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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관한 연구 / 하재연


초가 완전히 녹아버린 후 촛불의 빛은 어떻게 되는지
일요일의 흰빛이 월요일 쪽으로 사라져갈 때

빛이 사라진 지구가 혼자 돌고 있는 밤을 생각한다.
지구는 그때부터 처음의 방식으로 고독해지겠지.
굿바이,
하고 인간들에게 인사를 하고
정말로 우주적인 회전을 하게 될 것이다.

빛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묻지 않고
빛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연구하는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다.
그도 빛과 함께 사라져서,
우주적인 안녕을 해야만 했고

나는 다시
먼지처럼
이곳저곳에 묻어 있다가,
쓱 닦이곤 했다.

흘러넘쳤던 빛의 입자들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다 생각난 듯 한 번 반짝였다.

그러고 나서는
영원히 보이지 않는 음이 되어
세계의 투명한 공기를 짙게 한다.

*"초가 완전히 녹아버린 후에 촛불이 어떻게 되는지"―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우주적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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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간곡한 이들이 함께 한다고 소리내 불러줘 고맙습니다"

 

눈의 여왕에게 매혹되어 얼음 궁전에 갇힌 소년 카이는, 얼음 조각들을 맞추어 하나의 단어를 완성하면 풀려날 것을 약속 받습니다. 단어가 완성됨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였습니다. 그러나 카이는 한 마디 단어를 맞추어 내는 데 계속해서 실패합니다. 소년이 절대로 완성할 수 없었던 하나의 낱말은, '영원'이었습니다.

북극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정말이지, 추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살아 있음의 불가능성이 얼음송곳처럼 파고 들어와, 간곡하게 삶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눈 폭풍으로 인해 시야와 방향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백맹(白盲)이 되어 버리는 북극에서는, 새들도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못해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고 합니다.

시를 쓰는 어떤 밤들이, 눈의 여왕에게 붙잡혀 결코 완성할 수 없는 낱말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시간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시들은 곤두박질친 새의 날갯짓처럼,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수상 소식에 잠시 눈 폭풍이 잦습니다. 건너편에서 따뜻한 불빛이 비추고 사람의 다정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혼자 애쓰고 있는 게 아니라, 간곡한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거라고, 소리 내어 이름을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시가 홀로 곤두박질치지 않게 같이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차게 앞을 가로막는 눈 병정들을 헤치고 나아간 소녀의 씩씩한 발걸음이 잊히지 않습니다. 다시 사방이 막막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때,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에서부터 영원을 살라고 한 구상 시인의 시를 떠올리겠습니다.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진 어느 산골짝 옹달샘 물 한 방울에 닿은 시인의 눈길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대를 기억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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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사라짐·어긋남에 대한 우주적 감각, 성찰의 시선 열어줘"

 

예심을 거쳐 올라온 등단 10~20년차 시인들의 시집 10권은 다채롭고 풍요로운 상상력,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의 시선을 보여주는 좋은 시집들이었다. 독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시를 읽는 설렘과 기쁨에 흠뻑 빠져들었음을 새삼 고백해야겠다.

좋은 시집이 많았던 만큼 심사 과정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본심에서 집중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 시집은 네 권이었다.

각자 개성이 다르고 이미 탁월한 경지에 오른 시집들 중에서 단 한 권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고르는 일은 즐겁다기보다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신동옥의 '밤이 계속될 거야'는 짧은 시가 보여주는 밀도와 긴 시가 보여주는 유려한 문체와 진중한 사유가 균형을 이룬 시집이다. 삶의 체험이 녹아 있는 자리가 특히 매력적이었고 사회적 상상력으로 확장되는 시선에서 깊이가 느껴졌다.

임경섭의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이야기와 스타일이 매력적인 시집이다. 시에서 서사를 활용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큰 줄기의 서사에서 묘하게 다른 감각으로 포착한 소소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가 매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정다운의 '파헤치기 쉬운 삶'은 강렬한 정동을 내뿜고 있다. 일상에 만연한 허위와 폭력과 위선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파헤침으로써 당혹스러움이 매혹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게 해 준다.

