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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맑음 / 이기호

 

 

모시등걸에 찬바람이 일면 수수알도 붉어갔다

텅 빈 들녘은 눈이 해맑고 빈 볏단들은 幕舍처럼 서 있었다

논두렁에선 우렁이들이 둥싯거렸다

상지냇가의 소금쟁이 긴 다리 밑으로 새털구름이 빠져나갈 때

오포소리에 고무신 뒤축이 자꾸 벗겨지고

점심광주리를 머리에 인 어머니와 물주전자 든 나의 그림자가

삽다리를 따라 빠르게 흘렀다

새참이 나간 부엌은 매캐한 연기에 휩싸였다

양재기에 굴 무나물을 볶던 아궁이는

잔뜩 쓸어 넣은 왕겨에 속이 더부룩해졌다

장죽에 불붙이려던 할아버지는 눈이 내어 그대로 돌아 나왔을 터였다

몽당수수비와 부지깽이는 모처럼 火像의 몸을 쉬고 있겠다

들녘에 어둠이 오고 홀연 귀뚜리의 노래 들리고

먼 하늘에서는 별들의 점등이 시작되었다

용수 안으로 밥알이 동동 뜨는 마을에서는 술처럼 시간이 익어

밤이 점점 까매지자 어머니는 우렁이와 양재기를

앞세우고 아버지별을 찾아 은하로 떠났다

문득 낯설어지는 풀벌레소리에 창가로 다가가는 마음

오래 묵은 가을밤이 가라앉고 있었다

내 별이 다 보였다

 

 

 

 

노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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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이기호(62)씨의 '내일은 맑음'이 당선됐다. (수상작 인터넷 게재)이 씨의 수상작 '내일은 맑음'40여 년 전 떠난 고향 충남 광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지용의 시처럼 아름다운 시어 사이로 이씨 고향의 모습이 그려지고 어린시절 시인 자신의 모습도 엿보인다.

 

"귀뚜라미 소리, 텅 빈 들녘, 매캐한 연기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나요. 고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 와 벌써 4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고향은 고향이지요."

 

심사위원인 유종호 문학평론가와 신경림 시인은 '농촌의 가을 저녁 풍치가 눈에 선하게 다가 온다. 비유나 재담도 은근해서 공감을 자아내고 끝내기 부분의 동화적 상상력도 정감 있어 단연 빛나는 작품이다'고 평가 했다.

 

이기호씨는 늦깎이 시인이다. 평소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썼던 이씨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시어머니의 죽음이었다. 23년간의 시집살이, 눈물이 마르지 않던 시간이었지만 정작 시어머니의 빈자리는 더 힘이 들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음에서 수많은 감정이 솟구쳤어요. 그렇게 밉던 시어머니였고 그렇게 힘든 시절이었는데 몹시도 그립습니다. 제가 시를 쓰고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은 모두 시어머니 덕이에요."

 

이씨는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며 2004년 뒤늦게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 수업을 들으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정지용 시인은 이 씨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시인이다. 이미 대학교에서 '정지용 시 연구'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해 정지용 신인문학상 수상의 의미가 더 깊다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정지용 시인의 고장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만든 상을 받게 돼 영광입니다. 아름다운 시어와 눈앞에 보일 듯 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정지용 선생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분의 뒤를 따라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아름다운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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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이기호(67) 시인이 최근 시집 <노년을 위하여>와 수필집 <아름다운 날들>을 발간했다.

 

5년 전 62세의 나이에 동아일보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이기호 출향인은 삶이 고단할 때면 마음은 어느새 어린 시절 고향으로 닿곤 한다. 그 유년의 시간들과 그리움의 과정들을 그대로 시로 담았다고 첫 시집 발간의 소회를 밝혔다.

 

차분한 관찰과 치밀한 어사 선택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번 시집에는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긴 시 <오늘은 맑음>을 비롯해 <광천 독배 옹암포구에서>, <구 장터 냇가>, <고향 들녘에> 67편의 시가 담겼다. 특히 가생이’, ‘지랑’, ‘산내끼등 어린 시절 듣고 자란 충청도 사투리들이 고스란히 시가 돼 눈길을 끈다.

62세에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이기호 시인은 광천 옹암리 출신으로 2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2회 중봉조헌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숙대문인회 회원, 정형시학 회원, 그레이스 수필 문우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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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애기똥풀 / 황인산

 

 

개심사 들머리 애기똥풀은 모두 옷을 벗고 산다.

솔밭에서 내려온 멧돼지 일가 헤집는 바람에 설사병이 났다.

개중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얼굴 마주보며 괴춤만 내리고 쉬를 하고도 있지만

무리무리 옷을 훌렁 벗어젖히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물찌똥을 누고 있다.

사천왕문 추녀 밑에서도 노스님 쉬어 가던 너른 바위 옆에서도

산길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노란 똥물을 갈기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배를 옷 속에 감추고 산문을 두드린다.

이 문만 들어서면 아침까지 찌들었던 마음도 애기똥풀 되어 모두 해소될 것 같다.

산 아래서부터 진달래가 산불을 놓아 젊은 비구니 얼굴을 붉게 물들인 지가 언제인데

절집 위 옹달샘 풀숲까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있다.

 

개심사 해우소는 천 길이나 깊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요동치는 배를 잡고 허리띠를 풀며 뛰어 들어갔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깊이가 몇 길은 되어 보이는데 얼기설기 판자로 바닥만 엮어 놓고 군데군데 구멍만 뚫어 놓았지 칸막이가 없다. 엉거주춤 볼일 보던 사람, 앉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 것도 아닌 자세로 오줌을 누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어정쩡하다. 몇몇의 눈길이 동지애를 느끼며 같은 자세를 취하길 원하였지만 안사부인 볼일 보는 화장실을 열어본 것처럼 놀라 아랫배를 내밀고 엉덩이에 댄 두 손에 힘을 주고 나왔다.

천년 전 처음 이곳에 볼일을 본 스님은 자꾸 다시 들어오라 하는 것 같은데

보잘 것 없는 내 아랫도리 하나로 하늘도, 가냘픈 애기똥에 기댄 마음도 옷을 벗지 못한다.

