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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 이정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

 

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

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

어두운 뿌리에 눈물 같은 첫 감자알이 맺힐 때 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운다

 

목마른 낙타가

낙타가시나무 뿔로 제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을 찔러서

자신에게 피를 바치듯

그러면서도 눈망울은 더 맑아져

사막의 모래알이 알알이 별처럼 닦이듯

눈망울에 길이 생겨나

발맘발맘,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

 

눈망울에 날개가 돋아나

망망가슴, 구름에 젖는 것들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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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자로 이정록 시인이 선정됐다.

 

박재삼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513일 예심을 통과한 10편의 시집 가운데 지난 63일 본심 심사를 통해 이정록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을 수상작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정록 시인은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등 아홉권의 시집을 냈다. <콧구멍만 바쁘다> 3권의 동시집, <대단한 단추들> 4권의 동화책, 산문집 <시인의 서랍> 등을 펴냈다. 2001년 제20회 김수영 문학상, 2002년 제13회 김달진 문학상, 2013년 윤동주 문학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박재삼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예심위원(유성호 평론가, 이영광·장만호 시인), 본심위원(김명인·이하석 시인)으로 구성해 시력 20년 이상 된 시인이 2016년 출간한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심사위는 박재삼 시인은 세상살이의 정한(情恨)을 절제된 문맥으로 되살려낸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다. 그는 풍경과 언어가 시적 비유로 통합되어 새롭게 확장된다는 사실을 우리말의 창조적 활용이나 전통시학의 재발견을 토대로 실현해보였다이정록 시인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은 시인의 표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들의 환한 표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간의 방심 위에 얹히는 영롱한 시의 모습이기도 했다고 평했다.

 

이하석 김명인 본심 심사위원은 이정록 시인은 시가 생의 허기 속에서만 똬리 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무르녹는 풍상을 통해서도 흘러넘친다는 것을 수많은 가편(佳篇)으로 증명해 보였다때로는 능청스럽기조차 한 그의 물활론적 세계관은 우리 서정시의 또 다른 중심과 만나려는 시도로서도 충분히 개성적이다. 특히 수상작이 된 시집에서도 이러한 성취는 두드러지는 바, 일찍이 박재삼 시인이 추구한 해맑고도 아련한 살림의 시학을 정통으로 이어받고 있다고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5회 박재삼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78일 오후 4시 사천시 박재삼문학관에서 박재삼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경숙)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다.

 

19회 박재삼문학제는 7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박재삼문학관 일원에서 개최되며, 7일 전국 학생 시 백일장, 8일 청소년문학상 결선, 일반부 백일장, 박재삼 시 암송대회 결선, 세미나, 문학의 밤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한편, 박재삼 문학상 역대 수상자는 제1회 이시영 시인을 시작으로 이상국, 이문재, 2016년에는 고영민 시인이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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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여인숙 / 이정록

 

 

요구르트 빈 병에 작은 풀꽃 심으려고

밭두둑에 나가 제비꽃 옆에 앉았다

나잇살이나 먹었는지 꽃대도 제법이고, 뿌리도 여러 가닥이다

그런데 아니, 뿌리 사이에 굼벵이 한 마리 모로 누워 있다

아기부처님처럼 주무시고 있다

 

한 송이는 하늘 쪽으로

한 송이는 포대기 속 잠결 아래로

그리고 또 한 송이는 곁에 잇는 감나무 가지를 향하고 있다

저 감나무에 올라 울음보를 터트릴 거라고 입술을 떠는 꽃잎들

어떻게 본래의 이부자리대로 제비꽃을 심어놓을 것인가

요구르트 빈 병 허리를 매만지다가, 안에 고여 있는 젖 몇 방울을 본다

몸통만 남아 있는 불상처럼, 지가 뭐라고 젖이 돌았는가

 

울음보만 바라보며 몇 년을 기다려온 굼벵이

그 아름다운 허리를 오래 내려다본다

할 말 아끼다가 멍이든 제비꽃에게도 합장을 한다

문득 내 손가락의 실반지 그 해묵은 뿌리에 땀이 찬다

제비꽃 아래의 고운 숨결에 동참하고 싶어

내 마음 감나무 새순처럼 윤이 난다

 

흙 속에 살되 흙 한 톨 묻히지 않고, 잘 주무시고 계신다

이미 흙을 지나버린 차돌 하나,

살짝 비껴간 뿌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먼 훗날의 제 울음주머니만 굽어보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여러해살이라고, 그리하여

차돌 같은 사리로 마음 빛나는 것이라고

 

 

 

제비꽃 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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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가 주관하는 제20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에 시인 이정록(李楨錄·37)씨의 제비꽃 여인숙이 선정됐다.

 

유종호 황동규 최승호씨 등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대해 말의 맛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과 살가운 상상력이 넘치는 시편이라고 평했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현재 홍성여고 한문교사로 재직 중인 이씨는 충남 홍성여고 한문교사로 재직중인 이씨는 이제 내 옷에도 단추 하나가 매달리게 되었으니 옷깃을 여미는 자세로 문학을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그간 벌레의 집은 아득하다3권의 시집을 냈다. 시상식은 12월 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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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거처 / 이정록

 

 

개구리의 눈은 쌍무덤이다

저승을 열었다 닫았다 이승 쪽에 긴 혀를 내민다

오뉴월에 상을 치러본 사람은 안다 곡비哭婢의 무덤이다

등에는 산판 작업복을 배에는 상복을 지어 입었다

 

개구리의 영혼은 뒷다리에 있다

넓적다리의 무게가 없다면 물 밖으로 눈을 내놓을 수 없다

먼 하늘로 날아가고 싶은가 물밑 하늘에 배를 대고

구름의 능선을 넘는 상여처럼 비스듬하게 떠있다

뒷다리에서 얼이 빠져나가면 수장水葬이다

상복이 하늘 쪽으로 뒤집힌다

 

사람의 영혼도 머리나 심장에 있는 게 아니다

허벅지에 있다 위엄 있게 죽는 게 소원이지만

병실에 눕혀진 채 자신의 눈자위에 무덤을 파는 사람들

나날이 솟구치는 사성莎城*, 침상 머리맡 좀 올려달란 말과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남은 열 마디 가운데에 여덟아홉이다

귓구멍이며 혀뿌리까지 구름이 몰려들건만

새 다리를 허우적이며 바깥세상에 시비도 걸고 싶다

 

침대 좀 세워 줘!

