뜻해 보이는 이유는 무언가

 

 

 

2005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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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함께 시를 읽으며 늘 격려하던 아내, 야윈 내 두 팔을 결국 푸르게 만든 아내 김현아와 딸 지민이에게 모든 기쁨을 넘기고 싶다. 사랑하는 장인어른과 장모님, 처재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내 형 서영준, 서영직, 하나 밖에 없는 누나 서미화, 친형 같은 자형 정광석, 그리고 늘 곁에서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오늘을 ! 빌어 머리 조아리고 싶다.

 

부족한 나의 손을 잡아주고 지적을 아끼지 않으신 동인[프리즘]의 모든 가족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서툰 펜 자국에 채찍으로 길을 터주신 채석준 시인님과 훈훈한 시마을양현근 시인님, 그리고 모든 문우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신춘문예당선, 그 한 통의 전화를 받고서야 온전한 입 하나를 얻었다. 입이 있으나 침묵하는 사람의 입이 되라, 세상 모든 무생물과 생물의 입이 되어 침묵만이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크게 외치라, 그렇게 소외된 모든 것들의 언어를 뱉으라고 온전한 입 하나를 달아주신 권기호, 정호승 시인 이하 모든 심사위원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지치지 않을 것이고 희망 잃지 않겠다. 오직 사물의 입이 되어 살면서 이 은혜를 시로 대신해 갚아가겠다.

 

 

 

 

간절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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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선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3편 중에서 다시 논의된 작품은 '집시가 된 신밧드' '무위도' '백설 호랑나비' '어린 골파' '오징어를 구우며' '옹이' '허공' '해변 여인숙' '남편의 외투' '엇각' '문진 메시지' '물속지도' 등이었다.

 

심사를 계속한 결과 최후까지 당선을 다툰 작품은 '집시가 된 신밧드' '어린 골파' '오징어를 구우며' '남편의 외투' '해변 여인숙' '엇각'이었다. '해변 여인숙'은 한편의 풍경화를 능란하게 그리고 있는 솜씨는 좋았으나, 시적 밀도가 약하다는 의미에서 제외됐다.

 

'어린 골파'는 유년의 아픔을 골파 냄새와 연결시켜 젖어오는 서정적 물결로 처리하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투고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었다. 이 점에서는 '엇각'도 마찬가지였다.

 

'오징어를 구우며'는 치열한 시정신이 돋보였으나, 굽고 있는 오징어와 화장터와 죄수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남편의 외투''집시가 된 신밧드'였다.

 

둘 다 놓치기 어려운 작품이었으나 시적 상상력이 유니크하다는 점에서 '집시가 된 신밧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신인이 보여주고 있는 '얽힌 실타래 푸는 법'이라는 작품도 특이한 시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당선작에서 노숙자의 모습을 유머와 페이소스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높이 살만했다.

 

심사위원 권기호(시인, 경북대 명예교수) /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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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가족 / 이동호

 

 

무상 임대 아파트 8층 복도,

한 덩이 어둠을 치우고 걸어 들어간다.

복도가 골목 같다.

이 골목은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도가 직장이기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이곳에서 사표를 낸다는 것은

極貧의 뜻이고,

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일층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승은 주로 일층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고층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시 죽음과 내통하는 셈이다.

작년, 두 사람이 일층으로 순간 이동했다.

올해는 벌써 두 명분의 숟가락이

고층에서 주인을 퍼다버렸다.

몇 사람 더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으니

한 두 집 더 빈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밤하늘은 눈치가 빠르다.

 

미리 弔燈을 내걸었다.

사람들은 아파트 속에 조의금처럼 들어앉아 있다.

일부는 여전히 복도를 서성이다가

아무런 말없이 일층을 내려다보곤 한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宗派가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들처럼

따른다.

 

 

 

조용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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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꿈을 꾸었다. 난생 처음 호랑이가 출몰했다. 내 꿈이 호랑이를 품었으니 吉夢이라 했다.

 

솔깃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열망 쪽에서 불현듯 소식이 왔다. 꿈속 호랑이가 물어다 준 신춘당선소식,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의식을 치르듯 신춘으로 보냈던 원고들이 나침반이 되어 나를 인도하고 있었던 것일까? 비로소 나는 그동안의 落選作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내가 드디어 신춘문예 당선 시인이 되다니'하고 감격해마지 않았다던 이수익 시인의 마음이 오늘 고스란히 내 것이다.

 

, 이 흥분, 이 감동,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불확실하다. 뺨이라도 때려 보아야 신뢰할 수 있을까. 오늘 봄꽃 같은 이름들을 호명한다.

 

어머니 여해영 여사, 장모님 이무순 여사, 나와 동충하초가 되어버린 해옥과 예나, 힘이 되어 준 두 분 누님과 여러 처형들, 한 주가 멀다하고 부산 중앙동을 오가며 함께 시 토론에 열을 올렸던 사람들, 그리고 고경숙 시인을 비롯한 '난시' 동인과 '창작노트' 인터넷 동인들, '시산맥' 동인들과 영남지회 문우들, 부산 부일여자중학교 박청정 교장, 전연희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전체 교직원들께 감사 드린다.

 

특히 내 꿈에 출몰해준 호랑이와, 연락주신 신춘문예 담당자와 아직 채 여물지 못한 시를 선뜻 뽑아주신 권기호, 정호승 두 분 선생님께도 큰 감사를 드린다.

 

좋은 시를 쓰는 것으로 꼭 보답하겠다. 창밖, 이제 아침이 탐스럽게 밝았으므로 거기 내 시를 꾹 눌러 찍고 싶다.

 

 

 

총잡이

 

nefing.com

 

 

[심사평] "담담한 필치. 적절한 언어 돋보여"

 

예심을 거쳐 온 40여 편의 작품에서 최후까지 남은 것은 '이월의 우포늪'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조용한 가족' '밥 나르는 여자' '새들은 날아간다' '술래잡기' '통장정리' '공단 세탁소' '신라 주유소' '파장' '소문' 등이었다.

 

모두들 그만그만한 목소리로 자기나름의 색깔을 지니고 있어 선뜻 이것이다 라고 손을 들어주기에는 몹시 망설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정서의 구체화된 표현의 적절성을 염두에 두고 고심한 결과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이월의 우포늪' '조용한 가족' '새들은 날아간다'로 압축되었다.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는 그 짜임새나 이미지 처리의 깔끔함이 흠잡을 데가 없었으나 신인다운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덜한 점이 아쉬운 것이었다.

 

'이월의 우포늪'은 고대와 연결시킨 상상력의 확대가 우포늪의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솜씨가 주목을 끌었으나 그것을 어떤 인생론적 내용으로 좀더 구체화시켰으면 하는 지적이 있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새들은 날아간다'는 신인다운 활달한 감성과 거침없는 이미지 구사가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시속에 지닌 내용과 엇박자 되는 구절들이 있어 보여 이것 역시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조용한 가족'은 가난이 빚는 아픔을 얄밉도록 담담한 필치로 그려나가고 있는 시선이 돋보인다. 시니컬한 이런 시선은 자칫 격정의 목소리로 떨어지기 쉬운데 끝까지 제3의 눈으로 이끌어 가는 능력이 호감이 갔다. 또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적절한 언어 구사도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거듭 말하지만 예심에 올라온 앞의 열한 편들은 보기에 따라 어디에 내어놓아도 당선작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더욱 분발을 바라며 정진을 빌 따름이다.

 

심사위원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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