개심사를 감싸고 있는 상왕산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옆 칸에서 나오다 눈길 마주친 젊은 비구니의 얼굴엔 진달래 산불이 다시 옮아 붙고 있다.

 

 

 

붉은 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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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년에 비해 응모작들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내용이나 형식은 다양하면서도, 가장 많이 다룬 주제들이 사람 혹은 사람의 구체적 삶이라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과 사회가 한 시인을 낳고 성장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씨앗이 되고 또한 큰 토양이 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심사를 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심사하면서 신명이 났던 것은 당선작으로 뽑힐 수 있는 시들이 여러 편이었기 때문이고, 곤혹스러웠던 것은 부득이 한 편만을 당선작으로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달래 개나리 목련’(강태승), ‘개심사 애기똥풀’, ‘다이어트’(황인산), ‘기관사’, ‘그녀가 내 마음의 틈에’(박영식), ‘숨바꼭질’, ‘어느 여름밤’(홍성준) 등은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의 성적 상상력은 일단 심사자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밝고 환한 색채감으로 현란할 뿐더러 활기차고 생명력에 넘치는 시다. 하지만 문예전문지가 아닌 신문은 이런 작품을 수용하기 어려운 여러 사정이 있음이 유감이다.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기관사는 마치 기차를 타고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면서 달리는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시다. 주제와 걸맞는 속도감도 있다. 같은 작자의 그녀가 내 마음의 틈에는 연륜이 느껴지는데도 상큼하고 경쾌하다. ‘어느 여름밤숨바꼭질은 삶의 아픔과 고달픔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고통의 시다.

 

특히 숨바꼭질은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관념적 상투적으로가 아니고 구체적으로 다루어 울림이 크다. 화자 대신 일하러 나갔다 들어오는 아내를 술래에 비유한 대목도 실감이 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것도 작자의 오랜 연마를 말해주고 있다.

 

다이어트개심사 애기똥풀은 세상을 보는 눈이 깊으면서도 가파르고 메마르지 않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만물의 존재와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에 연유하는 상상력일 터이다.

 

한편 개심사 애기똥풀의 둘째 연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천 년 전 처음 이곳에 볼일을 본 스님은 자꾸 다시 들어오라 하는 것 같은데의 상상력은 속도와 능률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오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능도 갖는다. 빡빡하지 않고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유머러스한 표현들도 시의 맛을 살린다.

 

이상 네 투고자를 놓고 심사자들은 한 사람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 숙고와 많은 토의 끝에 결국 황인산의 개심사 애기똥풀을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삶과 사물을 깊이 있고 폭넓게 인식하려는 그의 시들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시적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열다섯 번째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은 서정적인 분위기의 '개심사 애기똥풀'이란 작품으로 문을 두드린 황인산(45, 서울시 용산구)씨에게 돌아갔다. 황씨는 "처음 수상 소식을 듣고는 백지장 같이 눈앞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늘 부족하다 생각했던 저로서는 믿겨지지가 않았다"고 어리둥절했던 당시의 심정을 털어놨다.

 

'개심사 애기똥풀'2년 전 황씨가 충남 서산에 있는 사찰 '개심사'를 방문했을 때 기억을 더듬어 탄생시킨 작품이다. 개심사 '해우소'는 칸막이가 없어 볼일 보는 사람들이 서로 바로보며 일을 치를 수밖에 없다. 다소 황당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이때의 기억이 황씨에게는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벌거벗은 채 마주하며 당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허물을 감추려 애쓰는 현대인들의 위선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황씨는 이 같은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기보단 가급적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담아냈다.

 

하여 '개심사 들머리 애기똥풀은 모두 옷을 벗고 산다'고 그의 시는 시작된다. 황씨는 이 시대 시인의 역할에 대해 "시인은 항상 사회에 반발을 앞서가야 한다""야만의 시대에는 시의 칼날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황씨가 ''''으로 '취미'로 삼은 지는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 활동은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시절 문학동아리인 풀밭동인회를 만나며 더욱 풍성하고 깊어졌다.

 

심사를 맡은 유종호(문학평론가, 연세대 석좌교수), 신경림 시인은 '개심사 애기똥풀'을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삶과 사물을 깊이 있고 폭넓게 인식하려는 그의 시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시적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서였다"고 밝혔다.

 

올해 지용신인문학상에는 299, 3163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시상식은 15일 오전 11시 옥천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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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영애

 

 

사랑을 한 적 있었네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연애가 부활되었네

꽃이 지듯 나를 버릴 결심을

그때 했네

모자란 나이를 이어가며

서둘러 늙고 싶었네

사랑은 황폐했지만

죄 짓는 스무 살은 아름다웠네

자주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었네

활활 불 지르고 싶었네

나를 엎지르고 싶었네

불쏘시개로 희박해져가는 이름

일으켜 세우고 싶었네

그을린 머리채로 맹세하고 싶었네

 

나이를 먹지 않는 그리움이

지루한 생에 그림을 그리네

기억은 핏줄처럼 돌아

길 밖에 있는 스무 살, 아직 풋풋하네

길어진 나이를 끊어내며

청년처럼 걸어가면

다시

필사적인 사랑이 시작될까 두근거리네

습지 속 억새처럼

우리 끝내 늙지 못하네

 

 

 

 

[당선소감]

 

당선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가슴만 콩콩거리다 끝내는 퍼질러 앉아 질펀하게 울어버렸습니다. 나를 세상에 눈뜨게 해주신 부모님과 장애가 있어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딸 소정이, 아직도 엄마, 안아주세요하는 성격 좋은 아들 일출이, 든든한 후원자 남편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14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자 정영애씨(사진·52 강원도 속초시) 당선 소식이 놀랍기만 하다는 그는 긴장됐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씨는 이미 지난 20013회 의정부 신인문학상 장원을 시작으로 2003년 강원여성백일장 대상, 2006년 계룡시 전국여성백일장 대상, 2006년 신사임당 문예대전 대상 등 연이어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번에 그에게 지용신인문학상의 영광을 안겨 준 작품은 시 ‘4’. 열두 달 중 가장 화사한 달이면서 가장 불행한 달, 그래서 해마다 가슴 아픈 4월을 그려낸 시다.

