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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 후


뒤를 돌아다보던 손님은

나를 靜物로 바라보고 있었다.


꼬리표처럼 길어진 손님의 그림자만을

꼭 잡고 있던 내 손 틈새로

어둠이 스며들었다.


밤은 사람을 진실되게 만든다.

검은 잎을 부대끼며 서 있던 나무 아래에서

손님은 잠시나마 충혈된 눈을 하고 서 있어도 되고

나는 모진 말을 뱉어내도 상관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금방 후회할 말들을 너무 쉽게 했다.


말은 입에서 흘러 의미를 가진다.

흔한 충고로 누군갈 변화시킬 수 없듯이

손님의 齒石같은 외로움도

같은 종류의 것이었던 걸까?


하나의 점처럼 멀어진 손님이

무어라 소리를 냈지만

곧 어둠이 그의 입을 막았고,

반쯤 잘린 토막말만이

공중에서 절뚝거리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떠나는 역할만을 맡는

손님에게 분노했다.


마음을 닫고

누군가 삼킨 아픔을 마시면서

들풀처럼 쑥쑥 자라난 나느

아버지가 그러한 것처럼

목 끝까지 차오르던 울음을

꾹 삼키고

살아가가 위해서

익숙하게 돌아섰다.


 

 


첫사랑


점을 뺀 자리에 또다시 작고 까만

점이 자랐다.

살을 떼어낸 자리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자라난 점을 보다가

왜 흔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가를 생각했다.


돈을 주고서라도

깨끗하게 빼 내고 싶었던

못난 점들이

살을 뚫고 끈질기게 자라났다.


- 이번이 벌써 세 번째요.


의사는 끝끝내

부주의한 나의 관리를 탓하며

이제는 깨끗해질 때도 되었다 외로했고,

나는 다시금 점을 뺐다.


울긋불긋 점이 빠진 자리에는

못이 빠진 못구멍처럼 얼룩이 남았다.


어쩐지

내 얼굴 위로 온통 그 사람이

걸어 다닌 흔적투성이일 것만 같다.






집으로 가는 길


구슬이 가득 들어 있던 주머니가

풀어져버린 것처럼

무언가 다짐의 눈빛을 밝히던

사람들이 지하철 안으로 쏟아진다.


시간의 유리병에 담긴 사람들은

고르지 못한 내 이빨처럼

불편한 듯 몸을 뒤척였지만


막상 문이 열리자

누구도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다시금 차창이 어두워진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무심한 눈길들을 피해

나는 차라리 가방에 담겨지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기다렸던 공간이 나올런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저 내려야할 곳이 제각각인 몸을

잘 정돈된 책처럼 배열한 채

같은 어둠 속을 덜컬덜컹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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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살다2 / 박혜란(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3)

어머니가 내게 도장을 해주시던 날, 질퍽거려 비가 내려야 좋았다.
벼락 맞아 모로 쓰러진 대추나무에 천운이 깃든다 하니
나무에 나를 가두는 일이라 여간 설레었을지도 모르지
숲으로 나갈 채비하는 길목마다 그늘을 기우고 있는 나무들에게
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즐거웠던가


매끈하게 기름먹인 대추나무 탄 자리마다 숲이 숨어 있어
몇 십 년 째 세 들여 키우던 제비집이라든가
햇살의 실핏줄마다 서걱거리는 초록 풀내음
옹이자리를 타고 흐르던 매미의 세찬 울음소리
상황버섯에게 내어준 반 토막 몸의 시간
그 시간 어머니가 매만지는 빈 도장에 고스라니 전해지니
내게도 조금 으쓱했겠지


도장칼이 나무의 내력을 가로질러 내 이름 들이고 나니
내 몸 이미 숲이라
좁은 도장집에 빗물이 새도 내 안에 엽록소만 울렁거리곤 했다
다시 태어나는 안쪽 살을 주물러 밀어내는 것처럼
나무에게 내 이름을 주던 날
좌우가 뒤바뀐 이름이 내게 거울 하나 쥐고 살라는 말 같아
그날이후 붉은 인주에 마음 적시고
꾹 하고 어머니와 멀어지고 가까워지곤 했었지


창 밖에 비 내려 벼락이 치고, 아무래도 나는 비 오는 날만 아파서
쓰러진 나무에도 사연이 많아 그 나무 취하고 나니
거울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것만 같다
내 도장의 이름 속에서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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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호 구역  / 전인배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과, 3학년)


