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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남자 / 정병근

 


호주머니가 다닥다닥 붙은 빨간 조끼를 입었다
말이 자꾸 날려서 무슨 소린지 통 못 알아듣겠다
이슬비 뿌리는 중랑천 다리 밑,
합판으로 아랫도리를 싸맨 리어카에
아이스박스 하나와 과자 몇 봉지 달랑 놓여있다
막걸리 한 병을 시키자 멸치 세 마리를 내 놓는다
내심을 들킨 소년처럼 그는 자꾸 부끄러워
과자 값을 물어도 딴 곳을 보며 오백 원이라고 작게 말한다
수치스럽게, 수치스럽게 아카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날려가는 종이컵을 잡으려고 기우뚱거리는
그의 바짓가랑이가 팔랑거린다
비둘기 몇 마리 과자 부스러기를 콕콕 쪼아댄다
플라스틱 의자들도 가벼워서 나동그라지기 쉽다
지나가던 한 남자가 커피 있느냐고 묻자
어서오세요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잽싸게 종이컵에 물을 붓고 커피를 탄다
잠시 할 일이 없자 두 손을 사타구니에 넣고 싹싹 비벼댄다
마시다 만 소주가 반 병 정도 있다
그는 빨리 취해서 한 쪽으로만 가파르게 쏠리고 싶다
누군가를 붙잡고 했던 말을 자꾸 하고 싶다

 

 

눈과 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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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시편1/ 김형술

 

 

어둠이 등대를 세우듯
바람이 섬을 낳았다

천진한 신석기의 바람이 불면
꽃으로 뒤덮이는 섬

섬을 키운 건 물너울
꽃내음 흩뿌리며
흰 물꽃 머리에 이고 달려오는
물마루

그 끝에
흔들리는 듯 흔들리지 않고
늘 떠나지만
다시 돌아와 앉는
섬이 있다

뭍으로 가 불빛이 되거나
한바다로 떠나 빛이 되는

섬은 바다를 위해 있고
바다는 섬을 위해 있어

섬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섬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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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 김형술

 

어둠이 등대를 세우듯
바람이 섬을 낳았다

천진한 신석기의 바람이 불면
꽃으로 뒤덮이는 섬

섬을 키운 건 물너울
꽃내음 흩뿌리며
흰 물꽃 머리에 이고 달려오는
물마루

그 끝에
흔들리는 듯 흔들리지 않고
늘 떠나지만
다시 돌아와 앉는
섬이 있다

뭍으로 가 불빛이 되거나
한바다로 떠나 빛이 되는

섬은 바다를 위해 있고
바다는 섬을 위해 있어

섬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섬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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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_DAUM->

 네가 완벽한 구도의 사진 한 장을 꿈꿀 때

뒤 배경이 되어준 폐선과 남은 생을 태워 조개를 구워주는 어부를

 

 

 

 

      사진 속의 바다

 

                                          김왕노

 

 

그 바다 알지  수평선 까지 다 보여주고 썰물 때 제 바닥까지

드러내어 보여주던 그 바다 알지

그 바닷가에는 불타는 조개구이란 집이 있고.

우리는 바다를 훔치고 싶어 술잔에다 바다를 따라 마셨지

남들은 소주라 하지만 분명히 바다를 따라 마신거야.

노을이 슬픔으로 밀려온다는 그 순간  속에다 우리를 세우고

바다를 훔쳐 담았지 바다가 암실에서

서서히 인화 될 때 까지 우리는 몰랐던 거야.

우리의 뒤 배경이 되어준 폐선과 바닷가 까지 흘러와

남은 생을 태워 조개를 구워주는 어부를.

그 어부의 어린 딸과 넓고 넓은 바닷가의 오막살의 집 한 채를.

그 바다 알지 물 냄새 맡은 낙타처럼 찾아간 그 바다 알지

바닷가까지 따라온 그리움이나 우리가슴 안의 새 떼를.

오랜만에 바람 쐐라 불어 줄때 우리도 바다가 되어 출렁거렸음을.

