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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 가엾다 / 권혁소

 


배롱나무를 좋아하는데,
감나무도 한두 그루 있다면 좋겠는데
주춧돌 세운 여기는 배롱나무도 감나무도
뿌리 내릴 수 없는 수목 한계선

알면서도 나무 탓을 한다
현주玄酒 같은 사랑 한 번 하고 싶었는데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가여운 존재였을까,
잘라버리고 싶은 나무였을까
더 이상 뿌리를 뻗지 않는 나무를 뽑아내며
이제야 묻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 것이냐고

등 돌린 그대가 저만치 걸어간다
그대가 가서 숲이 된다면 좋겠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동짓달 하늘에 핀
초승달이 된다면 좋겠다, 이것이
빌 수 있는 마지막 축복 이라니

우리가 너무 가엾다

 

 

 

[수상소감]

 

양간지풍거세게 불던 날 밤이었다. 산골 이웃들과 봄바람 안주하여 술 한잔 걸치고 바람 너울대는 마당에 들어서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런데, 받았다.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입니다··· 모르는 전화를 반갑게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시 ?우리가 너무 가엾다?가 제6회 박영근작품상에 선정되었습니다··· 거부하지 않으신다면 수상소감 등을···”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고 했던, 생각하면 늘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박영근 시인, 아니 영근이 형···, 그 영근이 형이 따라주는 상이라니···.

 

삼십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19835월에 조태일 시인이 움직이는 시라는 부제를 달아 역사와 더불어 살아가는 시 무크’ ??시인??을 복간했을 때 나는 아직 제일 싼 담배를 피우는 대학생이었다. 맘껏 책을 살 수도 없던 때, 춘천 청구서적한 귀퉁이에 기대어 서서 목차부터 찬찬히 읽었다. 거기서 처음 박영근이라는 이름을 만났고, 형의 시 ?앞날을 향하여??취업 공고판 앞에서?를 읽었다.

 

누렇게 바랜 책을 다시 열어 보니 ‘···어두운 소문들 부서지는 공고판 앞에서/살아있으므로 믿어야 할 앞날들···’에 밑줄이 쳐 있다. 그리고 나는 투고를 결심했던가.

 

1984민주·민중·운동·문학이라는 부제를 단 ??시인?? 2집을 통해 나는 등단이란 것을 했고, 형은 같은 책의 특집 좌담회(바람직한 문학운동을 위하여) 토론자로 참석해서 본격적인 노동자 입장도 아니고 먹물끼가 든 노동자라고 자신을 낮추면서도 당시의 지식인 주도의 운동 양상을 드세게 비판했는데, 많이 공감했던 것 같다. 어쨌든 형은 그해에 첫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를 청사에서 냈고, 나의 시는 조금씩 더 거칠어졌다.

 

형이 택시를 타고 춘천으로 왔던가 안 왔던가. 오라고 했던가 오지 말라고 했던가. 택시비가 있다고 했던가 없다고 했던가. 그런데 춘천 퇴계동 어디쯤에서 택시비를 계산하는 내가 보이는 환영은 뭘까. 지금은 배가 터지도록, 술집을 통으로 살 수도 있는데···.

 

형은 노동운동을 했지만 나는 고작 노동조합 운동을 한다. 형은 노동시를 썼지만 나는 고작 노동자 풍의 시를 흉내 낸다. 형은 기계와 여공과 가난한 과거에 맞서 치열했지만 나는 고작 시대와 불화하는 사랑을 불안해 할 뿐이다.

 

형과 이렇게 새로이 얽힌 것을 이제 어쩌겠는가. 형이 나를 다시 불러세운 것은 아마도 더욱 단단한 노동자로 살라는 뜻이겠지만, 내가 뭐라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힘차게 부르는 수밖에. 그렇게 함께 그리움을 달래는 일 밖에.