람보르기니가 지방 국도에서 사라진다 반듯한 밑줄을 그으며 증발해 버린 람보르기니는 악어주둥이 같은 주머니에 고여 있다 시속 222Km의 그림자를 끌고 소화되지 않을 속도로 덩어리져 있다 모든 주머니는 손가락을 그림자로 만든다 밑바닥에 달린 지퍼를 길게 그으면 그림자 속에 몸을 말아 넣은 아이가 둥근 다리로 이륜 바퀴를 만든다 할리 데이비슨의 배기량으로 바탕이 컴컴한 고동을 몰며 주머니를 긁는다 동전 꺼내듯 건져 오르던 아이는 실밥처럼 너덜거리는 왼쪽 다리의 균형을 맞춘다 과속 비보호 구역을 걷는 어스레한 걸음이 그림자 낯이다 안개 눅눅한 도로를 지나 벽장 속에 몸을 누인다 어머니는 고라니의 따뜻한 피로, 붉은 벽장을 들어낸다

 

 

 

 

 

[심사평]

 

시인과 독자 사이의 소통, 혹은 작품 독해의 문제가 한동안 시단을 뜨겁게 달구더니 그 기세가 한껏 누그러진 듯하다. 소통하고 싶지 않은 욕망도 소통의 한 방식이라고 본다면, 이즈음의 현상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라기보다 잠시 잠복기로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대학생들의 시도 그러한 기류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괴기스러운 말도 포즈도 없고, 일단 눈에 띄고 보자는 객기도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유심히 살펴본 것은 다섯 명의 작품이다. [학꽁치] 외 2편은 군데군데 빛나는 풋풋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이 사람은 사유의 군더더기를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상과 더욱 치열하게 대면해 결투를 벌일 준비를 하자. [건강한 이력서] 외 2편은 한 편의 시 안에 나름대로 적절한 서사를 구성해서 시를 전개하려는 의욕이 있다. 그 의도는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말의 밀도가 성기다. [새] 외 2편을 응모한 사람의 문장은 투명하다. 시를 어떻게 긴장시켜 끌고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는 듯하다. 때로 그 긴장이 지나쳐 말의 맥락을 놓치고 있는 게 흠이다.

 두 사람의 작품을 놓고 오랜 저울질이 필요했다. 그 하나가 [옹관묘] 외 3편이다. 활달하면서도 풍성하고 힘이 좋은 언어가 매력적이다. 게다가 만만치 않은 감각과 사유를 겸비하고 있다. [옹관묘]에서 ‘육신의 안쪽이 내세’ 라는 표현으로 점잖은 성찰에 이르고 있는 점은 이 사람의 내공이 상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 사람을 당선자로 뽑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깨에 불필요한 힘을 잔뜩 싣고 타석에 들어선 타자라는 느낌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앞의 안정적인 언어보다 불안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비보호구역] 외 5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현재의 성과보다 미래의 가능성에게 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당선작 [비보호구역]은 소품이지만 개성적인 상상력이 과히 일품이다. 주제를 언어의 안쪽으로 숨기는 솜씨도 뛰어나다. 이 시의 문장들은 하나씩 따로 끊어 읽어도 환각 같은 즐거움을 준다. 생의 통증을 이미지 안에 새겨 넣을 줄 아는 것도 호감이 간다. 함께 응모한 작품 중 [눈보라]도 신뢰를 더해주는 데 한몫했다. 축하한다. 다만 과도한 외국어나 외래어의 사용은 자제할 일이다. 한국어로도 충분히 우리를 낯설게 만들 수 있으므로.

 

심사위원: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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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판 / 조윤희(우석대 문예창작학·2)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보았어
낡은 인켈 전축, 턴테이블은 사라지고
나무 밑동처럼 남은 자리
엄마가 혼자서 레코드판으로
켜켜이 나이테를 쌓아올리던 그 자리
그 많던 판들은 다 어디로 갔니
골목 끝으로 머리채를 붙잡고
언성을 높이던 엄마 목소리가 멀어지니까
갑자기 잡음 섞인 노래가 듣고 싶어
내가 몽땅 갖다 버렸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기억이 안 나
장롱 밑에 들어갔을지도 몰라
납작하게 엎드리면 보일 수도 있어
컴컴한 밑바닥 속으로 손을 뻗어
먼지 낀 레코드판 한 장을 꺼내들었어
무뎌지면 안 돼, 까다롭게 굴어야 해
콕 하고 찌르는 바늘이 날카로워야
그래야 음악에서 빗소리가 나지 않는대
이 판에서는 남편 없으면 무시당한대
평면이 된 지구가 턴테이블 위로 돌아가지
커다란 레코드판 위로 통근버스가
바늘이 되어 골목 곳곳을 찔러
사람들의 노래를 만들어 내지
그것 참,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 엄마가
뜻 모르고 흥얼거리던 샹송이 생각나
화장품 가방을 들고 훑었을
후미진 골목과 가방끈 맨 자리,
푸르게 퍼진 멍 자욱이 생각나
바늘처럼 뾰족하던 엄마는 찾아봐도
없어, 이제 내가 대신 바늘할래
골목과 골목을 긁으며
뱅글뱅글 돌아볼래