그 바다 알지 그 사진속의 바다

완벽한 바다의 사진이 되어주기 위해 배경이 되어준 썰물의 풍경도.

내가 완벽한 구도의 사진 한 장을 꿈꿀 때 뒤 배경이

되어주는 자의 아름다움도 알지.

맨 뒷줄에서 뒤꿈치를 들고 고개 내미는 그 안간힘의 아름다움도 알지.

그 바다 알지

다시 가보고 싶은 그 바다알지.

오늘도 내가 좌초되어가는 사진속의 그 바다 알지.

흉어기의 그 바다 알지.

평생 정박의 닻 내리고 싶은 그 바다 알지.

 

 

 

 

김왕노『말달리자 아버지』천년의 시작 2006. 48쪽

 

 

 

 

 

 

 

출처 : 바람의 그림자
글쓴이 : 거침없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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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공동수역에 던진 몇개의 부위에 대한 확인

 

 

                                                       서규정

 

양망이다. 지나海에 노을은 지고
주황의 캔버스*가 먼저 떠오르면 수 백 마리의
갈매기들은 날아와 서로 악수를 나누며 우는데
십자성 별빛 따라 팝콘처럼 덩달아 터지는 별
船橋에선 라쿰파르시타를 틀어놓고
갑판에선 동백아가씨를 부르면
지금 어느 장단을 따르는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작업등 불빛 속에 산자락처럼 펼쳐진 그물을 붙잡고
파닥파닥 부랴부랴 올라오는 무르익은 바다여
보아라 보아 너 사내라면 이 황홀경에 빠져 죽고 싶지 않느냐
간밤은 알밤으로 갔다, 눈썹들을 하얗게 휘날리면서
북상한다는 태풍에 눈조차 돌릴 틈 없다
SOS가 바다의 직언이라면
풍파의 전설은 어디까지나 진열과 나열로써 시장 바구니에
싱싱한 바다를 담는 것
바구니엔 경제와 정치가 그대로 담겨
단내를 확확 풍기며 그물을 당기면서 우리는 듣는다
가장 존엄스러워야할 인간의 가치는
나는 작고 적은 무엇이냐 보다 혁명적으로 누구여야 하는가
그것이다
사랑은 유치해야 다시 다실 맛이 있고
전투도 삶도 쫓겨야 악착같이 살맛이 나던 것
우리가 누구라 했지! 만선의 깃발을 미리 올린 선장의
검붉은 혓바닥에 붙어살던 욕설도 이름 모를 바닷새로 날아가고
호박아귀 입매에 사공들의 웃음이 머물 때쯤
피항을 가다 넋을 놓고 구경하는 중국 쌍끌이 선단들
나라와 나라 사이엔 배가 있었고, 만선만큼 빠른 배는 바다에는 없다
너 다시 이 배를 타고 싶다면
저 먹구름 속에 숨은 보름달도 부위로 건져 가자
태풍의 군단을 거느리고 돌아간다
자 이렇게 격랑을 타고 저절로 높아만 가는
우리가 누구였더라 바로
이것이다.

* 캔버스- 어류가 그물로 들어가기 용이하게 설치한 가로50M,세로2M의 휘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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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곡지에서 / p r a h a

 

 

 

꽃 핀다, 꽃 피어난다 / 김경성

  

이미 꽃 진 지 오래된 연밭을 찾아 나섰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연잎들

토굴에 들어가서 수행자가 된 연꽃 씨앗, 

제 몸 말리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토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몸속 깊은 방, 문 열어놓고 

