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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무 / 김영욱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다리헤기로 밤새우는 도깨비를 닮았나,

 

소리기생 화초기생 수기생의 눈치 보며

 

수발드는 춤꾼은 사내

 

길거리에서 죽은 귀신 불러내라,

 

달 밝은 밤에 부푼 치마 속에는

 

한 다리 두 다리 세 다리

 

어기적어기적 걸음마부터 바라춤을 흉내 내는

 

한둘은 암놈, 서이 너이는 수놈,

 

버선코가 닳도록 도드리로 놀아보자,

 

사다리 오다리 넉장다리 외다리

 

신라귀신도 나오너라,

 

허튼 가락이 오장육부 건드려

 

몸짓은 몸부림 되고 호흡은 인불이 되고

 

가위 눌린 뼈다귀도 허옇게 떠오르는

 

달 밝은 밤에 신라의 밤에

 

반월성 무너진 다리 아래

 

흐르는 물소리가 후들후들 떨렸나,

 

역신(疫神)이 죽음을 넘보려

 

그림자를 달아놓았다는

 

이 다리도 저 다리도 헛다리라,

 

물밑에서 그 다리 열릴 적에

 

처용아, 어느 탈에 외로움을 숨겼기에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휘영청

 

네온이 밝은 밤에 어기적어기적

 

홀로 어느 거리로 살풀이를 갈거나.

 

 

 

 

 

[심사평]

 

 

당선작을 선정함에 있어 심사위원들이 쉽게 의견일치에 이르렀다. 각자 심사한 후에 순위를 매기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심사 위원 만장일치로 <처용무>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음은 그만큼 작품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응모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신라의 정신이 담긴 사적지와 유물들을 등가물로 가져와 시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작품들이 현학적이며 관념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당선작은 물상에 기대어 서사를 회화적으로 풀고 있으며, 처용무의 춤사위를 흐느적이는 언어의 리듬으로 묘사하여 오늘날의 처용으로 시각화하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선작을 제외한 작품들 중 검색된 지식의 나열이나 산문과 시를 구별하지 못하는 응모작들이 다수 보였고, 대상에 몰입하기에 급급하다보니 시인의 체험이 녹아들지 못하거나, 현재를 사는 시인의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었다. 시는 과거의 기록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암묵적 제시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임을 다시 한 번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결심에 오른 작품들로는 <남산석불은 코가 없다>, <얼굴무늬 수막새>, <양동마을 고목나무>, <안녕은 돌고 돌고> 등이 있었다. 주제를 끌고 가는 힘이 좋고 언어를 다루는 기교의 능숙함 등이 느껴지나 시의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튼 많은 응모작들이 바탕에 성실한 신라정신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년을 더욱 기대한다.

 

 

심사위원                 


구광렬(시인, 소설가, 실천문학 주간)

김광희(시인, /시조)

박윤배(시인, 형상시학회 대표이사)

이임수(시인, 필명: 이사가,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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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사과의 향가 / 정경용

 

 

천마총 묘실처럼 익은

사과를 가르자 까만 씨앗 두 알이

꽃물을 두른 중심자리에

나란히 합장되어 있다

 

여름 한 철 순장시킨

바람의 천마도가 갈기를 휘날리고

햇살금관의 휘황한 광채를 내뿜는다

빛줄기로 날을 벼린 검과

별빛 옥의 귀거리와 달무리 팔찌가

토함산 일출의 파동처럼

향기 속에 발굴된다

 

우주의 혼으로 세공한

신성한 맛을 느끼는 입속

깊은 샘물에서 길어 올려진

달디 단 청량감이 일렁인다

아름다운 신화의 울림이 번지면서

십장생이 한데 어울어진

화평의 세계가 펼쳐진다

 

향내가 콧날을 우둑 세우고

과육이 신라의 계보로 흘러들어

혈맥에 향가의 노래를 엮는다

화강암보다 흰뼈로

성골의 몸을 일으켜 세운다

고난으로 익힌 맛의 비의가

무릎에 스며들어 겸손해진다

 

부모님의 합장된 묘에 올린

사과에서 정신의 유물을 읽는다

박물관 같은 시간이 살아나

낮고 드높은 자존을 유산으로

신령한 기운을 일깨운다

 

 

 

 

 

[가작] 첨성대 / 함국환

 

 

별밭 언저리에 원두막을 짓고

서리하는 자를 없게 하라

별을 따는 자 보이거든

달을 한 입 물게 하고

또 보이거든

다시 달을 한 입 주어

달이 점점 작아지더라도

열매들을 잘 지키어라

 

가끔 밭에 들어가

열매를 계수하라

추수하는 날이 이르면

잘 여문 별들은

더욱 빛을 발할 지매

 

