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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여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 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은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 때 그 곳에서 뿌리 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 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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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제15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시부문 안상학 시인, 시조부문 이승은 시인이 각각 선정됐다.

 

해남군(박철환 군수)이 주최하고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 열린시학에서 주관하는 고산문학대상은 국문학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문학정신을 잇기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시부문은 안상학 시인의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실천문학사, 2014), 시조부문은 이승은 시인의 <넬라 판타지아>(책만드는집, 2014)가 각각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안상학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애써 꾸민 흔적이 없어 무심히 적어간 산문과 같이 작위적인 교성이나 가성을 거의 쓰지 않지 않지만 무게와 깊은 울림이 예사롭지 않은 드문 시적 배포의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또한 이승은 시인은 일상적 체험을 시적 서정세계로 승화시킨 <넬리 판타지아>의 시편들이야 말로 시적 진정성과 감성이 자아올린 역작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수상자로 선정됐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시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김사인 시인(동덕여대 교수), 조오현(신흥사 회주), 김제현 시인(가람기념사업회 회장)이 참여했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 기간 중인 오는 1017일 오후 3시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며, 상금은 각 1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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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 강형철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老母

옛 기억이 되살아나시는지 밥 안치는 일을 자청하신다

손목 아래로 빚어지는 정겨운 리듬

썩썩 씨스럭, 써-억 써억 썩

바가지가 요란해진다

쏟아지는 수돗물이 시원타며 손등이 웃고

어둑한 집 안의 오후가 환해진다

 

어머니 일흔아홉이니

쌀 씻어 밥 안치는 일은 칠십 년은 됐으리라

짚풀은 부지깽이로 아궁이에 넣어 지피고

한참 후엔 전기밥통에 쌀 씻어 안쳤으리라

 

식구들의 사발에 깨끼밥도 푸고

때로 고봉밥 눌러 펐으리라

떨어지는 밥알은 손으로 주워드시면서

 

“엄니, 다시 시집가도 되겠네, 쌀 씻는 소리 들응게”

“야 좀 봐라, 못 혀는 소리가 없네, 떼-엑!”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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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시부문에 강형철 시인, 시조부문에 김영재 시인이 선정됐다.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는 2014년도 고산문학대상에 시부문 수상시집은 강형철 시인의 ‘환생’(실천문학사, 2013),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김영재 시인의 ‘화답’(책만드는집, 2014)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선고위원으로 시부문에는 정우영 시인, 이민호 시인, 시조부문에는 오종문 시인, 박명숙 시인이 6월과 7월 두 달 동안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출간된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시인, 김준태 시인, 민영 시인, 김제현 시인(가람기념사업회 회장), 박시교 시인이 수고했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행사와 함께 오는 10월 18일 오후 3시 해남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각 부문별 1000만 원이다. 고산문학대상은 지난 2001년에 제정해 8회까지는 학술과 시조 작품 1인에 대해 시상해왔으나 9회부터는 시와 시조 부문으로 확대했다. 또한 수상자는 계간 ≪열린시학≫에 특집으로 소개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상으로 그 위상을 격상시켰다.

계간 ≪열린시학≫ 2014년 가을호는 이들 시인들의 대표작과 연보, 시인론, 작품론 등을 특집으로 꾸며진다.

한편 고산문학대상 수상자인 강형철 시인은 전북 군산 출생으로 1985년 ≪민중시≫ 2집에 「해망동 일기」외 5편의 시를 발표하고, 시집 ‘해망동 일기’(1989), 평론집 ‘시인의 길 사람의 길’(1993)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재 시인은 전남 승주 출신으로 197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도서출판<책만드는집에서 시집을 비롯해 여러 분야의 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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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내밀다 / 맹문재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 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3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사과를 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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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13회 고산문학축전에서 맹문재 시인이 시부문 고산문학대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번 수상시집은 ‘사과를 내밀다’이다.


