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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재정

 

 

1.

꿈꾸는 물질, 나는. 찡그린 관자놀이를 내닫는 핏줄, 혹은 두 개의 혀. 당신 생각으로 타오르는 불꽃. 사월 산자락을 불타오르는, 불길 꿈틀대는 등허리, 홀로그램 속 삼천삼백의 개구리, 등의 얼룩은. 날아오르는 수만 벌레들의 꿈틀, 꿈의 틀인데. 나는

 

이런 밤들의 열병식이라 말하면

그래도 내 행진을 엿보다 끌려드시겠어요?

 

2.

불타는 산을 본 일 있다. 그때 나는 인간계와 통정하는 삼천만 통점의 혀로 세상을 핥는 벙어리 부처를 상상했다. 날개란 지상엔 무효한 양식이므로, 간절히 가벼워지는 연기들의 구도

 

3.

네게 사다리를 놓는 날들이다. 발가락을 자른 발끝으로 걸어가 네게서 붉는 참꽃의 나날들이다 고통만큼 높은 사다리가 있을까.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때, 손을 놓고 두 발을 뗀다. 추락하는 것으로 거듭 불타오르는 날들이다. 삼천 개 혀를 단 한 입에 달고 나는 침묵한다.

어떤 원시를 불러야 석 달 열흘 너를 타오를 수 있을까. *케찰코아틀, 이 세상 모든 불타는 혀의 총합. 나는 얼마나 작은 불꽃으로 너의 창가를 시작하는가.

 

불타는 산

케찰코아틀

내 심장을 천천히 씹어 삼키시다

 

* 케찰코아틀 : 깃털 달린 뱀. 아즈텍 문명의 위대한 천상 신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의 질서, 세계와 인간의 생멸주기를 결정하기도 한다.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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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원 고료 '2009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 부문(상금 500만원)은 임재정(46, 경기 남양주), 소설 부문(상금 1000만원)은 이미홍(52, 서울)씨가 각각 당선의 영광을 누렸다.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지난 10월 말까지 응모작을 받아 예심과 본심(시 문인수, 소설 이순원)을 거쳐 1일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임재정씨는 시 ''으로, 이미홍씨는 단편소설 '행인3' '유럽풍 테라스가 있는 식당'으로 각각 뽑혔다.

 

'진주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이 기금을 출연해 운영해오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진주신문 가을문예'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걸쳐 공모를 했는데, 진주신문사가 휴간에 들어가면서 올해부터 이름을 바꾸었으며, 올해로 15회째를 맞는다.

 

남성문화재단은 설립 이래 장학사업과 진주문화문고 발간 등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으며, 순수민간재단에서 운영하는 최초의 전국 규모 문예공모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 부문에 당선한 임재정씨는 "하찮고 부끄러운 돌부리를 눈여겨주신 심사위원과 남성문화재단에 깊이 감사한다"면서 "오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준 또 다른 나인 아내, 아이, 어머니와 가족들, 오랜 글동무 당신, 당신들에게도 고맙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2일 오후 4시 진주교대 교사지원센터 7 702호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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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필 / 전영관

 

 

풍구의 회오리가 가슴께를 후려친다

갈탄의 낭자한 선혈 사이로

피 맛을 본 강철이 달아오른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강철연필은 학력편차가 크다

몇 자의 비문만 학습한 경우가 있고

공덕문을 줄줄이 암기하는 실력파도 있다

까막눈 돌쟁이는 단지 내장된 글자들을

강철연필로 파내는 것뿐이다

거북이나 두꺼비를 만나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환절기에는 떠나는 사람들 많다

해마다 반복되는 덕분에 그의 한문 실력도

지명이나 이름자에 두각을 나타냈다

 

담금질로 단단해지는 것은 강철뿐

돌쟁이의 가슴은 반비례로 물렁해졌다

구부리는 법을 터득한 까닭에 굽실거렸어도

칠십 평생 부러지지 않았다 그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덕분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부끄럽게 생각한 적 있다

 

아버지는 물푸레나무들과 뒷산으로 올라가

겨우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철연필들은 처음으로 주인의 이름을 새겼고

얼어붙은 산 밑 저수지에서 떵떵

망치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찬물에 손이라도 씻는지 지난봄에는 물푸레

푸른 물이 내려오기도 했다 오늘도

녹슨 강철연필들만 벌겋게 복습 중이다

 

旌 旋 全 公 重 鉉 之 墓

 

 

 

 

슬픔도 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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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허허벌판에 詩匠이 되길' 기술은 있되 장인정신이 없는 삶은 망해버리기 마련이다. 장인정신은 어제 써먹은 기술을 오늘 아침에 쓸모없다 버릴 줄 아는 성정 머리가 있어야 좋겠다. 누가 보면 꼭 벌어먹기에 좋은 짓거리를 하는 사람 말이다. 광명의 획득은 그런 짓거리 끝에 얻어지는 것 아닐까.

 

보자, 본심으로 넘어온 편수는 모두 160. 단 응모자의 이름은 모두 빠져있고 응모 번호만으로 대체 되어 있다. '섬망'  9편이 우선 눈에 들었다. 의식과 무의식을 종횡무진 오락가락하며 쓴 정신주의 시라고 할까. 그 장대한 사유가 정진, 또 정진해서 우주의 깊이, 우주의 가락을 터득했더라면, 놀라운 대시인의 출현을 알릴 뻔했다. 재기는 살리되, 너무 이른 이상이 되지 말고, 세계의 고전들을 탐독하여 자기화하는 노력의 대가인 이상이 되길!