 

어려운 시는 제가 제일 싫어해요. 첨탑에서 퍼지는 종소리처럼 모두의 가슴에 스며드는 쉬운 시를 쓰고 싶습니다. 앞으로 평생 시와 손을 잡고 가야 하겠지요. 시는 곧 생활이고 제 삶이니까요. 발표할 만한 좋은 시를 많이 쓸 수 있게 되면 시집도 한 권 발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심사평] ‘압축·생략으로 시의 참맛 잘 표현

 

시가 필요 없이 길고 말들이 많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생긴 버릇이겠지만, 시의 참맛이 압축과 생략에 있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대체로 동의를 얻고 있는 터다. 또 지나치게 말들이 많다는 것은 시가 설명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소리겠는데, 어쩔 수 없이 초점이 흐려지고 산만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가지고는 활기찬 시가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4’(정영애), ‘가끔이란 시간’(김예영) 등 몇 사람의 시는 이 점을 극복하면서 우리 시의 앞날에 대해서 크게 희망과 신뢰를 갖게 해 주었다. ‘4은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그 사랑이 화로 속의 불씨처럼 다른 사랑으로 되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암시와 더불어, 수채화처럼 아름답고 달콤하고 슬픈 이미지로 승화되고 있다. 빼어난 감각이 시를 시종 활기차게 만들고 있는 점도 이 시의 미덕이다. 가령 나를 엎지르고 싶었네같은 표현은 아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그 빼어난 감각이 지금까지 우리 시가 잊고 있었던, 다른 장르의 문학이 가질 수 없는 시의 재미를 복원해 주고 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소재도 유행을 좇는 흔한 것이 아니어서, 이른바 문학학교 시를 한 걸음 극복하고 있다. 많은 말, 화려한 표현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는 점도 미덕이다. 좋은 시를 쓸 바탕이 보인다. ‘가끔이란 시간은 발상도 표현도 신선하고 독특하다. 비슷비슷한 시를 읽다가 접하니 눈이 번쩍 띄었다는 것이 심사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발상이고 표현이고 좀 어리다. 남들과는 사물을 다르게 보고 표현을 다르게 한다는 자세는 값지고 귀하다. 이런 생각을 이어간다면 반드시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시 가운데서 심사자들은 정영애의 ‘4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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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나요? / 이수진

 

 

길바닥에 누워버린 들꽃처럼

바람에 지쳐버린 나무처럼

짐도 없지. 짐도 없지.

그 저 그저 살아온 거지.

 

버릴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고

배 따뜻하면 만족하지.

더 딘 더딘 아이처럼

발끝마다 가시가 솟아나도

울면 그만이지. 울면 그만이지.

 

얼음 속에 눈 녹아 들어가듯

추운 마음 익숙하여

울 수도 없었지.

그저 흉내 낸 거겠지.

 

시계바늘 돌아가듯

익숙한 하루태엽들

버젓이 내게 감기며

하루하루 노래하며 지내는

베짱이 신세였지.

 

그래 그게 나였지.

 

 

 

 

 

[당선소감] “시로 마음을 정화하고 싶다

 

공부하다 마음이 고단하거나 엉킬 때 마음을 풀기 위해 일기 쓰듯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늘 습작이라고 생각했지 한 편의 완성된 작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문학상에 응모한 것도 그냥 한번 내보자한 것인데 당선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너무 놀라 얼떨떨해요.” 지난 425일 마감한 13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전체 응모작 2208편 중 시 왜 그랬나요?’로 당선된 이수진씨(30·충남 공주시 금학동 101)의 수상소감이다.

 

이씨의 5편 응모작품 중 수상작으로 결정된 왜 그랬나요?’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백수상태로 지내며 자기 자신과의 갈등, 혹은 가족과의 갈등 속에서 오는 회의와 연민 등 혼란스러운 기분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씨는 때로 자기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던져 놓기도 하며 저절로 누워버린 들꽃으로, 바람에 휘둘리느라 지친 나무, 하루하루 태엽을 돌려줘야 돌아가는 낡은 괘종시계에 자신의 일상을 비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이 시의 소재이면서 그만의 생각을 담아놓은 시를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한다. 시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싶다는 이씨는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오는 답답함과 자기반성을 편안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읊조리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내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의 특별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고 싶어요.” 이제 갓 시작한 젊은 시인만이 꿈꿀 수 있는 바람일지 모른다. 아직 창작의 고통보다는 시라는 형식을 통해 마음속의 내밀한 구석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새내기 시인의 말처럼. 이씨는 지난 겨울 충남 대전에서 발간되는 문학 계간지 문학사랑절제’ ‘자전거 타고’ ‘하늘을 보며5편의 작품으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지용신인상에 응모한 다른 작품 최면술은 권위나 외형에 집착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나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성하며 풀어낸 것이고 등단작품인 자전거 타고의 경우 자전거를 타고 오가며 느낀 단상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목원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직장생활을 해보았지만 잘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는 이씨는 자신에게 맞는 직장 찾는 일에 한동안 몰두할 것이고 그 틈새에 늘 시를 가까이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70편 이상의 시를 써놓았으며 언젠가 시집을 내는 것도 그녀의 바람이다.

 

 

 

 

[심사평] “평이하지 않은 특별한 개성지녔다

 

전년보다 응모작품 편수도 훨씬 많고 수준도 높았다. 아쉬운 점은 내용이나 수준이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많고, 산문인지 운문인지 구별이 안가는 시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좋은 시를 제대로 찾아 읽지 못한 결과로 보였다. 예컨대 우리 시를 폭넓게 접하는 대신 최근의 신춘문예 당선 시 등 젊은 사람들의 시만을 중점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또 시는 산문과 달리 응집성이 있어야 하고 폭발력이 있어야 하는데, 평이한 전개나 설명으로 산문과 구별이 어려운 시들도 많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분명하지 않고 수다스럽고 혼란스러운 것도 많은 시들이 공통으로 가진 흠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수진, 조명수, 박흥순의 시들은 이런 흠이 덜할뿐더러 개성이 강하고 아주 재미있게 읽혔다.