진흙 속으로 떨어지는 뿌리의 긴 시간을 위하여

연잎은 몸 꺾고

둥근 잎 오므려서 몸의 소리로 장엄한 연주를 한다

내밀한 향기로 울림을 주던 시간은 이제 없다

사라지는 것들은 몸속의 것을 다 비워낸 후

제 몸을 울려서 피 울음 같은 소리를 낸다

적멸한다는 것은 저토록 진한 핏빛 눈물 말리는 것이었음을

몇 천 년 후 다시 맑은 연꽃잎 펼칠 수 있음을

제 몸을 두드려서 내는 소리 연밭 가득 퍼지고

그 소리 들으며 토굴 속 연꽃 씨앗

하나 둘 씩 진흙 속으로 뛰어내린다

씨앗 한 개 주워서 입술 대어본다

천 년 후 어느 날  해 질 녘,

은유의 바람으로 세상 적시고 있을 때

꽃 핀다, 꽃 피어난다 

어화둥둥

내, 꽃 입술 찍어놓은 연꽃 피어난다

 

 

 

제 9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출처 : 바람의 궁전
글쓴이 : 프라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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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성지순례 / 이공

 

 

세간에 바람이 제법 무르익었습니다

실수로 찻물 타 버린 커피 같은 세월도

이제는 아실만합니다

방부처리 된 뉴스로 창문을 닦을 시간입니다

유통기한 지난 영화가 싱겁게 끝이 났으니까요

빈 빨래즐에 마음 몇 장 빨아 널어놓고

투덜거리며 올라오던 아랫마을 내려다봅니다

함부로 밝고 올라왔습니다

성배에 입맞추려했던 십자군처럼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다 적인 줄 알았습니다

물 위라도 걸울 수 있으리란 심장 때문에

허우적거렸던 날 많았습니다

여기 와서야 고개 숙여지다니요

연속극 틀어놓은 저 골목에서

날마다 최후의 만찬 열린다는 걸 모르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열 두 광주리 수북히 남도록

나누어 먹고 있다는 걸 나만 모르고……

바람도 내려가서 떡 한 덩이 얻어먹고 갑시다

손때 차곡차곡 쌓여가는 저기가 유적지 같습니다.

 

 

 

 

 

[은상] 마블링 / 김승훈

 

 

그는 하나의 결을 위해 태어난다 몸속에 꽃살문 무늬를 예쁘게 새기기 위해, 붉은 살점에 박힌 하얀 지방의 번짐을 위해, 한약방첩으로 처방된 국물을 마셔야만 했다 식욕을 돋우기 위해 쌀막걸리를 들이 키고, 늙은 소도 벌떡 일어선다는 참기름 두른 산낙지와 유기농 웰빙 바람을 타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정식 볏짚을 쑨 여물 디저트까지 먹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콧구멍에 혀를 쓰윽 집어넣고 입 주변을 싹싹 다시는 걸로 마무리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야만 했다 얼마나 능률적으로 살찌워지는지, 초음파로 속살을 점검받아야만 했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평가하기 전에 그의 비문을 읽는다 그의 내력에 대한 풍문이 혀끝에서 돌자 사람들 입맛을 다신다 이제 사람들 그를 먹는 대신 무늬를 먹기 시작한다 소문을 먹는다

 

 

 

 

 

[은상] 바람속의 잠 / 김정아

 

 

억새들이 서로를 껴안다가

기어이 출렁거리는 무덤이 되어버린 그곳

바람이 비닐 창을 움켜잡고 마구 흔들어댄다

돌멩이를 눌러 둔 천막은 왝왝거리며 멀미를 하고

덜컹거리는 문틈 사이에 뜯겨져 나간 햇볕이

먼지 바닥에 누런 가래침처럼 뒹구는 오후

손님이 온 줄도 모르고 타자 위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포장 집 여자

바람이 꿈속까지 불어가 그녀를 떠밀었는지

야윈 어깨가 흔들리고 숨소리가 서걱거린다

식은 순대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오래된 가난

출입구가 마른 명태처럼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다

마른 갈꽃이 혼자 떠돌다 돌아간 천막집에 남아 있는 것은

잠든 여자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어주는 갈대의 그림자

내 마음은 언제 긁혔는지 자꾸 따끔거렸다

 

 

 

 

2009 제1회 천강 문학상 수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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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감자를 묻다 / 유현주

 

 

