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김만중 문학상공모 시 (시조) 부문 응모자는 많았다. 뿐만아니라 결선에 오른 작품의 수준도 다른 지역의 당선작들에 비하여 수준이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에서 공모하는 다른 문학상에 비하여 많은 상금 탓도 있겠으나, 5년을 시행에 오는 동안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선에 오른 작품은 시 175명의 357편 가운데 15명과 시조 22명 197편 가운데 1명으로 총 16명이었다. 시 부문 심사위원 3명이 각각 5명씩, 시조 심사위원 1명이 1명을 골랐다. 11명의 작품을 놓고 네 명의 심사위원이 장시간 논의하였다.
우선 지금까지 4회 동안 반복된 김만중의 삶이란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작품의 참신성과 완성도 그리고 작품 전체의 수준을 고려 하여 많은 가능성을 가진 작품을 고르겠다는 점에서 4명의 심사위원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 결과 시 5명 정도로 압축을 하여 다시 4명의 심사위원이 금, 은상의 수준에 육박한 작품을 고른 결과 <해변에서>외 9편(김유섭)의 경우 4명 전원이 인정하고, <멸치 복음(福音)>외 6편(한승엽)을 2명이 인정하고 나머지 1명을 1명이 인정하는 순서로 나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금상을 <해변에서>외 9편으로 정하고 은상으로, < 멸치 복음(福音)>외 6편으로 결정하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투고자를 확인한 결과 특히 지역 문학상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금상 작품과 은상 작품은 각각 개성적인 면을 확연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시인들의 나이는 어떠한 지는 알 수 없으나 김유섭은 젊고 건강한 어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감정이 절제된 부분이 많은 이미지의 전개 과정이 특색으로 등장하여 독자들의 상상력이 개입된 읽기가 필요한 시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들의 분위기가 건조하지는 않다.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시적 정경도 마치 한지에 물이 드는 것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감동을 준다. 특히 <그래도 봄이었다>는 죽은 어머니의 화장 광경을 지켜보는 과정인데도 그 비극적 정경을 마지막연에서 승화시키고 있다.
화자가 직접 말하는 담화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 화자의 시적 상황이 각각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구조도 단절되지 않아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다. 앞으로 이러한 시편들로 시집이 엮어진다면 독자를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한승엽의 어조는 나이가 들어 있으며, 어떤 작품에서는 마치 김만중 그것도 절해고도에 갇힌 노인이 시적화자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당선작들에서 보이는 노골적으로 김만중의 생애를 이입시키지 않은 점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시인은 바닷가나 섬에 살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였는데 시인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니 그 짐작이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도 건강하고 낙천적이기보다 비극적이고 절망의 그림자 마저 드리워져 있다. 그러면서도 인식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멸치 복음(福音)>은 제목에서 일종의 역설이 보이기도 하지만 고기 가은데 가장 개성이 없는 ‘멸치’를 가지고 이러한 인식과 상상력을 전개하였다는 데서 시인의 역량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한 시인의 화자는 시 속에 들어가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느러미론(論)>같은 데서는 평범한 사물에다 관념을 이입시키는 솜씨도 보여주고 있다. 다소 무거운 시편들이지만 병적인 절망이나 비극으로 떨어지지 않고 진지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시편들 역시 시집으로 엮어지면 한국시단의 개성적인 시집이 될 것이다.
푸른사상 시선 77권. 김선 첫 번째 시집. 소외된 채 사는 이들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그들의 아픔과 꿈을 비추어 드러낸다. 문단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도시 변두리에 살면서 힘들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풍경을 세부적으로 묘사해 보여주고 있다.
긴 시력만큼 그의 시적 행보의 반경은 넓고 깊다. 가속적으로 발전하는 문명과 이를 추동력으로 화려하게 팽창하는 도시 변두리의 풍경과 그곳에서 소외된 채 사는 이들의 상처와 사랑을 세밀화처럼 섬세히 그리기도 한다. 타자의 시선을 벗어나 고유한 욕망의 주체로 서기 위해 성찰의 깊이를 더한다.