 

특히 이수진의 시들은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왜 그랬나요?’이나 최면술은 경쾌하고 나이브하면서도 어떠한 우리시와도 같지 않은 목소리의 시다. 남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투른 것 같은 말투, 덜 익은 것 같은 발상도 만약 자신이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오히려 큰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아주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완성도만 가지고 본다면 조명수의 시들이 더 나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때 낙타처럼/ 굽은 아버지의 등을 증오했다는 진술의 아버지의 등은 호소력도 있고 감동도 준다. 한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고 만져 본 것 같은 구절들이다. 박흥순의 꽃잎이 바르르 떤다는 산문이 아닌 시가 갖는 재미를 충분히 맛보게 해 주는 시다. ‘양파도 말을 적당히 절제하고 생략한 점에 있어 다른 이들의 시와 크게 구별된다. 한데 어느 한구석 빈 것 같은 느낌을 어쩔 수가 없다. 이상 세 사람의 시 가운데서 선자들은 이수진의 왜 그랬나요?’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심사위원 유종호·신경림

 

 

 

 

13회 지용 신인문학상에 이수진 (30, 공주시 금학동)씨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향수 시인 정지용(鄭芝溶)의 대를 이을 유망 신인작가 발굴을 위해 정지용 시인 고향인 충북 옥천군과 동양일보사가 제정한 제13회 지용 신인문학상에 이수진 시인의 왜 그랬나요?’가 수상작으로 선정돼 511일 제20회 지용제에 맞춰 옥천군청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수상작 왜 그랬나요?’는 경쾌하고 우리시와도 같지 않은 목소리로 평이하지 않은 특별한 개성을 지녔다는 심사평을 받으며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이수진씨는 남들의 유행에 휩싸이며 글을 쓰지 않고, 저만의 감정들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할수 있는 개성을 가진 시인이 되고 싶고, 사람들과 많은 공감 할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수진 시인은 목원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2006년 계간 문학사랑절제’ ‘자전거 타고’ ‘하늘을 보며5편의 작품으로 신인작품상을 통해 등단했다.

 

한편, ‘정지용문학상은 시인 정지용의 문학적 성과와 문학사적 위치를 기리기 위해 1989년 시와 시학사에서 제정한 문학상으로 1989년 제1회에 박두진이 선정됐고 2002년 제14회 때는 김지하의 백학봉1’이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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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 왔니 / 이시하

 

 

어둠을 파고 시궁쥐 눈깔 같은 봉숭아 씨앗을 심을래요 모르는 집 창문에 애절히 피워나 모르는

 

그들을 울게 할래요 봉숭앗빛 뺨을 가진 어린 손톱에 고운 핏물을 묻힐래요.

 

우리 집에 왜왔니 왜왔니 왜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서둘러야 해요 나를 통과해 가는 그대의 눈을 볼래요 너무 오래 견딘 상처는 아물지 않아요 몹시 처량해진 나는 모르는 집 창문 밑에서 울 거예요 당신을 부르며 울 때 사람들은 어두워져요

 

문이 닫혀요

 

이렇게 부질없는 이야기는 처음 해봐요 나는 늘 술래이고 아직 아무도 찾지 못해요 가위바위보가 문제에요 나는 주먹만 쥐고 있거든요 아무도 내게 악수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당신도 곧잘 숨는다는 걸 알아요 이제는 내가 숨을래요 꽃 피지 않는 계절에 오래도록 갇혀있을 거예요

 

우리 집에 왜왔니 왜왔니 왜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봉숭아꽃이 만발했어요 보세요 정말 내가 모르는 집이에요 창문 밑에 피어난 저 붉은 봉숭아! 무슨 꽃은 봉숭아꽃이어야 해요 당신은 봉숭아꽃을 찾으러 온 거예요 나는, 나는 꽃 피지 않을 거예요.

 

아무도 찾지 못해요 문은 열리지 않아요

 

 

 

 

나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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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담담하게 아스러지는 물처럼 시 쓰고 싶어

 

정지용 시인의 시는 서정적이면서도 따뜻하잖아요. 온기가 훈훈하게 느껴지는 시들이라 제 시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많이 기대를 안 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큰 시인의 상을 받게 되니 큰 영광이에요.”

 

12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자로 이향미(39,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2)씨가 선정됐다. 당선작은 시 `우리집에 왜 왔니'.

 

이 씨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였다. 주부로서의 삶에 대한 회의와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게 했고 그것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됐다.

 

이 씨는 고등학교도 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다. 산업체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몸이 아파 중도에 학교를 그만뒀고 우여곡절 끝에 남들보다 2년 늦게 인문계인 철원여고에 들어가게 됐다. 그 시절에는 그저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들이 흔히 그러하듯 시를 끄적여 보았을 뿐 시인이란 직업은 감히 꿈꿔볼 수 없는 머나먼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려웠던 시절 농촌은 동생, 어머니, 아버지를 잇달아 여읜 이 씨의 아픔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대지였다. 아직도 이 씨는 슬픔이나 가난 따위를 잊었던 젊은 날의 기억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옛날 `아이 데려가기' 구전설화에서 상상력을 덧보태 창작한 시예요. 구전설화에 보면 옛날에는 가난한 집에서 딸아이를 팔기도 했다고 하더라구요. `꽃 찾으러 왔단다'의 꽃이 `딸아이'를 상징하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이 시를 보고 슬프다고 많이 해요.” 이향미 씨는 그 딸아이의 심정으로 시를 썼다고 했다.

 

철도 종단점이고, 군부대가 많이 위치한 강원도 연천군 신서면 신탄리가 고향인 이향미씨는 학창시절부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힘들게 자라났다. 심사위원을 맡은 유종호 문학평론가와 신경림 시인은 이향미씨의 시에 대해 작품들이 섬세하면서도 경묘하고, 신선하다소재처리나 언어 수사의 상투성을 피하고, 작품에 여백을 두고, 여운을 남겨줘 더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이향미씨는 초등학생 딸 채림이가 어릴적 뇌진탕 휴유증으로 기억력 장애가 있어 딸을 돌보면서 글을 많이 썼다결혼 이후 시를 쓰지 못하다가 최근 3년 동안 시를 쓰도록 적극 지원한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심사평]

 

예년과 같이 많은 작품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날아들었다.