상기된 감자싹이 상자 안에 가득하다

막힌 길 뚫지 못해 탱천한 분기가

실업의 암갈색으로 틈께로만 모였다

 

푸르게 돋아날 날 기다리며 와 줄까

응집된 독기 짜내 제 몸에 바르면서

상심이 주름질 때까지 밀어냈을 종이 벽

 

큰 자리 욕심 없이 지상의 한 뼘이면

몇 개의 알맹이를 건사할 수 있을 텐데

하늘 땅 어느 곳에도 이름 달지 못한다

 

정원 한쪽 손질해 싹을 세워 묻고서

놓친 길 잡아준 듯 흡족한 마음 들어

오늘은 내 길도 찾아질까 발걸음이 가볍다

 

 

 

 

 

[동상] 배추벌레 / 강명수

 

 

밤새 별을 따다 배추 치마폭에 장식을 했나보다

밤의 손가락이 늘어갈수록

우주의 원을 더 많이 조각해낸다

직선을 내지 않고 만드는 둥근 마음

도대체 이 공()판화를 만드는

조각가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얼마나 작업에 몰두하였는지

제 몸도 푸르게 물들어가는 줄도 모른다

배추 잎과 일심동체가 되어

삶의 흔적을 열심히 통찰해내는

! 워커홀릭

밤하늘의 숫자만큼이나

뭔가를 재개발해낸다

먹고 버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둥근 몸이 안쓰러운지

이 미물은 삭아질 흔적만을 남긴다

속내를 비워내고 비워내서

저 광대무변 허공을 집삼아 살아가는

또 다른 마하보리

바람소리

빗방울소리

낙엽 부벼대는 소리

새들이 발자국 소리까지도

훤히 들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두는 집을 짓지 아니한다

마치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놓은 것처럼

 

 

 

 

 

[동상] 구절리 / 정일남

 

 

단풍이 대성통곡하여 에움길에 만판 부러진다

구절초가 구절리가 여깁니다 여기예요

기차는 더 갈 곳에 없어요 종착이예요

바람의 입을 빌려 알려준다

늙은 역장의 모자엔 금환이 번쩍인다

 

이젠 누가 기타를 치면서 오지도 않는 기차

석탄을 캐던 광부는 상한 폐를 싸안고 떠난지 오래다

50톤 화차가 녹슬고

흥청대던 호경기도 그림자도 남지 않았다

그 많던 술집은 온데간데없고

화장품 냄새 풍기던 단골집 여자

양상추 같은 부드러운 마음도 떠났다

돼지비계 놓고 술잔을 건네며 인생을 오판하던 낙관주의자

노동 속에 땀이 번쩍이고 무덤처럼 쌓이던 비애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보고 가는 것은

침엽수림이 촘촘하고 갱구가 상처로 버려진 곳

추억이 그리움을 핥고 있는 곳

다시 지난날을 생각하면

구절초야 미안하다

구절초는 구절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꽃이다

 

 

 

 

봄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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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군은 의병장 천강 곽재우 홍의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천강문학상 수상작들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소설 부문 대상에는 재미동포인 주경로(58) 씨의 `여우별을 사랑하다', 시ㆍ시조 부문 대상에는 백점례(50) 씨의 시조 `물풀'이 각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아동문학 부문에서는 이순영(51) 씨의 `꽃시계', 수필 부문에서는 김희자(44) 씨의 `등피'가 각각 대상 수상작으로 뽑혔다.

 

이번 심사는 비공개로 엄정하고 공정하게 이뤄졌으며 수상자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

 

71일부터 접수하기 시작한 제1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에 모두 800여명, 5000여편이 접수됐고 국내는 물론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아르헨티나 등지에서도 응모해 해외 동포들에게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시상식은 16일 곽재우 장군 탄신 457주년 다례식과 병행해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경내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천강문학상은 의령군이 의병장인 천강 곽재우 홍의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충의정신 함양 및 문학의 저변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은 물론 인물의 고장인 청정 의령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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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물풀 / 백점례

 

 