하재연의 '우주적인 안녕'은 사라짐과 어긋나는 시간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열어가며 우주적으로 확장해, 인간을 성찰하는 개성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이 땅에서의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나아간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우주적 상상력과 우주적 시선이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성찰의 시선을 열어주고 있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이 두 시간 가까이 심사숙고한 끝에, 첫 시집부터 지속적으로 우리 시의 새로운 감각을 예민하게 확장하며 개성적인 시세계를 구축해 온 하재연의 세 번째 시집 '우주적인 안녕'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두 개의 영혼 사이에서 부서지는 인간의 마음'을 겪은 시의 주체가 '희미한 빛'(화성의 공전)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하재연 시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심사위원 최정례,조재룡,이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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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 토요일 밤의 세마포 / 정한아

 

여기 구겨진 울음이 찍혀 있으니
자기 멱살을 잡고 자기를 물 밖으로 끌어내는 사람처럼
끝내 그는 자기 밖으로 새어나갈 수 있을까

아직도 그는 고백이 부끄럽고
고백이 부끄럽다는 이 고백이 누가 될까봐
빨간 얼굴 속에 눈 코 입을 묻어놓고
그는 또 묻는다
물음을 벗어나는 일의 가능성과 의미에 관하여
그의 질문과 상관없이 그의 무덤 안에 떠도는 저 먼지 하나하나까지도
남김없이 등록되는 오늘의 치밀함에 관하여

지금은 작성되고 싶지 않아
실현된 계시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아
답을 바라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이 빨간 망설임 때문에

비로소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소란한
귀먹을 듯한 적요 속에서

끝내 그는 그를 자기 질문에 답으로 내어놓을 수 있을까
그의 얼굴이 그의 입에 먹히기 전에
고백하자면
고백이 그를 그 아닌 것으로 붙박아 놓을까봐
통성(通聲)으로 증언으로 누가 될까봐

먼지는 사람이 되고 사람은 다시 흙이 되지만
아무도 그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없으니
그래서 불러보는
과학자, 시인, 하느님
존경해마지않는
나이가 무지하게 많으신 분들이여

될 수 있으면 그의
수치와 졸렬은 무시하시고
그의 빨간 얼굴에서
그의 골격과 날마다 쇄신하는 죄악의 대략과
그의 영혼의 방사성 동위원소와 탁도(濁度)와
찌그러진 눈 코 입의 윤곽을 어서 발본해내소서

거기 누가 구긴 울음이 음화(陰畵)로 찍혀 있다
자기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하지 않으려고
그는 밤새 자기 지문을 외고 있으나

아무래도 낯선 소용돌이여!
이 정황의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자기도 모르게 신비는 어떻게 유출되는가
이제 곧 성사(聖事)가 시작된다

 

 

 

 

 

울프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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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구상 선생 詩에 담긴 ‘비극 아는 자의 명랑’ 기억할 것”

 

크리스마스이브에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할 건 없었습니다. 학생들의 성적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수상 소감을 쓰는 이 시각에도 그것이 끝나지를 않았지요. 성적 처리 마감 전날인 오늘, 성탄절 아침에 “오늘 안에 보고서를 내지 못하면 한 학기 수업이 도루묵이 된다”는 협박 문자를 적지 않은 학생들에게 보내야만 했습니다.

저도 그런 연락을 받은 일이 있었거든요. 쓴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압도되어서 시작도 못 하고 긴장성 두통으로 목이 뻣뻣해진 상태로 불가피하게 포기하게 되기를 기다리다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말입니다. 마음은 동물인데 몸이 식물적으로다가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저는, 실은 그런 일이 아주 많았습니다.

어제 받은 수상 소식이 어째서 가장 두려운 그런 마감 독촉과 비슷하게 여겨진 것일까요. 저는 상을 받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돌아보면 그런 독촉 전화들은 결국 아주 다행스럽고 고마웠지요. 당근을 받았는데 채찍을 맞은 듯 구는 것은 겸허하지 못한 일입니다.

