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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 김유섭

 

 

물이 끓고 있었다

 

마른 나무 가지를 모아 피운 불이

옛이야기로 타올랐다

 

해변에서 주운 게들의 살이

익으면서 풍겨오는 냄새,

 

‘맛있겠다’ 나에게

내가 속삭여보았다

 

바람도 없는 밤하늘에 별이

눈물을 머금은 채 날아다녔다

 

어디에서 멀어진 것일까

나는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한낮 햇살의 손길로

모래가 나를 감싸주었다

 

귓속으로 파도소리가 밀려왔다

그러다, 멀어져 갔다

 

 

 

 

찬란한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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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해도 김만중 문학상공모 시 (시조) 부문 응모자는 많았다. 뿐만아니라 결선에 오른 작품의 수준도 다른 지역의 당선작들에 비하여 수준이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에서 공모하는 다른 문학상에 비하여 많은 상금 탓도 있겠으나, 5년을 시행에 오는 동안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선에 오른 작품은 시 175명의 357편 가운데 15명과 시조 22197편 가운데 1명으로 총 16명이었다. 시 부문 심사위원 3명이 각각 5명씩, 시조 심사위원 1명이 1명을 골랐다. 11명의 작품을 놓고 네 명의 심사위원이 장시간 논의하였다.

 

우선 지금까지 4회 동안 반복된 김만중의 삶이란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작품의 참신성과 완성도 그리고 작품 전체의 수준을 고려 하여 많은 가능성을 가진 작품을 고르겠다는 점에서 4명의 심사위원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 결과 시 5명 정도로 압축을 하여 다시 4명의 심사위원이 금, 은상의 수준에 육박한 작품을 고른 결과 <해변에서>9(김유섭)의 경우 4명 전원이 인정하고, <멸치 복음(福音)>6(한승엽)2명이 인정하고 나머지 1명을 1명이 인정하는 순서로 나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금상을 <해변에서>9편으로 정하고 은상으로, < 멸치 복음(福音)>6편으로 결정하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투고자를 확인한 결과 특히 지역 문학상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금상 작품과 은상 작품은 각각 개성적인 면을 확연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시인들의 나이는 어떠한 지는 알 수 없으나 김유섭은 젊고 건강한 어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감정이 절제된 부분이 많은 이미지의 전개 과정이 특색으로 등장하여 독자들의 상상력이 개입된 읽기가 필요한 시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들의 분위기가 건조하지는 않다.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시적 정경도 마치 한지에 물이 드는 것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감동을 준다. 특히 <그래도 봄이었다>는 죽은 어머니의 화장 광경을 지켜보는 과정인데도 그 비극적 정경을 마지막연에서 승화시키고 있다.

 

화자가 직접 말하는 담화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 화자의 시적 상황이 각각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구조도 단절되지 않아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다. 앞으로 이러한 시편들로 시집이 엮어진다면 독자를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한승엽의 어조는 나이가 들어 있으며, 어떤 작품에서는 마치 김만중 그것도 절해고도에 갇힌 노인이 시적화자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당선작들에서 보이는 노골적으로 김만중의 생애를 이입시키지 않은 점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시인은 바닷가나 섬에 살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였는데 시인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니 그 짐작이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도 건강하고 낙천적이기보다 비극적이고 절망의 그림자 마저 드리워져 있다. 그러면서도 인식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멸치 복음(福音)>은 제목에서 일종의 역설이 보이기도 하지만 고기 가은데 가장 개성이 없는 멸치를 가지고 이러한 인식과 상상력을 전개하였다는 데서 시인의 역량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한 시인의 화자는 시 속에 들어가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느러미론()>같은 데서는 평범한 사물에다 관념을 이입시키는 솜씨도 보여주고 있다. 다소 무거운 시편들이지만 병적인 절망이나 비극으로 떨어지지 않고 진지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시편들 역시 시집으로 엮어지면 한국시단의 개성적인 시집이 될 것이다.

 

심사위원 문효치, 양왕용, 박태일, 원은희(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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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김만중의 편지 / 송유미

 

 

부서진 파도소리 한 잎 주워 책갈피에 오늘처럼 꽂았다

어두운 바다 위로 걸어 다니는 바람 소리 사납다

섬과 뭍 사이 파도는 밤이면 더 높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이제 알 수 없다

단 하나 남은 촛불인 양

마지막 손가락 잘라 피눈물 흘리며 혈서를 쓴다

잠든 고통도 새벽이면 다시 짐승소리를 내며 울고

무성한 가시 울타리 손톱들을 세워

텅 빈 허공의 등짝을 피나게도 긁는다

막 어디론가 떠나는 구름 몇 장에게 몇 자 써서

보내야 할 말도 잠시 잊었다 몇 날 며칠

곤궁한 아궁이에 지핀 군불들이 검은 연기 끝없이 풀어낸다

캄캄한 유배가 끝나는 날까지 이 목숨이

견뎌내야 할 오욕의 입술은 이미 말라 비틀어졌다

바람은 낼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제칠 것이다

한없이 거칠고 사나워져서 나도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이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상소할 힘도 없이