고산문학대상은 국문학의 비조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잘 우려낸 고산시가의 문학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국내 문학상 가운데 상당한 권위와 명예를 지니고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마친 뒤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공고를 졸업한 맹 시인은 한 때 공장생활을 한 적이 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수상소감에서 맹문재 시인은 “고산문학대상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고산의 시들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오우가’를 비롯한 ‘산중신곡’, ‘어부사시사’를 읽고 이번에 발견한 점은 화자가 움직인다는 것 이었다”고 말했다.

고산은 부단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맹 시인은 “그 움직임이 이치를 벗어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치를 지향하는 바가 분명했지만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고 여유로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고산의 시에는 감정에 의지하지 않고 품위를 지니고, 담백한 시선이었지만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아 고산의 어조는 힘이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이어 맹 시인은 “저는 고산의 시에서 움직임을 배웁니다. 이치를 고민하는 움직임, 새로운 이치를 지향하는 움직임, 물러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움직임, 개인을 넘어서는 움직임, 시비를 가리는데 타협하지 않는 움직임, 이약하지만 큰 움직임...등”이라며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신경림 시인은 심사소감에서 "'사과를 내밀다'의 시들은 사회문제나 노동문제를 남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화 하면서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이 점을 상당부분 극복해 내고 있다"며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시, 말장난으로 시종하는 시가 문학성 혹은 전위성 이라는 미명아래 횡행하는 우리 시단에서 이와 같은 시집은 아주 소중할 수 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해남군이 이끌고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 ‘열린시학’이 함께 주관했으며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조오현 큰스님이 펴낸 ‘적멸을 위하여’가 수상했다. 심사위원은 본상 심사에 김재현(현대시조포럼 회장·박시교(추계예술대 문창과 교수)·신경림(시인)·정희성 시인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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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 장날/ 이영춘

 

 

올챙이국수를 파는 노점상에 쭈그리고 앉아

후루룩 후루룩 올챙이국수를

자시고 있는 노모를 본다

정지깐* 세간사 뒤로 하고

한 세기를 건너와 앉은

푸른 등걸의 배후,

저문 산그림자 결무늬로

국수올들이 꿈틀꿈틀

노모의 깊은 주름살로 겹치는

허공,

붉은 한 점 허공의 무게가

깊은 허기로 내려앉는

한낮.  

 

 

 

 

봉평 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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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삶의 진실에 닿아있는 시적 진술

 

본심에 올려진 여덟 권의 시집 중 봉평 장날을 뽑았다. 나머지 일곱 분의 시집들이 수상작으로 미흡해서가 아니다. 수상작으로 뽑아도 될 만큼 좋은 시집과 패기 있는 시집들 가운데에서 선자들이 주목한 것은봉평 장날에 실린 시들이 보여주는 평이한 표현과 소박한 감정들이 친근하고 신산한 삶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들어내고 있다는 그 구체성이 여타의 시집들과 변별성을 보여주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영춘의 시는 흘러간 아날로그 시대의 턴테이블에 바늘과 레코드판을 다시 올려놓는 것과 같은 시적 감흥과 스잔한 감동을 준다.

 

화려한 수사력과 세련된 언어 구사의 시들이 체험된 삶을 모태로 형상화되지 않는다면 시적 공감의 약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이영춘의봉평 장날연작시를 읽어보면 여전히 유효하다.

 

알다시피 시인은 그가 태어난 강원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 시인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고향인봉평에 대해 연작시를 써왔다고 밝히고 있다.

 

봉평은 올갱이 국수를 길가에서 쭈구리고 앉아 허기를 달래는 노모가 있던 곳이고, 누런 달력 뒷장에 더 이상 살 길이 없다고 유서를 쓰고 떠난 그의 이웃들이 살던 곳이면서, 지금은 밥장사하는 여 제자가 냉수 한 사발에 보리개떡 담긴 소반을 받쳐 들고 문지방을 넘다 넘어지는 휘는 곳이다.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아프다 이 불황의 팔다리가

 

이영춘의봉평 장날은 삶의 진실에 닿아있는 시적 진술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삶의 실질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경직화된 농촌 소재시에 하나의 반성적 징표가 된다. 축하한다.