심사위원 여러분과 제 부끄러운 시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 쓰러진 당나귀를 때려준 모든 채찍들에 감사합니다. 시 따위와 담 쌓고 살지만 마음에 시의 씨앗을 품고 있는 훨씬 많은 분들께도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구상 선생님의 영원에 대한 희구와, 지상에 대한 연민과, 무엇보다 그분이 시에 구구절절 남겨놓으신, 비극을 아는 자의 명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른스런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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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본주의의 문제 제기…현실과 진실의 極點 향해 폭주”

 

올해 2회를 맞이하는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본심은 2016년 12월부터 2018년 11월 사이에 출간된 7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하였다. 등단 10년에서 20년 차에 이르는 중진 시인들의 시집은 현재 한국 시단의 흐름을 압축해 놓은 듯 다채로운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어 시 읽기의 즐거움을 흠뻑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즐거움은 심의 과정에서는 곤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수상작으로 부족함이 없는 탁월한 시집들이 많아 선택의 괴로움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한아의 두 번째 시집 ‘울프 노트’를 구상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에는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대한 탐구 혹은 탐닉, 감각과 감정에 대한 과도한 집중, 내적 필연성이 부족한 시적 기획 등 최근 시단의 우려스러운 현상에 대한 반발이 일부 작용하기도 했다.

정한아의 ‘울프 노트’는 사회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묵직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제기하면서도 새로운 시적 장치와 발화 형식을 가동하고 있다. 텍스트들의 풍부한 상호성이 새로운 목소리와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고, 놀이와 사유가 어우러져 있으며, 그 저변에는 한국사회의 추악한 ‘죄’들을 해부하는 예리한 메스가 감추어져 있다.

특히 ‘울프씨’ 연작은 독특한 캐릭터와 극적 양식을 채택해 단순한 실험성을 넘어 시적이며 정치적인, 더불어 시적이어서 정치적인 시의 탁월한 예를 성취하고 있다.

이 시집은 폭발하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는 듯 현실과 진실의 극점(極點)들을 향해 폭주하면서도 아주 서정적인 일도 동시에 하고 있다. 김수영의 요소가 섞여들어 있는가 하면, 누구의 독자도 제자도 공조자도 아닌 ‘시인 정한아’의 단독 시적 투쟁이 철저히 관철되면서 독보적인 시세계가 구축되고 있다.

부서지고 썩은 현실의 지옥에서 정한아가 빚어내는 시들이 “녹슬지 않고 구부러지지 않는 강철”(‘대장장이의 아내’)의 시로 계속 연단되기를 빌며, 정한아 시인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장석남, 나희덕, 김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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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라는 약 / 오은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라면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바지에 커피를 쏟지 않았더라면

승강기 문을 급하게 닫지 않았더라면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좋아했다면

대화보다 침묵을 좋아했다면

국어사전보다 그림책을 좋아했다면

새벽보다 아침을 좋아했다면

 

무작정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각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너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았더라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닦아주는 데 익숙했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내다보는 데 능숙했다면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하루하루를 열고 닫지 않았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햇빛이 들고

바람이 불고

읽다 만 책이 내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만약 내가

어젯밤에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유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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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심사평] 평범한 일상 시인의 감각으로 재구성해 실증적 담론 구현

 

올해 처음으로 구상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구상詩문학상의 본심에 오른 다섯 분 시인의 시집을 다시 촘촘하게 읽어보는 시간은 지금 우리 시단의 허리쯤 되는 현재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했다. 등단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있는 비교적 젊은 시인들의 시를 본상 후보로 추천하고 선정한다는 의미 있는 기준에 걸맞은 시인들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에 오른 다섯 분 시인의 시집은 김미령의 ‘파도의 새로운 양상’, 김이듬의 ‘표류하는 흑발’, 박성우의 ‘웃는 연습’, 오은의 ‘유에서 유’, 이근화의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이다. 모두 다양한 상상력과 함께 자기만의 확고한 시세계와 시적 화법을 가지고 있는 시인들로 한두 시인으로 쉽게 압축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랜 논의 끝에 오은의 시집 ‘유에서 유’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이근화의 시를 이제는 더 이상 낯선 화법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담백하고 절제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뜨거운 감정들이 내재되어 있다. 일상적이되 일상을 넘어서는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언어 감각이 한층 심화되었다. 김이듬의 시는 여전히 거침없고 도발적이고 약간은 위악적이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출렁임이 생겨났다. 어떤 시적인 제스처도 없으며 단호하지만 보다 유연해졌고 이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사람의 꿈은 한층 더 사람으로 살다 죽는 것”이어서 자신과의 싸움을, 언어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고 더 치열하게 밀고 나가리라 기대된다.