그저 능인의 진여에 기대여

피를 말리며 한 줄 글을 어머니 위해 짓는다

저 그을림 다 닦아 낸 등피의 밝음 속에서 아내가 웃는다

지고 온 고통은 잠시 신발을 벗고

형틀 위에 앉아 조은다

바다를 건너오는 말발굽 소리 희미하고

풀썩 석양은 수평선 밖으로 떨어지고.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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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하소설 객주로 한국문단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주영 작가의 잘가요 엄마가 제4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7명의 심사위원은 남해 고도에서 모정을 그리며 썼던 서포의 사모곡 집필 자세와 서울에서 모정을 그리며 쓴 김주영의 사모곡 창작 동기는 시대를 넘어 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귀양살이하는 아들이든 도시에서 출세한 아들이든 어머니에게는 한결같은 근심덩어리였다는 점에서 인간은 모성애 앞에 평등할 것이다이런 모성애가 국토와 역사와 민족으로 어우러져 펼쳐진 게 김주영 문학의 요체이기에 만장일치로 대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남해군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세계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유배문학을 계승 발전시켜 한국문학발전에 기여하고자 2010년부터 매년 1억원의 고료로 김만중문학상을 운영해 왔다. 1회부터 제3회까지는 공모를 통한 응모작품 중에서 수상작을 선정해 시상해 왔지만 올해부터 시상제도를 바꾸어 최근 16개월간 발표된 작품들도 추천위원을 통해 심사대상에 올렸다. 그 결과 42명의 추천위원들이 37명의 발표작품을 추천하여 김주영 작가의 잘가요 엄마가 선정부문 최초의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시조 응모부문은 박현덕 시인의 시조 노도에서의 하룻밤59편이 금상, 송유미 시인의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김만중의 편지8편이 은상으로 선정되었다. 심사를 맡은 정호승, 최영철, 이우걸 시인은 두 작가는 모두 김만중과 그의 시대를 모티브로 시집 분량에 가까운 신작시를 보내왔으며, 그런 양적 결실 못지않게 시의 맛과 멋을 유지한 균질의 밀도도 갖추고 있었다며 두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4회 김만중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12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문학제와 함께 열린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5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각 부문별 금상과 은상 수상자에게도 상패와 함께 각각 1500만원과 1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한편 군은 김만중 문학상의 품격을 높이고 유배문학의 정신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응모분야 수상작들을 책으로 엮어 10월 말경에 작품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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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에서의 하룻밤 / 박현덕

 

 

앵강만이 훤히 보인

가게에서 낮술한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서포처럼 우는 바다

 

뭍으로

갈 수 없는 몸,

파도를 내리친다

 

하늘 쩍쩍 갈라져

쏟아지는 장대비

 

몇 점 외등 켜지고

마을은 조용하다

 

한밤중

삿갓 쓴 사내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노도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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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 시조부문 심사를 맡은 세 명 심사위원이 원고를 돌려 읽고 수상작이 될만한 작품을 각각 한두 명씩 낙점하기로 했다. 몇 차례의 윤독과 토론을 거쳐 네 명의 작품이 가려졌고 그 중 큰 이견 없이 <노도에서의 하룻밤> 59편과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김만중의 편지 1> 8편이 최종까지 남았다. 두 응모작의 공통점은 김만중과 그의 시대를 모티브로 시집 분량에 가까운 신작시를 보내왔다는 점이었다. 그런 양적 결실 못지않게 시의 맛과 멋을 유지한 균질의 밀도도 갖추고 있어 반가웠다. 시의 독자는 줄었으나 시인과 시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그런 풍요가 나태와 방만의 언어를 양산하고 있기도 하다. 이대로 간다면 시는 결국 결여가 아닌 풍요로 망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가능하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조 <노도에서의 하룻밤> 59편을 앞자리에 놓게 되었다. 시조가 가진 절제미가 오늘의 시단에 던지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그의 시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다 말하지 않고도 더 말하는 시조의 미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잣대로 본다면 서간체와 독백체가 교차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김만중의 편지> 연작은 다소 장황한 편이었다. 자유롭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동어반복과 감정의 과잉 노출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우열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시를 위한 지금 당장의 처방과 관련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심사가 종료되고 심사평을 쓰며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두 분 수상자 모두 지금 우리 시단에서 활동 중인 중견시인들이었다. 이 두 시인들은 이번 응모작을 쓰기 위해 잠시 초심으로 돌아갔을 테지만 사실 좋은 시인은 늘 그렇게 처음 자리에 자신을 데려다놓을 줄 안다. 늘 그렇게, 처음 자리에서 시작하는 시를 우리는 기다린다.

 

- 심사위원 이우걸, 정호승,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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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에 들다1 / 임경묵

- 겨울, 오체투지(五體投地)

 

 

한기 서린

구업(口業)*을 버리겠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할 때마다

잔설 위에

다섯 개

뜨거운 방점을 찍고,

멍든 방점마다엔

핑그르르

새살이 돌게 하리

언 땅에

햇살의 부리를 묻고,

생강나무에

생강 꽃을 돌려주리

산수유나무에

산수유 꽃을 얹어주고,

남루 걸친

허기진 들녘엔

우르르

청보리 떼 몰아주고**,

이렇듯

봄을 불러내리라

 

* [불교] 삼업(三業)의 하나. 곧 말을 잘못하여 짓는 죄업.

** 김상현 시인의 시5에서 빌림.

 

 

 

 

체 게바라 치킨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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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세계와 문학정신을 기리고유배문학을 계승ㆍ발전ㆍ시켜 문학발전에 기여코자 공모한 제3회 김만중 문학상 수상작을 30일 발표했다.

