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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을 적시며 / 이상국

 

 

비 오는 날

안경쟁이 아들과 함께

아내가 부쳐주는 장떡을 먹으며 집을 지킨다

아버지는 나를 멀리 보냈는데

길 데 못 갈 데 더듬고 다니다가

비 오는 날

나무 이파리만한 세상에서

달팽이처럼 뿔을 적신다

 

 

 

 

박재삼 문학상 2013 제2회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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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박재삼문학상에 이상국 시인이 선정됐다.

 

박재삼문학상운영위원회는 이상국 시인(수상작 시집 '뿔을 적시며')이 사소한 것에서 출발해 크고 깊은 이야기를 담백하면서도 정갈하게 풀어내 올해 박재삼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광규 심사위원은 "향토의 서정과 서민의 삶에 뿌리내린 이 작품들은 남성적 어조의 소박한 육성을 들려주고, 이 시인 특유의 진솔한 시세계를 형상화해 친숙하게 읽히고 폭넓은 공감을 자아낸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상국 시인은 "선배시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으며, 언젠가 제 노래도 우리 땅 어느 한 자락을 울릴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지난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이 시인은 지난 1976'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등을 냈고,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유심작품상, 불교문예작품상, 정지용문학상, 강원문화예술상 등 수상했다.

 

 

 

뿔을 적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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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가을 / 이상국

 

 

옥상에 올라가

메밀 베갯속을 널었다

나의 잠들이 좋아라 하고

햇빛 속으로 달아난다

우리나라 붉은 메밀대궁에는

흙의 피가 묻어있다

지구도 흙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가을이 더 잘 보이고

나는 늘 높은 데가 좋다

어쨌든 세상의 모든 옥상은

아이들처럼 거미처럼 몰래

혼자서 놀기 좋은 곳이다

이런 걸 누가 알기나 하는지

어머니 같았으면 벌써 달밤에

깨를 터는 가을이다

 

 

 

뿔을 적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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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회(회장 유자효)가 올해 제2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이상국(66) 씨를 선정했다. 수상작은 시 '옥상의 가을'이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시인 김남조(85·숙명여대 명예교수) 씨는 이상국 시인의 시는 시의 심장 부위는 착하고 유순한 우수(憂愁)라며 세상에서 이겼기보다 패한 쪽이면서 아량과 용서의 상을 차려 세상에게 대접하는, 그런 유의 우수를 절실히 받아 느끼고 공감하게 된다고 평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다. 시상식은 제25회 지용제가 열리는 512일 충북 옥천예술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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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 이상국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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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에 가면 설악산과 이상국을 만난다. 이상국은 어쩌면 그리도 의연한 대청봉 같은지. 고향 떠나 서울 객지에서 사는 나 같은 소설가가 그를 보면, 언제나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서구 사조에 의존하고 있을 때, 그는 양양의 논밭 고랑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다지고 키우고 지켜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국은, 나를 늘 부끄럽게 한다. - 이경자 (소설가)

 

이상국의 禪林院址에 가서는 전통적인 한시풍의 격조와 여유로움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작품으로서, 이번 시집의 가장 빛나는 시편의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비유의 능숙한 구사에 힘입어 밀도 높은 풍경이 재현되고 그런만큼 시의 육체성이 자연 도드라진다. 나는 당당한 산세의 위풍을 지닌 시를 참 오랜만에 만나 충만감에 빠져들었다.- 임규찬 (문학평론가)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것이다 / 황지우

 

 

초경을 막 지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인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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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을 위해 8년을 다듬어 온 황지우의 지독한 장인정신... 황지우의 장인적 태도야말로 90년대 이후의 '날림'의 글쓰기 속에서 문학을 살아남게 하는 마지막 힘이 될 것이다.- 이인성 (소설가)

 

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이 지난 319일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위와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2억 원의 기금으로 199710월에 제정되었습니다. 최근 2년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주어지는 백석문학상이 우리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문학의 탄생을 촉진하는 중요한 제도로 자리잡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백석문학상이 갖는 이런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심사위원회도 문단의 비중 있는 시인, 평론가들로 구성하여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를 기하였습니다.

 

심사위원회는 최종심에 올라온 이상국(李相國), 황지우(黃芝雨) 시집을 놓고 신중히 논의하던 끝에 두 시집 모두 80년대와 90년대의 양편향을 넘어서 시의 본래의 모습에 충실 하려는 진정한 문학적 고투가 담겨 있을뿐더러 시인이 선 자리는 각기 다르지만 더욱 깊은 사유로 안과 밖을 아우르는 시적 변용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근래 보기 드문 뛰어난 시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판단되어 공동수상으로 하는 데 흔쾌히 합의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1회 공동수상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 첫 회인 이번은 공동수상 관계로 이상국, 황지우 시인에게 각각 500만원씩 지급됩니다. 시상은 1999423()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할 예정입니다.

 

- 심사위원: 백낙청(문학평론가), 신경림(시인), 정현종(시인), 최원식(문학평론가), 황현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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