 

심사위원 조정권, 허영자

 

 

 

오늘은 같은 길을 세 번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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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이 주최 및 지원,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오세영)와 계간열린시학에서 주관한 "12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에 시조부분 이상범 시인, 시 부분 이영춘 시인이 선정됐다.

 

시조부분 수상시집은 이상범 시인의풀꽃 詩經’(동학사, 2011)이다. 시부분의 수상시집은 이영춘 시인의봉평장날’(서정시학, 2011)이다.

 

고산문학축전위원회는 오는 1020일 고산문학축전 행사와 함께 고산문학대상에 선정된 두 문인에게 각각 시상금 1천만원을 수여할 예정이다.

 

고산문학대상자 선정은 심사위원 및 선고위원으로 방민호(서울대 교수)ㆍ이재복(한양대 교수) 황인원(중앙대)ㆍ정수자(아주대) 시조시인이 지난 6월과 7월 두 달 동안 20116월부터 금년 6월까지 출간된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본심 심사는 김제현(현대시조포럼회장, 가람기념사업회회장) 시인, 박시교 시인, 허영자 시인, 조정권 시인이 수고했다.

 

김제현 심사위원과 허영자 시인은 선정된 두 작품에 대해새로운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시조쓰기, 정결한 자연과 소박한 인정의 숨결을 담고 있는 건강하고 질박한 시라 고 심사평을 전하며, 현대시조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주기를 바랬다.

 

한편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오세영)와 계간열린시학에서 수여하는 고산문학대상은 지난 2001년 제정 돼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고산문학대상은 8회까지는 학술과 시조 작품 1인에 대해 시상해왔다. 9회부터는 시와 시조 시인을 각각 선정하고 있다. 수상자들의 작품은 계간열린시학에 특집 게재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상으로 그 위상을 격상시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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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항雁行 / 오탁번

 

 

해 설핏 기운 북녘 하늘로

나울나울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고래실 논바닥에서 벼이삭 쪼아 먹고

미꾸리도 짬짬이 잡아먹어

날갯죽지에는 보동보동 살이 올랐겠다

휴전선 넘어 날아갈 때는

형제끼리 총 겨누는 사람들이 미워서

물똥도 찍찍 내갈기겠다

날아가다가 좀 쉬고 싶으면

황해도 연안 갯벌에 내려앉아

북녘 사람들에게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와

천수만 갈대밭 흔드는

겨울바람 소리도 전해주겠다

압록강 건너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씨 뿌리던

광막한 만주벌 날아갈 때는

기럭기럭 기럭기럭 슬피 울면서

천오백 년 전 고구려 때

흙 속에 깊이 묻혀

여태껏 눈도 못 튼 볍씨의

긴긴 잠을 흔들어 깨우겠다

나볏이 줄지어 날아가는

이웃 형제처럼 수더분한 기러기 떼여

고구려 사람들의 鳥羽冠 깃털같이

못자리에서 쑥쑥 자라는 모를

마을 사람들이 두렛일로

한 모숨 한 모숨 모내기하듯

몇 천만리 아득한 북녘 하늘을

나울나울 정답게 날아가겠다

 

 

 

 

알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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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이 주최하고 고산문학축전 운영위원회(위원장 오세영)와 계간 '열린시학'이 주관하는 제11회 고산문학 대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오탁번 시인, 시조 부문에 박시교 시인이 16일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은 오탁번 시인의 '우리 동네'(시안)와 박시교 시인의 '아나키스트에게'(고요아침)다.

 

시인 오탁번은 1943년 충북 제천 출생으로 고려대 영문학과, 국문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1969년에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에 돌입했다.

오 시인은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8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시집에는 ‘1미터의 사랑’, ‘벙어리 장갑’ 등 다수와 시론집 ‘현대문학 산책’, 한국 현대시사의 대립적 강조‘, ’현대시의 이해‘ 등이 있다.