 

'빙어'  7편이 또 눈에 들었다. '빙어'에서 노숙자의 신세를 "라면 몇 가닥 보이는 내장을 비워냈다"고 본 것이나, '동해(凍害)'에서 "내 어머니 배에 튼 자국은 더 깊어진다"라고 아름답고 섬세하게도 세필화를 그렸다. 하지만 딱히 이 당돌한 시대를 업고 갈 뜨거운 힘과 맞선 찬 지성이 동시에 보이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연필'  8편이 가장 나중에 눈에 들었다. , 돌쟁이 생부의 생사를 잘도나 그리고 있군. 돌 속의 부처를 석공이 불러낸다고 않던가, 돌쟁이의 강철연필이 죽음을 철철 살아있는 돌 육신으로 불러냈구나!

 

모든 시인은 강철연필로 죽음을 불러내는지 모른다. 하여, 가장 믿음직한 시인을 세상에 내보낸다. '새로 쓰는 계곡()' "밤꽃이 허연 눈썹으로 바라보던 식구들 저녁이 있다" 등등 또 다른 시편들이 믿음을 더했다. ,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허허벌판 시장(詩匠)이 되길!

 

심사위원 서정춘 시인

 

 

 

 

바람의 전입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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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원 고료 '2008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선의 영광은 전영관(시 상금 500만원, 경기도 일산), 서은아(소설 상금 1000만원, 경기도 부천)씨가 거머쥐었다. 진주신문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전국에 걸쳐 공모를 한 뒤 예심·본심을 거쳐 결과를 발표했다.

 

진주신문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이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전국에 걸쳐 매년 가을에 공모를 벌여 오고 있다. 올해는 시 부문 301명, 소설 부문 140명이 응모했다.

 

전영관씨는 시 "아버지의 연필"로 당선했다. 그는 충남 청양 출신으로, 지난해 토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 예심은 박노정·유홍준 시인과 유영금 시인(1995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선자)이 했으며, 본심은 서정춘 시인이 했다.

 

서정춘 시인은 당선작에 대해 "돌쟁이의 강철연필이 죽음을 펄펄 살아있는 돌 육신으로 불러냈구나. 모든 시인은 강철 연필로 죽음을 불러내는지 모른다. 하여, 가장 믿음직한 시인을 세상에 내보낸다.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허허벌판 시장(詩匠)이 되길"이라고 평했다.

 

전영관씨는 "지금까지 시 비슷한 조각글을 쓰면서 가족의 온기를 내다팔고 부모의 고단함을 손쉽게 우려먹었다. 퇴근 후 저녁마다 식탁에 앉아 모니터만 보는 남편이 뭐 그리 살가웠겠는가. 어린것들 딴에는 주말마다 시집만 파고 있는 아빠가 얼마나 서운했겠는가"라며 "이참에 고맙다는 마음 전한다. 어머니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도 없을 거라 확신한다. 짐짓 모른 척, 커피 한 잔 놔주고 자리 피하던 아내에게 오늘의 맨 앞자리를 양보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3일 오후 4시 진주교육대학 교사교육센터 7층 702호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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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 / 김현욱

 

 

1

보이저* 의 돌잔치는 지구 밖에서 열렸다

보름달 위에 차린 돌상을 받아

홀로 돌잡이를 하였는데

웬일인지 보이저는 아무 것도 집지 않았다

돌상 너머 파랗게 빛나던 구슬은 이미 멀리 있다는 걸

보이저는 운명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의 품속으로 무작정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다

 

2

보이저는 이제 서른이다

서른 해 동안 한 일이라곤 고작

두리번두리번 걸어간 것뿐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보이저를 외우며 지나갔다

사춘기와 입시의 블랙홀을 간신히 건넜으나

무한진공의 우주 어디에도

제 몸 하나 붙박아 둘 중력의 직장은 보이지 않았다

우울증이라는 소행성과 부딪칠 뻔 했을 때

보이저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주에 취직했다는 걸

죽을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걸

이태백이니 삼팔선이니 이상기후의 지구에서도

용케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대범하게 아이까지 낳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보이저는 애오라지 걸어가기만 했다

내 직장은 우주다 내 일은 나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해도 보이저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지구에서 유행하던 주문을 되뇌이며

무소의 뿔처럼 성큼성큼 나아가기만 했다

 

아직도 보이저

우주 어딘가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너무 멀리 가버려서

이제는 아무도 보이저를 놀릴 수도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걸

보이저 조차 모른 채 우주 밖의 지구를 향해

시원(始原)의 자궁을 향해

뚜벅 뚜벅

 

* NASA에서 1977년 발사한 무인우주탐사선.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고 있다.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가사

 

 

 

 

보이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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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뚜벅뚜벅, 성큼성큼

 

예술은 죽어도 개성이고, 예술은 죽어도 스타일이다. 나서 죽는 동안에 벌어지는 희로애락은 거기서 거기, 새로울 것도 남다를 것도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내용도 없고, 하늘 아래 새로운 의미도 없다. 남다를 것 없는 그 무내용과 무의미에 처하는 남다른 태도가 있을 뿐이고, 그 태도를 표현하는 남다른 방식이 있을 뿐이다.

