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회(회장 유자효)가 올해 제2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이상국(66) 씨를 선정했다. 수상작은 시 '옥상의 가을'이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시인 김남조(85·숙명여대 명예교수) 씨는 이상국 시인의 시는 시의 심장 부위는 착하고 유순한 우수(憂愁)라며 세상에서 이겼기보다 패한 쪽이면서 아량과 용서의 상을 차려 세상에게 대접하는, 그런 유의 우수를 절실히 받아 느끼고 공감하게 된다고 평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다. 시상식은 제25회 지용제가 열리는 5월 12일 충북 옥천예술회관에서 열린다.
강원도 양양에 가면 설악산과 이상국을 만난다. 이상국은 어쩌면 그리도 의연한 대청봉 같은지. 고향 떠나 서울 객지에서 사는 나 같은 소설가가 그를 보면, 언제나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서구 사조에 의존하고 있을 때, 그는 양양의 논밭 고랑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다지고 키우고 지켜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국은, 나를 늘 부끄럽게 한다. - 이경자 (소설가)
이상국의 「禪林院址에 가서」는 전통적인 한시풍의 격조와 여유로움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작품으로서, 이번 시집의 가장 빛나는 시편의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비유의 능숙한 구사에 힘입어 밀도 높은 풍경이 재현되고 그런만큼 시의 육체성이 자연 도드라진다. 나는 당당한 산세의 위풍을 지닌 시를 참 오랜만에 만나 충만감에 빠져들었다.- 임규찬 (문학평론가)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것이다 / 황지우
초경을 막 지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인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한 권의 시집을 위해 8년을 다듬어 온 황지우의 지독한 장인정신... 황지우의 장인적 태도야말로 90년대 이후의 '날림'의 글쓰기 속에서 문학을 살아남게 하는 마지막 힘이 될 것이다.- 이인성 (소설가)
제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이 지난 3월 19일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위와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2억 원의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되었습니다. 최근 2년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주어지는 백석문학상이 우리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문학의 탄생을 촉진하는 중요한 제도로 자리잡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백석문학상이 갖는 이런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심사위원회도 문단의 비중 있는 시인, 평론가들로 구성하여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를 기하였습니다.
심사위원회는 최종심에 올라온 이상국(李相國), 황지우(黃芝雨) 시집을 놓고 신중히 논의하던 끝에 두 시집 모두 80년대와 90년대의 양편향을 넘어서 시의 본래의 모습에 충실 하려는 진정한 문학적 고투가 담겨 있을뿐더러 시인이 선 자리는 각기 다르지만 더욱 깊은 사유로 안과 밖을 아우르는 시적 변용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근래 보기 드문 뛰어난 시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판단되어 공동수상으로 하는 데 흔쾌히 합의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1회 공동수상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 첫 회인 이번은 공동수상 관계로 이상국, 황지우 시인에게 각각 500만원씩 지급됩니다. 시상은 1999년 4월 23일(금)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