오은은 무엇보다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확고한 시인이다. 역동적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말놀이라고도 볼 수 있는 언어감각은 평범한 일상을 시적 사건으로 미끈하게 재구성해 내며 언어에 대한 실증적인 담론을 시로서 구현해내는 부단한 작업을 실행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지적인 언어의 사유를 넘어서는 자기점검이 필요한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다.

대중적 언어가 아님에도 독자들의 호응이 적지 않고 독특한 시법으로 주목 받고 있는 패기 있는 시인 오은을 첫 회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는 앞으로 구상詩문학상의 개성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송찬호, 조용미, 홍정선

 

 

 

 

호텔 타셀의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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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구상詩문학상 시상식과 2018년 영남일보 문학상 시상식이 12일 오후 5시 영남일보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하석 구상詩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류형우 대구예총 회장과 박방희 대구문인협회 회장, 김용락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장, 고(故) 구상 선생님의 딸인 구자명 소설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시상식은 축사·경과보고·심사평·수상작 시낭송과 수상자 소감·시상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손인락 영남일보 사장은 인사말에서 “구상詩문학상 본상 수상자와 두 분 신인 작가가 앞으로 한국 문단에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며 “오늘을 시작으로 더욱 묵묵히 문학의 길로 정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하석 구상詩문학상 운영위원장은 “구상 시인과 관계가 깊은 대구에서 이런 시상식을 열게 된 점은 매우 뜻깊다”며 “앞으로 해가 거듭될수록 구상詩문학상이 한국 문학계에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1회 구상詩문학상 본상은 오은 시인이 수상했다. 오은 시인은 “시는 혼자 쓰는 것이지만, 함께라는 감각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며 “1회 수상자라는 무게가 제 문학의 다음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남일보 문학상은 이서연씨(시)·임채묵씨(소설)가 각각 수상했다. 시 부문 수상자인 이씨는 “뜻밖의 수상 소식에 함께 기뻐해 주고 오랜 시간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준 친구들과 늘 곁에서 사랑과 격려를 건네는 가족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소설 부문 수상자인 임씨는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하고,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글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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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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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사단법인 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와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는 제 20회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자로 서효인(37)시인을 선정했다고 12일 발표했다. 수상작은 지난해 출간한 시집 ‘여수’다.

 

심사위원단은 “시집 ‘여수’를 펼쳐들고 읽노라면 이미 가본 곳은 물론 전혀 경험하지 못한 공간에 대한 이미지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어떤 공간에 대한 기존의 경험을 해체하고 그곳을 전혀 다른 세계로 감각하도록 만드는 언어의 힘, 이것이야 말로 아무나 지닐 수 없는 능력”이라고 평했다.

 

서 시인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주어지며, 시상식은 4월 28일 의정부 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198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서효인 시인은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와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을 냈다. 2011년 제 30회 김수영문학상, 2017년 제 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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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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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선우(37·사진)씨의 시집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가 제9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천상병 시상'은 시인 천상병(1930~1993)을 기리고 시문학 발전을 위해 제정된 상이다.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는 시의 완성도가 높은 데다 여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성적인 상상력의 내면 풍경을 한 단계 승화시킨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김씨는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고,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2000년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펴내었으며, 2002년 첫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2003년 어른이 읽는 동화 『바리공주』, 같은 해 가을 두 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를 펴냈다.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는 우주적 아날로지의 세계를 그려 보인다. 여성성의 여리고 물기 많은 언어는 잉태하고 포옹하고 사랑하면서 세상 모든 사물들이 넘나들며 서로의 기원을 이루는 삶을 보여준다. 시 속의 그 삶에는 리듬과 색깔과 촉감의 관능과 생명이 자연스럽게 넘쳐흐른다. 시적 자아는 우주의 온갖 사물 속으로 확산되고 우주의 만물은 거꾸로 시적 자아 속으로 수렴된다. 그래서 시집 속의 시들은, 한편으로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으로, 또 한편으로는 한 사람의 다른 삶 살아내기로, 다른 한편으로는 연애시로, 다채롭게 읽힌다.