 

이상이 심사 기준이었다. 그래서 보이저   4, ‘나사의 집  4, ‘우크라이나에서 온 신발  4편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나사의 집 시편들은 생의 미세한 결과 틈을 포착해 내는 예민한 감성과 그것들을 안정된 호흡으로 건져 올리는 내공이 녹록치 않았다. 문제는 한 편씩 읽었을 때에는 하나 같이 흠잡을 데 없는 수준작이었는데, 다섯 편을 함께 놓고 보니 다섯 편이 한결 같았다.  한결 같음 흠잡을 데 없음이 문제였다. 어떤 열정의 결여 혹은 어떤 결여의 결여. 매혹은 과잉이거나 결여에서 온다. 크게 넘치거나 크게 모자랄 때.

 

우크라이나 시편들 중에서는 플렉트럼이 인상적이었다. 짧았으나, 짧으므로 더욱, 생사의 경계를 타고 흐르는 ‘22000 볼트짜리 직관이 행간에서 백열하는 작품이었다. 피복을 입힌 전선/현실이 아니라, 피복이 벗겨진 자신의 전선/현실에 물 묻은 손을 갖다 대는 집요하고 용기 있는 천착만 있다면 22000 볼트짜리 시인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예감을 갖게 했다.

 

그래서 결국 보이저 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무엇보다 우리 시에 차고 넘치는 시적 포즈나 제스처가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우리 시도 이제 뚜벅 뚜벅, 성큼 성큼 걸을 때가 되었다. 나머지 네 편을 각기 다른 어조의 작품으로 묶어 자기가 노는 물의 너비와 깊이를 충분히 보여주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아무리 탁월한 어법으로 탁월한 시세계를 구현한다고 해도 천편일률은 공산품이 되고 만다. 자신의 작품을 선별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자신의 시세계를 일괄할 만한 안목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상은 덫일 수도 있고, 닻일 수도 있다. 덫에도 닻에도 걸리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이미 걸렸다면 죽어라 몸부림치는 수밖에.

 

- 심사위원 김언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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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역 / 이애경

 

 

호남선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천원역*과 만나네

노령역 지나 송정리역 다음 나주역에서 내려야 하지만

나는 천원역에서 슬쩍 내리고 싶네

천 원짜리 지폐는 애들도 시큰둥 한다는데

차창 밖 들녘은 천 원이면 뭐든 살 수 있다고

나풀나풀 유혹하고

뻥튀기처럼 부푼 행복이 숨어있을 것 같기도 한

가난한 나는 그만 이 역에서 내리고 싶네

천 원짜리 밭뙈기나 부쳐 먹고

들녘 하늘에 매달린 노을이나 아침햇살 주워 먹으며

저 자라는 청보리처럼 살고 싶네

바람을 지집 삼아 옆구리에 끼고

덤으로 준다는 별빛이며 달빛이며를

평생 이웃하며 희희낙락 살고 싶네

나부끼는 바람과 한바탕 몸을 섞고 나면

내 몸도 그만 투명한 날개 한 쌍 달지 않겠나 싶은 게

뚝뚝 번지는 석양 아래 고단한 날개를 접고

긴 잠에 들면

내 생 언저리가 더 없이 부드럽겠다 싶은 게

자꾸만 입 안 가득 초록물이 도는 것이네

 

* 호남선 간이역

 

 

 

 

 

[심사평] 유유자적의 화법

 

당선작으로 뽑은 시 ‘천원역’은 지역신문이라는 문예공모작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앙지의 신춘문예 당선작과 어깨를 겨룰 만한 시의 품격과 함량을 충족시켜 주는 ‘좋은 시’임을 우선 밝히고 싶다. 당선작 ‘천원역’은 예심을 거쳐 넘어온 여타의 작품을 누르고 군계일학群鷄一鶴의 뛰어난 면모를 보여 당선작으로 뽑는 일이 오히려 쉬웠다.


최종심까지 남은 작품은 ‘귀면각 선인장’, ‘민들레’, ‘누에가 사는 방’, ‘낙엽이 사는 집’, ‘천원역’ 이상 다섯 편이었다. ‘귀면각 선인장’은 아열대에서 자라는 중남미산 기둥선인장을 의인화해서 쓴 재미있는 시이지만, 이야기의 구성이 산만했다는 흠을 지녔다. 그러나 화자의 독특한 시각이 눈에 띈다.


‘민들레’는 시가 예민하고 가늘고 섬세하다. 갈라진 옹벽의 길을 깁고 있는, 노란 불 켜고 있는 민들레 몇 포기가 눈에 선명하게 잡힌다. 그러나 가작 수준이다. ‘누에가 사는 방’은 촘촘하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실밥 터진 책들, 혹은 터진 실밥을 밤새 깁던 고시원생들의 고단한 삶의 얼룩이 보인다. 시적 응축력이 좀더 필요하다. ‘낙엽이 사는 집’은 표현이 거칠고 시적 구성이 약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이 시의 재미를 채워준다. 섬세함과 치밀함, 시적 응축력이 좀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에 비해서 당선작으로 뽑힌 ‘천원역’은 한눈에 심사자를 사로잡았으며, 매끄럽고 잘 숙성된 언어의 리듬으로 유유자적하는 시인의 여유있는 화법을 풀어내고 있다.


이 시에서 ‘천원역’은 가난한 인간이 가보고 싶은, 경제 부담이 전혀 없는 꿈의 역이다. ‘노을이나 아침햇살 주워먹으며’ ‘청보리처럼’ 살아가는 친환경 청정지역이며, ‘내 생언저리가 더없이 부드럽겠다’는 곳이다. 따라서 ‘천 원짜리 밭뙈기나 부쳐먹고’ ‘덤으로 준다는 별빛이며 달빛이며’를 평생 이웃하며 희희낙락 살아가는 곳, 가난한 사람이 꿈꾸는 곳이 ‘천원역’이다. 지명地名이 주는 친근감을 이 시인은 시로서 재미있게 잘 소화해내고 있다. 함께 투고한 ‘염전’, ‘그녀의 재봉틀’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좋은 시’로 뽑힐 만하다.당선자의 앞날이 기대된다.