 

김만중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남해군수 정현태)는 지난 71일부터 731일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작품을 접수했으며그 결과 393명에 이르는 문학인들로부터 2443편의 문학작품이 접수되는 등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 모았다.

 

부문별로는 소설 1211802442231희곡 2832편이 접수됐으며이 가운데 임종욱(경기 화성ㆍ51) 씨의 장편소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가 대상을 차지해 5천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됐다.

 

분야별 수상작을 살펴보면 소설 부문은 양진영(55) 씨의 `올무`가 금상을김문주(64) 씨의 `거울 뒤의 남자`가 은상을 차지했으며시 부문은 금상에 이교상(50) 씨의 `시조로 읽는 구운몽`은상에 임경묵(42) 씨의 `매화초옥도에 들다`가 선정됐다. 또 희곡 부문 금상은 강석현(44) 씨의 `귀불귀-김시습과의 인터뷰`은상은 김영근 씨(48)`조선으로 베다`가 당선됐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비공개로 엄정하게 진행됐다. 소설가 김주영 씨를 심사위원장으로 소설 부문에 박상우권지예전경린시 부문에 안도현이승하이처기희곡 부문에 박정기김태수 심사위원이 보름간 예심을 거친 후 각자 추천한 작품을 교차하여 심사한 다음 지난 726일과 27일 양일간 본심을 거쳐 수상작을 결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111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문학제와 함께 열릴 예정이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5천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며각 부문별 금상과 은상 수상자에게도 상패와 함께 각각 1천만 원과 5백만 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한편 군은 김만중 문학상의 품격을 높이고 유배문학의 정신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수상작들을 책으로 엮어 10월 말경에 작품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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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읽는 구운몽 / 이교상

―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슬 내린 새벽

혼자 달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물푸레나무 그림자처럼

사람의 생애生涯와 비의悲意를 낭창낭창 짊어지고

강 건너 고개 넘어 굽이굽이 흘러온

남해에서

검붉은 욕망의 사설辭說

파도 위에

던지고, 던지고

 

 

1

 

안개에 둘러싸인 꽃의 밀담密談 들어본다.

 

옛날, 아주 옛날 중국 당나라 때 이야긴데, 서역 천축국에서 건너온 신선 같은 고승高僧 육관대사가 사방팔방 기기묘묘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단풍나무 소나무 박달나무 삼나무 등나무 녹나무들이 우거질 대로 우거진 남악 형산 일흔 두 개 봉우리 중 연화봉에 터 잡아 그윽하게 법당 짓고, 날이면 날마다 산문 활짝 열어 동굴처럼 세상 어두워지지 않도록 솔향기 은은히 날려 보내고 옥구슬 같은 폭포수 끝없이 흘려보내며 불법을 베풀었는데.

 

……혼란한 전국시대였던가, 간신의 모략으로 유배당해온 굴원이 장편 서정시 ‘이소離巢’를 읊었고, 두보가 동정호의 아름다운 악양루에 올라 ‘등악양루登岳陽樓’의 시를 단숨에 토해냈던 그때,

 

2

 

누구나 우러러본

선지자先知者가 있었으나

 

겨울이 흘러가고

다시 봄이 찾아와도

 

떠도는

바람과 구름

발(足)을 갖지 못했으니

 

3

 

두문불출, 고요히 법당에 앉아 있어도 육관대사는 천리만리를 보고, 눈을 감고도 세상 구석구석 박혀 있는 좁쌀 같은 어둠까지 모두 읽었으니. 그 염력念力 하도 신통하고 방통해 이내 소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잣거리를 벗어나 온천지에 자자하게 퍼졌는데.

 

어느 날, 양자강 하류 더 넓게 펼쳐진 동정호의 용왕이 육관대사 설법 한 번 들어보려고 만사 제쳐두고 철갑상어 은어 붕어 미꾸라지 메기 금강모치 독중개 돌마자 두렁허리 무지개송어 참갈겨니 버들치 가물치들을 거느리고 연화봉을 찾았는데. 그에 육관대사가 제자 성진을 보내 고마움을 전할 때, 형산에 살고 있던 고고한 선녀 위 부인도 급히 팔선녀를 대사에게 보내 여차저차해서 법회에 참석하지 못했음을 사과하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는데. 그날이었지, 용왕의 환대로 거나하게 술에 취한 성진은 마치 구름 위에 올라탄 것처럼 아롱아롱 그렇게 혼자 한껏 흥에 겨웠는데. 때마침 연화봉 구경하며 돌아가던 아리따운 팔선녀를 석교에서 본 순간 번쩍, 정신이 든 성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말 섞으며 희희낙락 놀았는데. ……그래, 예나 지금이나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짜릿하고 감질疳疾나게 재미있는 것은 꽃놀이패, 그 붉고 물컹하고 달콤하고 쫄깃하고 시큼한 음담패설 같은 농담. 고것이 그 어떤 산해진미山海珍味보다도 맛있고 또 씹으면 씹을수록 입에 착착 달라붙는 봄도다리 육질 같아, 성진은 세상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 줄 모르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인 줄 모르고 난생 처음 사랑에 흠뻑 빠지게 되었는데. 낮과 밤 구별 없이 겁도 없이 복사꽃 같은 팔선녀의 얼굴 부처의 몸에 날마다 그리고 그렸는데. 적막강산 같은 시간 질겅질겅 씹으며 세상 부귀와 공명 몰래 꿈꾸다가 꿈을 꾸다가

 

그만 육관대사에게 그 사실 들켜 팔선녀와 뿔뿔이 흩어져 지옥으로, 온갖 금수禽獸가 우글거리는 속세俗世로 쫓겨났는데.