 

상금은 500만원이며 시상식은 12월11일 오후 5시 서울 예장동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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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 김행숙

 

 

잘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람처럼

알다가도 모를 미소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었어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나는 전달책 k입니다.

소문자 k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왜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 따라 울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내가 불편합니다.

 

만약 내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주워 주머니에 숨길 때의 그 마음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쏘아보며 나를 집어 던질 때의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평소에도 나는 나쁜 상상을 즐겨했습니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 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 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잘 아는 길이었는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두 눈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있습니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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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3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과 수상자를 발표했다. 대산문학상은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5개 부문에 시상하는 종합문학상이다. 희곡과 평론은 격년으로 수상자를 발표해 올해는 시, 소설, 평론, 번역 부문에서 4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시에선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가 수상작으로 뽑혔다. 예심에서 선정된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본심을 진행한 후 최종 대상작 4권을 선정했다. 그 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고통의 삶에 대한 반추, 미래를 향한 열기 등의 주제의식이 탁월한 리듬감과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시 세계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행숙은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2009년 노작문학상, 2015년 전봉건문학상, 2016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부문에선 본심에 오른 6편 중 김혜진의 ‘9번의 일’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심사위원단은 “노동의 양면성을 천착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우리 삶의 근간인 노동의 문제를 통해 참혹한 삶의 실체를 파헤치는 냉철하고 집요한 시선이 돋보인다”라고 평가했다. 김혜진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2013년 중앙장편문학상, 2018년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년 전에는 ‘딸에 대하여’로 대산문학상 본심에 오르기도 했다.

평론은 유성호의 ‘서정의 건축술’이 선정됐다. 해당 비평집은 “비평적 세계를 안정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정확한 심미성을 지향하면서 비평의 현장성과 역사성을 두루 겸비했다”라는 평을 받았다. 4개(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언어를 돌아가며 시상하는 번역 부문에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스페인어로 옮긴 주하선이 수상했다. 주하선은 ‘82년생 김지영’과 이번 본심에 같이 오른 ‘잘 자요, 엄마’를 통해 문학 번역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심사위원단은 해당 번역본에 대해 “원작의 태도를 잘 파악하고 원작을 살린 충실한 번역을 통해 뛰어난 가독성을 확보했다”라고 평가했다.

수상자에게는 각 상금 5000만원과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상패 ‘소나무’가 주어진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4시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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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fi / 강성은

 

 

친구는 우울하다고 했다

친구여 오늘은 내가 옆에 있어줄게

하지만 내가 옆에 있어도

우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다음 해 극장은 사라지고

밤새 불 켜진 쇼핑센터가 되고

혼자 온 사람은 텅 빈 커다란 카트를 끌고 돌아다닌다

 

쇼핑센터는 예식장이 되고

예식장은 병원이 되고

병원은 주차장이 되고

주차장은 유치원이 되고

유치원은 납골당이 되고

 

우리는 납골당에 갔다

친구는 여전히 우울해 보였다

여기도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어두운 한낮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

들으며 오래 누워 있었다

 

 

 

 

Lo-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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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산문학상 수상작에 강성은의 시집 'Lo-fi'(로파이·저음질)와 최은미의 소설 '아홉번째 파도'가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올해 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최은미, 시인 강성은, 문학평론가 우찬제, 번역가 조은라·스테판 브와를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시 부분 수상자 강성은의 'Lo-fi'는 "유령의 심상세계와 좀비의 상상력으로 암울하고 불안한 세계를 경쾌하게 횡단하며 끔찍한 세계를 투명한 언어로 번역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강성은 작가는 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사건과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두 사건을 겪으면서 시를 못쓰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 시간들을 견디고 이겨내는 시쓰기를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 부문은 8편의 장편소설 중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정용준의 '프롬 토니오',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가 최종심에 올랐다.

