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 김혜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그건 내가 모르지.
당신의 잠든 얼굴 속에서 슬며시 스며 나오는 당신의 첫.
당신이 여기 올 때 거기에서 가져온 것.
나는 당신의 첫을 끊어버리고 싶어.
나는 당신의 얼굴, 그 속의 무엇을 질투하지?
무엇이 무엇인데?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당신을 만든 당신 어머니의 첫 젖 같은 것.
그런 성분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첫.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하는 첫은 사진 속에 숨어 있는데, 당신의 손목은 이제 컴퓨터 자판의 벌판 위로 기차를 띄우고 첫, 첫, 첫, 첫, 기차의 칸칸을 더듬는다. 당신의 첫.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 옛날 당신 몸속으로 뿜어지던 엄마 젖으로 만든 수증기처럼 수줍고 더운 첫. 뭉클뭉클 전율하며 당신 몸이 되던 첫. 첫을 만난 당신에겐 노을 속으로 기러기 떼 지나갈 때 같은 간지러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있으므로, 당신의 첫은 살며시 웃고 있을까? 사진속에서 더 열심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까? 엄마 뱃속에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가던 당신의 무서운 첫 고독이여. 그 고독을 나누어 먹던 첫사랑이여. 세상의 모든 첫 가슴엔 칼이 들어 있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른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 개, 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당신의 첫, 나의 첫,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첫.
오늘 밤 처음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가서
나는 첫을 잃었어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 손 잡고 뽀뽀라도?
그렇게 말할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의 첫은 끝, 꽃, 꺼억.
죽었다. 주 긋 다. 주깄다.
그렇게 말해줄까요?
총 상금 1억4천만원 규모인 제16회 대산문학상의 주인공이 뽑혔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4일 김혜순(시집 <당신의 첫>), 구효서(소설 <나가사키 파파>), 정복근(희곡 <짐>), 김인환(평론집 <의미의 위기>)씨(왼쪽부터)를 올해 수상자로 발표했다. 스페인어권을 대상으로 한 번역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당신의 첫>은 “수일한 이미지들과 흉내낼 수 없는 참신한 비유들로 여러 사람을 충격하였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올해부터 장편으로 한정한 소설 부문 수상작 <나가사키 파파>는 “독특한 개성과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다국적 공동체가 어떻게 가족을 대신해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는가” 하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또 <의미의 위기>는 “인문학적 식견에 바탕한 섬세한 작품 읽기와 문학사에 대한 폭넓고 균형 있는 시각이 돋보였다”는 평을 들었으며, 해방 직후의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을 다룬 <짐>은 “어두운 과거사를 간결하게 녹여 그 답답한 미해결의 상태를 적절히 문제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상자들은 이날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감을 밝혔다. 상금은 소설이 5천만원이며, 나머지 부문은 3천만원씩이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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