심사위원 김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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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부처님 / 김애리나

 

 

쉿, 부처님 주무시는 중이세요

햇살이 부처님의 이마에 키스하고파

법당 안을 기웃대는 봄날이었지요

 

졸립지요 부처님? 그래도 봄인데

나들이는 못 갈망정 마당 가득 피어난 꽃나무 좀 보세요

산사나무 조팝나무 매자나무 꽃들이 치마를 올리고

벌써 바람을 올라탈 준비를 하는 걸요

꽃가루 가득 실은 바람과 공중에서 한 바탕 구르다

주워 입지 못하고, 흘린 치마들이 노랗게 땅을 수놓는 걸요

화나셨어요 부처님? 왜 오롯이 눈은 내리깔고 침묵하셔요

이 봄에 관계하지 못한 生이란 울기만 하는걸요

보세요, 대웅전 계단 옆 고개 숙인 한 그루의 불두화를

향기 많은 꽃에 벌과 나비가 꼬여 열매를 맺는 모습은

수도승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여 성불코자 심었다는 불두화가

관계를 나누다 쓰러진 것들을 보며, 눈물을 찍어내고 있어요

 

천년이 넘게 한 세상 굽어만 보시는 부처님

오늘처럼 법당에 둘이만 있는 날에는

당신 한번 넘어뜨리고 싶은 마음 아시는지,

헛. 헛 기침하시네요 토라져 눈감으시네요

긴 손 뻗어 몇 날 며칠 불두화의 눈 감겨 주시니

아, 그제야 봄 저무네요 절름발로 지나가네요

 

 

 

 

 

[당선소감] 


신문사에 작품을 부치던 날이었다. 그날, 꿈에서 부처를 만났다. 거대한 부처가 내게로 저벅저벅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목이 아프도록 부처의 얼굴을 올려보다가 얼른 합장을 했다. 합장을 하면서 어떤 소원하나를 빌었는지 가물가물 했다. 꿈속에서도 소원을 비는 철부지가 가여웠는지 부처는 빙그레 웃으셨다. 그리고 얼마뒤에 당선통보가 왔다. 너무 기뻐서 터진 웃음이, 곧 눈물로 바뀌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을 막상 듣고 보니,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빠를 힘껏 안아드렸다. 내가 글을쓰겠다는 꿈을 품게 된것은 순전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나의 유년시절, 아버지는 서점의 직원이셨고 어머니는 책 세일즈를 하셨다. 날마다 무거운 책 짐을 나르는 아빠와, 추운 겨울에 코가 발갛게 얼어도 책 한권을 팔기위해 거리 집집을 누비는 엄마. 나는 한번도 부모님이 부끄럽거나 챙피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다만, 당신들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그 책들이 너무도 지겨웠었다. 그래서 생겨난 나의 꿈은, 훌륭한 작가가 되어서 내 책만 파는 서점을 부모님께 지어드리고 싶다는 황당한 바람이었다. 다행히도 나의 황당한 바람을 현실로 옮기기 전에, 부모님은 서점을 개업하셨다. 이제, 우리 서점에 내 이름으로 된 시집 한권 놓을 바람으로 지금보다 더욱 치열하게 공부할 것이다. 그리고 감사드려야 할 분이 너무 많다.


고등학생 시절,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많은 힘이 되어주신 땅끝문학회 김경윤 선생님. 모교의 곽재구, 송수권, 김길수, 안광진 교수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지금쯤 눈 동그랗게 뜨고 자기 이름 찾고 있을 친구들아. 한결같이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평강왕자 창성선배와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더욱더 정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심사평] 신선한 신인 작품을 읽는 즐거움


예심을 거쳐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들 중 몇몇은 서정적인 밀도와 수사적 개성이 남달랐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응모해 온 것은 해를 거듭할구록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진주신문 가을 문예’의 저력이 아닐까 짐작했다. 마지막까지 되풀이해서 읽었던 시편들은 아래 여섯 분의 작품들이다.

 

‘검은 열매를 먹는 새’ 등은 상상력의 다양성과 깊이가 살펴졌으나, 촘촘한 심상들이 한 시편 속에서도 파편화이 되어 있어서 작품의 집중력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행간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시를 주밀하게 끌고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딱따구리 경전’ 등은 견고하게 지어진 시의 집을 대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구옥이 되어버렸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 작시를 어떤 울타리 안에만 가두려 애쓰지 말고, 예측 불가지한 상상력의 들판으로 과감하게 방목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를 탐독하지 마라’ 등은 잘 짜여진 시적 구조에 실린 탄탄한 사유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작품의 골격만큼 심상 또한 선명하게 부조되었는가는 의문이었다. 스스로를 전환의 자리로 내몰아야 할 것으로 믿어졌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등은 시의 내밀함이 돋보이지만 관념에 기대는 실험은 결국 공허할 수 밖에 없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신체를 처절하게 관통해가는 내출혈적인 경과가 더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킨카주’ 등의 시편 앞에서 선자는 오래 망설였다. 불행한 이들을 꽃으로 받아 안음으로써 스스로 만개하는 사랑의 시화도 감염적이었지만, 그것을 건사하는 언어 또한 나무랄 데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선이 굵은 서정과 강건한 문체적 마력도 쉽게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다만 심상과 심상 사이의 삐꺽거리는 단층들이 수상자의 뒷자리에 이 분을 서게 한 것이리라.