동방에서 가장 먼저 택하여

별밭 관리권을 너희에게 주노니

더 밝은 빛으로

후손에게 비취도록

원두막을 지어라

너희 심성 같은

어머니의 몸 같은

첨성대를 지어라.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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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국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서 월명문학상의 권위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본심을 통과한 20여편의 작품들은 끝까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지만 「사과의 향가」(정경용), 「첨성대」(함국환), 「뜰앞에 반짝이는」(김미숙), 「전설의 기린」(시조, 신기용) 등 4편이 마지막으로 선자들의 손에 남았다. 「전설의 기린」은 동봉한 「첨성대」와 함께 서정성과 감동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약간 미약했다. 「뜰앞에 반짝이는」은 「열암곡 마애불상」과 함께 사물(불상)의 재해석이 뛰어나고 시에 재치를 부여하는 능력도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끝까지 사로잡았다. 하지만 작품을 꼼꼼히 정독해 본 결과 기성 시인의 작품과의 차별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다.

 

그리하여 선자들의 손에 남은 작품은 「첨성대」와 「사과의 향가」였다. 전자는 첨성대를 하늘 별밭의 별을 지키는 원두막으로 형상화하고, 그 열매인 별(예지의 빛)을 더욱 밝게 하여 후손에게 비치게 하라는 선덕여왕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과의 향가」는 부모님의 묘에 올린 사과 한 알 속에 천마총에서 발굴된 모든 기물들을 담아내고, 그 과육을 깨물 때 향가가 내 혈맥에 내장되면서 나를 새롭게 한다는 주제의식을 무리 없이 형상화시켜 내고 있다. 선자들은 「첨성대」는 시행의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점과 세부묘사와 스케일 면에서 「사과의 향가」가 좀 더 뛰어나다는 점을 들어 「사과의 향가」를 당선작으로,「첨성대」를 가작으로 결정하였다. 월명문학상이 전국 어느 곳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의 경연장이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심사위원 : 이임수 동국대 교수, 손진은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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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우물 / 권기만

 


목마를 때, 경주 박물관 간다

뜰 앞 우물에서

공손하게 물 한 바가지 떠먹는다

이 우물 앞에선 텅 빈 마음이 바가지다

조용히 눈 감으면

물이 고여와 넘친다

넘쳐흘러 하늘에 가 고인다

하늘 한 바가지 떠먹기 위해

새들은 몸속을 텅 비운다

누가 맨 처음 허공에 우물을 파고

청동의 치마를 둘렀을까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낭산 너머로 흘러가는 반월半月

우물 속에 잠겨 있다

때가 되면 텅 비어지는 몸을 들고

목울음까지 차오르는 에밀레

한 바가지 퍼서 월성月城이 젖도록

흐득흐득 마시다보면

우물도 달을 퍼서 마시고 있다

   

 

 

발 달린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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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탑골 / 윤승원

 

 

물소릴 밟으며 산을 오른다

대나무 숲 그림자 장삼처럼 펄럭이는 길을 지나면

달빛은 발아래 물비늘처럼 부서진다

옥룡암 돌다리를 건너 마중 나오는

보리사 저녁예불소리

산 아래서 길을 잃어버리는 날이 많았던 나는

발자국을 벗고 부처바위 밑에 쪼그려 앉는다

무서움도 모르고 주변을 살피다가

들쭉날쭉 소망을 쌓은 탑재들을 본다

탑이 많아 탑골이라 했던 것일까

은하처럼 널브러져 있는

달빛 돌조각들을 주워 탑을 쌓는다 한 기단, 두 기단

탑은 어느새 삼나무 우듬지 위로 올라서고

구름이 합장하듯 찰주에 걸리고

바람이 편종 소리로 산기슭을 적시면

꽃이 피는 것처럼 탑들이 피어난다 탑골엔

층층의 나무며 크고 작은 키의 풀,

높고 낮게 나는 새들이 품고 있는 탑들이 자라고 있다

저녁이 되면 배반리 사람들 고단한 머리맡에

저마다의 소망을 쌓기도 하는,

산 아래 불빛들이 어둠을 토닥거리는 시간

누가 내 안에 마애불하나 돋을새김하고 있다

 

 

 

 

 

[심사평]

 

‘우물 외’, ‘탑골 외’, ‘땅속의 여자 외’를 투고한 세 분의 작품이 당선을 겨루었는데, 고심 끝에 ‘우물’을 당선작으로, ‘탑골’을 가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작은 종소리의 파문을 출렁이는 우물물로 환치시키는 능력이 탁월했고, 비움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정신을 일깨움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기갈을 채우는 데도 훌륭히 기여하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와 울림, 스케일도 나무랄 데가 없다. 함께 투고한 두 편의 시도 이 분의 탄탄한 실력을 보증하고 있었다. 다만 사물과 비유가 약간 어긋나면서 시적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면과 군데군데 보이는 타성화 된 언어는 경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탑골’은 좋은 작품이었으나 언어가 좀 절제될 필요가 있었고, 대상을 완전히 자기화하는 데 약간 부족함이 있어 보였으며, ‘땅 속의 여자’는 과거에 갇혀 있는 흠이 있었다. 응모자 모두는 ‘신라정신’은 박제화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삶과 정신 속에 스며 있으며 나날이 갱신되고 승화되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월명문학상이 문인지망생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문학상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임수, 손진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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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터 / 이종암

