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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떡갈나무 숲이 울창한 이유 / 황재윤

 

이제 구보 시작이네요

부동자세로 한참 햇살의 훈화를 듣던 몸들,

축 처져 서로 기댄 열외들 몇, 한따가리를 하는지

저녁 벼락의 꾸짖는 소리 크게 번쩍거리면

어둠에 숨은 정신들마저 화들짝, 불을 켰는데요, 가끔

그 불짝대기 몸 후려치는 광경에 저도 순간 번쩍! 했었어요

거기다 빗방울, 물빳다 소린 어찌나 육중히 내 귓바퀼

타고 흐르던지, 실신해버린 몇과 남은 몇몇

흙에다 머릴 처박고 있었습니다 안쓰러이 그리고 툭, 툭

긴장한 총구로 풀벌레 쏘아대던 사격, 저조한

명중률 탓인지 피멍 들도록 바람주먹 얻어맞다 결국

웃통 벗고 혹한에 흰 군장 기우뚱, 메고 종일 뺑뺑이를

돌았는데요 햇살의 원위치! 그 노오란 구령이 떨어져서야 겨우

하느적, 하느적 연두 옷 챙겨 입던 벗들,

참 힘드네요 이렇게 온 몸으로 필사적이어야만

한 시절 울창할 수 있다는 게

황성공원 떡갈나무 숲

운동화와 마주친 탄피들 재빨리 수거하던 다람쥐랑

‘출입금지’ 현수막 앞에서 돌아나가는 사람들 등지고

괜스레 기웃거리다 친구들의 위협사격 몇 발에

냉큼 내빼는 발도 몇 보입니다

 

 

 

 


[가작] 임해전지에서 / 김유정

 

오리떼 무단횡단에

일렁이는 연못은 바다의 안부를 묻는다.

여독을 덜 푼 파도는 덤으로 밀려오고

연못의 진흙 벌

어제가 숨바꼭질하고 있다.

그리운 것은

고래의 긴 하품 같은 시간의 한 모퉁이

바람은 무료배송으로 천년을 넘어 왔다.

우쭐우쭐 달려오는 한 사내의 어깨에

무생물의 얼굴들이 시간을 엮어 달려 나오고

너는 순한 입을 벌려 창백한 고백을 한다.

삭발한 낡은 목선(木船) 한 척

누구의 손안에서 익숙했던 주령구

가출한 서까래와 기와 몇 조각은

복숭뼈가 시리다 자꾸 까치발을 한다.

이름을 도난당한 몇 개의 얼굴들도 따라와

아린 기침을 해댄다.

낮달 같은 구부러진 하늘로

기러기 떼 몸 뒤척이며

풀어지는 연못.


 

 

 


[심사평] 역동적 감각, 현대성 돋보여

  오늘도 월명의 후예들은 저마다의 감각과 사유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고투를 계속하고 있다. 본심에서 논의되었던 작품들은 「포석정의 달」「연꽃, 말문 열다」「임해전지에서」「떡갈나무 숲이 울창한 이유」등이었다. 「포석정의 달」은 경순왕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잘 빚어진 시편이다. 하지만 왕의 사유가 너무 초월적이고 순응적이라는 단점이 지적되었다. 「연꽃, 말문 열다」역시 공들여 쓴 작품이지만 셋째 수 초장 “연회로 망친 나라 경순왕의 늦은 후회”라는 평면적인 말이 결정적으로 거슬렸다. 「임해전지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교감하고 대화하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잘 구사하여 역사의 광휘와 비애를 새롭게 묻고 있는 점이 좋았다. 그러나 더 강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떡갈나무 숲이 울창한 이유」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월명의 정신을 현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정지해 있는 떡갈나무들을 훈련을 받는 병사들로 묘사하고 번개와 비, 바람, 햇살을 기합의 이미지로 잡아 고난을 이겨낸 떡갈나무들의 자세가 오늘의 푸른 숲을 있게 한다는 메시지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다.

  월명 스님이 대금 소리로 움직이는 하늘의 달을 멈추게 했다면, 이 작품은 그 반대로 그냥 심겨져 있는 듯이 보이는 떡갈나무를 오늘의 싱싱한 젊은이로 환치하여 신라정신의 새로운 광맥을 발굴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임수

경주대학교 국제한국어교원학과 교수 손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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