 

그렇지, 한 번 맛본 그 맛 어디 쉽게 잊었겠나?

 

4

 

망초꽃 같은 밤이

얼마나 또 흘렀는지

 

세상에 비가 왔는지

바람이 불었는지

 

화들짝,

눈 뜨고 보니 거기

 

낯선 내가 있었다

 

5

 

나는, 회남 수주현 양처사의 아들 양소유로 다시 태어났지.

 

아버지는 신선이 되려고 집을 떠나고, 홀어머니 품에서 일찍 철든 나는 험난하고 각박한 세상 당당하게 살아남기 위해 열다섯 살 먹었을 때 가슴에 큰 뜻 하나 알처럼 품고 과거보러 가던 중 화음현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어여쁘고 귀엽고 얌전하고 정숙한 진어사의 딸을 보고 반해 어린 나이였지만 조숙할 대로 조숙한 나는 채봉과 굳게 혼인을 약속했는데. 그러나 그해 나라가 어수선하여 구사량이 난을 일으켜 과거고 뭐고 남전산으로 급히 몸을 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세상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아무도 몰래 몸속에 숨겨놓은 칼 녹슬지 않게 날마다 갈고 갈며 도사에게 배운 음률 주문처럼 읊조리고 또 읊조렸는데. ……그렇게 한 해를 속절없이 보내고 이듬해 다시 과거 보기 위해 경사로 가던 중 배도 고프고 몸 피곤해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낙양 천진교 시회에 참석했는데. 몸보다 마음이 더 허전하고 허기졌던지 그날 밤 그만 나도 모르게 기생 계섬월의 치마폭에 풀썩, 힘없이 쓰러져 아주 요상스러운 꿈을 꾸었는데.

 

아뿔싸, 칼집에서 잘못 뽑힌 칼이 허공을 벴으니…….

 

6

 

휜 구름 잡아먹은

황사비 울대 같은

 

엄나무 목덜미에

불거진 핏대 같은

 

천지간,

바람이 불어

 

세상은 늘 아득하고

 

7

 

마침내 경사에 도착한 나는 어머니의 친척 두련사의 주선으로 발랄하고 영특한 처자 경패를 만났지.

 

그해 과거에 급제하고, 정도사의 사위로 찍혀 어쩔 수 없이 경패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며 미적거리고 있을 때 화가 난 경패는 내가 거문고를 탄다는 핑계로 여자 도사로 꾸며 접근한 것이 괘심해 시비를 선녀처럼 꾸며 날 유혹하게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애교덩어리 가춘운과 함께 밤이슬 내리고 달이 지는 줄도 모르고 아침이 올 때까지 입김과 향기로운 살내음에 흠씬 취하고 젖었는데. 그때, 마침 하북에서 역모의 조짐이 일어 단숨에 절도사로 임명된 나는 세 왕의 불만을 다스리고, 다시 계섬월을 만나 반가움에 원앙 베개와 비취 이불 깔

 

아놓고 뜨겁게 아주 뜨겁게 정을 나누었는데. 다음날 깨어나고 보니 계섬월은 안보이고 내 옆에 하북의 명기 적경홍이가 한 떨기 모란꽃처럼 방그레 웃고 있었는데. ……경사로 돌아온 나는 우연히 오래전에 잡혀와 궁녀가 된 채봉을 보고 가슴 끙끙 앓다가 애를 태우다가, 어느 날 황제가 베푼 환선시紈扇詩에 차운次韻하여 다시 채봉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러던 중 달 밝은 밤에 문득 난양공주의 퉁소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그에 화답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부마駙馬로 정해졌지만, 경패와의 혼인 약속을 핑계로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다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때마침 토번왕이 쳐들어와 나는 다시 대원수가 되어 출전하게 되었는데.

 

그날 밤, 날 죽이기 위해 토번왕이 보낸 여자 자객 심요연을 단숨에 굴복시켜 인연을 맺고. 그 와중에 백룡담에서 용왕의 딸 백릉파를 도와줘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또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는데.

 

8

 

흰 구름 바라보다

나른해진 몸을 안고

 

낮달 둥둥 떠다니는

허공을 끌어안고

 

훨훨훨,

꿈속을 날며

 

삼켜먹은 꽃이라니!

 

9

 

부귀도 권세마저 하나씩 내려놓고.