김선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눈 뜨는 달력』이 <푸른사상 시선 77>로 출간되었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거친 물결 속에서 뿌리를 잃은 사람들을 서울 가리봉동의 어두운 골목길을 비추는 달빛처럼 따뜻하고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노래했다.
김선 시인의 시선은 무척 따스하고 섬세하다. 그 예리하고 빛나는 눈빛은 도시 변두리 골목길의 어둠을 밝히며 외로운 이들의 굽은 등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 깊이 고여서 외롭고 힘든 삶을 지탱해주는 온기를 찾는다. 때로는 우리가 버리고 떠나온 고향으로 발길을 돌려서 깊고 푸른 나무 그늘에 앉아 이웃들을 만나 손을 잡는다. 그렇게 김 시인은 도시가 점점 비대해지고 화려해지면서 주변으로 밀려나 소외되고 잊혀진 것들에 대하여 일관적으로 애정의 손길을 보낸다. 이러한 김 시인의 시적 자세에 대하여 혹자는 이전의 시단 흐름을 고집한다고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웃들의 눈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외된 곳에 머무는 이들을 향한 김 시인의 관심은 멈추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시단에는 서서히 지각 변동이 일기 시작하면서 시인들의 시선은 급격히 외적인 삶의 현실로부터 내면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전에 대세를 이루던 이른바 리얼리즘 문학의 흐름은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모더니즘을 지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가 우리 문단에 빠르게 유입된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문단 내부의 요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970~1980년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또는 경제적 민주화의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그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 발전은 속도를 더하고 시인들은 창을 닫고 내면을 살피는 중에 그 그늘에서 가파른 삶의 길을 걷는 이들은 더욱 주변으로 밀려 나고 있었다.
김 시인은 소외된 채 사는 이들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그들의 아픔과 꿈을 비추어 드러낸다. 문단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도시 변두리에 살면서 힘들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풍경을 세부적으로 묘사하여 보여준다
아들 문성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지난 겨울방학 때 집에 놀러 온 문성이 친구들 중에 몇 명이 졸업하면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겠단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회한이 통증처럼 일었다. 입덧을 시작하던 날, 아내는 현대자동차에서 해고 됐고, 문성이 돌잔치 하는 날, 난 현대중공업에서 해고 됐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그 고립된 바닥에서의 절규로 한 시기를 다 보내야 했다. 이 때 태어난 아이가 자랐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웠으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겠단다. 나와 아내가 목표로 했던 건 ‘비정규직 처우 개선’ 따위, ‘불법파견 정규직화’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투쟁은 패배 했다. 이미 낡은 운동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내가 참여했던 운동의 몰락은 아주 감각적인 통증으로 내 살에 박혀 있다.
여드름이 훑고 지나간 울퉁불퉁하고 쭈글쭈글한 내 얼굴의 거죽을 만지면 당분간 언어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오늘 이기지 못했지만 전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으로 변화는 가능하다고, 전망은 두꺼운 원전이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들의 감각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성이 등하교를 시켜주면서 짬짬이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어렸을 적, 아들 문성이는 집회와 농성장이 자신의 놀이터였다. ‘비정규직 철폐’ 머리띠를 묶은 투쟁 소년, 조문성이었다. 나보다 훌쩍 커 버린 문성이가 어느 날, “아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다”고 내 삶을 비평해줬다. 그래 내가 잘하지 못했던 것, 아들 문성이 세대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 자신을 민주주의로 조직하고 평등의 새 지평을 열어가기를, 허공을 안전지지대로 사용하는 법을 알고 드러누워 기울어진 생의 불안정성조차 수평을 잡을 줄 아는, 위험 작업은 언제든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로부터 시작해 “삶의 안전”을 위한 최고의 역능을 숙련했으면 좋겠다. 세계를 운영할 수 있는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비상했으면 좋겠다.
