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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곡지에서 / p r a h a

 

 

 

꽃 핀다, 꽃 피어난다 / 김경성

  

이미 꽃 진 지 오래된 연밭을 찾아 나섰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연잎들

토굴에 들어가서 수행자가 된 연꽃 씨앗, 

제 몸 말리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토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몸속 깊은 방, 문 열어놓고 

진흙 속으로 떨어지는 뿌리의 긴 시간을 위하여

연잎은 몸 꺾고

둥근 잎 오므려서 몸의 소리로 장엄한 연주를 한다

내밀한 향기로 울림을 주던 시간은 이제 없다

사라지는 것들은 몸속의 것을 다 비워낸 후

제 몸을 울려서 피 울음 같은 소리를 낸다

적멸한다는 것은 저토록 진한 핏빛 눈물 말리는 것이었음을

몇 천 년 후 다시 맑은 연꽃잎 펼칠 수 있음을

제 몸을 두드려서 내는 소리 연밭 가득 퍼지고

그 소리 들으며 토굴 속 연꽃 씨앗

하나 둘 씩 진흙 속으로 뛰어내린다

씨앗 한 개 주워서 입술 대어본다

천 년 후 어느 날  해 질 녘,

은유의 바람으로 세상 적시고 있을 때

꽃 핀다, 꽃 피어난다 

어화둥둥

내, 꽃 입술 찍어놓은 연꽃 피어난다

 

 

 

제 9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출처 : 바람의 궁전
글쓴이 : 프라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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