 

‘봄날의 부처님’이 수상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즈넉한 절간 속에서 춘정을 불러와 부처님까지 노곤한 봄의 색정 속으로 밀어 넣는 능청이 선자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했기 때문이다. 돌연한 이 파격은 풍경을 압도하는 상상력의 힘일 것이다. 이 응모자는 또 다른 시편인 ‘A컵의 우주’, ‘안녕? 물고기!’등에서도 섬세한 시적 교직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수상을 축하하며, 큰 시인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해 가시길 당부한다.

 

심사위원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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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차계 정씨 / 김영수

 

 

7번이 시내 열기를 가득 달고 돌아옵니다

짤랑거리는 입금 통이 가볍습니다

배차계 정씨는 점심시간을 악착같이 쓰고

일어나 동네번호 판을 바꿔 답니다

반환점이 이번엔 꽃 단지라

향기가 종점까지 묻어올지 의문입니다

견인차에 업혀 돌아온 55번이

정비공장에서 킬킬거리고

사장이 먹다 남은 생수 통을

마당으로 집어 던집니다

기름 밥 먹던 기사들이 연착한 55번처럼

주춤거립니다

"쎄루모타 하고 뿌라그 바까"

그의 발음엔 언제나 자음이 두개씩 달립니다

아니면 입이 싱겁다나요

정씨의 손에는 아직 배차 안 된

나른한 오후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모종 부어 논 꽃 뿌리처럼 무좀이

그의 신발 속에서 꼼지락거립니다

햇빛 노는 마당을 가로질러 가

빈 버스의 재생 타이어를 툭툭 차봅니다

사장 말마따나 아직 빵빵한 구석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신은

55번이 살아 쿠릉거리고

7번은 떠나갑니다

때 절은 목장갑과 욕지거리 몇 마디로

시동 걸어 보내야 하는 하루가

지금도 빈 마당에 가득합니다

 

 

 

 

 

[당선소감] "무한한 책임감 시로써 보상하리"

 

휴대폰 액정판에 055-×××-××××라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떴다. 당선통보였다. 그 후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전화 소리에 나는 그저 “예, 예, 감사합니다” 라고 건성 대답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지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시의 세계에 빠뜨려 주신 김용락 선생님, 힘찬 매질을 아끼지 않으시던 대구교대 강현국 선생님, 계명대 이성복 선생님, 장옥관 선생님, 김원우 선생님, 손정수 선생님, 향토의 김양헌 선생님, 그리고 동인 활동하는 여러 문우들에게도 감사의 절을 올린다. 또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진주신문 심사위원님들께도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동시에 전한다.

 

무던히도 사물을 사랑하고 애 닳아 했던 한 사내가 이젠 눈을 뜬다. 나는 사물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항상 조용했으며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았다. 나는 여럿이 있어도 외로웠다. 언제나 나는 내 방식대로 그들을 내 몸 속에 구겨 넣었고 함부로 내뱉고 다녔다. 내 깊숙한 곳에 혼을 빌려 준 그들에게 난 아직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며 시로써 보상하고 싶다.

 

나의 문학에 이정표가 되어준 진주신문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한층 더 열심히 하여 우리 문학에, 우리 시사에 남을 수 있는 시인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심사평] 삶의 건강성과 시적 형상화

 

본심에 회부된 작품은 모두 34사람의 작품 300여 편이었다. 예심을 거쳐 온 작품들이기에 일정한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그 경향은 오늘날 우리 현대시의 서정시적 성향, 민중시적 특성, 모더니즘적 취향성을 골고루 대변해 주는 내용이었다. 시가 시대정신의 안테나이면서 중추신경에 해당한다는 뜻이 되겠다.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남겨진 작품들은 김륜희의 「동티가 서는 마을」외, 조성란의 「민무늬 하얀 외이셔츠」, 그리고 김영수의 「배차계 정씨」외 등 세 사람의 시들이었다.

 

먼저 「동티가 서는 마을」은 「자귀나무가 있는 방」 「수국이 피면」 「복사꽃」과 같이 식물적 상상력과 고전적 정서를 바탕으로 전통서정의 한 모서리를 예리하고 섬세하게 보여준 가작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작품들이 좀더 참신성이나 파격성과 결합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을 갖게 만들었다.

 

「민무늬 하얀 와이셔츠」는 「사각지대」「오래된 골목」 등과 같이 산문시적인 흐름을 주조로 하면서 미시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산문적 호흡이 좀더 탄력 있는 긴장력을 확보하는데는 다소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배차계 정씨」외는 오늘의 삶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도 삶에 관한 넉넉한 시선과 개성적인 표현을 결합함으로써 시적 형상화를 성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특히 소외된 삶과 세계에 보다 집중된 관심을 표출하면서도 그것을 분노나 저항이라는 도식적ㆍ기계주의적 민중론에 함몰되지 않고 개성과 건강성으로 이끌어 올리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도 예감케 해주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서 당선작으로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하였다. 앞으로 상투성이나 도식성에 빠지지 말고 참신성과 서정성을 강화해 나아간다면 씨 특유의 시적 건강성이 더욱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정진을, 그리고 이번 기회에 유보된 분들에게는 새로운 분발을 기대하면서 진주신문의 발전을 축원한다.