 

우여곡절 끝에 영양공주가 된 정경패와 난양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고향에 계신 노모를 모시고 와 그동안 연을 맺은 진채봉 계섬월 적경홍 가춘운 심요연 백릉파와 함께 오붓하고 조용하고 느릿하게 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생일날 종남산에 올라 팔선녀와 한가롭게 가무를 즐기며 놀다가 문득 먼저 살다간 영웅들의 황폐해지고 잡풀 무성히 덮인 무덤을 본 그날부터 자꾸 몸 노곤해지고 기운이 빠지고…… 되돌아보니, 내 모습 이리저리 뭉게뭉게 떠다니는 구름이었고, 온갖 욕망이 칼춤 추는 세상은 곰팡내와 지린내 가득한 감옥이었고, 시시때때로 골짜구니 휘감아 오른 삶은 매 순간 정신과 육신을 칼끝 위에 세우는 선무당 바람의 모습이었으니. 그때 호승이 찾아와 날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면, 몸에 깊이 박힌 수많은 칠흑의 가시 뽑아내 적멸寂滅로 가는 길 선명하게 보지 못했다면 나도 팔선녀도 영원히 극락세계에 들지 못했을 터, 절대.

 

오늘도, 남해금산 보리암 풍경風磬소리 세상 멀리멀리 퍼지고

 

 

 

 

제3회 김만중문학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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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실시 3년째가 되는 김만중 문학상은 1회와 2회 수상작들을 참고해서 그런지 어느덧 대다수의 작품이 패턴(pattern)화 되어 실망스럽기도 했다. 당선작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쓰면 되겠다는 요령을 익히기보다는 김만중의 문학정신이나 유배객으로서의 회한과 절망, 그것을 뛰어넘는 절치부심의 각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시 부문 심사는 ‘김만중’ ‘유배’ ‘남해’ 소재의 시와 그렇지 않은 일반시를 나누어 후보작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김만중문학상’이라는 상의 타이틀과 무관한 작품 중에 좋은 것이 보이면 올해는 파격적으로 그런 작품에 상을 주자고 논의하면서 심사에 임했지만「늙은 무녀」「겨울 대숲을 지나며」정도가 후보로 거론되었을 뿐 방외(方外)의 작품 중 당선을 겨룰 우수작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밖에 우리가 눈여겨본 작품은「서포(西浦) 소전(小傳)」「노도 가는 배」「남해에게로의 유배」「유배문학관 매화」「꽃이라 부르지 마라」「서포 만가」「유배문학관 매화」「앵강 물속을 건너온 그 밤의 엽서」「서포일기」「유배지 아이들」「남해 12경」등이었다. 예년 같으면 이 중에서 금상이나 은상이 나올 수 있었겠지만 이들 작품에는 공통적인 약점이 있었다. 정일근의「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나 고두현의「유배시첩」등 기존 작품의 잔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었다. 예년에 이 상을 탄 하수현ㆍ공광규ㆍ이상원ㆍ박후기 시인의 수상작의 영향을 받은 작품도 없지 않았다. ‘김만중 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이기에 소재와 주제는 비슷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얼개와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영향’이나 ‘흉내’의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 정말 많았다. 게다가 20행 이상의 시가 연 구분 한 번 없이 지속되거나 호흡이 너무 긴 산문시는 시가 아니라는 강한 반발심까지 불러일으켰다.

 

우리는「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에 들다ㆍ1」외 19편의 연작시를 그중 낫다며 뽑기는 했지만 사실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한자와 각주가 너무 많다. 21세기인 지금 우리들의 삶에 이들 시가 어떤 의미로 와 닿을까, 고민을 하며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였다. 다만 한 가지 사줄 점은 시에 들인 공력이 만만치 않고, 편편의 시가 갖고 있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여타 응모자의 시보다 확실히 나았다. 언어의 경제적 운용과 고전 소재에 대한 감각적인 접근이 그래도 다른 응모자들과 변별되는 점이어서 입상작에 올리기로 했다. 20편이 모여서 이룩한 그림은 어느 정도 품격을 갖추고 있고, 시에 대한 자세가 진지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유배문학은 우리 국민문학의 전통을 이어오며 한 민족의 성정에 잘 맞는 시조문학과 가장 가까운 장르이다. 이런 관점에서 시조작품을 눈여겨보았다. 자유로운 주제로 창작한 시조작품에서도 시조의 정형을 지키면서 신선감을 주는 좋은 작품이 있었다. 그러나 서포 김만중의 삶의 궤적에 초점을 맞추고 절해고도 남해를 노래하고 서포의 깊은 의중을 찾아가는 장편의 연작시조에서 더 우수한 작품성을 볼 수 있었다. 옴니버스 형식을 빌려 사설과 단시조로 구성하면서도 절제미와 균형미를 잘 살린「시조로 읽는 구운몽」은 응모한 작품 중 대어감이었다.「서포, 길을 나서다」도 끝까지 입상작과 겨룬 우수작이었다.

 

시 분야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시조로 읽는 구운몽」과「서포, 길을 나서다」를 읽고 올해는 시 분야 최우수작보다 시조 분야 최우수작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장시에 가까운「시조로 읽는 구운몽」도 위풍당당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지만 함께 투고한 다른 시조가 날림으로 쓴 것이 없이, 하나같이 시인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정형을 지킨 시조가 있는가 하면 파격으로 나간 시조도 있었다. 전통 고수와 언어 실험을 번갈아 하면서 우리 시조의 영역을 지키고 넓혀간 투고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당연히 시조「시조로 읽는 구운몽」이 금상을, 시「매화초옥도에 들다」가 은상을 받게 되었다.

  

비록 수상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투고해준 많은 분들에게 후일을 기약해보시라는 격려를 보낸다.