 

응모한 253명이 보여준 1604편의 작품을 읽었다. 대개 상당한 습작기를 거쳐 일정 수준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만큼 고르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엇비슷한 언어구사와 소재 처리가 두드러져 규격화된 유행이 퍼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개성적인 소재 처리와 말솜씨가 뚜렷한 작품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개성을 드러내려고 작위적으로 튀는것은 눈에 거스르는 일이요 하나의 취약점이다. 또 산문과 시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길어지고 장황해지는 경향도 소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다운 시선과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여러 응모자들의 자성과 배가되는 노력을 요청한다.

 

집 나간 비둘기를 찾습니다’(최종길)는 순진한 발상이고 어사 선택도 아주 소박하다. 그래서 허를 찌르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상투성에 물들지 않은 것이 큰 장점이다. 그러나 나머지 작품들이 허약해 새 얼굴로 나서기에는 미흡하였다. ‘인사’, ‘꽃잎’, ‘문래동 48번지’(안경숙) 등 다섯 편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여주고 있다. 산문화 성향을 억제하고 소재의 경제적인 처리를 지향하고 있는 것도 아주 든든하게 생각된다. 또 다루고 있는 소재도 다채로운 편이어서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대체로 소품이어서 매우 아쉽지만 이번엔 더 정련할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꽃놀이 꽃놀이등 다섯 편을 보여준 이향미 씨의 작품들은 섬세하면서도 경묘하고 신선하다. 그리고 소재처리나 언어 수사의 상투성을 피하고 있음도 잘 드러나고 있다. 또 시와 산문의 차이라는 것도 잘 분간하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작품에 여백을 두고 여운을 남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 왜 왔니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자기 목소리가 더욱 뚜렷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신경림 시인, 유종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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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對酌) / 현택훈

 

 

국밥에 소주를 마시니

새벽별이 떴다야

택실 기다리는 저 사람들도

노래 소리가 작아졌군

가로등은 너무 밝아서

고갤 숙이고 있는 것 같아

달리는 새벽바람이

아침신문을 스치네

너는 날 다시

새벽으로 데리고 왔어야

등 굽은 청소미화원은

수도승처럼 거룩하지 않은가

 

국밥집 유리창 앞에 앉은

새벽 거리가 내게

눈물 같은

소주를 또 붓고,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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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응모작들이 이상하게도 서로 비슷비슷한 내용이고 형식이다. 정말로 쓰고 싶어서 쓴 시보다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에 떠밀려 쓴 시가 더 많아 보인다. 아마도 시 창작 강좌 등의 영향인 것 같다. 산문 형식의 시가 많았는데, 억지로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시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시를 읽는 재미가 어데 있는가,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뛰어난 시가 적지 않아, 지용문학상의 만만치 않은 수준을 말해 주었다.

 

죽음에 이르는 병’(임종훈)은 군더더기없이 아주 깔끔하게 다듬어진 시다. 이쯤의 솜씨에 이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리라. 파도와 일상의 권태와 삶의 각박함의 병렬적 비유도 자못 실감난다. 마지막 연의 처리도 시의 여운을 인상적으로 오래 남기는 효과를 극대화한다. 한데 다른 시들은 이 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면서, 너무 심한 편차를 만들고 있다. 자신의 장점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돼지머리’(한수남)는 말 재간과 재치가 보통이 아니다. 청승스럽거나 구성지지 않고 밝고 날렵해서 또 다른 시 읽는 맛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조금 더 다듬어졌으면 좋겠다. 무언가 시들이 너무 어수선하다. ‘1958년 산, 포터 트럭’(신윤경)은 남편을 포터 트럭에 비유한 시로서, 삶의 구체가 울림을 준다. 가락도 제법 있다. 하지만 너스레가 좀 심하다. 같은 이의 수도도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될 구절들이 여러 군데 들어가 있는 것이 흠이다. ‘대작(對酌)’(현택훈)은 새벽에 혼자 술을 마시면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이 소재가 되고 있는 시다. 그런데도 제목을 대작이라 한 것은 그 새벽 거리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신다는 개념에서일 터이다. 독작이라 할 것을 대작이라 해서 고독감을 배가시킨 점은 작자가 높은 시적 연마를 쌓았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어데 한 군데 빼고 더할 데 없이 깔끔한 점도 크게 호감이 간다. 이에 비해서 같은 이의 양말 한 켤레의 노래는 생활의 실감이라는 면에서는 더 깊은 감동을 주면서도 너무 말이 많아 시를 읽는 재미가 덜하다.

 

이상의 시 가운데서 선자들은 현택훈의 대작(對酌)’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쉽게 의견을 모았다. 작자나 다른 투고자들은 양말 한 켤레의 노래대신 굳이 이 시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심사위원 유종호·신경림

 

 

 

 

남방큰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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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제주도 푸른밤을 품고 대전에 상륙해 문학공부를 하고 있는 현택훈(32·사진·대전 동구 대동)씨가 대작이란 시로 당선됐다.

 

현택훈씨는 군대 있을 때 읽은 시란 무엇인가?’를 쓴 유종호 시인과 평소 존경해 마지 않은 신경림 시인에게 평가를 받아 당선돼 더할 나위없이 영광이다우리나라 현대시의 거두인 정지용 시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문학에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현택훈씨는 지난해 한국사이버대학교에서 주관한 전국백일장에서 은상을 탔고, 대전일보에서 주관한 동물사랑, 자연사랑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바 있다.

 

대전 동구 대동에 거주하고 있는 현씨는 대작(對酌)이란 시에서 일반 소시민의 소소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리려 했다재작년에도 지용백일장과 지용신인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경험이 충분한 약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7회 지용청소년문학상은 모두 267명이 722편을 응모했고, 우리 지역에서는 옥천고의 손효선 양이 장려상에 선정됐다. 이번 심사위원을 맡은 이은방 시인과 도창희 시인은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수많은 작품 중에 평년작을 웃도는 수준을 보여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응모작에는 단시보다는 장시가 많았고 주제의식이나 표출능력 따위는 보편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신인문학상과 청소년 문학상 시상식은 각각 14일 오전 11시 군청 회의실과 13일 오후 5시 관성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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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 김점순

 

 