잠시 갈 곳 몰라 정처 없던 날,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회에서 ‘박영근작품상’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박영근작품상’이 허명이 되지 않도록 살겠다. 살아내는 게 찌질해질수록 자본주의 밖을 상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남은 생애, 내 시의 역할이 있다면 문성이 세대의 새로운 투쟁과 혁명을 지지하고 조력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낡지 않는 것이다. 박영근 선배도 이 싸움에 함께 해주시리라 믿는다.
4455일! 13년이라는 국내 최장기 투쟁사업장 콜텍(콜트는 투쟁 중임), 노사는 최근 부당해고에 대한 협상을 갖고 명예복직 등에 최종 합의했다. 합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암울한 노동 현실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할 사측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박영근 시인은 60년대 산업화 이후 암울한 노동 현실을 가장 먼저 직시, 노동시의 다양한 길을 열고 닦아놓은 시인이다.
노동 현실의 암울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왔고 앞으로 더욱 심화되어 갈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문제 담론 전쟁에서 자본이 노동을 이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는 노동의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된다. 아울러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방법으로 노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확장과 질적인 제고, 유연성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 노동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한 독자와의 친밀성과 서정성을 더욱 받아들여야 한다.
추천위원들로부터 받은 추천작들에 대한 논의에서 “지난 박영근작품상의 수상작들이 너무 예리하고 직설적 경향이 있었다.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젊은이의 언어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좀 더 유연한 시 쪽으로 선정해나가는 것이 박영근의 시를 확대시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 등이 제시되는 등 논의와 고심 끝에 <위험에 익숙해져 갔다>를 수상작으로 합의, 결정했다.
수상작은 짧지만 고도로 응축되었으며 시적 압축성이 뛰어난 노동시다. 현장 노동시의 중요한 덕목인 체험과 경험을 최대한 살렸으며 노동 현장의 팽팽한 긴장감이 높다. 아울러 암울함이 짙어가는 노동 현실에 대한 공감대의 폭을 대폭 넓혔다.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주관하고 부안군이 후원하는 ‘제7회 석정시문학상’의 수상자로 진안 출신의 이운룡 시인이 선정됐다. 함께 시상하는 ‘석정시촛불문학상’에는 김제예총 회장으로 있는 김영 시인이 선정됐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석정시문학상은 한국 근·현대 문학사의 중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신석정 시인의 고결한 인품과 시 정신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됐다. 대한민국 문인으로 문학적 성과가 지대하며 발표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높은 시인을 종합적으로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올해 심사위원단은 이향아 위원장을 필두로 김종, 김주완, 복효근, 조미애 시인이 참여했다. 지난 19일 전북예총회장실에서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들은 석정시문학상 심사평으로 “이운룡 시인은 문학을 천명으로 받아들여 반세기가 넘는 시의 길을 한결같은 열정으로 매진해왔으며 현재도 그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문학교육자로서 그는 외곬의 삶에 근면한 농부의 자세로 임해왔다”고 밝히며 “그의 구도적 정신과 지속적인 자세, 밀도 있는 작품의 가치는 석정시문학상 수상자로서 매우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으로 있는 이 시인은 전북문인협회장과 표현문학회장, 전북문학관장을 역임하며 문단의 토양을 가꾸는 일에 앞장서왔다.
이운룡 시인은 수상소감으로 “한국문단의 큰별 신석정 선생님은 내가 시의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흠모하는 큰별이었으며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시인의 풍모는 언제나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며 “이번 수상은 신 선생님이 점지해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제7회 석정시문학상과 석정촛불시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0월 17일 오후 3시 부안석정문학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인간은 왜 끊임없이 자연생태계 생명 순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가? 물과 공기 작은 생명들의 연결 순환을 방해하면 언젠가는 공멸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에 인간은 공멸보다는 공존을 위하여 모든 자연생태계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시대적 사명감으로 시작한 『평택 생태시 문학상』이 벌써 제3회를 맞이하였다. 전국규모의 이 공모전에 응모한 사람들은 총325명으로 작 품수는 모두1075편이다. 응모자격을 두지 않고 기성 신인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작금의 생태계를 함께 고민해보기로 하였으므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예심과 본심의 과정을 거쳐 최종본심에 오른 여섯 명의 작품을 두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여 당선작으로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천민이다’를 낙점했다.