“정말 뜻 밖이다”라고 운을 뗀 오 시인은 이어진 ‘모국어에 대한 경례’라는 제목의 수상소감에서 “뜻밖인 만큼 처음소식을 듣고는 어리둥절했는데 며칠지나면서 고산문학대상은 소중한 기쁨으로 소중히 다가왔다”고 밝혔다.

오 시인은 또, “고산의 시적 상상력의 먼 지평에는 민족신화의 재생이라는 역사적 당위성을 갖고 있고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고귀하고 값진 것이 아닐 수 없기에 ‘모국어에 대하여 경례’하는 내 모습을 보고 고산 선생이 지긋이 웃고 계실 것 같다”는 소감을 발표했다.

이 날 고산문학대상 수상식에 앞서 삼호학당과 해남문화원 주관으로 고산 시가 중 자기가 애송하는 작품을 낭송하는 고산시가 낭송대회가 열려 대회에 참가한 고산을 사랑하는 어르신들의 소중한 시가 낭송이 행사장을 울렸다.

한편, 고산문학축전은 녹우당서 청소년 백일장을 시작으로 '고산의 뜰에서 시를 줍다'라는 주제로 '고산문학의 밤' 행사가 성황을 이룬 가운데 진행됐으며 15일 낮에는 해남 문학유적답사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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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를 바라보며 / 이건청

 

 

저기 반구대가 보이네

여기 살던 힘센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천지신명을 만나던 곳

이 땅의 혼령을 모시어서

숲을 일구고

바다를 일구어

사슴과 양과 호랑이와

소와 멧돼지와 족제비와 새를 거느리고

고래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부르던 곳,

저기 반구대가 보이네,

장수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상서로운 짐승 거북을 닮은

저 산등성이 아래 벼랑에

돌로 돌을 갈아

암각화를 새겼으니,

6천 년 전 저기 저 벼랑에

꿈을 새기고

바다로 나아간 사람들 있었네,

저기 반구대가 보이네,

그때 그 모습대로

엎드린 거북 한 마리 보이네

선연히 보이네.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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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이 주최하고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와 계간 열린시학이 주관하는 제10회 고산문학 대상 수상자가 선정됐다.

 

시 부문에 이건청 한국시인협회 회장, 시조 부문에 시인 김제현 씨.

 

수상작은 이 회장의 시집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동학사)와 김 씨의 시집 '우물 안 개구리'(고요아침).

 

상금은 각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1016일 해남에서 열린다.

 

고산문학 대상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자 2001년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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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비단벌레 / 최동호


부싯돌에 잠들어 있던

내 사랑아!

푸른 사랑의 섬광

가슴에 지피고 불 속으로 날아가는

무정한 사랑아!

 

소용돌이 치는 어둠 속에서

탄생한 유성이

지구 저편 하늘을 후려쳐

다른 세상을 열어도

태초의 땅에 뿌리 박혀 침묵하는
서글픈 불의 사랑아!

 

유성이 유성의 꼬리를 잘라

번갯불 밝히는 밤

은하 반년을 날아서라도 나는

네 얼굴을 보고 싶다

영롱한 빛 불꽃가슴을 점화시켜다오

말안장에 새겨진

비단벌레 날개빛* 내 사랑아!

* 비단벌레 날개빛 : 경주 황남패총에서 1970년대초 출토된 5세기 신라시대 유물. 말 안장 뒷가리게에는 비단벌레 날개가 장식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빛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세계적으로 주목받었다.

 

 

 

 

 

불꽃 비단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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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시인과 이근배 시인이 제 9회 고산문학대상 시 부문과 시조 부문 수상자로 각각 선정됐다.

 

수상 작품집은 ‘불꽃 비단벌레’(서정시학사 펴냄)와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시월 펴냄).

 

고산 윤선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01년 제정된 고산문학대상은 올해부터 시와 시조 부문 수상자를 각각 선정한다.