불볕 터진 들녘 너머 풀떨기 못물 아래

따라지들 몰려들어 스크럼을 짜고 있다

물길이 빠져나가다 멱살 잡혀 누워있다

 

골풀의 부추김에 울컥 솟은 부들이며

핏줄 푸른 마름 곁에 웃자란 생이가래

한평생 반듯한 자리 올라설 수 없었다

 

부푸는 소문의 늪 뻗쳐 오른 결기마저

시간이 지나가면 너겁이 되고 만다

숨었던 실뱀 한 마리 심란하게 지나가고

 

흔들리는 그 바닥도 우주임을 알았을까

수렁에 빠진 무릎 수면위로 기어올라

한켠에 노랑어리연 발 씻으며 웃는다

 

 

 

밀물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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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우리 문학 속으로 의령 정신을 스며들게 하려는 의령 고을의 정성

 

時調 383現代詩 2,393편이 응모되었다. 기성(旣成)-신인(新人)을 망라한 이번 응모를 보아 여전히 우리는 詩歌를 좋아하는 백성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宜寧郡은 작은 지자체이다. 그러나 宜寧이란 고을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미래를 열어가게 하는 정신을 심어주는 선각자(先覺者)들의 고향이다. 엄청나게 응모한 時調-現代詩들이 이러한 宜寧을 향한 흠모(欽慕)의 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물론 宜寧 고을이 베풀어준 후의(厚誼)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천강문학상이 모양새만 갖추자는 치례가 아니라 우리문학 속으로 의령정신을 스며들게 하려는 宜寧고을의 정성(精誠)이 파격적인 상금의 규모를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이 또한 宜寧이 나라사랑의 보금자리라는 고을의 자긍심에서 연유한다는 확신(確信)이 사무친다. 이러한 생각을 이번에 응모한 진지한 작품들이 보여주었다. 따라서 천강문학상은 지자체마다 다투어 여는 축제의 한 모서리가 아니란 사실을 증험(證驗)해주어 심사에 임하는 자세를 여미게 했다.

 

예심을 거친 모든 작품들이 다 잘 만들어져 꼼꼼한 심사를 요구했다. 作詩의 기교(技巧)는 모두 저마다 수준에 닿아 <기교의 꼼수>가 없이 풋풋하고 싱싱하게 <말하는(言之) 작품>을 택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심사해 갔다. 그 결과 유현주 씨의 시조 [감자를 묻다], 정일남 씨의 현대시 [구절리], 강명수 씨의 현대시 [배추벌레], 김승훈 씨의 현대시 [마블링], 김정아 씨의 현대시 [바람속의 잠], 이공 씨의 현대시 [성지순례], 백점례 씨의 시조 [물풀] 등등이 최종심에 올랐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시조 [물풀]을 이의 없이 대상으로 정할 수 있었다. [물풀]은 시조 넷을 한편의 연작시조로 묶어 말의 울림을 잔잔하게 저미어간다. 그래서 [물풀]은 닫힌 마음속을 열어주는 호소력이 헷갈림 없이 눈길과 동행하고 있다. [물풀]에서는 어느 것 하나 외따로 있는 것은 없다. 서로 새삼스레 옹기종기 갈마들어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물풀]이란 세상은 <모두 다 웃는다.>. [물풀]은 조용조용 갈마들게 하여 시조의 참맛을 술술 풀어내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어 고맙다.

 

[성지순례]는 뇌관에 불을 붙이기 직전 같다는 아슬아슬한 순간포착을 디카로 찰칵찰칵 한 쪽 씩 찍고 넘어가듯이 말해가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시인은 늘 손해 보는 편이 아닐까 싶다. 딱 부러지는 말이지만 어쩐지 불안하게 하는 층계 같을 때가 있음을 알아챈다면 [성지순례]의 전반부 가파른 시상(詩象)들로 넘쳐나게 열병(閱兵)하지 않았을 터인데 싶어 아쉽다.