꺼져드는 묘혈墓穴을 링거 줄이 잡아당긴다

수액이 스미는 만큼 가라앉는 뒤통수, 이장移葬한 무덤자리처럼

베개도 쉬이 꺼진다 땅땅했던 영혼이 졸아들기 때문이다

등짝 어디께로 운석이 떨어진다 화상이 깊다

등창燈窓, 부화의 실핏줄이 번지기 시작한다

뒤통수가 어린 새의 부리 같다

세웠던 침상을 뉘고, 야윈 새처럼 등을 보이며 엎드린다

비상을 도우려는 의사와 간호사의 흰 날개깃이 바빠진다

죽음은 영혼을 부화시키는 일, 허벅다리에서

배까지 올라온 영혼의 새가 머릿속으로 치고 올라온다

이윽고 숨이 멎는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흰 깃털이 스르륵 덮힌 다

수평을 잡고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 구름장에서

다리가 긴 빗줄기가 내린다

 

장례식장 사층, 신생아실에선

겨우 발가락만 내민 올챙이들이 물장구를 친다

작은 주둥이가 햇살에 마르지 않도록

탯줄의 이똥이 천천히 떨어진다, 강보에 누워

다리를 들고 꼼작인다 첫 걸음마는 날갯짓을 닮으리라

발가락 끝마디에 물방울 추를 매달고

허공에 걸음마를 내딛는 어린 영혼들

 

* 묘혈墓穴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뒤에 반달 모양으로 둘러막은 둔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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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와 계간 '서시'가 주관하고 서울 종로구가 후원하는 '8회 윤동주 문학대상' 수상자로 시인 이정록(49)씨가 22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영혼의 거처' 9편이다.

 

한편 '젊은작가상''저녁의 계보' 4편으로 시인 김병호(42)씨에게 돌아갔다.

 

이씨와 김씨는 상금 1000만원과 300만원을 받는다. 시상식은 928일 오후 5시 서울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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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이정록

 

 

2. 수상작품 :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외 4편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무값이 똥값이라
밭 가운데에 무를 묻었다
겨울에만 생겼다 없어지는 무덤
봄이 될 때까지 수도 없이 도굴 당하는 무덤
절만 잘하면 무를 덤으로 조는 무덤 밭 한 가운데에
겨우내 절을 받는 헛묘 하나 눈맞고 있다 저 묘 속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얼마나 많이 머리를
들이미셨던가, 그 누가 시퍼렇게 살아 있기에
한 집안의 머리채를 모조리 다 잡아채는가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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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정진규(시인), 오세영(시인, 서울대 교수), 조정권(시인), 최동호(시인, 고려대 교수)


4. 심사평

「이정록의 유머와 슬픔」

사는 일과 마찬가지로 글 쓰는 일에도 기복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그 동안 아름다운 시를 써 온 장석남은 긴장을 풀고 있고, 송찬호는 아예 붓을 걸어 놓고 있다(그 나이에 일 년에 짤막한 시 세 편밖에 발표하지 않다니).예심을 거쳐 넘어온 그 밖의 다른 시인들도 자신들의 이름에 걸맞는 작품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정록은 작년에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고, 또 이번에 예선을 거쳐 넘어온 몇 편의 시가 작년 수상작품과 겹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작년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의 하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저했다. 그러나 상은 심사한 작품 가운데 가장 나은 작품을 쓴 시인에게 주는 것이고, 이정록의 경우 겹치는 작품을 빼고도 자신이 개척하고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데 충분했다. 예를 들어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를 보면 채소값이 ‘똥값’이 되는 농촌의 고통스런 현실이 전제되어 있으면서도 ‘무 무덤’에 들어가려면 고개나 허리를 숙여야 하는 것을 ‘절만 잘하면 무들 덤으로 주는 무덤’ (‘무덤’과 ‘무의 덤’이 가지고 있는 발음의 유사성에도 눈을 줄 것) 같은 유머로 처리하는 시인의 여유가 보인다. 그 여유는 그러나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 ‘한 집안의 머리채를 모조리 다 잡아채는’ 슬픔으로 끝난다.
유머와 슬픔은 곧은 것보다도 구부러진 것이 더 간절함이 있다는 「구부러진다는 것」에도 나타나고, 죽을 때 촉수였던 눈을 공양하는 달팽이의 눈을 ‘씨눈’으로 보는 애절한 감각의 「씨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표본으로 선정한 작품 속에 들어 있지 않지만 「주름살 사이의 젖은 그늘」,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서부극장」을 물들이고 있는 것도 이 유머와 슬픔이고, 그것은 앞으로 한동안 그에게 가치 있는 광맥으로 남아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정록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열매보다 꽃이 무거운 生이 있다
-「슬픔」전문

같은 어느 정도 성공한 아포리즘이다. 이것도 유머와 슬픔의 반경 안에 들어 있지만, 그러나 이런 ‘멋진’ 아포리즘은 시의 근원인 노래에서 멀어지기 쉽다.(황동규)

 

 

파란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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