 

올해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발간된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유안진 시인 등이 심사를 했다.

 

상금 각 1000만원. 시상식은 10월17일 전남 해남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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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 / 남상진

 

 

너는 눈물 한 방울로 태어났다

 

보잘것없는 난생의 몸으로

막막한 물속 세상에서

파도를 견디며 살아내기란

눈물을 제 살 속으로 말아 넣는 일

짜디 짠 바닷물을 들이마시고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하고 연명하던 시절

깊은 수심의 물속을 견디는 일은

스스로 빈틈을 여며 단단해지는 것

 

태풍이 몰려와도

바위의 멱살을 부여잡고 버티던 하루가

물속에서 눈물 한 방울로 맺혔을까?

 

누군들 제안에 눈물 자루 하나 키우며 살지 않을까

 

아름답고 붉은 석양은

수면 위만 비추는 멀고 먼 그림 속 세상

 

밀려오는 세파에 온몸으로맞서고

일렁이는 너울에 흔들리며 키워온

단단하고 둥근 집

 

껍질 한 꺼풀 벗겨

입안에 넣고 깨물면

툭!

숙성된 향기가

온몸으로 번지는 너는

깊이 발효된 맛으로

오래된 봉인을 푼다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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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ㅡ시에게ㅡ

어딘가에 꽁꽁 묶여 있다고 여겼습니다
아주 굵은 밧줄을 달고 부동의 자세로 정박해 있던 나를 가위에 눌려 깬 골목에서 낯설게 만나곤 할 때마다 그리 멀지 않은 풍경이 내 안에 들어서지 못하고 스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난감한 일이라 여기기엔 묶여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젠 놓아야지
이젠 벗어나야지
한 꺼풀 벗고 뱀처럼 매끈하게 가야지
당신의 모습이 목젖에서 맴돌다 삼켜지는 하루
어둠에 꼬리 잡힌 짐승처럼 가르릉 거리던 밤에도
세상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쓰고 지우고 쓰고 버렸습니다

서러울 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석축을 쌓듯 당신을 내 안에 쌓았습니다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에도 당신은 내 안에 가지런히 쌓였습니다
손금보다 더 깊이 처마 끝 풍경소리보다 더 아름답게 나를 에워싼 당신은
나를 두른 완벽한 성입니다
계절을 건너온 바람과 성벽을 휘감아 도는 안개에도 젖지 못한 나는
당신의 색깔로 채색되고 내 안에 나는 없고 당신으로만 가득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젖은 옷을 염려하기보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에도 당신은 거부할 수 없는 또 다른 나이자 심중의 고향이었습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당신을 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부질없어도 당신은 내 안의 고귀한 신이고 종착역입니다
빗방울이 모인 계곡의 물처럼 청량하게 내 안을 흐르는 당신으로 나는 매일매일 젖고 행복합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벗어날 수도 쏟아 낼 수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계곡에 뿌리내린 자귀나무 꽃술처럼 당신을 가꾸어 가겠습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당신 속으로 더 깊이 나를 밀어 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당신을 기도 할 것입니다
나를 어루만져 주는 당신 품 안에서 평화를 이루겠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
당신을 더 섬세하게 섬기며 살겠습니다
손 등에 돋아난 솜털처럼 내 안에 뿌리 박힌 당신을
영원히 가꾸며 살아가겠습니다

일어서야지
떨치고 일어서야지
부질없는 이승의 티끌을 잡고 당기는
아둔한 줄다리기의 시간들
이젠 놓고 바람처럼 매끈하게 가야지
몇 천 겁을 걸어도 닿지 못할 고향이 내 안에 있었구나
한 뼘도 되지 않는 내 안의 우주를
왜 여태 모르고 살았나
잘 살펴라
눈을 크게 떠서
고도 없고 애도 없는 집에서 넌출넌출 살아가기를
이 새벽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부디 바람의 대 자유를 그대 안에 들이소서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당신의 우주에 들 시간입니다
부디,
다시 평화롭기를

코로나 19로 인해 지친 심성으로 모두가 어두운 한낮입니다.
부디 힘내시고
보잘것없는 시를 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의 품에서 더 열심히 놀고 아파하라는 격려로 알겠습니다.
시 앞에 더 바짝 엎드리겠습니다.