 

그러나 [성지순례]詩象詩象을 치열하게 접근시켜 마음가기()를 상큼하게 하는 선뜻함이 강렬하다. [성지순례]는 틀에 박힌 삶을 한번 짚고 넘어가게 하는 현대시의 장기를 보여주고 있는 창창한 이다. 대상과 견줄 수 있는 로 손색이 없다는데 이의가 없었다.

 

기성시인을 뿌리칠 신인이 등장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이변(異變)은 없었다. 물론 신인 작품들이 예선을 통과한 것만도 대견하고 대단하다. 아무래도 신인들은 티를 내게 마련인 모양이다. 작품 속에 빠지면 안 되는 줄을 잘 몰라서 제 작품 속에서 익사해버리는 신인들이 참 많았다. 이런 형편은 다른 데서도 심사할 때마다 매번 겪는 아쉬움이다.

 

신인은 늠름하게 흐르는 말하기(言之)의 강을 강변에 서서 유유히 구경할 줄 아는 뒷심이 왜 필요한지 작시(作詩)할 때마다 연습하기를 바란다. 그럴수록 시인이 되는 길이 넓게 열리게 됨을 알아챘으면 한다. 그렇지만 기성시인들의 틈바구니를 무릅쓰고 작품들을 응모한 시인들의 작품들은 대담했고 풋풋했다. 이분들은 분명 다음 기회엔 작품으로써 한소리 하리란 예감이 들어 의령(宜寧)고을 천강문학상(天降文學賞)은 갈수록 창창하리란 믿음이 앞섰다.

 

- 심사위원 尹在根(한양대 명예교수), 이광석(시인), 김복근(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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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문학상이란?

 

의령군이 제정한 천강문학상은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충의정신 함양 및 문학의 저변 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을 위해 4개 부문에 총 7500만 원의 상금을 내걸고  시ㆍ시조, 수필, 아동문학, 소설 등 4개분야의 대상, 금상, 은상, 동상 수상자의 작품을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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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씨, ‘제4회 해양문학상’ 당선작 선정
 

해양문화재단이 주최하고, 국토해양부가 후원하는 제4회 해양문학상 최종심사에서 김성동씨가 출품한 수기 ‘바다 이야기’가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국토해양부장관상(대상)을 받게 되는 ‘바다 이야기’는 상어잡이에 대한 필자의 경험과 정보를 재미있게 풀어냈고,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탁월한 기록문학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밖에 당선작으로 운문 부문에 한기홍씨의 ‘출항기(외2편)’, 산문 부문에 김동철씨의 소설 ‘남서대서양’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그 밖에 희곡부문에서 정미진씨의 ‘뱃놀이 가잔다’, 산문 부문에서 오숙정씨의 동화 ‘하모니’가 가작으로 선정되었다.

금번 문학상에는 산문(소설/동화), 운문(시/동시), 희곡, 논픽션(수기/수필) 부문 총 1,176편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송하춘, 황을문 교수를 공동 심사위원장으로 한 해양과 문학에 권위 있는 전문가 9명이 심사에 참여하여, 지난 9월 13일 부터 27일 까지 예선심사와 본선심사를 거쳐 총 5편의 깊이 있는 작품을 선정하였다.

대상에는 국토해양부장관상과 1,000만원의 고료가 부상으로 지급되며, 각 부문의 당선작은 500만원, 가작은 25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동 해양문학상은 기반이 취약한 우리나라 해양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획된 행사로 2007년에 도입되어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양문화재단 홈페이지(www.ocf.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항기出港記

 

 

그러니까 출항은

이제 막 씻김굿을 털어낸 갈망 따위들이

그악한 노스텔쟈 침향을 입술에 바르고

해신海神에게 내미는 첫 키스다

 

망망한 새벽노을

그 장쾌한 해신의 치맛자락에 출어깃대를 높이 걸면

아득한 시대를 휘돌아오는 장관,

아라비안 카펫마냥 늠실대는

지중해 마케도니아 선단의 황금갑주 광휘가

21세기 고깃배 이물에 부서진다

 