 

- 심사위원 : 안도현, 이승하, 이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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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에 관한 고찰 / 최헌명

 

 

1

 

백무동 첫물이 물안개 뚫고 내리며 무연한 참꽃

마주쳐 곁눈으로 훔치다

헛디딘 발목을 끌고 바위에 미끄러지는 소리

 

2

 

처마 낮은 지붕 아래 다저녁 내릴 무렵 시집 간

첫째 딸이 손자 안고 들어설 때

앉혀 둔 찰옥수수가 솥뚜껑 여는 소리

 

3

 

가을볕 목덜미에 잔광이 빌붙기 전 콩이야 팥이야

하늘 바라 말리는 시간

깻단이 성질 못 참고 제물에 터지는 소리

 

 

 

제2회 김만중 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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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이 고전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만중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난해 제정한 제2회 김만중 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시상식은 남해유배문학관 개관 1주년을 맞는 11 1일 문학제에 이어 가질 예정이다. 대상 수상자에게 상금 5천만원과 상패가 수여되며, 각 분야 금상은 상금 1천만 원과 상패, 은상은 상금 5백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5천만원의 상금을 받게 된 대상은 시 부문 출품작인 이상원 씨의서포에서 길을 찾다가 수상했다. 김만중 선생이 한글소설인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쓴 작가라는 점에서 소설 부문에서 대상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에서 벗어난 의외의 결과였다.

 

소설 부문은 금상에 이후경 씨의 저녁의 편도나무, 은상에 이춘실 씨의 빨간눈이새가 당선됐다. 시 부문은 금상에 박후기 씨의 유배자청, 은상에 최헌명 씨의 시조웃음에 관한 고찰이 선정됐다. 평론 부문은 금상 당선작을 내지 못했으며, 손정란 씨의 이별한 자의 길 찾기가 은상을 차지했다.

 

2회 김만중 문학상은 시 2210, 시조 23, 장편소설 46, 중편 54, 단편 116, 평론 8편 등 총 2,457편의 작품이 응모됐다. 심사는 시와 소설 부문 각각 3, 평론은 2명이 맡아 모든 편수를 꼼꼼히 읽은 후 9 23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소설가 윤정모 씨를 심사위원장으로 종합심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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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자청自請 / 박후기

- 미조항 멸치잡이

 

 

남해 미조항

멸치잡이 뱃사람들

흔들리는 뱃전에 올라

헹가래를 칩니다

그물 후릴 때마다

멸치 떼가 날아오릅니다

잠시 허공에 떠 있던

키 작은 슬픔들

젖은 비늘 반짝이며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찢기고 털려도

기를 쓰고 들러붙어 있는

생이라는 악착,

그물에 들러붙은 멸치도

뱃전에 달라붙은 사람도

서로 악착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뱃사람들

있는 힘 다해

털어내려는 것이

 

어디 멸치뿐이겠습니까

미조항에서는

가난도 멸시도

멸치와 함께 바다 위로

내동댕이쳐집니다

 

 

 

제2회 김만중 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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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이 고전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만중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난해 제정한 제2회 김만중 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시상식은 남해유배문학관 개관 1주년을 맞는 11 1일 문학제에 이어 가질 예정이다. 대상 수상자에게 상금 5천만원과 상패가 수여되며, 각 분야 금상은 상금 1천만 원과 상패, 은상은 상금 5백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5천만원의 상금을 받게 된 대상은 시 부문 출품작인 이상원 씨의서포에서 길을 찾다가 수상했다. 김만중 선생이 한글소설인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쓴 작가라는 점에서 소설 부문에서 대상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에서 벗어난 의외의 결과였다.

 

소설 부문은 금상에 이후경 씨의 저녁의 편도나무, 은상에 이춘실 씨의 빨간눈이새가 당선됐다. 시 부문은 금상에 박후기 씨의 유배자청, 은상에 최헌명 씨의 시조웃음에 관한 고찰이 선정됐다. 평론 부문은 금상 당선작을 내지 못했으며, 손정란 씨의 이별한 자의 길 찾기가 은상을 차지했다.

 

2회 김만중 문학상은 시 2210, 시조 23, 장편소설 46, 중편 54, 단편 116, 평론 8편 등 총 2,457편의 작품이 응모됐다. 심사는 시와 소설 부문 각각 3, 평론은 2명이 맡아 모든 편수를 꼼꼼히 읽은 후 9 23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소설가 윤정모 씨를 심사위원장으로 종합심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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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에서 길을 찾다 / 이상원

- 서시1 

 

 

어머니,

 

그늘이 쌀찌는 걸 이제 알았습니다.

제 몸보다 더 큰 부피로 이끼를 먹고

 

묵은 시간은 이 새벽.

 

푸른 설움처럼 토사곽란을 하고 있지요.

차가운 문갑 안에 식은 묵처럼 고여 있는

 

구운몽과 서포집

, 서포만필과 사씨남정기

이렇듯 눈 시린 고서 몇 질의 두께로

잊혀진 세월은 고스란히 말을 걸고,

 

쇠구들 얼어붙은 연지에

입김 불어 모지라진 붓끝으로

송연먹 찍어 이 글을 올립니다.

 

남해 적소에서,

서포집 근처 호젓한 고전의 숲을 거닐다가

 

불효 소자, 만중은

 

우리 조선의 한글로 몇 자 적어

겨우내 쟁여놓은 설익은 그리움일망정

부패하지 않을 소금의 정신으로 녹고자

단정하게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이제 봄이 턱에 와 닿았습니다.