 

 

 

 

 

母音을 기다리는 새벽 / 박성준 (경희대 국어국문학· 2)

 

  어머니가 재봉틀 위에 밤하늘을 올려놓고 별자리를 박아 넣을 때마다 촘촘히 빛나는 밤의 혈관들 예리한 바늘 끝이 막 태어난 바람을 내 몸속으로 가라앉히네 그때 부풀어 오른 허공과 별똥별 떨어져 나와 오래 내통한 분홍 초크자국들이 일순간 혼미해진 내 몸에 가득, 수풀이 무성한 물가에 가 있고 다시 축축한 바람을 키워 밤과 헤어진 별빛들 나는 막연히 기다리다 몸에 오돌토돌한 바느질 선만 만지네
  
  몸 경계, 곡선을 빠져나오던 거친 물소리에 두 귀를 띄우면
  까치수영꽃 다리 저린 곳마다 오래 아리고 시린 곳이 있어 
  그곳에 웅크려 목에 걸린 바늘 찾아 헤매자
  첫 한글을 배우던 내 어린 입술이 어머니 관절 속에서
  오독오독 밤하늘을 씹고 싶었네, 젖은 곳을 찾아 찢어진 밤
  오므렸다 폈다 다시 오므릴 때마다 올 풀린 별자리들이
  내 입술주름 위에서 헝클어지고 뒤집혀 문드러지고,
  공기를 껴안고 몸속에서 밀려오는 그 첫 소리가 나를 오래 오래 어리게 했던 거라 
  이제 내가 깍두기공책만큼 좁은 방이어도 좋았네 
  갈비뼈 아래 바늘 대신 연필심을 꾹꾹 눌러
  온전치 못한 내 그림자! 母音을 기다릴 때마다
  작은 방에는 늘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어머니가 계셔
  내가 쓴 커다란 글씨가 공책 벽에 미끄러져 녹아내려도
  배설하듯 그 첫 소리를 내뱉을 때
  꼭 그 공책 만해지는 내 방, 어린 몸이 아파
  밤을 새도 어머니가 다 기우지 못한 그림자를 주워 입고
  물렁물렁한 공책 속에 눈도 뜨지 않고 살고 싶었네

 

 목소리의 언저리마다 휘어 자란 까치수영꽃 하염없이 물가에 모두 띄우며, 母音을 기다리는 새벽, 끝나지 않는 따가운 소리가 목안 가득 고이고 있었네

 

 

 

 

 

 

 

[심사평]


 

예심을 거친 13명의 작품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중에서 「하늘 장례」 외 2편, 「꽃이 피었다」 외 2편, 「아버지똥」 외 6편, 「묵을 씹는 밤」 외 2편, 「외출」 외 3편, 「박쥐의 서곡」 외 5편, 「공(空)과 폭(爆)」 외 2편을 먼저 내려놓았다. 상상력의 진폭이 좁거나, 시적 대상을 상투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그치거나, 표현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리하여 나머지 6명의 작품을 놓고 오래 비교하면서 읽었다. 각각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어 당선작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언젠가는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펜의 힘을 믿고, 시적인 순간을 만나려는 열정을 접지 않는다면 말이다.
「팬티를 입지 않은 여자」 외 2편은 특이하게도 성적인 언어와 상상을 동원하여 쓴 시들이다. 성기, 허벅지, 브래지어, 성감대, 아랫도리 따위의 말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에로티시즘도 하나의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시적 놀이’가 그저 가벼운 놀이로 끝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정말 시로 ‘한 번 질퍽하게’ 놀았는지 따져볼 일이다.

「하이힐을 신다」 외 2편과 「바람의 잉태」 외 5편은 균형 잡힌 언어감각, 고통을 겪은 사유의 흔적이 돋보인다. 트집을 잡자면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하다는 것이다. 너무 시다운 상황, 너무 시다운 언어를 선택하다 보니 시의 울림이 크게 확장되지 않고 있다. 시를 쓰면서 때로는 일탈을 꿈꾸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 상승할 수 있다.