나뭇잎이 흔들릴 때

가만히 그 속으로 따라가 본다

이파리가 흔들리기까지

먼저 가지가, 줄기가

뿌리를 묻고 있는 저 땅이

얼마나 많은 날을 삭아내려야 했는지

가볍게 흔들리는 것 뒤에는 언제나

아프게 견딘 세월이 감춰져 있는 것을

 

푸르게 날을 세우고 있다고

외로움이 없었겠는가

허공으로 길 하나 내기 위해

초승달 돋은 하늘에 가슴을 풀어놓고

얼마나 몸서리를 쳤는지

돌아앉아 숨 고르는 소리에

발 아래가 술렁거리고, 서쪽 하늘로

수만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그러면서 나무는

제 한숨을

나이테 속에 꼭꼭 태워 넣고 섰을 뿐

 

 

 

 

4, 어느 날

 

사라지는 것의 눈부심을

이 길에서 보았네

머리 위로 어깨 위로

한 발 앞서 내려 밟히는 낱낱의 벚꽃잎

어느 해 봄 가로에서

노을이 쏟아지는 한 곳으로 키를 세우며 달려가던

가랑잎의 군무를 본 이후

이런 빛부심은 없었네

태어나는 것 치고 찬란하지 않은 것은 없다지만

내려앉는 발걸음의 아름다움을

오늘 여기에서 들었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이름 모를 향내와

깨어나는 새들의 날갯짓

그 위로 깔리는 꽃이파리

르 르

르르

환한 낙하

자기응시에 얼마나 솔직했으면

저렇듯 소리 없이 무너질 수 있을까

기꺼이 깨져

타인의 가슴에 불을 켤 수 있을까

나뭇가지 가느다란 품에서 꼬물꼬물

이파리들의 기지개소리 들으며

나 처음으로 깨달았네

부서지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방울새 연신 날아오르는

4월의 길에서

 

 

 

 

[심사평] 전국서 응모작품 수준 신춘문예보다 높아

 

10회 지용신인문학상을 심사하면서 늘 놀라는 것은 응모작품이 전국 각 곳에서 고루 들어온다는 점이다. 또 수준도 어느 신춘문예보다도 높다.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처음부터 수준 높은 작품이 여러 편 발견되면서, 심사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심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경수의 <여우야 여우야> 외 시들은 지금까지 우리 시가 가지고 있지 못하던 날렵함과 경쾌함을 가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령 <여우야 여우야> 같은 시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내용에 한 같은 것이 담겨 있는데도 그 가락이 조금도 청승맞지가 않다. 최용진의 <만삭>은 아기를 뱃속에 가진 젊은 엄마(아마 초산일 듯)의 심경을 그린 소재 자체가 특이한 시다. “숱진 눈썹도 검은 눈자위도 내게서 받아쓰지 말고/ 세상에 나와 나와 내 흔적이 될 생각일랑 아예 말아라?” 같은 진술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출산을 앞둔 엄마의 불안심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으로, 이 시의 호소력을 높여 준다. <안개섬>도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재미있는 발상으로 이 시인의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와 있음을 말해 준다. 손병걸의 <어둠이 환하다><아침> 같은 시에서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는 의지가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접 보거나 만져 보며/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살아왔다라고 전제한 다음 돌이켜 보면 나의 생은/ 얼마나 많은 확인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는가” “어둠이 환하다하는 진술은 그의 장애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는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어서 자못 눈시울이 뜨겁다. 시의 전개도 무리가 없으며 시어 선택도 무난하다. 그 밖의 작품도 크게 쳐지지 않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시 공부를 해왔음을 말해 주는 것인데, 소재가 좀 단조롭다. 유재숙의 시 중에서는 <보그뜨 산에 내리는 아침>이 가장 돋보인다. 주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보그뜨 산은 몽골의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이 시는 그곳을 찾아갔을 때의 감동을 노래한 기행시라 말할 수 있겠는데, 기성시인이 쓴 경우라면 훌륭한 기행시라 할 수 있겠으나, 신인의 작품으로는 힘이 약하다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만장굴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잘못된 대목을 꼭 집어낼 수 없이 무난하다는 것이 이 시들의 단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점순의 <나무는> 시들은 맑고 깨끗하다. 찬이슬을 손에 담뿍 묻혔을 때의 상쾌함 또는 더운 여름날 깊은 산골에 들어가 차디찬 샘물을 떠 마셨을 때의 시원함, 한 마디로 이것이 이 시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다. 그렇다고 시의 구조가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 가만히 그 속으로 따라가 본다/가볍게 흔들리는 것 뒤에는 언제나/ 아프게 견딘 세월이 감춰져 있는 것을같은 대목은 이 상쾌함 또는 시원함에 이르게 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운 도정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시에 억지가 없고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도 이 시들이 가진 엄청난 미덕이다. 이른바 시창작 강좌에서 얻은 해독이 전혀 없다는 증좌다.

 

이상 다섯 사람의 시를 놓고 검토한 끝에 심사자들은 쉽게 김점순의 <나무는><4월 어느 날>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하였다. 이 역량 있고 참신한 시인을 찾아내면서 심사자들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시인

 

 

 

 

열 돌을 맞은 지용신인문학상에 김점순(43·천안시 두정동)씨의 시 나무는1편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김씨는 수상소감에서 너무나 큰 상을 받아 아직까지 가슴이 떨린다지용신인문학상을 받은 것에 부끄럽지 않게 더 열심히 시작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점순씨는 경북대 국어교육학과를 나와 10여 년 동안 중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2001년부터 천안문화원에서 시 습작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충북대 교육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심사위원을 맡은 신경림 시인은 심사평에서 김점순(‘나무는)의 시들은 맑고 깨끗하다찬이슬을 손에 담뿍 묻혔을 때의 상쾌함 또는 더운 여름날 깊은 산골에 들어가 차디찬 샘물을 떠 마셨을 때의 시원함, 한 마디로 이것이 이 시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다고 밝혔다.

 

시에 억지가 없고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도 이 시들이 가진 엄청난 미덕이다이른바 시창작 강좌에서 얻은 해독이 전혀 없다는 증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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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철학 / 김은정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오늘 갑자기 이 시가 계속 되뇌어졌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나는 겨울의 한 가운데서그리고 인생의 반토막 쯤 되는 곳에서 시를 쓴다.