 

심사위원 김재홍(문학평론가ㆍ경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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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 / 김영미

 

 

아버지가 돌아왔다. 쥐색 바바리가 추워 보였다. 늦겨울의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 덕에 집에서는 따뜻한 밥냄새가 났다. 콩비지에 돼지고기를 넣는 어머니의 입가에선 실실 바람이 흘러나왔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그저 추워지면 집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밥상 가득 비지냄새가 났다. 아버지의 봄과 여름과 가을이 궁금했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뜬내만 풍기고 있었다. 인제 김장도 담아야 할 텐데. 묵묵한 숟가락질. 사람이 무정하기는 연락도 없이. 노라리도 아니고 애가 몇 살인데. 끙, 아버지 등 기댄 벽 틈에서 함부로 연탄가스가 새나왔다.

 

슬레트 지붕 밑 제비집이 텅 비었다. 아버지는 집이 남쪽 나라인가 봐. 쥐색 바바리에서는 바람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힘껏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맨드라미 빛 담요 위에 너겁처럼 흐트러져 자는 아버지, 노루잠 사이로 언뜻 그의 봄과 여름과 가을이 보였다.

 

이젠 어머니가 떠나세요. 그저 습성이 다른 철새들이 사는 집이라 생각하면 돼요.

 

창밖으로 비꽃이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굵은 빗줄기가 내렸다. 반짝반짝 바늘같은 비가 어머니 등에 꽂혔다. 날이 더 추워지겠구나. 탄불 가는 어머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심사평] “끝까지 흥분 없이 내면의 슬픔을 드러내”

매양 남의 작품을 보는 일은 두렵고 낯설다. 나의 무식과 성의 없음으로 해서 좋은 작품을 놓치면 어쩌나 싶어서다. 하지만 누군가는 맡아야 할 소임이기에 다부진 마음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그러다가 딱 부러지게 좋은 작품을 만나면 기쁨은 배가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심사하고 그 결과가 발표되고 난 뒤에는 심사자가 오히려 거꾸로 다른 사람들의 심사를 받게 되는 게 아닌가. 어쩔 수없이 나는 응모된 작품을 성실히 읽는 독자의 자리에 서기로 한다. 이런 때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감성을 믿을 수밖에는 없는 일이고 나를 감동시키는 단 한편의 시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는 없게 된다. 이래저래 시라는 양식의 문학은 오해가 있을 수 있고 주관과에 의해 지배되는 예술임을 뼈저리게 자각하게 된다.

오랜 시간, 여러 편의 시작품이 선자의 손에서 맴돌았다. 131번의 「연리목」, 313번의 「옷 만드는 여자」, 164번의 「때늦은 개나리」, 264번의 「풍경의 살해」, 251번의 「立冬」등의 작품이 그들이다. 되돌려 읽어본즉 「연리목-連理木」은 작은 그릇 속에 아기자기한 정서를 담는 솜씨가 좋았고 「옷 만드는 여자」와 「때늦은 개나리」는 삶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면서 시의 꼴을 아름다이 다듬는 점이 돋보였고 「풍경의 살해」는 사물을 날렵하게 다루는 현대적 감각이 뛰어났다. 고민 끝에 한편만을 골라야 한다는 주문에 따라 선자는 그 가운데에서 「立冬」을 고른다. 이 작품은 애달픈 가족사를 담으면서도 끝까지 흥분함이 없이 내면의 비밀한 슬프고도 애달픈 언어를 꺼내어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애이불상(哀而不傷)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함께 응모한 「숨은 눈」「도덕파출소 앞을 지나다」와 같은 작품도 비슷한 수준으로 이 작가의 실력을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되어준다.

시인은 한편의 작품으로 승부되기보다는 보다 많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보다 더 그의 전 생애를 통한 문학적 노력을 통해서 꽃으로 피어나게 된다. 부디 겸허히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시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이름에서, 그의 삶에서 골고루 향기가 번지기를 기원한다. 간발(間髮)의 차이로 선에서 비껴간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따로이 적는다.

 

심사위원 : 나태주, 박노정, 나희덕,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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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퍼센트입니까 / 박세미

 


숨어 있는 문이 있다는데
항상 열쇠를 쥐고 다녀야 한다는데
배우가 되려면 목구멍 깊숙이
눈물을 잘 흘려야 한다는데

당신 옆을 지나칠 때 우연히
내 걸음이 놓친 것들 나를 통과한 말들
진심이 진심에 덮여 사소해질 가능성
내가 나일 확률

뜀틀 하나를 넘으면 다시 뜀틀

낮과 밤의 경계에서
누군가는 동물이 된다는데
몸속을 뒤집어 가장 순결한 보호색을 띤다는데
당신이 당신일 확률

뜀틀 하나를 넘으면 다시 뜀틀
그릇이 깨지는 날엔 손이 가벼워졌다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다는데
스스로 밧줄을 쥐고 있을 가능성

당신 얼굴을 그리고
손가락으로 외곽을 문지르면
당신이 흔들린다
내가 흔들린다

뜀틀 하나를 넘으면 다시 뜀틀
나는 뜀틀과 넘어진다

 

 

 