 

미욱한 졸작을 작품으로 격상시켜주신 심사위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졸시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민중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너무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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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세상에 대한 연민과 이해와 공생의 마음자리

 

박영근 시인은 시는 서정적 울림과 설득력 있는 현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저한 사유가 있더라도 서정성에 가닿지 못하면 시의 울림은 꺾이고 만다. 현실을 길러내는 언어의 파문 또한 중요하다. 심사위원들은 울림과 현실을 새기며, 6회 박영근작품상 선정에 숙고와 토의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박영근 시인의 시 정신을 잇는 빼어난 작품 1을 선정한다는 것의 무거움을 절감했다.

 

예심에서 올라온 15편의 시들은 모두 박영근의 문학정신을 잇는 특성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들 중 김선우· 김효연· 조말선· 이창기· 이현승· 최지인· 황인찬· 권혁소의 시편에 주목했다.

 

박영근의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와 깊이 닿아 있으며 죽은 지 오래인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쓴김선우의 천문, “보잘것없는 것들이 뭉치면 확성기가 되고 투쟁조끼가된다는 김효연의 지역뉴스, 심야식당, 야간분만 등 노동력의 시대적 변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조말선의 야간조, “복지 생활자들의 숲이 된 작금의 변방과 소외를 다룬 이창기의 나쁜 꿈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 더불어 우리는 여전히 아우슈비츠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쪽에 인간은 있다는 압축된 인간선언 이현승의 호모 사케르와 이 시대 절박한 문제인 고독사와 주거문제를 소외된 노동과 결합시킨 수작 최지인의 도시 한가운데, 성소수자 문제를 독특하고 현장감 있게 다룬 황인찬의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등으로 좁혀서 의논했다.

 

단 한 편의 시로 작품상을 결정한다는 데에 적잖은 부담이 있었고, ‘시 자체냐, 시 정신이냐라는 논란이 될 만한 고민도 없지 않았으나, 박영근의 생애와 시 정신을 동시에 감안하며 범위를 좁혀서 의논한 결과 권혁소의 우리가 너무 가엾다를 제6회 박영근작품상으로 선정했다. 2019년 하반기에 출간된 시집 우리가 너무 가엾다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일반적인 저항시와 구별된다. 이 시는 대상과의 일체감을 이룬 채 시적 내면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동시에 타자를 부정하고 분리하는 세계 너머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품 넓은 사랑의 시학으로 채워진 시의 명징한 장소이기도 하다. 시인은 지치고 나뉘어 서로의 삶을 박탈하려는 갈라진 세상에 연민과 이해와 공생의 마음자리를 선물하고 있다. 밋밋할 만치 소박하게 독백하는 듯한 이 시는 언어라는 꽃에 인위적 데코레이션을 하고 향수까지 뿌리기도 하는 현재 시단에서 드물게 담백하고 솔직하다. 광장과 투쟁이라는 용광로를 통과한 쇳물의 생애를 거쳐온 자가 존재 자체에 바치는 경외와 겸허한 연민의 목소리가 시의 진정성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등 돌린 그대가 저만치 걸어그대가 가서 숲이 되었으면 좋겠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동짓달 하늘에 핀/ 초승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빌 수 있는 마지막 축복이라해도, 그래서 우리가 가엾다해도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비록 사랑이 환상일지라도, 백두대간 병풍 아래 사는 시인의 바로 이 사랑의 축복으로 하여 동과 서, 남과 북으로 나뉜 대관령 진부령 모든 령들을 넘어설 수 있길 빈다. 수상을 마음 깊이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박수연(평론가), 오창은(평론가), 김해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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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 김해자

 

 

인천항에서 낯선 이 포구까지

오는 데 수십 일이 걸린데다

그 사이 몸은 다 식고

손톱도 다 닳아졌으니

삼도천이나 건넜을까 몰라

구조된 것은 이름, 이름들뿐

네 누운 이곳에

네 목소리는 없구나

집에 가자 이제

집에 가자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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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이육사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집에 가자를 쓴 김해자 시인(사진)이 선정됐다.