「나무미장원」 외 2편은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앞서는 작품이다. 어조의 얽매임이 없고, 분명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활달한 생각에다 좀 더 맛있는 언어를 비볐더라면 더 좋은 시를 낳을 수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남은 두 사람의 작품이 나를 괴롭혔다. 「모음(母音)을 기다리는 새벽」과 「레코드판」이 그것이다. 두 편 모두 어머니와 화자인 ‘나’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잘 짜인 구성, 부드러우면서도 기발한 시상의 전개, 솜씨 있는 언어 운용 면에서 크게 나무랄 것이 없는 수작들이다.

앞 작품은 역동적인 이미지의 구사와 언어의 밀도가 풍성하고, 뒤의 작품은 시를 잡아내는 날카로운 시선과 언어의 절제미가 뛰어나 딱 하나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두 작품을 공동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큰 시인이 되어 미래에 계명문화상의 자부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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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의 호랑이 사냥 / 김재현(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ㆍ1)

 

벵골의 호랑이 사냥꾼이 되고 싶었다.
갠지스와 브라마푸트라의 물줄기가 쌀을 익히는 저녁,
어딘가에서 노을처럼, 핏빛의 포효가 숲을 적시면
사냥꾼들은 엽총 한 자루를 쥐고 일어섰을 것이다.
호랑이의 두 눈은 긴 세월, 날카롭게 벼려진
달의 색채로 번들거렸고
몸을 뒤덮은 호반은 벵골만 나무의 뿌리처럼
호랑이의 노란 털을 가로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강이 땅으로 스며들어 곡식을 키우듯,
체액에 젖은 근육으로 두려움이 스밀 때
몸 속에선 한 떨기의 날카로운 열기도 고개를 들었다.
사냥꾼들은 그것을 용기라 불렀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냥꾼들의 용기를 사랑했을 것이다.
우리가 벵골의 호랑이 사냥꾼이 되었다면, 오늘은
갠지스와 브라마푸트라의 물줄기가 땅을 적시는 저녁이었고
황금빛으로 번진 벵골만의 쌀을 추수하는 날이었겠지만,
벵골 호랑이는 멸종했고, 우리는
오직 한 자루의 펜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호랑이가 있을 숲도, 호랑이도 없이
세상에는 이제 사냥꾼들의 총 드는 습관만 남았다.
호랑이가 없었으므로, 총은 겨누어선 안 될 곳을 향했고
우리는 유약해서 우리끼리의 펜을 들고 싸운다
강이 땅으로 스며들어 곡식을 키우듯, 체액에 젖은
근육으로 두려움이 스며, 한 떨기 열기가 피어났지만
우리는 그것을 용기라 부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갠지스와 브라마푸트라의 물줄기가 흘러도 지금은
敵 없는 敵意가 호반처럼 세상을 더럽히는 저녁,
벵골 호랑이 사냥꾼의 총 뽑는 습관만이 남아 있는 저녁,
사람들의 몸 위로 벵골 호랑이의 호반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나
호랑이를 사냥하는 그 뜻만을 유전 받은 우리는
벵골만을 지키기 위해 한 편의
詩따위를 쓰는 것밖엔 할 수 없는 저녁인 것이다.

 

 

 

 

 

 

[심사평]

 

지금 우리 시단에는 타자가 없는 세계에 묻혀 있는 떨거지가 있다. 세상에 살되 사진의 언어만으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타자의 언어가 다가갈 열린 문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진실은 자신의 진실일 뿐이다. 그들의 내면은 난잡하다.
이 같은 소통 없는 세계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난날의 어느 시기가 너무 큰 담론들에 짓눌려 있던 반동이 너무 길다.
바로 이런 시단의 풍속이 대학신문 응모작품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의 가능성에는 다른 풍속을 반드시 낳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 1회, 2회 응모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 감회와 함께 이번의 예선 작품을 보게 되었다.
세 개의 가작도 골라보았으나 부득이 한 개의 당선작만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당선작이 있다. ‘벵골의 호랑이 사냥’이다. 이것을 주저 없이 추천한다.
시풍이 있다. 시풍이 위풍당당하다. 문체가 역동적이다. 자기 속의 어떤 정서적 배설이 아니라 탁 트인 야생에의 투신이 생동감을 일으킨다. 또한 인류사적 사고가 담겨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에도 소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토록 커다란 서술행위가 계속되기 바란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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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 김윤희(서울예전 문예창작학ㆍ2)


1.