당선작품의 기준으로는 평택 생태시가 지향하는 심사기준에 부합한 인간에 의한 자연생태 파괴, 환경파괴, 생명 순환질서 파괴, 인간 존엄성 상실 상황에서 재생태계 질서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생공존을 염려하는 시인들의 외침이 불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두 번의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서는 3명의 입선자를 뽑았으나 제3회부터는 당선자 1명으로 압축하였다. 이는 평택 생태시 문학상 당선작품에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당선작품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천민이다’를 살펴보면 생명 순환 이미지의 흐름이 유려하게 흘러가고 있다. 개펄을 불가촉천민의 천민으로 은유한 발상은 신선하다. 육지에서 흘러온 더러운 것들까지 받아들이고 삭혀내어 펄의 기운으로 새 생명을 잉태한 개펄, 자궁과 산도(産道)를 가진 여인에 비유하고 진행시키는, 어쩌면 낯익은 이야기일수도 있는 이야기를 낯선 표현으로 압도하고 있다. 질펀한 생리 혈이 막혀 배란 없는 불임이 깊어가는 개펄, 바다가 썰물로 옷고름을 풀어도 열리지 않는 시커먼 개펄의 가슴을 예리한 시선으로 찾아내어 염려하고 있다. 개펄은 모태다. 모태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포용과 사랑이 있다. 서상규 시인은 개펄 속에 굼틀거리는 생명의 메시지를 읽어내고 전달한다. 절실함과 애정이 깃들어 있다.
종종 회자되기도 하는 개펄이지만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신선한 충격을 첨가한다. 이는 시인만의 독특하고 고고한 시적인식론을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하늘아래 모든 생명들은 모두 천민(天民)이며 천민(賤民)이라는 형이상학적 사유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함께 보내온 ‘녹조에 물든 강’ ‘산은 다상성이다’ 역시 생태계 생명 순환의 중요성을 유려한 필치로 발려내고 있다. 세편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심사위원들의 낙점을 받아냈다.
최종 본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재활용 근처에서의 문답’ ‘어떤 싸움에 대한 기록’ ‘바다의 밥상’ ‘두더지 반 지하 신혼 방’ ‘생쌀 씹기’다. 모두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제3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 응모한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드리며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전태일문학상에 작품을 보내주신 분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소외된 노동의 해방과 뭉그러지고 찌그러진 인간의 해방을 위해 스스로 빛의 길이 된 전태일 열사의 정신처럼 빛나는 글들을 만났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현장을 담아낸 이륜길 씨의「제305 창진호」, 김정원 씨의「오월哀」, 최늘샘 씨의「델몬트 망고 쥬스」에서는 현장으로 집중된 모순을 생생한 언어로 담아내는 힘이 빛났습니다. 그런데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이 받쳐주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구광렬 씨의 시편에서는 의미를 끌고 나아가는 힘이 돋보였으나 응축되지 못해 아쉬웠고, 박주석 씨가 보내온 시 중에서는 「반가유상 앞을 지나다가」가 눈에 띠었지만 다른 시편들이 못 미쳐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응모한 작품 전체가 고른 시적 성취를 이룬 작품을 수상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은 전태일 사상의 핵을 이루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실천 활동을 문학으로 왕성하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분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구를 충족하는 작품이 송유미 씨의「희망 유리 상회」외 2편이어서 이를 당선작으로 결정했습니다.