 


이중 최종 수상작에 선정된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감각적이면서도 치밀한 묘사,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에 대한 정밀한 접근, 인간 심리에 대한 심층적 진단 등 강력한 리얼리티를 구축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최은미 작가는 "첫번째 장편소설인 '아홉번째 파도'를 시작하면서 제 세계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와 만들어낸 인물들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반씩 있었다"면서 "이번 수상으로 확신을 가지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평론 부문에서는 우찬제의 비평집 '애도의 심연'이, 번역 부문에서는 조은라, 스테판 브와가 함께 번역한 'La Remontrance du tigre(호질: 박지원단편선)'이 각각 선정됐다.

우찬제 평론가는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가 애도의 주제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고민했던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우리시대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새로운 희망의 원리를 어떻게 같이 찾아 갈 수 있을까 고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산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6시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 상금 5000만원과 함께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 상패가 주어지며 주요 외국어로 번역, 출간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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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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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제25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에 서효인 시인(36)의 '여수', 소설 부문에 손보미 작가(37)의 '디어 랄프 로렌', 희곡 부문에 장우재 작가(46)의 '불역쾌재', 번역 부문에 케빈 오록 경희대 명예교수(78)의 영역작 '한국시선집: 조선시대'를 각각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시 '여수'에 대해 "이 땅의 여러 장소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돋보이고 상투적 현실 인식에 안주하지 않는 풍성한 발견과 성찰을 보여준다"고 평했으며, 소설 '디어 랄프 로렌'에는 "다국적 소비문화의 영향 아래 자기 인식의 언어를 배운 젊은 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서사적 상상의 발랄함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남겼다.

서효인 시인은 이날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상은 나를 포함한 선후배 젊은 시인들에게 크나큰 격려를 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소설 부문 심사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1980년대생 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격년제로 수상작을 내는 희곡과 평론 부문은 최근 2년간 나온 작품을 대상으로 했고, 번역은 최근 4년간 발표된 영어 번역물을 심사했다.

번역 부문 수상자인 케빈 오록은 1964년 한국으로 건너 와 외국인 최초로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따고 40여 년간 한국문학 연구에 천착했다. 오록은 "첫 번째 번역 시집으로 1989년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커리어를 마감하는 지금 상을 타서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번역서는 한국 고전 번역 계획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시집으로, 조선시대 한시 600수 이상을 담은 시집이다"라고 말했다. 

시·소설·희곡 수상작은 내년도 번역 지원 공모, 주요 언어 번역 등의 과정을 거쳐 해외에 소개된다. 상금은 부문별 5000만 원.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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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가까운 삶 / 이장욱

 

 

영원을 떠나보내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목적지가 없는 기차를 영원은 타고 갔다.

영원에게는 언제나  곳이 있는  같았다. 그곳이 영원에게 이미 지나온  같았다.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열심히 잠을 자는 것은 
영원이 아니라 
영원은 여기저기에서 나를 잊었다.
마치 나를  살아낸 듯이

내가 출근을 하고 우체국에도 가고 관공서에도 가는 것을 알면서 영원은
매일 공무원 같았다. 문서의  칸을 메우기 위해  산을 바라보는

비처럼
영원은 내렸다.
그것이 그의 업무.
나는  옷을 사고  안경을 샀다.
그것이 나의 업무.
오늘도 세수를 하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것으로

나는 세상의 모든 기차역에 혼자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도 그제도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나는 처음 거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고개를 들면   구름에게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하나


나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오늘은 영원으로부터 조금  
 곳으로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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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4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이장욱 시인의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소설 부문에 김이정 소설가의 유령의 시간이 선정됐다.

 

평론 부문에는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쓴 정홍수 평론가가, 번역 부문에는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스페인어로 옮긴 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와 정민정 번역가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 선정사유로 시 부문의 경우 내밀한 아이러니와 중성적인 시쓰기의 비결정적인 지대가 시의 의미를 독자에게 돌려주면서 한국시를 미지의 영역으로 확대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소설 부문은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을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점이 선정사유로 작용됐다.

 

평론부문은 구체적인 삶의 지문을 과하지 않은 미문에 담아냄으로써 그 자체로 문학의 지혜를 체험하게 하는 점을 들었다. 최근 4년여간 발표된 스페인어 번역물을 대상으로 한 번역부문 수상작은 원작이 갖추고 있는 보편성과 함께 표현하기 어려운 함축적인 문장들이나 구어체적 표현들을 스페인어로 잘 소화해 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상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1960년대생 문인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미래파 이전에 아주 내밀한 방식으로 한국 시의 언어적 확장과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상상력에 기여해 온 이장욱 시인,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자서전을 자신이 완성할 것만 같다는 에감을 40여년이 지나 소설로 실현한 김이정 소설가.