나는 어부다

한 삼십 여년 뭍에서 황금을 ?다가 꺾여

꿈 따윈 페기 되고, 누항 오십 줄에

절망의 코뚜레에 워낭소리만 가득안고

이 두려운 창해에 내던져진

79톤 안강망 제3연근해호 갑판원

 

여명에 거뭇거뭇 선線들이 뭉뚱그려진

포구는 언제나 모태신앙처럼 안온한데,

방파제 너머 이어도횟집 아슴프레 처마 쪽으로

내 심안 주낙에 걸린 애절한 그리움 몇 가닥

환영처럼 출렁 인다

 

출어닷 출어

시나브로 짙어지는 새벽노을

선적물목 점호 마치고, 금빛 여명 등짝에 진

김선장 뾰족한 갈치 주둥이엔

만선기원 입어신고入漁申告가 싱그럽다

 

왜 그리 서글피 살아왔을까

포구가 주먹만 해졌을 때까지 우두망찰

갑판대신 멀어지는 육지를 보았다

사물의 속성은 굳어 있는 게 아니라서

모든 게 유전流轉되기도 하는 법

아내와 아이들은 또다시 오지의 갈대처럼

아비를 기다리며 살겠지

 

어젯밤 포구 해당화모텔에서 부둥켜안은

가족들의 설운 등짝에선,

모질고 질긴 희망의 끈을 적신 오열이

인류의 역사같이 깊게 흘렀었지

이 왜소한 인간 하나의 포한이 이만큼이라면

정녕 이 바다의 질곡은 얼마나 깊을 것인가

그 얼마나 깊을 것인가

 

쩌엉 쩡

아슴한 수평선 너머에 불콰한 해명海鳴이 지나간다

신비로워라

저만치 튀어 오르는 날치 떼 은빛 비늘이

이 세상 모든 영욕 위에 빛나고 있다

아 아아

살아야 하네, 힘써야 하네, 아름다워져야 하네

저 은빛 날개는 바로 내 꿈의 현신인 게야

강퍅했던 내면에 섬광처럼 투영되는

환희의 빛이여, 존귀한 삶의 오의奧義여

 

뿌우우 뿍

뱃고동 소리는 유심론唯心論이다

대양으로 나가는 길목엔 항상 흩어진 꿈들이 모인다

그래서 파도는 철썩 그리운 사람들 어깨를 친다

이제 양망揚網물목엔 황금조기, 바라조기, 깡치 말고도

그리움 한 상자 넉넉하리

서기어린 새벽 별, 인간의 길을 묻는다

저 광막한 우주대평원 안드로메다 성운 어느 바다

한 생령의 꿈도 나와 같으리

 

그러니까 출항은 해신에게 내미는 첫 키스다

 

 

 

하선전야下船前夜

 

 

정씨는 이미 잠들었는지 고요하고

선실 구석에서는 김씨의 '봄날은 간다'가 흘러 나왔다

붕장어 이빨에 손등 찔리우며 익은 가락이지

이따금 숭어 튀는 소리 피안처럼 들리고

마스트 갈매기 잠꼬대가 진하게 가슴을 쳐온다

그럴수록 나는 퇴화 된 내 시잔詩殘, 폐공 속에 누워있는

나의 오랜 형해形骸를 더듬어 보았다

 

아무리 쓸쓸해도 이웃 침상에 누워있는

저 친구처럼 고적할까

항상 수평선 별빛에 젖어 이운 '봄날은 간다'도

오늘 밤뿐이라니

김씨도 이제는 하선을 셈하고 있겠지

옆자리 이씨의 코고는 소리가 상두꾼 만가소리 같다

뭍에 들어가도 싯누런 유전流轉임을 왜 모르겠나

선창에 부서지는 포말 소리가 '봄날은 간다'에 애잔하다

그럴수록 나는 배 밑창 아득한 저 심연 속에 가물거리는

퇴화 된 내 시잔詩殘, 폐공 속에 누워있는

나의 오랜 형해形骸를 더듬어 보았다

 