- 월명사

 

 

동생, 너 죽어 석삼년 너는 폐허다

 

남산과 낭산 사이 길 한쪽에 널브러져

절대 침묵의 흔적으로만 남은 폐사지

사천왕사 터, 목 잘린 귀부를 매만진다

죽은 누이에게 제濟 올리며 월명사

부르던 그 노래 따라 부른다

죽음으로 생生은 완성되는 것인가

폐사지, 저 절대의 침묵이

절터를 두 동강으로 끊어놓은

철길의 쇳소리 다 잠재우고 있다

월명의 슬픈 노랫가락이 물살 져 오는

팥죽빛 서녘 하늘로 새 한 마리

날아가는 걸 봤다 가릉가릉 그 소리

 

아직 몸에 남아 있어 나는 아프다

 

 

 

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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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분황사 할머니 / 김광희

 


할머니, 재齋 지낸 분황사에

어여쁜 할미꽃으로 현신했다

큼지막한 돌부처 옆에 엎드려

쉿, 할머니 집에 가요

저리 일찍 그 쪽으로 걸어 들어간 불두화며 상사화

경 읽느라 바쁘던 귀뚜라미 숨죽인다

발아래 수련중인 질경이가 이슬땀 흘린다

한 뼘 너머 팠는데 경전 같이 야문

땅덩어리 할머닐 잡고 놓지 않는다

육십 년 넘게 할머니 붙잡았던 바탕골 같다

놔 줘요 제발, 잘 모실게요

살기 힘든 곳일 수록 뿌리는 더 깊이 내린다고,

깊이 판다 수렁 같은 내 속을 판다

할머니, 발 좀 풀어요

아무도 안 본다고, 안 본다고 허둥대는 날 본다

돌부처가 기댄 내 엉덩일 서늘하게 한다

풍경이 군지렁 군지렁 주억거린다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솜털피부! 할머닐

검은 비닐봉지로 눈 가려 나오는데

뒤 당겨 돌아본다 시침 뚝 떼는 모전탑 깊게

굽어보는 어둠, 별들 총총 따라 온다 서둘러 닫은

현관문 식구들 단내 환하다

 

 

 

 

발뒤꿈치도 들어 올리면 날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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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경주를 걸으며 / 정나연

 

 

먼지 쌓인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자

영화의 필름이 돌아가듯

신라 역사가 한 가득 쏟아져 나온다

 

산고의 고통 끝에 태어났던 한 나라

화려했던 신라

그 천년의 걸음은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이 되어

길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고

지도 속 경주 안에 박혀 있다

 

손바닥 안에 경주의 지도를 펼쳐놓고

손금처럼 뻗은 경주의 길을 걸으며

보물찾기를 하듯

신라라는 이름의 보물을 찾는다.

 

쏟아지는 여름의 태양 아래

뜨거운 가슴으로 경주가 돌아눕는 순간

나는 신라를 만난다

햇볕아래 반짝이는 나뭇잎도 지붕도 하늘도

역사책을 읽듯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신라를 품고 있는 경주와

그 안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쏟아지는 노을 속의 경주

쓰러지지만 곧 다시 일어설 지 둥근 생명처럼

신라의 역사가 담겨 있는 둥글고 팽팽한 씨앗이

경주 안에 박혀 끊임없이 자라고 있다

 

 

 

 

 

[심사평]

 

전체 응모작 중 의욕적인 작품들이 많았지만, 의욕이 앞서고 문학적 형상화에서 미흡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신라에 대해서 듣고 공부한 내용을 시에 넣어 쓰거나, 경주의 신라 문화에 대해서 찬양하는 자세로 일관하거나, 사변적인 내용은 좀 곤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라는 유물로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경주와 연관될 때 그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선작인 "할머니를 모시고 오다"는 죽은 신라가 아니라 오늘과 대비시킨 살아있는 신라의 이미지로 시적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현대성과 고전의 조화가 무르익었다고나 할까요. 신라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로 내려오는 문맥성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목은 "분황사의 할머니"로 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헌화가"도 새로운 문맥에서 구성한 시적 자질이 보입니다. 가작인 "경주를 걸으며"는 현재의 지도 속에서 신라를 끌어내는 솜씨가 인정되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정서의 산물이며, 외적 지식은 시 속에서 완전히 녹아 있을 때 시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응모자들은 유의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오다"는 시인의 삶에 근거한 깊은 체험을 우려내어 박제화된 신라가 아니라 현재와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높이 사 당선작으로 선정하였고, "경주를 걸으며" 역시 지도 속에서 신라를 발견하는 발상의 참신함으로 시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가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밖에 "굴불사지" 작품도 깨끗하였고,"신라고분의 재미" 등도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심사위원 이임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손진은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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