옥탑방, 창에 대고 입김을 불면 하얗게 얼어붙은 한 무리 되새떼가 날아오른다

북쪽은 어디일까. 성에가 녹은 자리로 골목을 굽어본다. 바람이 허랑한 몸속을 맴돌아 나가고 여린 날개뼈가 결빙 음을 내며 다시 얼어붙는다.

새들의 흰 뼈가 쌓인다. 하늘은 이름 없는 무덤처럼 흐려진다.


2.

나는 잠 속에서 날개를 포륵거렸다.

시신의 버드러진 기운처럼 겨울비가 내렸다.

나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것일까. 으르르딱딱- 이빨을 부딪치면 흰 사기들이 창틀에서 부서져 나갔다. 약한 것들은 제 몸이 부서질 때마다 소리를 냈다.

내가 깨뜨린 사금파리가 발밑에서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3.

해는 산그림자 속으로 떨어진다.

창에 볼을 문대면 푸릉- 콧김을 내는 짐승이 날개를 젓는다.

飛上, 飛上… 나는 가만히 손가락을 대고

손끝에서 반짝,

보안등 아래 물방울이 조랑조랑 달린다.

세상의 기울기가 다른 곳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새들은 북쪽으로…

손톱자국이 나게 유리창을 긁으면 맹폭한 짐승이 부푼 날개로 쩡, 하고 날아오를 것 같다.


온종일 하늘은 어둡고

실핏줄 뻗치는 성에꽃, 눈부시게 터진다. 

 

 

 

 

 

[심사평]


시는 기억을 재구성해서 언어로 드러내는 양식이다. 다시 말하면 기억의 형상화 과정이 시쓰기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조건이 따라붙는다. 하나는 기억 혹은 체험 내용의 선택과 배제의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언어의 형상화가 표현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인식의 문제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은 시인의 체험 내용을 알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현란한 언어의 운용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독자는 무엇보다 시를 둘러싸고 있는 시적 인식의 놀라움하고 은밀하게 내통하고 싶어 한다. 인식의 힘을 보여주는, 인식의 육박전을 펼치는 작품 하나 어디 없나, 하고 유심히 응모 작품들을 읽었다. 시를 고만고만하게 잘 쓰는 사람은 많은데, 놀라운 상상력으로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시는 드물었다. 마지막까지 여러 번 들었다 놓았다 한 시는 모두 여섯 사람의 작품이다.

 ‘어머니의 상자’와 ‘빈집’, 그리고 ‘소류지’ 세 편은 시에서 풀어 보이는 어머니와의 갈등이나 고통이 현실에 적절하게 밀착하고 있다. 그것은 시적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데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실의 누추함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길 줄 아는 힘도 느껴진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안이한 화해를 서두르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다.

 ‘겨울로 가는 길’은 나무라는 대상을 통해 스스로 인내하는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매우 안정된 호흡에다 “밖으로는 길을 덮고 속으로는 길을 내는 저 몸부림”처럼 눈길을 끄는 구절도 곳곳에 보인다. 앞으로 상상력의 확장에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은행나무 아래서’는 이미지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감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감정 조절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그런데 작자는 마지막 줄의 ‘세월’이라는 시어 하나가 시의 격조를 얼마만큼 떨어뜨리는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겨울 풍경을 흠잡을 데 없이 잘 버무린 ‘성에꽃’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말을 절제하는 기량과 무리 없는 묘사력을 무엇보다 높이 샀다. 함께 응모한 시도 만만찮은 솜씨를 발휘하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부디 좋은 시인이 되기 바란다.

 

심사위원: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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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풍문 / 한인숙(제주대 국어교육·3)


멸치의 경악에 찬 눈망울이 햇빛을 받아 팔딱인다

남해 섬자락이 살풋 치마를 잡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곳

육지로 몰려온 멸치 때가 내딛는 첫걸음을 본다

깜짝 터지는 플래시처럼 반짝이는 그들의 발을 본다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른다)

양동이 이고 나온 동네아주머니 담아, 젓을 담근다 한다

작둣날처럼 푸른 고등어 등 뒤에 두고 내달린 것이란다.

채 마르지 않은 나무로 짠 조각배 자맥질하듯 떠올랐다

배안엔 물보다 공기가 더 많이 담긴 생수통 하나, 언젠가

서슬퍼런 전쟁의 풍문을 피해 온 일가족이 있었다

카메라 눈에 잡힌 눈망울들 육지에 닿아 오래 출렁이고 있었다.