전편에서 인간 노동이 만들어낸 지혜를 새 세상의 골조로 삼아야 한다는 단단한 사상성이 돋보였고, 인상적인 면을 중심 형상으로 다듬고 그 안에 의미를 응축시키는 형상성이 좋았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 달리 현장에 충실하면서도 그 안에서 빛나는 인간적 가치를 찾아 예술적으로 드높이려는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선작이 이를 전적으로 충족하는 바는 아니지만 출발점에 세우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송유미 씨를 “지느러미 돋는 한 마리 물고기”(「희망 유리 상회」)로 세상에 내보냅니다.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자주 옆길로 빠졌다. 실개천을 끼고 있는 쓰레기하치장에서 병뚜껑, 깨진 그릇, 털 뽑힌 인형, 몽당연필 보석 같은 소꿉놀이에 정신 팔려 학교를 가지 않거나 지각을 하기 일쑤였다. 지금 그렇다. 철없고 맹목적이던 어린 시절처럼 이른 밤 시와 지내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등교시간이 부산스러웠다. 써 놓은 시가 잘 있는지 시간마다 만지작거렸다. 만지다 보면 상처 나고 스쳐간 모든 것들이 눈물 나게 하였고 꿈틀거리게 하였다.
문을 두드릴 땐 몰랐으나 들어선다 생각하니 앞이 캄캄합니다. 한 발짝도 걷기 힘든 늪이거나, 하늘마저 보이지 않는 정글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시 한 편 내밀 곳 없이 혼자 걸어왔듯이 아프며, 아물며 헤쳐 가도록 하겠습니다. 내세울 것도, 재주도, 능력도 없습니다. 속살 끌어안느라 칼바람에 시퍼렇게 멍든 배춧잎 같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늘 가슴속에 계셨던 김창근 교수님 건강하십시오, 노원희 교수님. 마경덕 선생님, 이상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늦게나마 인연 맺은 '잡어' 동인의 최희철, 박진규, 김성환, 백진희, 최병문 님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 형, 같이 갑시다. '시담' 벗들에게 늦은 안부를 전한다. 해정, 혜정아, 너희들이 있어 내가 오래 살지 싶다. 애간장만 태운 딸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 계신 어머니 아버지, 시 쓰는 일에 몰두하는 아내가 보기 좋다는 남편, 강이, 산이, 가족 모두 사랑합니다. 재주 없는 저에게 귀한 자리를 펴 주신 부산일보사에 거듭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사랑해도 된다, 걸음해도 된다며 빗장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께 큰 절 올립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따로 예심을 거치지 않고 심사위원 세 사람이 응모 작품 전체를 나누어 읽었다. 생각과 말의 균형이 일그러져 있거나, 유행을 추수하고 있거나, 겉멋에 치우쳐 있거나,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작품들을 제외하고 일차적으로 서른 명 남짓을 추렸다. 이를 다섯 명으로 줄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서진 씨의 '물의 씨앗'은 어조가 활달하고 상상력의 전개가 볼 만했으나 관념을 구체화하는 데 미흡했다. 이와 반대로 이규 씨의 '해바라기 노란 열쇠'는 시가 대상의 구체적 형상화라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와 관련해서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최정아 씨의 '그의 우화(羽化)'는 재기 넘치는 상상력과 감각으로 일상을 성찰하는 시인데, 그 상상력이 크게 확대되지 않아 아쉬웠다.
김승원 씨의 '다시, 봉천고개'와 조원 씨의 '담쟁이 넝쿨'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능숙하게 끌고 가면서 일상적인 소재를 적절한 이미지와 결합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다만 김 씨의 작품은 일부 상투적인 표현을 노출하고 있어 아깝지만 뒤로 제쳐두기로 했다.
당선작 '담쟁이 넝쿨'은 담쟁이 넝쿨이라는 시적 대상에다 건강하고 격조 높은 사랑의 고백을 매우 탁월한 기법을 이용해 얹어놓았다. 이 시가 발산하는 그윽한 울림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시루 속 콩나물'의 대담한 상상력도 이 시인을 믿음직스럽게 만들었다.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