내가 나일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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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번 제11회 김만중문학상 심사는 다양한 성취를 보인 한국 시단의 쟁쟁한 중견 및 시인들의 최근 시집이 추천되어 올라와 있었다. 이분들은 모두 우리 시단에서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시인들이기 때문에, 그 성취의 높고 낮음에 차이를 두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시인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성윤석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합의를 이루었다. 곧 그의 시편들이 강한 실험정신과 함께 보편적 인간 본질에 관한 사유를 두루 결합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신인 가운데서는 박세미 시인의 개성적 시집이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성윤석 시인은 불안하고 유동적인 영혼의 순간을 통해 최종적인 삶의 차원으로서의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기록을 남겨주었다. 삶의 복합성을 승인하면서 시인은 단선적인 흑백논리나 계몽적 의지를 지우고 어떤 중간자적이고 미완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출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심연을 응시하고 있다. 단단하고 또 꽉 찬 시적 형상과 존재론이 미덥게 다가왔다. 이 시집에 얹힌 이번 수상이 그의 짧지 않은 시력(詩歷)에 상응하는 크나큰 격려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그런가 하면 박세미 시인은 부서지고 작아진 자아를 되비추고 또 일으키면서 자아의 익숙한 틀을 오히려 벗어나는 기막힌 균형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한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이행기의 한 젊은 시인을 만나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시에 의해 우리 시의 또 다른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시인으로서의 이력에 주어지는 첫 수상을 축하드린다.

 

거듭 두 분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면서, 두 분 수상자의 고유한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인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김언희(시인), 유성호(평론가, 한양대 교수, )

 

 

 

 

11회 김만중문학상에서 조해진 소설가가 단순한 진심으로 소설부문 대상, 성윤석 시인이 시집 ‘21701223로 시·시조부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남해군은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제11회 김만중문학상 심사위원회와 제11회 김만중문학상 운영위원회를 각각 개최하고 수상작 선정작업을 마무리해 지난달 30일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번 시상에서 박세미 시인이 신인상 부문 시집 내가 나일 확률로 신인상을 받았다.또 시집 심상을 발간한 강달수 시인이 남해군 홍보와 남해문학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유배문학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김만중문학상은 기존의 공모방식에서 탈피했다.

 

올해 공모는 1차로 추천위원의 추천 작품을 접수 받은 다음 2차로 심사위원 심사를 거치는 2단계 과정을 도입했다.

 

소설 부문 심사는 이경자 소설가·평론가 정호웅 홍익대 교수가, ·시조 부문은 김언희 시인·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가 맡아 3개월에 걸쳐 심도 있는 심사를 통해 당선작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7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다.

 

각 부문별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원, 신인상·유배문학특별상 수상자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이 각각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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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01223/ 성윤석

 

 

흐린 겨울 저녁인데 죽은 자의 글을 따라가는 앳된 소녀가 롤러스케이트 같은 기계를 타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땅은 좁아졌고 사람들도 줄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문장도 하늘로 떠올랐다 All’s Well That Ends Well* 결과가 좋으면 다 좋아요 공중에서 눈이 내렸다 검은 구름에서 흰 눈은 여전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구름 위를 한 사내가 바바리코트를 입은 채 걷고 있었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신인류였다 속도 중력 감정들이 비틀어졌다 우리가 본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여성과 사내 들은 주로 공중에 떠 있거나 지하로 내려갔다 지상은 오염되었고 신인류는 이제 불행을 매수하지 않았고 내버려둔 채 세상 최후의 고독을 살았다 거기에 나는 없었지만 이에 대한 어떤 증거도 거기엔 없었다 고스란히 새와 식물 들은 보였지만 불법이긴 했지만 수명 단축 기계가 여기저기 도시의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아요그 도시의 재해대책본부에서 쏘아올린 저녁의 문장이 다시 공중으로 솟구쳤다 신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것은 마치 돛대 같았다

 

* 셰익스피어 희곡 제목.

 

 

 

 

2170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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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번 제11회 김만중문학상 심사는 다양한 성취를 보인 한국 시단의 쟁쟁한 중견 및 시인들의 최근 시집이 추천되어 올라와 있었다. 이분들은 모두 우리 시단에서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시인들이기 때문에, 그 성취의 높고 낮음에 차이를 두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시인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성윤석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합의를 이루었다. 곧 그의 시편들이 강한 실험정신과 함께 보편적 인간 본질에 관한 사유를 두루 결합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신인 가운데서는 박세미 시인의 개성적 시집이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성윤석 시인은 불안하고 유동적인 영혼의 순간을 통해 최종적인 삶의 차원으로서의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기록을 남겨주었다. 삶의 복합성을 승인하면서 시인은 단선적인 흑백논리나 계몽적 의지를 지우고 어떤 중간자적이고 미완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출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심연을 응시하고 있다. 단단하고 또 꽉 찬 시적 형상과 존재론이 미덥게 다가왔다. 이 시집에 얹힌 이번 수상이 그의 짧지 않은 시력(詩歷)에 상응하는 크나큰 격려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그런가 하면 박세미 시인은 부서지고 작아진 자아를 되비추고 또 일으키면서 자아의 익숙한 틀을 오히려 벗어나는 기막힌 균형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한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이행기의 한 젊은 시인을 만나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시에 의해 우리 시의 또 다른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시인으로서의 이력에 주어지는 첫 수상을 축하드린다.

 

거듭 두 분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면서, 두 분 수상자의 고유한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인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김언희(시인), 유성호(평론가, 한양대 교수, )

 

 

 

 

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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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이 주관하는 '11회 김만중문학상'에서 조해진 소설가가 <단순한 진심>으로 소설부문 대상을, 성윤석 시인이 시집 <21701223>로 시·시조부문 대상을 받는다.