 

 

 

 

 

 

[심사평]


예심에서 올라온 열 명의 응모자에서 두 사람을 골라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나머지 여덟 명의 학생은 시의 말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듯했다. 자신의 감정과 관념을 직설적으로 토로하거나 말 밑에 접어 숨긴 뜻 없이 축자적 의미 그 자체로 전달하는 방식은 시의 말법이 아니다. 특히 객관화되지 못한 사적세계의 주관적 감정은 금물이다. 서정시의 궁극적 목표가 정서감흥에 있으며 그것은 개인의 감정에서 기인될 수밖에 없다는 건 일견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이 감정은 납득하거나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감정과잉만 지적하는 게 아니다. 화려한 수사나 세련된 어법으로 제법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설득력 없는 자폐적 주관성이 넘쳐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마이산 만불탑’과 ‘무용총 사냥벽화’, ‘산자락에 있는 집’을 들고 응모한 학생과 ‘저승꽃’과 ‘귀의 문을 열다’, ‘시퍼런 풍문’을 선보인 학생은 나름대로 시적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어 돋보였다.

 ‘산자락에 있는 집’ 시편을 쓴 학생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활달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어법 또한 젊은이의 패기를 자랑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의 자리를 양보하게 된 것은 그 풍성한 이미지 다발을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결정적 응집력이 없기 때문이다. 시라는 항아리는 양감과 색택(色澤)으로만 충분치 않으며 그 쓰임새도 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당선작 ‘시퍼런 풍문’도 현실과의 관련성만 따지자면 그리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멸치 떼로 암유되는 현실을 보트 피플의 문제로 연결한 시적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구나 두 개의 에피소드를 흔적 없이 기울 수 있는 바느질솜씨는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일견 역동적인 상상력이나 패기가 좀 부족한 듯하지만 섬세한 감각과 행간의 여백을 활용할 줄 아는 간결한 문체, 비유의 적실성과 다양한 어조의 활용, 이미지의 통일성과 결구의 솜씨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다른 응모작에서 볼 수 있는바, 미묘한 정서의 결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면 주관적 감정의 세계에 빠질 수 있으므로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수상자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장옥관(시인ㆍ문예창작학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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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이 있는 골목 / 박소란(동국대 문예창작학ㆍ4)

 

이따금씩 아랫도리를 까발린 사내가 출몰했네

라면 부스러기 같은 눈이 쌓인 밤

동동거리며 문을 따는 여대생들 하얀 목덜미를 훔치기도 했네

노인네 속곳처럼 지린 밑을 조몰락거리며

황망히 닫힌 문을 서성이던 어느 침울한 날엔가

월세방 전단이 빼곡한 수은등 아래

벌거벗은 그가 사무쳐 울고 있었네

이국종 겨울나무처럼 쓸쓸한 가지를 떨고 있었네

누군가 내게 보내는 비밀한 교신 같아

창백한 담벼락들 맞부둥켜 손가락질 해대는

이방의 어둔 골목에서

어쩐지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네 추위를 달래고 싶었네

언 수피 가까이 아랫목 같은 불 지피고만 싶었네

생각해 보면 단 한번도

벌거숭이 사내만큼 외로운 적 없었는데

집냄새 사람냄새 사무친 적 없었는데 그 밤,

사내의 등 뒤로 무거운 걸음 재촉하며

괜한 뒷모습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네

어쩐지 낯선 도시의 헐벗은 나를

사내의 뿌리 곁에 고스란히 두고 온 것만 같네

 

 

 

 

 

로드무비 / 민구(명지대 문예창작학ㆍ3)

 

버스는 만원이고 눈발은 거세지고

사내는 잠이 든다 사람들은,

능청스럽게 코고는 그를 쏘아본다

기척에 놀란 그가 허리를 세워 상체를 고정시킨다

버스가 떠민 희미한 얼굴들이 시야에 걸려 그대로 들어온다

그는 밖으로 툭툭 시선을 던지며 멈추면 내려놓고 다시

새로운 얼굴을 건져 올리지만

本意는 아니다

 

바퀴가 풀어놓은 길 위로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고

걸음이 느린 몇은 앞으로 쏠리다가 앞선 이들을 향해

발이 먼저 미끄러진다

 

그때 버스 한 대가 급정거!