 

이육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현실과 그 속에 담긴 고뇌를 드러내면서, 예술에 대한 위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연민을 잘 나타내고 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상은 민족시인 이육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숭고한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4TBC가 제정, 올해가 13회째다. 최종심사는 문인수·송재학·이시영·이하석·황현산 시인이 맡았다.

 

상금은 2천만원이며, 시상식은 내달 30일 안동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제13회 이육사문학축전 여름 행사와 함께 진행된다.

 

시인 김해자는 1962년 전라남도 신안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졸업해 1998<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했다. 시집 무화과는 없다(실천문학사.2001) 축제(애지.2007) 집에 가자(삶창.2015) 등을 출간했고, 1998년 전태일문학상과 2008년 제10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해자네 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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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가 제정한 13회 이육사시문학상수상자로 선정된 김해자 시인(사진)에 대한 시상식이 30일 오후 230분 안동 민속박물관에서 열린다.

 

김해자 시인은 2015년 출간한 시집 집에 가자를 통해 서민들의 일상을 구체적인 서사와 약동하는 감동으로 형상화해 작은 삶에 대한 깊은 연민을 세련된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상금 2천만 원을 수상했다.

 

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이육사 문학축전이 열리는 안동 민속박물관에서는 이육사 여름 문학학교를 여는 한편 이육사시문학상 수상자 김해자 시인의 문학강연도 열어, 지역 문화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한편, 지난 2004년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숭고한 생애와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TBC가 제정하고 경상북도와 안동병원이 후원하는 이육사시문학상은 올해로 13회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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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 저편 / 장정욱

 

 

질긴 죄목이었다

 

젖은 아이를 안고

무지개가 이어진 계단을 올랐다

 

아이의 입이 지워졌다

 

울음을 모르는 입에서

뚝뚝

 

이승의 끝과 끝이

파르르 떨렸다

 

환청의 기저귀를 채우고

빈 젖을 물리고

 

젖지 않는 오줌

아물지 않는 배꼽

 

무지개가 늘어지지 않도록

바지랑대를 세워

높이

아이를 널었다

 

 

 

 

빨랫줄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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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절실한 상처의 기록

 

본심에 오른 서른아홉 분의 응모작들을 심의하여, 20<수주문학상>의 수상자를 가리는 것이 선자들의 소임이었다. 서정성 짙은 가편(佳篇)들이 주를 이룬 가운데 실험을 앞세운 역작들 또한 적지 않아서, 심사는 즐겁지만 고심 어린 작업이 되었다. 필요 이상으로 분량이 많아 산만해진 작품군, 묘사와 상상의 적절한 균형을 기하지 못한 경우들, 너무 낡았거나 너무 기발한 것에 관심이 치우쳐 작시(作詩)의 의의를 찾기 어려운 사례들을 검토하는 가운데 다섯 분의 작품이 마지막으로 손에 남았다. 이들을 놓고 숙의를 거듭한 끝에, <빨랫줄 저편> 4편을 응모한 장정욱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서리태> 4편을 응모하신 분은 자연물을 관찰하고 거기 상념을 섞어 삶의 지혜로 바꾸어낸다. 몇몇 작품들에서 옳은 말을 익숙한 방식으로 거듭 개진하는 무난함이 느껴졌다. <나사를 위한 협주곡> 4편은 흥미진진했다. 노동이 소외를 거쳐 주체의 분열에 이르는 과정을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천착하고 있다. 이 공모의 안정적이고 정격적인 심사 틀에 개의치 말았으면 한다. <망치질하는 사람> 4편에서 현실과 꿈, 사실과 비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민한 감각과 심리의 변동을 조율하는 언어의 힘이 느껴졌다. 여러모로 매력적이었으나, 이 분에게 더 어울리는 다른 무대가 있을 것이다. <동태는 오일장으로 회귀한다> 4편은 끈기 있는 언어 세공, 섬세한 의고(擬古) 취향이 눈길을 끌었다. 기교가 승하고 미문의식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빨랫줄 저편>4편은 시가 절실한 상처의 기록에서 출발함을 확인시켜주는 사례이다. 내면에 박힌 기억의 파편들을 섬세한 언어 감각과 적절한 비유로 정교하게 들추어낸다. <빨랫줄 저편>은 빨래 너는 행위와 초혼의식을 절제된 정념으로 응축해낸 인상적인 작품이다. 시상 전개가 번거롭지 않고 사물과 말의 선택이 빈틈없고 순조롭다. "무지개가 늘어지지 않도록/ 바지랑대를 세워/ 높이/ 아이를 널었다"는 결구는 별 기교 없이도 슬픈 전율을 선사한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도 고된 연마의 자취가 엿보였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이영광(시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들 중에는 참신한 시각과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한 시들이 최종적으로 선택될 수 없었던 것은, 시적 발상을 끝까지 탄력 있게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겠다.