 

남해군은 지난 23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11회 김만중문학상 심사위원회'27'11회 김만중문학상 운영위원회'를 열고 당선작을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소설 및 시·시조부문 대상 외에도 신인상 부문에는 시집 <내가 나일 확률>의 박세미 시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시집 <심상>을 발간한 강달수 시인이 남해군 홍보와 남해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배문학특별상에 선정됐다.

 

·시조 부문 대상을 차지한 성윤석 시인은 창녕 출신으로 1990<한국문학> 신인상에 '아프리카, 아프리카' 2편의 시가 당선돼 등단했다.

 

묘지 관리 일을 하기도 했고, 1999년부터 서울에서 벤처기업 운영을 하다가 실패했다. 20135월부터 한 해 동안 마산어시장에서 명태 상자를 나르기도 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시집으로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공중 묘지>, <멍게>, <밤의 화학식>이 있으며, 2017년 박영근작품상, 2019년 제4회 사이펀문학상 등을 받았다.

 

남해군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 세계와 문학 정신을 기리고 유배문학을 계승해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난 2010년부터 매년 김만중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부문별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 원, 신인상·유배문학특별상 수상자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이 각각 수여된다. 군은 7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시상식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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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력木歷 / 조경선

 

 

자르기 전 쓰다듬으며 나무를 달랜다
생의 방향 살핀 후 누울 자리 마련한다
첫 날刀은 이파리마저 놀라지 않게 한다


나이테 한 줄 슬금슬금 잘려 나가니
뱉어낸 밥 색깔이 뼛가루처럼 선명하다
100년의 단단한 숨소리 한순간에 무너지고


한없이 차오르던 숨길은 물길이었을까
안쪽으로 파고들면 내력은 촘촘해지고
울음을 간직한 옹이가 더욱 단단해진다


벌목은 베는 게 아니라 만나는 거다
커다란 눈동자 되어 밑동이 살아 있는 건
최초의 뿌리가 사람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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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들은 다각도의 심도 깊은 논의를 계속한 결과 제10회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부문 수상작으로 조경선 시인의 시집 목력을 선정하는데 합의하였다. 신인상 부문의 심사는 시시조 부문과 소설부문으로 나누어 각 부문별로 심사위원들이 최종심 대상작을 선별한 후 시시조부문 최종심 대상작과 소설부문 최종심 대상작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 후에 최종 선정하는 엄정하고 객관적인 과정을 밟았다. 조경선 시인의 시집 목력은 생활 현실의 경험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동시에 시적 화자의 내면 속에 침묵의 심연을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시적 회로를 형성하는 묘미를 보여준다. 시적 진술 속에 그림자와 여울을 그려내면서 풍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조경선 시인의 수상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전원

 

 

 

개가 물어뜯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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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이 지난 10일 유배문학관에서 ‘제10회 김만중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개최한 이후, 수상작 선정을 마무리하고 당선작을 발표했다고 18일 밝혔다.

올해 김만중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은 ‘숨은 눈’의 장정옥 작가, 시ㆍ시조 부문 대상은 ‘숲시집’의 유종인 시인이 영예를 안았다.

또한 신인상에는 시조집 ‘목력’의 조경선, 유배문학특별상 부문은 ‘서포 김만중과 남해’ 외 다수의 책을 집필한 김성철 씨가 각각 당선됐다.

소설부문 대상을 받은 장정옥 작가는 대구 출신으로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해무’로 등단했으며, 2008년 제40회 여성동아에 장편소설 ‘스무살의 축제’가 당선됐다. 이후 ‘비단길’, ‘고요한 종소리’ 등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시ㆍ시조 부문 대상을 차지한 유종인 시인은 1996년 ‘문예중앙’에 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2년 농민신문, 2003년 동아일보 시조 부분에 각각 당선됐으며,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도 당선된 시인이다. 시집으로 ‘아껴먹는 슬픔’,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수수밭 전별기’, ‘사랑이라는 재촉들’ 외 산문집으로 ‘염전-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 ‘산책-나를 만나러 떠나는 길’ 등을 발간했다. 지훈문학상, 송순문학상, 지리산문학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김만중문학상 공모에는 407권의 작품집이 접수됐다. 소설 부문 심사에는 한국 문학계의 거장 한승원, 소설가 편혜영,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 허경진 심사위원이, 시ㆍ시조 부문은 시인 문태준,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오형엽 심사위원이 심도 있는 심사를 통해 당선작을 선정했다.

영예의 소설부문 대상 수상작인 ‘숨은 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그것을 깊이 있게 해부해 이 시대에 걸맞은 여성 서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시ㆍ시조 부문 심사위원은 “경합한 작품집들의 수준도 높았고, 각 작품집들의 문학적 관심사도 다양해서 고심이 깊었다”며 “‘숲시집’은 세계에 대한 해박한 고전적 이해에 기초해 있고, 바깥 풍경에 자신만의 내면을 세심하고 유려한 시구로 투영하고 있는 작품집”이라고 평가했다.

장르 구분 없이 진행된 신인상은 소설부문과 시ㆍ시조부문으로 나뉘어 심사위원들이 최종심사 대상작을 선별한 후, 최종 선정하는 엄정하고 객관적인 과정을 밟았다.

신인상 수상작인 시조집 ‘목력’은 생활현실의 경험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동시에 시적화자의 내면 속에 침묵의 심연을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시적회로를 형성하는 묘미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남해군은 오는 11월 2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며, 부문별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천500만 원, 신인상ㆍ유배문학특별상 수상자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이 각각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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