살고 죽고, 싸우고 웃고 하는 것들이 다 남의 일만 같고, 나는 영악하지도 무르지도 못한 채 세상을 애초에 던져진 모습 그대로 살아내고 있다.

 

어떤 날은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따스한 날이거나,

구름 그득 끼어 흐린 날이거나, 비나 눈이 마른 뜰 앞으로 훵 지나가는 날이면은

이대로 살아주자, 그냥 이대로 살아주자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별도 쨍하게 차가운 날 저녁이나 밤, 따뜻한 이불을 펴고 누워 말없는 천장을 보며

나는 나의 주인인갗하고 묻는 때도 있다. 그런가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 쯤,

묵묵히 벽을 지나가던 무늬들이 아니야라고 진실같은 소리를 내곤 하는데

그만 나는 울컥해져서 혼자 울기도 그렇고, 가만히 있기도 겸연쩍어져서는 그냥 잠을 청한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나는 검은 밤의 한가운데서……그리고 내 생의 마지막 날 같이 느껴지는 어둠 속에서

잠을 잃은 두 눈을 껌뻑거린다.

지나간 날들은 다 용서하고 잊어주고 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예예 고개를 조아리다가도,

나는 아직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또 혼자 시큰둥한 마음인데,

조그만 방안 나만 홀로 누워, 보는 사람도 없는데 울기도 그렇고 하여 맥없이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새벽은 길고도 멀리 있고, 나는 아무 할 말 없이, 밤이 외로운 신발을 신고 떠도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심사평]

 

작품 수준이 예년에 비해 훨씬 높았다. 특히 김정원, 유미경, 김정미, 송미혜, 김은정 등 다섯 사람의 시는 모두 당선작이 될만했다. 김정원의 시는 대체로 농촌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우선 시들이 깨끗하고 선명해서 호감을 준다. 한데 그 시속의 농촌은 오늘의 그곳이 아니고 한 세대 이전의 그곳이라는 느낌이다. 유미경의 시 중에서는 사랑을 덧입었네’, ‘그대를 보내놓고같은 사랑시가 자못 일품이다. 소월 조로서 소월만 못하지도 않은데, 조금 구투인 것이 걸린다. 김정미의 시는 독특한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장점이 되고 있다. ‘합성사진이나 먼지의 방은 그가 일상생활을 어떤 시각으로 포착을 하면 시가 되는가를 알고 있음을 말해 준다. 좀더 정리가 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송미혜의 시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해서 좋다. 모호하고 불분명한 구석이 없다. ‘알미늄 제작소어떤 파산은 소재도 요즈음 시공부하는 사람들과는 아주 색다르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 같은 것도 있고, 정리도 이만하면 깔끔하게 된 편이다. 한데 나머지 작품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김은정의 시는 묘한 페이소스와 무드를 가지고 독자를 사로잡는다. 읽다보면 쉽게 시속의 분위기로 빠지게 된다. 그만큼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리다. ‘생의 철학은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연상시키는데, 덜 궁상맞고 덜 처열해서 오히려 좋다. 조금은 가벼워서 시가 더 산뜻하다는 느낌이다. ‘내 스무 살에는 맑고 풋풋한 사랑 노래로서, 시에 넘치는 젊음이 좋다. 그밖의 시들도 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그의 능력을 믿게 만든다.

 

이상의 시 중에서 심사자는 송미혜의 알미늄 제작소와 김은정의 생의 철학을 놓고 고심하다가 김은정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송미혜의 시들이 오르내림이 심하다는 점이 김은정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김은정의 시는 근래 다른 어떤 신문이나 잡지가 뽑은 신인의 시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음을 심사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당선소감] “남들에게 위안이 되는 시를 써서 주변인과 나누고 싶습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에 김은정(30·전주시 금암동)씨의 생의 철학이 선정됐다. 당선자 김은정씨(30··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1553-25)는 당선 소식에도 별 흔들림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그의 직업은 도서관 사서. 책을 좋아한 탓에 대학(전북대) 전공을 문헌정보학으로 결정했고 직업으로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글 쓰기를 좋아해 자연스레 시를 써왔지만 발표한다거나 응모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김씨는 우연히 지용신인문학상 공모소식을 접하고 큰 기대 없이 응모했다처음 받는 상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선작 생의 철학은 자신의 삶을 반성하다 떠오른 시.

 

누구나 힘차게 살고 싶지만 잘 되지 않잖아요. 자유가 없는 것 같은 삶이란 생각에 약해지는 순간 나온 시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 류시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명상적인 냄새가 짙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를 일러 묘한 페이소스와 무드로 사로잡는다고 평할 정도다. 그 역시 이런 말에 부정하지 않는다.

 

지인들은 저더러 이상하다고들 합니다.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들 하더군요.”

 

그의 여가 생활은 책 읽기와 명상, 여행 등이 차지하고 있다. 2001년 가을 15일간 휴가를 내고 네팔 히말라야에도 다녀왔다.

 

지나칠 정도의 차분함과 평온함은 이런 바탕 위에 놓여있다.

 

행복해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거기에 이르는 방법 중 하나가 명상입니다. 내가 편안하면 말이나 행동, 글에도 편안함이 깃들기 마련이지요.”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그는 평이한 언어로 표현하더라도 깊이 이해되는 시를 쓰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시집을 내거나 문학활동을 하는 것에도 큰 욕심이 없다.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재주나 능력이 부족한데도 뽑아 줘 감사할 뿐입니다.”

 

심사위원을 맡은 신경림 시인과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김은정씨의 시가 묘한 페이소스와 무드를 가지고 독자를 사로잡아 쉽게 시속의 분위기로 빠지게 된다"라며 " 생의 철학은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연상시키는데, 덜 궁상맞고 덜 처열해서 오히려 좋다"라고 심사평에서 밝혔다.