우르르 꽝 푸수수

밤 파도가 점점 높아지니 육지가 가깝다

애초에 바다로 나올 때 돌아간다는 신념은 없었다

어부의 신조는 파도와 바닷고기와 갈무리된 그리움 몇 조각인 걸

목울대 꺼이꺼이 대며 사무친 보고픔에 떨다가도

깡소주 한 사발에 그 피멍을 삭혀 버렸었지

아 미칠 것 같이 그리운 얼굴들아

술대접에 어리는 모습들이 해리海里에 아롱지는 구나

그럴수록 나는 퇴화 된 내 시잔詩殘, 폐공 속에 누워있는

나의 오랜 형해形骸를 더듬어 보았다

 

  그날 밤 포구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불러주었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아직도 그 부두 선창어귀를 맴돌고 있을까

모진 인생유전, 설움뿐인 명함마저 그립구나

북받치는 오열을 막으려고 모포에 머리를 박은 채

코고는 이씨 곁에서 경련이 시작된 손끝을 털었다

그럴수록 나는 퇴화 된 내 시잔詩殘, 폐공 속에 누워있는

나의 오랜 형해形骸를 더듬어 보며

선창에 비스듬히 굴절 된 달빛에 버무려진 이중창

'봄날은 간다'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숨죽여 불러보며 찌들은 머리털을 움켜쥐었다

 

  *파도를 이기며 재기의 꿈을 쌓아 가는 어부들을 기리며

 

 

 

남양南洋에서 띄우는 편지

 

 

  그대 강녕하신지요. 사이클론이 하늘 우의를 두르고 대양 수평선을 휘돌아 올 때, 그대를 수소문하는 나의 궁휼한 동정이 들려옵니다. 지난여름 남방 어느 무인도 백사장에 서있었다고도 하고, 산호초 우거진 남양군도 우림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던 애처로운 모습이 보였었다고도 하고. 그러나 사실이면서도 모두가 호사꾼들의 유비통신들이지요.

 

파도는 언제나 속삭이듯 내밀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때리죠. 그대 강녕하신지요. 당신이 늘 종려수를 그리며 가냘픈 이파리에 편지를 쓴다고 해서, 항해 내내 마스트에 올라 포경선 작살잡이 마냥 해면을 뒤집어보기도 하고, 언젠가는 그대가 북빙양 푸른 물에 섬섬옥수를 담근다 해서 내 가엾은 심상이 북쪽을 향해 비탄을 떨구기도 했습니다.

 

아 먼 노정 항해는 나를 새우등으로 만들었습니다. 야자수 사이로 적도선赤道線 방랑자의 별들을 보기도 했고, 해조음이 되어 파랑 위에서 독백하기도 했어요. 돌아보니 그 풍진의 허한 그림자들이 육탈된 허무였음에 애상의 입술을 지그시 깨뭅니다. 문득 비탄으로 흐르는 상어 빛 애증 또한 절대고독이라는 것도.

 

그래요. 그대를 향하는 나의 우매한 유비통신과 맹목의 헌사들이, 어쩌면 나보다 더 고독한 당신의 순구한 눈망울에 투영되길 바라는, 아프로디테를 그리는 푸른 슬픔이란 것도. 그러나 이제야 알았어요. 아아 나와 그대의 천만리 심연에 떨어지는 모든 것들을 무조건 사랑하라는 신의 말씀을.

 

그대 오늘도 강녕하신지요. 바다는 가까이서 보면 요란한 눈물 꽃을 피우지만, 고산준령 그윽한 구름을 딛으면 둥글디 둥근 원일뿐이지요. 그대여 나에게 구원한 사랑을 띄워 주십시오. 쇠락하는 인간의 갈망 위에 온유한 바람꽃을 피워주오. 이제 우리의 만년설은 녹아 흘러서 남십자성, 저 요원한 별빛 속에 이 시대를 증거 하는 사랑으로 존재하리니.

 

  - 남태평양 서사모아 Apia, 제12트롤어선 2등항해사 고독이

대한민국 서울의 그대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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