 

<한차례>, <서리태 콩>, <울렁거리는 나선>을 쓴 응모자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뛰어났고, 위트도 있었다. 그러나 <한차례>의 경우, 반짝이는 1, 2, 3연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이 흐트러졌고, 그것은 시가 설명적이 되거나 상투성을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울렁거리는 나선> 은 시적 형상화가 뛰어났으나, “잘못 그린 나선의 상징이 약한 점이 아쉬웠다. <망치질하는 사람>의 응모자에게서도 여러 모로 시인의 자질을 느낄 수 있었으나, 평이한 주장이나 상투적 전개가 종종 눈에 띄었다. 이 밖에도 <처방전>, <아버지와 탁주>, <나사를 위한 협주곡> 외 다수의 응모작이 시선을 끌었으나, 전체 응모작의 완성도를 통해 평균적인 작품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당선작인 <빨랫줄 저편>을 쓴 응모자는 투고한 시들이 가장 고른 수준을 보였으며, 완성도 역시 높았다. 특히 <빨랫줄 저편>은 우리 민족에게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시를 쓴 사람의 개성적인 감각에 상상력이 더해져 짧지만 울림이 크다. 그러나 환청의 기저귀” “젖지 않는 오줌처럼 시의 맛을 감소시키는 표현을 덜어내거나 구체화시키지 않은 점은 아쉽다.

 

시란 온갖 욕망이 난무하는 거친 세상에서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축을 견지하며 차분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언술 형태이다. 그처럼 가련(!)하나 당당하고 짜릿한 세계에 한 발 더 들어온 당선자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조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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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자 / 윤재철

 

 

짧게 가자

빠르게 가자

무의미하게 가자

그녀는 잊기 위해 드라마로 간다

 

그녀는 알레고리에 익숙하다

판타지에 익숙하다

리얼리즘은 천박해

부담스러워

 

상징적으로 가자

모자 쓰고 가자

가리마도 가리고

바로 클라이맥스로 간다

한일강제합병은 모른다

 

진주가 어디 붙어 있는 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온갖 암호와 예측에 충분히 익숙하다

 

나는 거꾸로 가자

예측 불가능하게 가자

벌거벗은 몸뚱이로 가자

저 강변 항하사 같은 금모래밭

남풍에 반짝이며 팔랑이는 미루나무 이파리

그 오르가슴을 나는 잊지 못한다

 

 

 

거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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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와 충북 보은문화원에서 주관한 '6회 오장환문학상' 수상자로 윤재철(61) 시인이 뽑혔다. 수상시집은 '거꾸로 가자'(삶창 )이다.

 

심사위원인 김사인 시인(동덕여대 교수)"오장환의 시 정신에 육박할 만한 변방의 정서를 가창력 있는 솜씨로 육화해내고 있다"고 이 시집에 대해 평했다.