 

또 위태롭게 흔들리는 문학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찾아내는 애정과 감식안으로 정점에 달한 평론의 진경을 보여준 정홍수 평론가는 지난 한 해 일어난 한국문학계의 악재와 호재 속에서도 위축되거나 들뜨지 않고 자신 만의 문학세계를 묵묵히 펼치며 한국문학의 중추 역할을 해낸 믿음직스러운 중진 문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젊은 번역가 정민정·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의 번역 부문 수상은 한국문학의 번역에 대한 기대를 더욱 고무시킨다. 한국과 멕시코의 젊은 번역가가 4년여라는 긴 시간동안 의기 투합해 번역에 매진한 결과물인 위저드 베이커리는 멕시코에서도 청소년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판 1만부를 인쇄하며 한국문학 번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심사단 관계자는 시 부문은 기존의 서정시의 기율과 문법에 깊이와 밀도를 부여한 작업도 중요하지만 한국시의 미학적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소설 부문도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이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상찬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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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개의 초록 / 마종기

 

 

"초여름 오전 호남선 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마흔 두 개의 초록을 만난다.

둥근 초록, 단단한 초록, 퍼져 있는 초록 사이,

얼굴 작은 초록, 초록 아닌 것 같은 초록,

머리 헹구는 초록과 껴안는 초록이 두루 엉겨

왁자한 햇살의 장터가 축제로 이어지고

젊은 초록은 늙은 초록을 부축하며 나온다.

그리운 내 강산에서 온 힘을 모아 통정하는

햇살 아래 모든 몸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물 마시고도 다스려지지 않는 목마름까지

초록으로 색을 보인다. 흥청거리는 더위.

열차가 어느 역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바깥이 궁금한 양파가 흙을 헤치고 나와

갈색 머리를 반 이상 지상에 올려놓고

다디단 초록의 색깔을 취하도록 마시고 있다.

정신 나간 양파는 제가 꽃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번 주일을 골라 친척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마흔두 개의 사연이 시끄러운 합창이 된다.

무겁기만 한 내 혼도 잠시 내려놓는다.

한참 부풀어 오른 땅이 눈이 부셔 옷을 벗는다.

정읍까지는 몇 정거장이나 더 남은 것일까."

 

 

 

 

마흔두 개의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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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 마종기(76)의 '마흔두 개의 초록', 소설 부문 황정은(39)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뽑았다.

 희곡 부문 김재엽(42)의 '알리바이 연대기', 번역 부문에서는 얀 헨릭 디륵스(40)의 '바셀린 붓다'(원작 정영문)가 수상한다.  

 심사위원단은 '마흔두 개의 초록'에 대해 "언어의 매끄러운 연쇄 위에 수놓아진 삶의 체험이 전해주는 묵직한 울림",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대해서는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삶의 존재 이유를 침묵의 문장으로 풀어냄" 등을 높게 평가했다.

 '알리바이 연대기'에 대해서는 "개인사와 현대사 교차시킨 역사적 현실에 대한 서사적 글쓰기 개척", 정영문 원작을 독일어로 옮긴 '바셀린 붓다'에 대해서는 "제3세대 번역가의 등장을 알린 유려하고 문학성 높은 등가 번역"이라고 평했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로 상금 5000만원이 주어진다.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상패도 수여된다.

 시상식은 12월1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올해 심사대상작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희곡은 지난 2년·번역은 지난 4년)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되거나 공연된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예심은 김선우·박정대·오형엽(시), 김동식·김숨·심진경·이기호(소설) 등 7명이 6월부터 약 세 달 동안 했다. 본심은 고형진·김광규·신달자·유종호·정호승(시), 강석경·구효서·김형경·도정일·최원식(소설), 박근형·이강백·이미원·이윤택·정복근(희곡), 김륜옥·김용민·안문영·전영애·프리트헬름 베르툴리스 등이 8월부터 두 달 동안 장르별로 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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