 

전주에서 도서관 사서 일을 하고 있는 김은정씨는 전화통화에서 "첫 응모를 한 작품이 당선의 영광을 안아 얼떨떨하다"라며 "평소 시에 음율을 갖다 붙이면 바로 노래가 되는 소월과 지용의 시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용의 이름이 붙여진 신인문학상을 받게 돼 기쁘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지용의 고향인 옥천을 방문해 지용생가와 지용제를 볼 수 있게 돼 더없이 좋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지용신인문학상에는 모두 306명이 290편의 시를 응모했다고 행사를 주관한 동양일보 관계자는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7일 군청 회의실에서 열리며 당선자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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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있는 陸橋(육교) 2 / 김미영

 

 

그 육교 위에는 손수건만한 사막 하나 있다 하모니카 부는 늙은 낙타와 눈먼 여자 혼자 온종일 노래 부르는 사막이 있다 다 낡은 스피커 한 대와 동전 담긴 찌그러진 양은 냄비 하나와 냄새 나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검은 선글라스 낀 여자와 등 굽은 낙타 한 마리 있다 이미자의 <열풍>이 휘몰아치는 그 사막을 온종일 걸어가는 카라반 행렬들은 이따금 우그러진 냄비에 어린 빗물을 오아시스처럼 들여다보고 지나간다 높은 빌딩들 선인장처럼 우거진 육교 위, 공중 높이 매달린 전광판 사막 속으로 벤츠 한대 사라지는 오후 즈음이면 온종일 사막을 걸어온 지친 두 사람들 황사바람 날리는 육교에서 사라지고 길 건너편 타클라마칸 노래방 속으로 비틀거리는 두 사내가 등 굽은 낙타처럼 어두운 지하 階段(계단) 속으로 사라진다

 

 

 

 

 

[심사평]

 

심사위원 손으로 넘겨진 많은 원고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몇 편의 탁월한 작품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작품들은 여전히 시를 단순한 배설이나 토로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시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닌, 사물이나 현상을 대상으로 하여 감정을 승화시키는 언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이 기회에 다시 환기하고 싶다.

 

지용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지용의 감정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조정하고 빚어내는 솜씨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당선작으로 결정된 김미영씨의 낙타가 있는 육교(陸橋)·2’는 기성시인을 능가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시인의 눈과 손에 잡힌 그 풍경은 슬픈, 가난한, 시인의 표현대로 사막과도 같은 쓸쓸한 현실이지만 시인을 통해 재현된 시적 현실은 아름답다.

 

등 굽은 낙타 한 마리로 표현된 불행한 남정네와 그의 아내가 부르는 구걸의 노래 속에 삶과 현실의 비극을 잡아내는 시인의 놀라운 관찰력과 연민, 그 즉물적인 묘사의 능력이 문득 우리를 숙연케 한다. 이것이 시의 힘이다.

 

김씨의 또다른 작품 달과 동전역시 뛰어난 작품이고 나머지 작품들도 한결같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 그 앞날이 기대된다.

 

당선자의 자리를 양보하였으나 좋은 작품들을 보내준 분들로 최신화(서울), 이승은(전주), 이인주(대구) 씨 등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심사위원 신경림(시인김주연(문학평론가)

 

 

 

 

시원한 물빛 정장을 한 김미영(29)씨는 시상식장에 올라서선 말을 잇지 못했다. 격한 숨고름까지 잡아내는 마이크가 야속한 듯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채 "감사합니다"만 연발했다.

 

"옥천에는 처음이에요. 정지용시인은 늘 꿈꿔온 시인이지만, 지용제가 이렇게 성대하게 열리는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제 시를 높이 평가해주시고, 지용 이름의 상까지 주신 지용신인 문학상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산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는 김미영씨는 한 때 시인을 꿈꿔왔던 국문학도 지망생이다.

 

"대학때 응용미술을 전공하여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지금 하는 인테리어 일도 시적 감성이 필요한 일이에요. 시는 계속 틈틈이 쓸겁니다. 시를 좋아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낙타가 있는 육교2'`달과 동전'은 일상속에서의 느낌들을 잘 다듬은 시. 심사위원인 신경림씨는 김미영씨에 대해 현실묘사가 탁월하다고 밝혔다.

 

"주위 사람들과 사물들을 주의깊게 보는 편이에요. `낙타가 있는 육교2'는 육교위에서 장사하시는 거동불편한 아줌마들과 육교 아래에 굴러 다니는 벤츠 등의 고급차가 너무 대조적으로 보이더라구요. 그 뿌리에서 파생된 언어들을 다듬은 거구요. `달과 동전'은 삭막한 아파트에서 매일 둥둥 떠오르는 달을 보며 상상을 한 겁니다" 이 날 시상식에는 김순영씨, 김철순씨 등 전 수상자들이 나와 축하해줬으며, 김미영씨는 500만원의 상금과 상패를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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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 / 박옥실

 

 

한낮이 기울도록

트럭은 오지 않았습니다.

벌써 몇 시간째

흙먼지 속에 서 있습니다.

하르르. 하르르 몸 눕히는

복사꽃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 떠나도 될까요?

아프게 버린 세월이

묵정밥 숙대궁처럼 흔들립니다.

견디지 못한 세월 너머

바람은 다시 흙먼지를 뿌리고

춘양, 꼬치비재, 새발, 복상터...

버려야 할 이름들이 마음을 붙듭니다.

그러나 이젠 떠나야겠지요.

내 가야할 그곳에도

느티나무는 큰 숲을 이루고

저녁이면 성냥갑만한 집들이

환히 불켜고 있을 테지요.

 

 

 

 

7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 `이농'의 작가 박옥실(47·경기도 의왕시)씨는 다른 어떤 문학상보다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는 말로 당선 소감을 밝혔다. 또 문학상이 있게 해 준 정지용 시인과 옥천군, 동양일보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빼 놓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받게 돼 너무 기뻐요.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작품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대 서창캠퍼스 한국문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며 만학의 길을 걷고 있는 박 시인은 유종호(연세대 석좌교수) 평론가와 최동호(고려대 교수) 시인에게서 주제의식도 뚜렷하고 세련된 시어들이 경제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많은 수련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적 평가를 떠나 개인적으로 지용의 `곡마단'을 가장 좋아한다는 박 시인은 각박한 세상에서 소외되고 움츠린 사람들, 조명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로 시적 소재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의 당선작 `이농'도 농촌을 떠나야만 하는 농민들처럼 도시에서 뿌리박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삶은 담았다고 박 시인은 설명한다.

 

"지용 생가를 찾아 옥천을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을 뿐 방문은 처음이에요.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지용시인의 정신을 이어받은 좋은 시인으로 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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