 

윤 시인은 195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했다.

 

1981'오월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 시인은 시집 '아메리카 들소', '그래 우리가 만난다면',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세상에 새로 온 꽃', '능소화'등과 산문집 '오래된 풍경' 등을 출간했다. '14회 신동엽창작상'을 받았다

 

오장환 문학상은 보은군 회인면에서 출생해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오장환(19181951)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제정했다. 그동안 최금진(1), 백무산(2), 최두석(3), 김수열(4), 최종천(5)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2013 오장환문학제'가 열리는 오는 1011일 오후 4시 보은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윤 시인에게는 창작기금 1000만원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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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훔치다 / 김수열

 

 

꽃은

하늘 올려다보면서

 

올까

말까

 

비는

땅을 내려다보면서

 

갈까

말까

 

 

 

 

생각을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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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1918~51) 시인을 기리고자 실천문학사와 보은문화원이 함께 주관하는 4회 오장환문학상수상자로 제주작가회의 김수열 시인(52)이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생각을 훔치다>이다. 김 시인의 수상 시집은 변방의 정서를 가창력 있는 솜씨로 육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상식은 지난 23일 오장환 문학제에서 진행됐다.

 

실천문학사와 보은문화원이 주관하는 오장환 문학상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 출신으로 모더니스트와 이럴리스트의 면모를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로 평가받은 천재 시인 오장환(1918~1951)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8년 제정,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상금은 1천만원이며 시상식은 새달 23일 보은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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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애기똥풀 / 황인산

 

 

개심사 들머리 애기똥풀은 모두 옷을 벗고 산다.

솔밭에서 내려온 멧돼지 일가 헤집는 바람에 설사병이 났다.

개중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얼굴 마주보며 괴춤만 내리고 쉬를 하고도 있지만

무리무리 옷을 훌렁 벗어젖히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물찌똥을 누고 있다.

사천왕문 추녀 밑에서도 노스님 쉬어 가던 너른 바위 옆에서도

산길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노란 똥물을 갈기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배를 옷 속에 감추고 산문을 두드린다.

이 문만 들어서면 아침까지 찌들었던 마음도 애기똥풀 되어 모두 해소될 것 같다.

산 아래서부터 진달래가 산불을 놓아 젊은 비구니 얼굴을 붉게 물들인 지가 언제인데

절집 위 옹달샘 풀숲까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있다.

 

개심사 해우소는 천 길이나 깊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요동치는 배를 잡고 허리띠를 풀며 뛰어 들어갔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깊이가 몇 길은 되어 보이는데 얼기설기 판자로 바닥만 엮어 놓고 군데군데 구멍만 뚫어 놓았지 칸막이가 없다. 엉거주춤 볼일 보던 사람, 앉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 것도 아닌 자세로 오줌을 누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어정쩡하다. 몇몇의 눈길이 동지애를 느끼며 같은 자세를 취하길 원하였지만 안사부인 볼일 보는 화장실을 열어본 것처럼 놀라 아랫배를 내밀고 엉덩이에 댄 두 손에 힘을 주고 나왔다.

천년 전 처음 이곳에 볼일을 본 스님은 자꾸 다시 들어오라 하는 것 같은데

보잘 것 없는 내 아랫도리 하나로 하늘도, 가냘픈 애기똥에 기댄 마음도 옷을 벗지 못한다.

개심사를 감싸고 있는 상왕산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옆 칸에서 나오다 눈길 마주친 젊은 비구니의 얼굴엔 진달래 산불이 다시 옮아 붙고 있다.