 

 

 

 

철의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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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2020년이 참으로 잔인하게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 폭우, 태풍 삼중고에 일상이 무너지고 경제는 물론 사회전반에 걸친 일반적인 행동이 제약을 받았고, 문화생활의 범위는 더 좁아졌다. 이러한 사실이 내 년, 아니면 내 후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에 앞이 더 아득하기만 하다. 벌써부터 코로나 이후의 경제와 문화를 걱정하는 학자들이 예측을 하거나 대책을 연구하기도 하는 것 같다.

 

어려운 시대나 시기일수록 시는 희망과 극복의 메시지로 역할을 다하여 왔고 또 그렇게 쓰면서 시인들 또한 버텨왔다. 그래서 애지문학회에서도 그간 쓴 좋은 작품을 모아 애지작품상을 심사하여 코로나19에 지친 독자들이나 회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여건으로 운영위원들이 모임을 갖지 못하고 온라인 상으로 예심에서 올라온 10여 편을 두고 최종 후보작 3편을 선정하였다. 남상진 시인의 「미더덕」과 최혜옥 시인의 「블랙 스완」 그리고 유계자 시인의 「붉은 맨드라미 아래」가 바로 그 해당 작품들이다. 공교롭게도 3편 모두가 올해 발간한 애지사화집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세 작품이 모두 작품성이 뛰어나 투표를 해준 회원들이 조금은 고민했을 법도 하다.

 

이번에 올라온 후보작품들은 사물에 대한 비유나 이미지를 갖고 시적자아를 확장해나가는 방식이 담대하고 진정성이 뚜렷해서 선자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았으리라고 본다. 9월 7일부터 21일까지 2주간 회원들의 투표를 마친 가운데, 박빙의 차이로 2020년 제7회 애지작품상은 남상진 시인의 「미더덕」에게로 돌아갔다. 남상진 시인은 2014년 애지로 등단하여 첫 시집 『현관문은 블랙홀이다』와 두 번째 시집 『철의 시대 이야기』를 상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시인인 듯하다. 그의 시세계는 어느 한 곳에 편향되어 있지 않고 다양성에 대한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예를 들면 「맹그로브」에서는 요양병원 복도를 걷는 맹그로브 뿌리같이 수척한 아버지를, 「사막의 내력」에서는 사막과 아내라는 교집합에서 서걱거리고 건조한 발자국의 아내를, 그리고 애지작품상에 오른 「미더덕」 또한 “미더덕”을 통해 드러내는 신산한 삶에 대한 껍질을 발효된 맛으로 풀어내는 것 또한 사물을 대하는 다양성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는 눈물 한 방울로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첫 행은 이 시의 서론이자 결론이다. 도저하고 강인한 결론을 지어놓고 그 결론을 풀어가는 그만의 시적태도가 사뭇 진지하고 단단해 보인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물에 대한 분별력을 잃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다양성의 상실 이유는 감각이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시인들뿐만 아니라 남상진 시인도 마찬가지로 감각이 획일화되는 것을 경계하여 독자들의 감성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왜곡시키는 것을 경계하길 바란다. 최종 후보작에 올라 좋은 작품으로 선전을 해주신 최혜옥 시인과 유계자 시인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아울러 지난 4년간 저를 믿고 따라주신 애지문학회 회원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심사위원 일동(심사평 회장 권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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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크기 / 조영심

 

 

그리움에는 닿지도 못할 한 뼘 엽서를 본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간절한 전언인 양

최초의 선언인 양

붙잡고 있는

 

방금 보았지만 돌아서면 다시, 울컥

보고 싶어지는 온몸이 서늘해지는 그림

 

