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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사과의 향가 / 정경용

 

 

천마총 묘실처럼 익은

사과를 가르자 까만 씨앗 두 알이

꽃물을 두른 중심자리에

나란히 합장되어 있다

 

여름 한 철 순장시킨

바람의 천마도가 갈기를 휘날리고

햇살금관의 휘황한 광채를 내뿜는다

빛줄기로 날을 벼린 검과

별빛 옥의 귀거리와 달무리 팔찌가

토함산 일출의 파동처럼

향기 속에 발굴된다

 

우주의 혼으로 세공한

신성한 맛을 느끼는 입속

깊은 샘물에서 길어 올려진

달디 단 청량감이 일렁인다

아름다운 신화의 울림이 번지면서

십장생이 한데 어울어진

화평의 세계가 펼쳐진다

 

향내가 콧날을 우둑 세우고

과육이 신라의 계보로 흘러들어

혈맥에 향가의 노래를 엮는다

화강암보다 흰뼈로

성골의 몸을 일으켜 세운다

고난으로 익힌 맛의 비의가

무릎에 스며들어 겸손해진다

 

부모님의 합장된 묘에 올린

사과에서 정신의 유물을 읽는다

박물관 같은 시간이 살아나

낮고 드높은 자존을 유산으로

신령한 기운을 일깨운다

 

 

 

 

 

[가작] 첨성대 / 함국환

 

 

별밭 언저리에 원두막을 짓고

서리하는 자를 없게 하라

별을 따는 자 보이거든

달을 한 입 물게 하고

또 보이거든

다시 달을 한 입 주어

달이 점점 작아지더라도

열매들을 잘 지키어라

 

가끔 밭에 들어가

열매를 계수하라

추수하는 날이 이르면

잘 여문 별들은

더욱 빛을 발할 지매

 

동방에서 가장 먼저 택하여

별밭 관리권을 너희에게 주노니

더 밝은 빛으로

후손에게 비취도록

원두막을 지어라

너희 심성 같은

어머니의 몸 같은

첨성대를 지어라.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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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국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서 월명문학상의 권위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본심을 통과한 20여편의 작품들은 끝까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지만 「사과의 향가」(정경용), 「첨성대」(함국환), 「뜰앞에 반짝이는」(김미숙), 「전설의 기린」(시조, 신기용) 등 4편이 마지막으로 선자들의 손에 남았다. 「전설의 기린」은 동봉한 「첨성대」와 함께 서정성과 감동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약간 미약했다. 「뜰앞에 반짝이는」은 「열암곡 마애불상」과 함께 사물(불상)의 재해석이 뛰어나고 시에 재치를 부여하는 능력도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끝까지 사로잡았다. 하지만 작품을 꼼꼼히 정독해 본 결과 기성 시인의 작품과의 차별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다.

 

그리하여 선자들의 손에 남은 작품은 「첨성대」와 「사과의 향가」였다. 전자는 첨성대를 하늘 별밭의 별을 지키는 원두막으로 형상화하고, 그 열매인 별(예지의 빛)을 더욱 밝게 하여 후손에게 비치게 하라는 선덕여왕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과의 향가」는 부모님의 묘에 올린 사과 한 알 속에 천마총에서 발굴된 모든 기물들을 담아내고, 그 과육을 깨물 때 향가가 내 혈맥에 내장되면서 나를 새롭게 한다는 주제의식을 무리 없이 형상화시켜 내고 있다. 선자들은 「첨성대」는 시행의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점과 세부묘사와 스케일 면에서 「사과의 향가」가 좀 더 뛰어나다는 점을 들어 「사과의 향가」를 당선작으로,「첨성대」를 가작으로 결정하였다. 월명문학상이 전국 어느 곳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의 경연장이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심사위원 : 이임수 동국대 교수, 손진은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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