 

 

 

붉은 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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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년에 비해 응모작들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내용이나 형식은 다양하면서도, 가장 많이 다룬 주제들이 사람 혹은 사람의 구체적 삶이라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과 사회가 한 시인을 낳고 성장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씨앗이 되고 또한 큰 토양이 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심사를 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심사하면서 신명이 났던 것은 당선작으로 뽑힐 수 있는 시들이 여러 편이었기 때문이고, 곤혹스러웠던 것은 부득이 한 편만을 당선작으로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달래 개나리 목련’(강태승), ‘개심사 애기똥풀’, ‘다이어트’(황인산), ‘기관사’, ‘그녀가 내 마음의 틈에’(박영식), ‘숨바꼭질’, ‘어느 여름밤’(홍성준) 등은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의 성적 상상력은 일단 심사자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밝고 환한 색채감으로 현란할 뿐더러 활기차고 생명력에 넘치는 시다. 하지만 문예전문지가 아닌 신문은 이런 작품을 수용하기 어려운 여러 사정이 있음이 유감이다.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기관사는 마치 기차를 타고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면서 달리는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시다. 주제와 걸맞는 속도감도 있다. 같은 작자의 그녀가 내 마음의 틈에는 연륜이 느껴지는데도 상큼하고 경쾌하다. ‘어느 여름밤숨바꼭질은 삶의 아픔과 고달픔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고통의 시다.

 

특히 숨바꼭질은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관념적 상투적으로가 아니고 구체적으로 다루어 울림이 크다. 화자 대신 일하러 나갔다 들어오는 아내를 술래에 비유한 대목도 실감이 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것도 작자의 오랜 연마를 말해주고 있다.

 

다이어트개심사 애기똥풀은 세상을 보는 눈이 깊으면서도 가파르고 메마르지 않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만물의 존재와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에 연유하는 상상력일 터이다.

 

한편 개심사 애기똥풀의 둘째 연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천 년 전 처음 이곳에 볼일을 본 스님은 자꾸 다시 들어오라 하는 것 같은데의 상상력은 속도와 능률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오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능도 갖는다. 빡빡하지 않고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유머러스한 표현들도 시의 맛을 살린다.

 

이상 네 투고자를 놓고 심사자들은 한 사람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 숙고와 많은 토의 끝에 결국 황인산의 개심사 애기똥풀을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삶과 사물을 깊이 있고 폭넓게 인식하려는 그의 시들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시적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열다섯 번째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은 서정적인 분위기의 '개심사 애기똥풀'이란 작품으로 문을 두드린 황인산(45, 서울시 용산구)씨에게 돌아갔다. 황씨는 "처음 수상 소식을 듣고는 백지장 같이 눈앞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늘 부족하다 생각했던 저로서는 믿겨지지가 않았다"고 어리둥절했던 당시의 심정을 털어놨다.

 

'개심사 애기똥풀'2년 전 황씨가 충남 서산에 있는 사찰 '개심사'를 방문했을 때 기억을 더듬어 탄생시킨 작품이다. 개심사 '해우소'는 칸막이가 없어 볼일 보는 사람들이 서로 바로보며 일을 치를 수밖에 없다. 다소 황당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이때의 기억이 황씨에게는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벌거벗은 채 마주하며 당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허물을 감추려 애쓰는 현대인들의 위선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황씨는 이 같은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기보단 가급적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담아냈다.

 

하여 '개심사 들머리 애기똥풀은 모두 옷을 벗고 산다'고 그의 시는 시작된다. 황씨는 이 시대 시인의 역할에 대해 "시인은 항상 사회에 반발을 앞서가야 한다""야만의 시대에는 시의 칼날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황씨가 ''''으로 '취미'로 삼은 지는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 활동은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시절 문학동아리인 풀밭동인회를 만나며 더욱 풍성하고 깊어졌다.

 

심사를 맡은 유종호(문학평론가, 연세대 석좌교수), 신경림 시인은 '개심사 애기똥풀'을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삶과 사물을 깊이 있고 폭넓게 인식하려는 그의 시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시적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서였다"고 밝혔다.

 

올해 지용신인문학상에는 299, 3163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시상식은 15일 오전 11시 옥천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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