 

매화가,

 

줄 풍류 타며

다랭이논보다 가쁘게 숨 헐떡이며

가천마을까지 기어오르고

 

마침내 여기 유배지.

 

인적 드문 노도의 초옥에 당도하여

 

가늘게 문풍지 두드리며

남은 숨 고르다가

 

분분 휘날리며.

 

느리게 진양조 가락에 실어

아슬하게 시대를 노래하며

거문고 타고 있어요.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몸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께서 가난과 맞바꾼

서른 서책 몇 질의 무게로도

갚지 못할 불효가 넘쳐

남해 물결보다 세차게 넘실대고

 

꽝꽝한 냉수 한 사발로 때로

세상을 향한 분노도 삭여보지만

어쩔 도리 없이 성난

파도에 유리안치되어,

 

소자, 영락없이

적소에 매인 몸입니다.

남루한 그늘이 새벽 햇살에 반짝이며

눈동자를 씻을 무렵 시퍼런 비늘보다 더

싱싱한 아침을 두레박으로 건져 올리는 지금.

 

수평선에 걸려 탯줄을 감은 해가,

 

질식하도록

저토록 아프게 떠오르는 줄도

비로소 여기 유형의 외진 곳에서 알 뿐입니다.

 

 

 

 

서포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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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 김만중 문학상 시상식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문학인들의 축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김만중 문학상은 시, 소설, 평론 부문에서 456명이 응모해 2627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남해군은 공정한 심사를 위해 분야별로 4명의 심사위원을 두어, 예심통과 작품을 공개 토론하는 방식을 통해 대상 1명과 분야별 금상, 은상 각각 1명의 당선작과 당선자를 발표했다.

 

1일 오후 430분께 진행된 시상식에는 정현태 남해군수를 비롯해 최채민 군의회의장 등 200여 명의 군민이 참석해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이날 시 부문 출품작인 이상원 씨의 '서포에서 길을 찾다'가 대상을 수상했고 소설 부문 금상에 이후경 씨의 '저녁의 편도나무' 은상에 이춘실 씨의 '빨간눈이새'가 수상했다. 또 시 부문은 금상에 박후기 씨의 '유배자청', 은상에 최헌명 씨의 시조 '웃음에 관한 고찰'이 수상했다.

 

평론 부문은 금상 당선작을 내지 못했으며, 손정란 씨의 '이별한 자의 길 찾기'가 은상을 차지했다.

 

정현태 남해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저는 제2회 유배문학관 수상작을 보름전에 읽었다.특히 대상작인 이상원 선생의 장편서사시는 격조높고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바른 문학을 통해 이 시대가 바른정신으로 제 갈길을 가서 후세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해군은 11 1일 남해유배문학관 개관 1주년 기념식에 맞춰 시상식을 가질예정이며 대상 수상자에게는 5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3개분야의 금상과 은상 수상자에게는 각각 1천만원과 5백만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김만중 문학상은 서포(西浦) 김만중 선생의 작품 세계와 국문정신을 기리며, 유배(流配)문학을 전승ㆍ보전하려고 남해군에서 지난해에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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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 / 하수현

 

 

 

 

 

 

 

 

 

 

 

 

 

 

 

 

 

제1회 김만중문학상 수상작품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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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높은 작품 수준, 작품상 취지 잘 살린 것으로 평가

 

남해군이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김만중 선생의 작품 세계와 국문정신을 높이 기리며, 유배문학을 전승.보전하고 한국 문학발전에 기여코자 공모한 제1회 김만중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지난 5월 18일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9월 17일까지 4개월간 공모해 510명 2763편이 공모돼 전국 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가운데, 문호성(부산 동구) 씨의 장편소설 '육도경(六島經)'이 대상을 차지해 5000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됐다. 금상은 시, 소설, 수필, 희곡, 아동문학, 유배문학특별상 분야로 나눠 10명이 선정됐다.

 

금상 수상작을 분야별로 보면 △시, 하수현(포항) 씨의 '겨울나그네', 공광규(경기 고양시) 씨의 '지족해협에서'△소설, 유연희(부산 금정구) 씨의 '날짜 변경선', 정희성(인천) 씨의 '백지에 대한 지질학적 탐구' △수필, 송명화(부산 동래구) 씨의 '화선(火仙)' △희곡, 이원희(서울 은평구) 씨의 '줄탁', 이주영(서울 용산구) 씨의 '그녀의 손가락' △아동문학, 김은중(경기 고양시) 씨의 '도둑왕이 도둑맞은 것', 이우식(충북 제천시) 씨의 '실뜨기 놀이' △유배문학특별상, 임세한(경기 남양주) 씨의 '초옥(草屋)가는 길'이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제1회 문학상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많은 문인들의 참여와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이 높아 심사위원들이 여러번 의논을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며 ,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세계와 국문정신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문학상의 취지에 맞는 작품을 선정코자 고심했다"며 전체적인 총평을 전했다.

 

현기영 심사위원장은 "이 사회에 미만한 파시즘의 폭력에 강렬한 허무주의로 맞서고 있는 장편소설 '육도경'은 응모작품들 중에 군계일학의 압도적인 매력을 내뿜고 있다"며, "육도경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서 제목의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생각되는 바, 모두 여섯 개의 상징적인 섬을 통과하며, 각 섬마다 지닌 개인적 혹은 시대적 폭력에 맞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인간성을 말살 당하는가, 아니면 내적인 성장을 통해서 폭력을 극복해 가는가에 대한 대답을 추구한 작품이다"고 심사평을 전했다.

