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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천관사지에서 / 박진숙

-庾信의 言

                     

기거라, 내 부루마, 꺼덕이는 실한 목아지.

는개 내리는 국경 넘어 갈기는 춤을 추고

南川물 죄다 퍼마신들 삭지 않을 꽃불인데

 

웅숭 깊은 우물 속 푸르른 바닥 끝까지

화살통, 그보다 더한 國法마저 버려둔 채

목아지 길게 드리우고  원없이 울고 싶으이.

 

용왕님 진동항아리, 어느 님께 비손드리뇨.

핫어미로 한뉘 보내고 어느 머언 시절에

부루마, 내 슬픈 목아지 따시웁게 안으리이까.

 

 

 

 

 

 

 

[가작] 점자도서관 / 유택상

 

하늘 속에 책이 펼쳐져 있었어요

피리소리도 들려요

나는 날마다

풀잎 위에 누워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건조해진 채색의 무늬를

우듬지에 매달린 울긋불긋한 단풍을 떼어냈고요

별을 내리고 돌아온 날

서까래 같은 갈비뼈 사이로 아기들이 자라고 우린 행간에

묻어 있는 문장을 읽고 있었지요

문설주 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세간을 흔들고 있어요

다독일수록 딱딱하게 굳어가는 책장

물푸레나무 한 잎만큼의 밝기와 자작나무의 설법으로

산비둘기 알만한 온기를 품으면 문장 사이를 서성이다

밑줄들 속으로

고단함도 별이 될 수 있을까요

 쥐똥나무 열매만한 어둠이 내리면

숲 속 깊은 곳에서 붉게 흐르는 상처의 내력들

굴참나무 곁에서 바라보면 언제나 별이 꿈틀거리지요.

밤은 서둘러 숲으로 가고

까막딱따구리와 까치들이 꿈과 희망이 경전이 되었지요

구겨진 골목을 지났어요

된장국 냄새가 달빛에 출렁거렸지요

등허리에 햇볕은 다정하고 괄호 안의 갇힌 시간들은

목록의 전설로 남는 다는 것을 책장은 알고 있지요

이제 별이 잠들 시간이에요

단풍나무 도서관 진열대에 따스한 불기둥을 만들고 있고요

내가 밤마다 밑줄을 그어 놓은 페이지들이 환하게

낙목(落木)의 몸이 되어 꽃피우고 있었지요

별똥별은 우주의 일부분이지만 그 일부분이 삭아져 부서져

내렸지만 책장은 잎사귀의 햇빛을 저장하는 숲속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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