 

감탄부호처럼 급조된 소리, 또 그렇게 생긴 소리,

바닥에 닿으려는 순간 한 번

사뿐히 날더니 길 위로 풀썩 주저앉는다

뜻밖의 정지화면에 당황한 사람들이

씹힌 테이프를 두고 잠시 중얼거린다

 

도로 한복판 전광판에 날마다 관객 동원수가 기록되고

고장난 테이프는 재활용이라지만

그래도 끊이지 않는 말,

눈 위에 눈 쌓이듯 불어난다

 

 

 

 

 

 

[심사평]

 

예심에서 올라온 열 사람의 작품들은 시적 글쓰기의 맛깔과 태깔을 제대로 갖추었다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시적 대상으로 향하는 열정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고, 열정을 전달하는 말의 짜임새 또한 성글어서, 젊은이들의 글에서 기대되는 패기와 집요함이 속속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근래 들어 우리 문화 전반에서 눈에 띄는 비시적 사고방식과도 무관하지 않은 현상으로 짐작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 혹은 시적인 것이 우리 삶에서 사멸해버린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노후한 수도관에서처럼 시의 물길이 우리 삶 곳곳에서 하릴없이 유실되는 것일 뿐이리라. 그러나 정말 위험스러운 것은 시적 글쓰기의 모세혈관이 터져버림으로써 정신의 수족마비 현상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또한 시적인 것의 소모와 유실로 인한 폐단이 비단 정신의 수족마비에만 그치겠는가. 선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를 모르면 높은 담장 앞에 서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다소간의 망설임 끝에「자취방이 있는 골목」과「로드 무비」를 가작으로 선한다. 어쩌면 변태성욕자로 보이는 한 사내의 허름한 출몰을 이야기하는「자취방이 있는 골목」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남루한 풍경 한 자락을 수놓듯이 섬세하게 보여주는데, 배면에 화자의 감상적인 어조가 배어듦으로써 긴장과 밀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건조하고 거의 물질적인 시선으로 도시생활의 한 단면을 스냅사진으로 떠올리는 「로드 무비」는 말을 씹는 재미의 일단을 보여주지만 때로는 지나친 연상의 비약으로 인해 읽기를 방해한다. 일단은 두 편의 시 모두 글쓰는 사람 자신의 조야한 일상에 뿌리와 부름켜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무성한 시의 그늘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다만 시는 근본적으로 말의 번짐으로 이루어지며 말의 번짐을 가능케 하는 힘은 글쓰는 사람 자신의 집요한 열정과 정신의 자유로움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열정도 자유도 쟁취하는 것이다.

 

심사위원: 이성복(문예창작학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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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화채 / 문성록(계명대학교 한국어문학·4)

 

아버지가 수박을 싣고

장터로 떠돌다 돌아온 날 밤이면

트럭 옆자리에는

늘 낯익은 아주머니가 앉아있었습니다

 

그런 저녁이었습니다

어김없이 팔다 남은 수박들이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어머니에게 발길질 해대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방문에 어른거렸습니다

아픈 허리를 움켜쥐고 흐느끼며 어머니는

안방에서 쫓겨 나와 마실로 뛰어갔었습니다

누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덮어쓰고

아프게 나를 껴안았습니다

겁에 질려 잠이 들면서도 나는

복숭아 만한 누나 가슴을 만지던 손이 떨려왔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보니 언제 돌아오셨는지 어머니는

커다란 양푼이에 깨진 수박들을

숟가락으로 긁어 담아 하얀 설탕을 싸락눈 같기도 한 설탕을

하염없이 뿌리며 턱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계셨습니다

누나와 나는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이

설탕 맛 밖에 나지 않는 화채를 떠먹으면서도

시퍼렇게 멍든 어머니의 얼굴은 차마 보지 않았습니다

마당가에는 깨진 수박들이

빨간 잇몸을 드러내고 웃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누나와 나는

아침에 먹다 남기고 간 화채를

냉장고에서 꺼내 허기를 달랬습니다

누나와 나는 평상 위에 누워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밤이슬이 우리 이마를 적시고 별들이 사라질 때까지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누나와 나는

화채를 다시는 먹을 수가 없게 되었는데요

그것은 아마 수박 위에 하염없이 뿌려놓은 어머니의 눈물의 맛을

그때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심사평]

   

예심에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해부학 교실』(외 8편)과 『숭한 이야기』(외 3편) 은 기본적으로 시를 엮을 수 있는 투고자의 소양과 자질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심장에서 퍼올리는 혈액으로 산다’는 예사로운, 그러나 단지 예사롭지만은 않은 사실을 삶의 모세혈관들이 만나는 지점마다 확인하는 전자는 남루한 대상들을 남다른 의미로 바꾸어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해가 지고, 아버지도 질 것을 안다’는 다소 생경하며 요령부득의 진술을 통해 일상의 통속과 무감각을 희화화하는 후자는 삶의 급소들을 정확히 짚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을 드러내 보인다. 다만 그들의 작품에서 사적인 감정들의 잔재나 과잉된 언어조작은 조만간 극복되어야 할 미숙함이라 하겠다.