몸과 정신의 이별을 견딤으로 버티는 벼랑 끝에서도 한 줄 소식에 달게, 매달리는 날들

 

단단한 그리움 아쉬움 모두를 이 작은 종이그릇에 어떻게 다 담을 수 있을까

 

바다 건너온 바람이 옆에서 소리 높여 활자를 읽어주자

다섯 줄 골똘한 단문

한 뼘씩 목마른 곡절로 행간을 넓혀가며

다섯 장 장문으로 커가는 중인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고 있을

그녀만의 방언,

내 속까지 파고드는 둥그런 파동

자꾸 터져만 간다

 

 

 

 

그리움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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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금방 보고 돌아서면 다시 딸이 보고 싶다는 어머니를 그리움의 높이로만 바라보며 돌아서던 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등으로 바람결에 날아든 낙엽처럼, <제18회 애지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습니다. 당황하여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또한 낭패스럽기도 하여 햇볕 쪽으로 옮겨 놓았던 화분들을 바라봅니다. 시들거리던 화초가 햇살비를 맞고 눈에 띄게 힘이 올라 잎들도 윤기가 흐릅니다.


문득 나의 시간도 거기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2005년 처음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송수권 교수님과 시 공부를 시작하여 <산문시사>문학 동호인들과 시를 공부하던 중 2007년 『애지』로 등단하여 시인의 이름을 달았고, 그 뒤 5년마다 『담을 헐다』 『소리의 정원』 『그리움의 크기』 시집 3권을 내놓았으니 2020년 올해로 15년 차 시인입니다.

 

신神이 파놓은 시詩의 함정에서 언어의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것이 시詩라면 저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신의 함정에 빠져 버린 셈입니다. 그분이 오실 때마다 그분과 함께 젖은 곳에서는 설움을 대신하는 곡비가 되었고, 필요하다면 광대가 되어 외줄을 탔습니다. 제가 한 일은 오직 그분의 방문에 기꺼이 혹은 기어이 응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응답의 즐거움으로 하루해가 짧았고 한편 한편의 기쁨에 뿌듯했습니다.

 

나의 시의 모지인 <애지문학상>이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를 쓴답시고 남의 울음에 내 설움을 섞어 곡하는 곡비 놀음은 아니었나? 어름사니 흉내 내며 어설프게 외줄에 올라 부채를 펴고 접는 잔재주만 부린 것은 아닌가, 뒤 돌아보게 됩니다.

 

<제18회 애지 문학상>은 아직 어설프고 빈곳이 너무 많아 그곳을 따스한 햇살비로 채워주신 거라 믿습니다. 나의 시도 어느 누군가에는 한 줌 햇살비가 되어 생기를 불어 넣으라는, 세상의 생명을 북돋우는 곡비요 어름사니가 되라는 주문의 말씀이라 믿습니다. 더욱 정진하라는 심사위원님들과 반경환 『애지』 주간님 격려의 뜻을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심겠습니다.

 

 

 

소리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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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지난해 겨울호부터 이번 가을호까지 각종 지면을 통해 발표된 시들 중에서 엄선된 10편의 후보작을 읽고, 그중에서 <애지> 2020년 가을호에 발표된 조영심의「그리움의 크기」를 제18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한해동안 생산된 그 많은 시편중에서 작품 하나를 고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정 기준도 심사자의 주관이 많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품의 미학적 완결성이 뛰어나고, 앞으로 애지문학상의 위상을 진취적으로 이끌 작품을 고르기 위해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조영심의「그리움의 크기」는 선명한 이미지와 깊이 있고 절제된 언어로 그리움의 정서를 실감있게 그려냈다. 이 시에 개입된 서사도‘휠체어에 앉은 그녀’나‘바다 건너온 바람’정도로만 노출되어 있어서, 시상의 전개를 압박하지 않으면서 외려 그런 서사의 여백이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이 시의 화자가 연민의 감정으로 지켜보는 “휠체어에 앉은 그녀”는,“몸과 정신의 이별을 견딤으로 버티는 벼랑 끝”생의 막바지에 도달한 사람일 터이다.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요양기관에서 지내는 듯하고, 거기서 그리운 사람들로부터 부쳐오는 엽서의 “한 줄 소식에” 매달려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칫 상투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던‘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이 시에서 생의 말년의 고독을 대변하고 그에 저항하는 삶에 대한 의지와 애착의 기호로 절절하게 읽힌다.“작은 종이 그릇”인 한뼘 엽서에 “다섯 줄 골똘한 단문”으로 시작하여 “다섯 줄 장문”을 넘어 “하늘과 땅이 알고 있을/그녀만의 방언”으로, 무한대의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는 게 그런 연유이다. 요즘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러 병원으로 간다. 현대인의 죽음의 장소가 치료와 재활이 목적인 병원이라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양원도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처소일 수도 있다.

