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낙타가 있는 陸橋(육교) 2 / 김미영

 

 

그 육교 위에는 손수건만한 사막 하나 있다 하모니카 부는 늙은 낙타와 눈먼 여자 혼자 온종일 노래 부르는 사막이 있다 다 낡은 스피커 한 대와 동전 담긴 찌그러진 양은 냄비 하나와 냄새 나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검은 선글라스 낀 여자와 등 굽은 낙타 한 마리 있다 이미자의 <열풍>이 휘몰아치는 그 사막을 온종일 걸어가는 카라반 행렬들은 이따금 우그러진 냄비에 어린 빗물을 오아시스처럼 들여다보고 지나간다 높은 빌딩들 선인장처럼 우거진 육교 위, 공중 높이 매달린 전광판 사막 속으로 벤츠 한대 사라지는 오후 즈음이면 온종일 사막을 걸어온 지친 두 사람들 황사바람 날리는 육교에서 사라지고 길 건너편 타클라마칸 노래방 속으로 비틀거리는 두 사내가 등 굽은 낙타처럼 어두운 지하 階段(계단) 속으로 사라진다

 

 

 

 

 

[심사평]

 

심사위원 손으로 넘겨진 많은 원고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몇 편의 탁월한 작품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작품들은 여전히 시를 단순한 배설이나 토로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시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닌, 사물이나 현상을 대상으로 하여 감정을 승화시키는 언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이 기회에 다시 환기하고 싶다.

 

지용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지용의 감정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조정하고 빚어내는 솜씨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당선작으로 결정된 김미영씨의 낙타가 있는 육교(陸橋)·2’는 기성시인을 능가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시인의 눈과 손에 잡힌 그 풍경은 슬픈, 가난한, 시인의 표현대로 사막과도 같은 쓸쓸한 현실이지만 시인을 통해 재현된 시적 현실은 아름답다.

 

등 굽은 낙타 한 마리로 표현된 불행한 남정네와 그의 아내가 부르는 구걸의 노래 속에 삶과 현실의 비극을 잡아내는 시인의 놀라운 관찰력과 연민, 그 즉물적인 묘사의 능력이 문득 우리를 숙연케 한다. 이것이 시의 힘이다.

 

김씨의 또다른 작품 달과 동전역시 뛰어난 작품이고 나머지 작품들도 한결같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 그 앞날이 기대된다.

 

당선자의 자리를 양보하였으나 좋은 작품들을 보내준 분들로 최신화(서울), 이승은(전주), 이인주(대구) 씨 등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심사위원 신경림(시인김주연(문학평론가)

 

 

 

 

시원한 물빛 정장을 한 김미영(29)씨는 시상식장에 올라서선 말을 잇지 못했다. 격한 숨고름까지 잡아내는 마이크가 야속한 듯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채 "감사합니다"만 연발했다.

 

"옥천에는 처음이에요. 정지용시인은 늘 꿈꿔온 시인이지만, 지용제가 이렇게 성대하게 열리는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제 시를 높이 평가해주시고, 지용 이름의 상까지 주신 지용신인 문학상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산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는 김미영씨는 한 때 시인을 꿈꿔왔던 국문학도 지망생이다.

 

"대학때 응용미술을 전공하여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지금 하는 인테리어 일도 시적 감성이 필요한 일이에요. 시는 계속 틈틈이 쓸겁니다. 시를 좋아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낙타가 있는 육교2'`달과 동전'은 일상속에서의 느낌들을 잘 다듬은 시. 심사위원인 신경림씨는 김미영씨에 대해 현실묘사가 탁월하다고 밝혔다.

 

"주위 사람들과 사물들을 주의깊게 보는 편이에요. `낙타가 있는 육교2'는 육교위에서 장사하시는 거동불편한 아줌마들과 육교 아래에 굴러 다니는 벤츠 등의 고급차가 너무 대조적으로 보이더라구요. 그 뿌리에서 파생된 언어들을 다듬은 거구요. `달과 동전'은 삭막한 아파트에서 매일 둥둥 떠오르는 달을 보며 상상을 한 겁니다" 이 날 시상식에는 김순영씨, 김철순씨 등 전 수상자들이 나와 축하해줬으며, 김미영씨는 500만원의 상금과 상패를 전달받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