 

또 "심사위원은 바로 그러한 치열하고도 치밀한 작가정신이야말로 서포 김만중 선생이 남해까지 유배 당한 채 오랜 고독과 정신적 방황 속에서 이루어낸 빛나는 작품세계와도 어깨를 겨누어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믿는다. 또한 그러한 육도경의 작가정신이야말로 우리 문학에 유배문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서, 우리 문학에 또 하나의 매력적이면서도 소중한 어떤 가능성을 여는데 크게 보탬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대상 수상자 문호성 씨는 "왜곡된 시공 속에 은밀히 숨어 있는 폭력들을 과녁 삼아 이 글을 썼으며, 부끄러운 시도를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시상은 오는 11월 1일 남해유배문학관 개관에 맞추어 남해유배문학관 특설무대에서 오후 5시에 열린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50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소설과 유배문학특별상은 상패와 상금 500만 원, 시, 수필, 희곡, 아동문학은 상패와 상금 300만 원이 각각 수여된다.

 

한편, 군은 12월경 수상작품들을 책으로 엮어 새롭게 출발하는 제1회 김만중 문학상의 품격을 높이고, 문학상과 유배문학관의 정신을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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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해협에서 / 공광규

- 유배일기 1

 

 

갯가 푸조나무 아래서 가을단풍을 등불삼아

향교에서 빌려온 <주자어류>를 읽다가 내려놓고

통무를 넣고 끓인 물메기국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해안을 한참 걸어가 만난 곳이 지족해협이라던가

연을 날리는 아이들과

굴과 게와 조개와 멍게를 건지고

갈치와 전어와 쭈꾸미를 잡는 노인들을 만나

이곳 풍물을 묻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갈대를 엮어 올린 낮은 지붕에는

삶은 멸치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는데

떼 지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용과 같더군요

아하, 이곳에서는 멸치를 미르치라 부른다는데

미르라고 부르는 용의 새끼가 미르치 아닐는지요

미르라고 부르는 은하수 또한

이곳 바다에서 올라간 미르치의 떼가 아닐는지요

참나무 말뚝을 박은 죽방렴 아래에서는

남정네들이 흙탕물에 고인 멸치를 퍼 담고 있었습니다.

흙탕물 바가지에 담긴 멸치들을 보면서

인간의 영욕이라는 것이 밀물 썰물과 다르지 않고

정쟁政爭에서 화를 당하는 것은 빠른 물살을 만나

죽방렴에 갇히는 재앙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삶기고 말라가는 지붕 위의 멸치와 다름이 없는 이 몸은

남해의 물을 다 기울여도 씻지못한 누명이거늘*

오늘 밤,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이 그리울 뿐입니다.

 

* <사씨남정기> 구절에서 인용

 

 

 

 

담장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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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부문에서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응모자 30인에 의한 226편이었다. 김만중 문학상 첫 공모인데도 불구하고 수준은 매우 높았다. 30인의 작품 중 아무것이나 잡고 당선작으로 하고 의미를 붙이면 그대로 이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사위원 두 사람이 집어든 작품들은 묘하게도 지향점이 일치했다. 아무리 자별난 묘사를 하고 내면 풍경 추적에 열심이어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가, 그 말하고자 하는 점을 시인이 통제하면서 마침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이르렀는가 하는 데 초점이 주어져 있었다. 그런 쪽에서 <서포 서한>, <움직이는 달>, <옷들>, <돌이 꽃 피는 순서>, <겨울 나그네>, <지족 해협에서> 등의 작품들이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두 편은 <겨울 나그네> <지족 해협에서>( 6편 포함)였다.

 

<겨울 나그네>는 갈앉은 차분한 음성으로 순례하는 영혼의 장면들을 장시로 풀어갔다. 떠도는 의식, 이미지, 급할 것 없는 삶의 사연이나 단편들이 시인의 언술에 엮여져 있어 머물지 않는 순례의 길, 그 도정이 밝혀지고 있었다. 이 시에서 독자는 말한다는 것은 그 말 때문에 신뢰할 수 있음을 체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족 해협에서> 6편을 낸 응모자는 김만중을 소재로 한 7편의 유배일기를 썼다. 그러니까 일정 의도를 놓고 시를 써나갔다는 점에서 응모자의 평소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 시편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합격점을 얻은 셈이다. 이 시를 쓰기 위해 지족해협이나 다랑이논이나 이재 선생 묘소, 노도, 망운산 등지를 돌면서 취재하고 사색한 그 노력이 십분 드러나고 있는데 말하자면 발로 쓴 시로서의 현장성이 돋보이는 것이었다. 특별히 각 편 주제의 안배도 눈여겨 둘 만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살펴본 대로 시부문 당선작으로 <겨울 나그네> <지족해협에서> 6편을 일찌감치 골라놓고, 이들 작품을 쓴 응모자가 기성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름이 밝혀져 기성이라면 망운산 높이로 든든할 것이고, 신인이라면 노도 앞바다 물결처럼 신선할 것이라 그렇게 기대되는 것이었다.

 

심사위원 : 강희근(경상대 명예교수),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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