 

시 「그리움의 크기」에서도 신체와 정신의 쇠락과 질병으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되는 노인 세대가 처한 현실을 언뜻 엿볼 수 있다. 그속에서 노년의 고독과 소외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의연하다.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지금, 이 시는 개인사적 이야기를 넘어 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삶과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높은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이에 광활한 삶의 영지를 대부분 잃고, ‘휠체어’라는 작은 영토에서 안간힘을 다해 그리움의 제국을 일으키려는, 삶의 비장미를 한껏 고양시킨, 조영심의 「그리움의 크기」를 올해 애지문학상으로 선정하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반경환, 송찬호(심사평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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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우물 / 이태수 

 


나무 그림자 일렁이는 우물에 

작은 새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간다 

희미한 낮달도 얼굴 비쳐보다 간다 

 

이제 아무도 두레박질을 하지 않는 우물을 

하늘이 언제나 내려다본다 

내가 들여다보면 

나무 그림자와 안 보이는 

새 그림자와 지워진 낮달이 나를 쳐다본다 

 

흐르는 구름에 내 얼굴이 포개진다 

옛날 두레박으로 길어 마시던 물맛이 

괸 물을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상화시인상 수상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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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로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낳는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지향과 추구로 더 나은 세계에 다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 수상 소감 중에서

 

이 시집이 보여 준 시적 성취는 그동안 그가 언론인으로 있을 때는 도달하지 못한, 인간으로서 대상을 바라보는 깊이가 확연히 깊어지고 돌올해졌다는 점, 자연과 인간 성찰, 특히 내면 성찰이 새로운 경지를 이루면서, “이게 시다!” 하고 우리의 뇌리와 인식을 치는 서늘한 깊이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

 

― 심사평 중에서

 

 

 

내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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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시인<사진>이 제35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이상화기념사업회(이사장 최규목)는 올해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이 시인을, 수상작품으로 그의 시집 '내가 나에게'를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시인은 1947년 의성에서 태어나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꿈속의 사닥다리' 등이 있으며,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2018년부터 2020년 2월까지 출간된 시집 가운데 각각 세 권의 시집을 추천했다.

 

그 결과 구석본, 권달웅, 김성춘, 박소란, 이경림, 이기철, 이문길, 이태수, 정병근, 장인수, 한영옥 등 11명의 시집이 최종 예비후보에 올랐고, 지난 4일 상화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해당 시집들에 대한 심사가 진행됐다.

 

최종 심사에서 이 시인의 '내가 나에게'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상금은 2천만원이다.

심사위원으로는 김종해 전 한국시인협회장, 윤석산 전 한국시인협회장, 김선학 문학평론가, 엄원태 대구카톨릭 대학교 교수, 손진은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이태수의 '내가 나에게'는 내면을 드러내는 시어가 서정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시적 노력과 주제의식이 서늘한 깊이를 끌고 나간다"고 평가했다.

이 시인은 "대구 시단의 선구자였던 이상화 선생의 문학과 생애를 기리면서 부끄럽지 않은 시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고 싶다"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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