이번 심사의 가장 큰 보람은 당선작으로 선한 『달콤한 화채』이다. 『연근』, 『절름발이 비둘기』, 『새 신을 신으면서』, 『단편』 등 함께 투고된 네 편의 시 모두 고른 수준을 갖춘 작품들이어서, 정작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택해야 할지 망설여야 했을 정도이다. 대개는 현재의 시점에서 아픈 가족사를 재구성하는 이 시편들은 좋은 시가 가져야 할 덕목을 두루 갖춘 모범적인 것이면서도, 흔히 모범적인 작품들에서 눈에 띄는 식상함과 진부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뼈아픈 체험들에 유연한 리듬을 부여하는 언어의 자유로움, 대상을 자기화하면서도 칙칙한 감정토로에 떨어지지 않는 정신의 균형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고 이야기를 조립함으로써 울림을 증폭하는 넉넉한 어법은 앞으로 뛰어난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기쁜 마음으로 당선자의 정진을 빈다.

 

이성복(문예창작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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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 신희진(연세대 인문학부·3)

 

바지의 긴 구멍을 들여다보면 슬프다.

굽이쳐진 동물의 창자 속 같기도 하고

어둠 쳐진 시간의 긴 골목길 같기도 하다.

여기엔 도무지 빛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슬프다.

나는 바지의 구멍을 들여다보다가

긴 空洞의 끝에 가 부딪히곤 한다.

탈출구일까, 방황의 가지 끝에 달린 피로의 냄새와

때로 끝이 몽똑하게 잘린 그리움.

단발의 몸을 끌고 간 짓궂은 먼지나

더욱 얄궂은 흙탕물 같은 질팍함이 붙어있다.

이것들이 주렁주렁 주름을 빚어낸다.

바지 속 쌍둥이 동굴은 평행할 줄 모르는

왜곡된 사랑,

내 절뚝거리는 사랑이 어둠으로 올망져 있는 곳.

때로 바지 속 긴 구멍을 들여다보다 잠든다.

그것은 외로운 동물 같은 꿈이며

버려지지 않는 식탁, 내 하루를 판화처럼 찍어내는

진기한 역사다.

바지를 입는 일이 그렇다.

 

 

 

 

 

[심사평]

 

  예심에서 올라온 열 명의 응모자들의 작품은 예년에 비해 수준이 떨어졌다. 간혹 재미있을 듯 싶은 시라 하더라도 말장난이 지나치거나, 말장난을 해놓고 수습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같은 사람의 응모작들도 수준의 편차가 많았다.

비유컨대 시라는 진술방식은 ‘자기 부상 열차’와 같은 것이다. 시의 언어사용 방식은 산문의 방식과는 많이 달라서 일단 언어 위로 떠오르지 않으면 시로서의 맛깔이 나지 않는다.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시의 의미는 ‘잠수함’과도 같이 언어의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이어서, 일단 바깥으로 드러나면 쉽게 사라지고 만다.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시는 말장난이다. 그러나 시라는 말장난은 언제나 ‘의미 있는’ 말장난이며, 신선하고 강렬한 충격을 주는 말장난이다. 시에 대한 이같이 적나라한 접근이 때로는 시가 감정과 사상의 통로라는 고정관념을 부수는 데 효력을 갖는다.

마지막까지 남은 두 응모자의 시들 가운데 「육면체의 노을」을 쓴 학생은 일단 시라는 진술방식이 언어를 타고 한바탕 잘 노는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 그는 여러 가닥 언어의 실을 교묘하게 맺고 꼬는 솜씨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언어 교직은 때로 장난스러움이 지나쳐, 자신이 엮고 있는 실이 어느 가닥인지를 까먹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시는 말장난의 일종이지만, 말장난이 곧 시는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바지」를 당선작으로 고르는 데는 오랜 망설임이 있었다. 시를 엮어 가는 과정이 적지 않게 불안할뿐더러,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들의 수준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응모자의 글쓰기 훈련이 아직 충분치 않고, 시의 존재방식에 대한 또렷한 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택한 것은 바지라는 일상적 소재를 시적 대상으로 읽어내려는 진지하고 건강한 자세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바지의 긴 구멍을 들여다보면 슬프다”로 시작되는 흥미진진한 횡설수설은 헐렁헐렁한 바지의 모양새와 터무니없이 닮아 있고, 바지처럼 땟국물에 쩔은 일상적 삶의 모습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도무지 빛이 보이지 않는 바지 구멍에서, ‘몽똑하게 잘린 그리움’을 읽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상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이성복(문예창작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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