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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기와(人面紋瓦當) / 이상윤

 

 

얼마나 사무치면 천년도 찰나인가

무정한 비바람에 태산은 사라져도

깨어진 웃음 한 조각 봄꽃으로 피었네

붉은 해 뜨고 지는 영겁의 아린 역사

빛 속에 숨은 어둠 차마 씻진 못해도

한 장의 와당 되도록 속울음도 울었으리

시월단풍 곱게 익는 뜨거운 천년의 땅

시간 속에 잠긴 길 휘적휘적 걸어가면

찬 마음 긴 갈피마다 궤적처럼 쌓이는

이제야 알 것 같은 사람의 사랑이여

애증도 연분이라 이렇게 깊어지면

나 또한 와당이 되어 한 천년을 가겠네

 

 

 

 

 

[심사평] 면면히 이어질 사랑의 역사성

  신라의 미소, 한국인의 미소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막새기와 파편 한 조각에 남아 있는, 구름을 헤치며 나타난 보름달처럼 맑은 웃음을 풍기며 모습을 드러낸 여성의 얼굴이다. 당선작 <웃는 기와[人面紋瓦當]>는 바로 그 웃음의 의미를 천착한 작품이다.
  시인이 그 웃음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천년의 역사 동안 쌓인 속울음과 찬 마음의 갈피, 우리 삶의 애증들을 두루두루 보듬어 피워낸, 천지가 변해도 오롯이 남아 있을 정신이다. 시인은 우리 역시 이런 깊어진 사랑에 사무칠 수 있다면 와당이 되어 천년을 가야한다고 면면히 이어질 사랑의 역사성을 역설한다. 이 점이 바로 신라정신이 잡아낸 현재적 지점이다. 또 한편의 투고작 <피리>역시 하나의 주제를 붙들고 일관되게 밀고나가는 힘과 형상화가 빼어났다.  
  가작 「청운교 홍예문」은 홍예문의 건축원리에서 헌신과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시인은 두려움 없이 자신을 베어내고 던지는 희생의 정신은 비움마저도 비우고, 버림의 의식마저도 버린 상태에서야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묘사한다. 이는 화랑정신의 현대적 계승과도 관련이 있다. 같은 응모자의 <신라기행>은 형상화는 빼어났으나 주제의식의 분산이 아쉬웠다.  
  올해는 당선작과 가작 두 편 모두 시조에서 나왔다. 이밖에 예심에서는 시조 <다시, 금빛 무대>와 시 <활의 기억>, <불국사 법고>, <구불구불 포석정> 등의 작품들이 올라왔다. 시의 작품수준이 예년에 미치지 못하고, <활의 기억>이 눈길을 끌었으나 좋은 발상에도 군더더기가 많았다. 모든 분들의 정진을 당부한다.  


                - 이임수(시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손진은(시인,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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